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X빛의 전사+메테이온.
고유 설정값을 가진 빛의 전사가 등장합니다.
*원작과 상충되는 설정은 전부 망상입니다.
*약 7,000자.
침대의 반쪽만을 차지한 채 잠든 파이퍼의 어깨 위까지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던 데릭은 문득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주춤했다. 뒤를 돌아봤더니 종일 파이퍼 곁에서 지저귀며 지내던 새가 어느새, 데릭에게도 이제는 충분히 낯익은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데릭은 소녀에게 어색하게 말을 건넸다.
“왜, 메테이온. 할 얘기라도 있어?”
“있잖아, 데릭은……글, 쓸 수 있어? 알아?”
데릭이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메테이온은 머리 양옆의 날개를 파닥이고선 이렇게 덧붙였다.
“삐삐한테, 편지, 써 주고……싶어.”
메테이온은 특유의 서투른 말투로 설명을 이어 갔다. 파이퍼의 생일이라든지 둘 사이의 기념일이라든지 하는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파이퍼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다. 파이퍼도 자기한테 아무 이유 없이 이런저런 선물을 많이 주니까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랬구나. ……그런데 왜 편지를?”
“삐삐한테, 갖고 싶은 거, 물어보면, 항상, 똑같아.”
“뭐라고 하는데?”
“‘메티가 있어 주는 게 나한텐 제일 큰 선물인데?’”
그런 대답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면서 투덜거리는 메테이온을 본 데릭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메테이온이 불만을 이만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게 되기까지 파이퍼가 얼마나 공들였을지 짐작이 간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그냥 메테이온의 마음이 예쁘고 대견하게 느껴진 덕분이었다. 데릭은 기꺼이 메테이온을 돕기로 했다.
“대신 써주면 될까?”
메테이온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직접, 쓰고 싶어. 내, 선물이잖아.”
“잠깐만. 너……, 글 쓸 줄 알아?”
메테이온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데릭은 침음을 흘렸다. 그러나 도와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제자리에서 무르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메테이온이 간단한 말로나마 편지를 쓸 수 있을 만큼은 가르쳐 놓는 것. 데릭이 오늘은 무언가 새로 배우기엔 늦은 시간이니까 내일부터 알려주겠다고 하자 메테이온은 방긋 웃었다.
“고마워!”
기쁜 듯 외치더니 불쑥 까치발을 딛고선 데릭의 뺨에 새가 부리로 장난을 치듯 가볍게 입 맞추기까지 했다. 데릭이 얼떨떨해하며 쳐다보자 “삐삐도, 그러잖아, 자주…….” 하고 해명했다. 그래서 데릭도 별수 없이, 파이퍼에게 자주 그랬던 것처럼, 메테이온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메테이온은 파이퍼와 꼭 닮은 모양으로 헤헤 웃고는, 편지에 관해선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데릭은 메테이온이 글을 배우기로 했다는 사실을 파이퍼에게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메테이온과 매일매일 함께 지내는 쪽은 제가 아니라 파이퍼니까, 진도가 몹시 느려지는 걸 피하려거든 협조를 구하는 게 맞았다. 데릭은 단지 메테이온이 왜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만 숨겼다. 메테이온의 일이라면 그게 뭐가 됐든 샅샅이 알고 싶어 하던 파이퍼는 메테이온이 “삐삐도, 일기, 쓰잖아……!”라고 항변하자 곧바로 넘어가 버렸다. 더 캐묻지 않고 메테이온이 쓸 공책과 연필을 마련해주기까지 했다. 학용품을 사는 데까지 동행한 데릭은 파이퍼가 여전히 메테이온에게는 아주 무르다고 생각했다.
그 후 데릭은 파이퍼의 곁에 열이틀을 더 머물렀다. 파이퍼와 만나면 하루에서 이틀쯤 함께 보내고 다시 떠나던 데릭으로선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메테이온이 에오르제아 공용어의 기초 단계를 익히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린 탓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메테이온은 관심 많은 교사가 두 명이나 붙은 덕분인지, 본인의 목표가 확고한 덕분인지, 빠르게 배웠다.
