최근 모 판사가 근무 시간에 독후감을 수백 개나 작성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비난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기사인 듯했으나, 오히려 ‘나야말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라는 위기감만 느꼈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블로그에 먼지도 털 겸 새 글을 올려본다.
또, 전에 올린 방식은 보기가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어 옛날에 쓰던 방식으로 회귀해 봄.

#1. 동물의 자리
3명의 저자가 국내에 있는 생추어리 네 곳을 방문하고 기록한 글이다. 생추어리란 (이 책에 쓰인 말을 인용해 말하자면) “착취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동물들을 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주체로 존중하는 곳” 혹은 “‘축산 피해 동물’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평생 살아갈 수 있는 곳”을 뜻한다.
여기 소개된 생추어리들은 저마다 맡고 있는 동물들도 다르고, 사연도 다르고, 동물 복지와 권리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하지만 모두 인간으로서 비인간 동물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덕분에 관련 주제―육식, 축산업, 동물권 등―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여기서 따로 설명하진 않겠으나,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금류 섭취를 그만뒀다. 하지만 달걀을 비롯한 다른 동물성 식품은 먹는다. 그래서일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을 거라는 의구심이 불쑥불쑥 치밀 때가 있다.)
#2. 체벌 거부 선언
제목 그대로의 내용이다. 체벌이라는 폭력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선언문 53개가 실려 있다.
사실 나는 ‘맞을 짓’, ‘매를 번다’, ‘잘못을 했다면 맞아야 한다’는 표현이 싫다. 노래 <네모의 꿈>을 틀어놓고 남동생의 기강을 잡아놓았다던 얘기도 싫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빙자한 폭력처럼 느껴진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혹은 동기간에 체벌이 성립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결국 체벌은 (수평적이지 못한 관계에서 약한 상대를 입맛에 맞는 모양으로 길들이려는) 위계에 의한 폭력에 불과할 뿐이라고 본다. 이 책 152p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군가에게 공포를 주어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정 또는 훈련, 세뇌”라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한때 폭력을 당했거나 휘두른 사람들이 고리를 끊겠다고 선언하는 말을 쭉 들으면서, 마음속 막혀 있던 어딘가가 트이는 듯했다.
#3. 외면하지 않을 권리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 학생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대해서 무관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에겐 우리의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 대해 외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그 말대로 이 책에는 어느 누구와도 다를 바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민주주의와 인권, 노동, 환경 등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꺼낸 증언과 성찰이 담겨 있다.
내가 몇 마디 말을 가볍게 얹긴 했어도 그 이상은 나서지 않았던 다양한 의제들에 대해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겪으며 행동에 나선 이들의 모습을 봤더니, 경외심과 부끄러움이 함께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동기 부여도 됐다.
#4. 생각해봤어? 시리즈 2권.
청소년 대상의 인문학 강연을 책으로 담아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2012년에, <우리가 잃어버린 삶>은 2014년에 나왔지만 순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찾아보던 중에 알게 됐는데, 2020년에 새로 나왔다는 <가지 않은 길>은 가까운 도서관엔 없어서……. 상호대차를 신청해볼까 싶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서는 삶-사람이 태어나 병들고 늙고 죽는다는 것-이나 사회 등등을 동서양 고전 철학과 결부해 보고 있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삶>에서는 효율과 목적을 중시하다 놓쳐버린 여러 가치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인 만큼 화자의 의견 개진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어떤 식으로 반박할 것인지 생각해보며 읽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급하게 읽느라 대충 넘기기만 하고 끝낸 것 같아서 아쉽다.
***
나머지 4권은 반납일이 닥쳐와 다 못 읽었다.

자기실현적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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