데릭은 메테이온이 쓴 일기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량을 확인했다. 메테이온은 공책 앞장에는 글자 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뒤에서부터 일기를 썼는데, 맨 뒷장의 일기는 글자를 꾹꾹 눌러서 반듯하게 써 놓았는데도 단어가 부족해서 거의 암호처럼 보였다. 예컨대 셋째 줄에 적힌 일기 ‘그림자 몇 월 며칠 빙요일. 낙엽, 주황색, 노란색, 알록달록. 바삭바삭, 즐겁다.’ 같은 건, 그때쯤에 낙엽 더미가 잔뜩 쌓인 숲길을 지났다는 걸 기억해내지 못했다면 쉬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단어 몇몇으로나 간신히 쓰인 일기는 몇 줄 더 내려가자 메테이온 특유의 말투가 고스란히 들리는 어설픈 문장으로 적혔다가, 페이지를 넘기면 메테이온이 육성으로 말할 때보다는 약간 더 매끄러운 문장이 돼 있었다. 비록 소문자가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대문자로만 글을 써서 얼버무리고, E와 G는 자꾸만 좌우를 뒤집어서 쓰고, 철자를 군데군데 틀리기는 했지만, 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가히 장족의 발전이었다.
메테이온이 말이든 글이든 다 비슷하게 서투른 수준이기는 해도 글에서 그나마 비교적 더 유창해진 걸 알고 나서, 데릭은 슬슬 수업에서 손을 떼도 되겠다고 봤다. 메테이온의 일에 완전히 관심을 끊겠다는 건 아니었으나, 이만하면 메테이온도 머지않아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가르쳐 줄 때뿐만이 아니라 함께 지낸 시간을 통틀어 데릭이 알게 된 메테이온은 그만큼 영민했다. 그리고 할 일을 다 마쳤다는 걸 깨닫자마자 결코 어딘가 한 곳에 붙박이지 못할 천성이 되살아난 탓에, 데릭은 파이퍼와 메테이온에게 다소 뜬금없이 떠날 의사를 밝혔다.
“언제 갈 거야?”
“내일. 아침 식사까진 같이 먹고 갈게.”
“편지 써도 돼?”
“……갑자기? 링크펄도 있잖아.”
“메티가 열심인 걸 봤더니 생각나서.”
데릭이 메테이온을 흘끔 들여다봤다. 파이퍼 곁에서 입술을 앙다문 채 무언가 끼적이고 있던 메테이온은 얼굴을 들어 시선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았다. 저를 쳐다보는 둘 앞에서 어디 어디로 갈 생각이라고 대강 행선지를 알린 데릭은 이튿날 파이퍼와 입맞춤을 나누고, 메테이온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돌아섰다.
저답지 않게 퍽 긴 시간을 셋이서 지낸 탓인지, 데릭은 다시 혼자가 됐다는 사실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다. 아기 오포오포가 어깨 위에 앉아 있으니까 엄밀히 말해선 혼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곁에서 조잘거리는 아기 새들 같은 목소리가 없어지니 허전했다. 간판이나 표지판 따위를 발견할 때마다 띄엄띄엄 읽어 보는 앳된 목소리며, 식당이나 카페 입구에서 “세 명 앉을 자리 있어요?”라고 묻는 낭랑한 목소리가 그리웠다. 데릭은 파이퍼가 보낼 편지를 기다리느라 여유를 부린단 말로도 부족할 만큼 느려진 제 걸음을 발견했다.
편지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도착했다. 데릭에게 편지를 전달한 배달부 모그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편지 받아 갈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라고 선배가 겁을 주길래 엄청 쫄았다 쿠뽀.” 파이퍼가 왜 그렇게 말했을지 알 것 같아 데릭은 머쓱하게 웃었다. 모그리가 다른 이들 몫의 편지와 소포를 마저 배달하러 돌아간 뒤, 데릭은 근처의 벤치에 아무렇게나 앉아 편지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세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장은 파이퍼가 쓰고, 하나는 메테이온이 쓴 듯했다.
파이퍼의 편지는 뜻밖에도 제법 유려한 필치로 적혀 있었다. 상투적인 인사를 넘기고 나면 근황 얘기가 빼곡했는데, 사소한 부분까지 미주알고주알 적어놓은 덕택에 꼭 파이퍼가 바로 옆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데릭은 그래서 그 편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 파이퍼는 메테이온이 사나흘쯤 전부터 일기를 보여주지 않고 숨기기 시작한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심지어는 지금 같이 쓰고 있는 편지조차 제게 보여주지 않았다면서, 메테이온이 비밀이 많아진 것 같아 고민이라며 투덜거렸다. 데릭은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그리고 파이퍼가 쓴 편지의 처음과 마지막 문장을 외우다시피 하게 됐을 때쯤 세 번째 장을 집어 들었다. 파이퍼와 똑같은 인사말로 시작한 메테이온의 편지는 짧았다. 데릭은 그것도 꼼꼼히 읽었다. 메테이온은 여전히 글자를 단정하게 꾹꾹 눌러 쓰고 철자를 여러 번 틀렸지만, 이제는 E와 G도 좌우가 거꾸로 뒤집히지 않은 올바른 모양으로 적었다.
메테이온이 쓴 편지도 인사 뒤에 곧장 근황 얘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선 파이퍼의 것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사건 위주로 써낸 파이퍼와 달리 메테이온은 그간 느꼈던 기분을 주로 이야기했다. 데릭은 메테이온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편지를 적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물론 정말로 안 보여줄 거냐면서 자꾸만 기웃대는 파이퍼 앞에서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얼른 편지를 감춰버리는 모습도. 결국 데릭은 웃고 말았다. 입가에 웃음을 걸어 둔 채로 편지를 다시금 천천히 읽었더니, 파이퍼와 메테이온이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데릭은 파이퍼도 일과를 마무리했을 듯싶은 밤중이 돼서야 링크펄을 건드렸다.
“여보세요? 아, 데릭? 편지 받았어?”
연락을 건 사람은 이쪽인데 다짜고짜 화제를 던지는 모양새가 파이퍼다웠다. 데릭은 익숙하게 대화를 받았다.
“잘 받았어.”
“어땠어?”
“지금 이렇게 통화하는 거랑은 전혀 달라서 색다른 기분이 들더라.”
“그치! 휴, 다행이다. 세 장쯤 찢은 보람이 있었네!”
“응?”
“편지 말이야, 편지. 할 말이 많으니까 좀처럼 정리가 안 돼서 처음에 쓴 것들은 좀 끔찍했거든. 그래서 그건 전부 갈기갈기 찢어서 벽난로 안에 던져 버렸어. 아, 물어봐도 안 알려줄 거다?”
말해주지 않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은 주제에 찢어버린 편지들은 어디가 어떻게 마음에 안 들어서 버리게 됐는지 늘어놓던 파이퍼는, 데릭이 “그런데 메테이온은?” 하고 묻자마자 탄성을 내질렀다. 이제는 먼저 찾을 정도로 친해졌냐면서 묻다가, 대답은 듣지도 않고 지금 옆에 있으니까 바꿔 주겠다고 했다. 링크펄 저편에서 “‘여보세요’ 하고 인사하는 거야, 알고 있지?” 당부하는 목소리와 두세 번쯤 덜컥댄 잡음의 뒤를 이어 “여…보세요?”라고 인사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편지 잘 받았어. 고마워.”
“정말? 히히, 다행이다…….”
“이젠 글씨도 잘 쓰던걸.”
“아니야.”
“응?”
“원래는, 하고 싶은 얘기, 더 있었어. 더 있는데, 모르는 말들, 많아서, 어려웠어.”
“파이퍼한테 물어보지 않았어?”
“음…….”
데릭은 메테이온이 뜸 들이는 걸 끈기 있게 기다렸다. 이번엔 링크펄 건너편에서 무언가 실랑이를 벌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가, 발소리가 몇 번 들리고 잠잠해졌다.
“삐삐한테는 비밀이니까.”
메테이온이 대놓고 비밀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파이퍼가 진 모양이었다. 파이퍼에겐 비밀인 얘기를 하려고 메테이온이 자리를 달아난 건지, 메테이온의 드문 고집에 파이퍼가 백기를 들고 자리를 피해준 건지 링크펄만으로는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데릭은 메테이온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들었다.
“삐삐한테 편지 써 주기로 한 거, 그거, 비밀이잖아.”
“응, 그랬지.”
“그래서, 모르는 거 생겨도, 못 물어봤어.”
“파이퍼가 눈치를 챌 것 같아서?”
“맞아……! 삐삐가 알아버리면, 그럼 어떡해?”
데릭은 메테이온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데릭이 보기에도 파이퍼는 눈치가 전혀 없진 않았다. 신역을 전부 넘어서기도 전에 제 정체를 알아챈 것만 봐도 그랬다. 뭐, 그건 애초에 언젠가는 밝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다지 필사적으로 숨기지 않았던 덕도 있겠지만……. 그 순간 데릭은 메테이온에게 이렇게 되묻고 있었다.
“파이퍼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어? 어……. 어?”
“왜 비밀로 하려고 했어?”
“왜냐면, 내 선물 받고 기뻐하는 삐삐, 보고 싶어. 그런데 삐삐는, 내가 선물이라고만 하니까, 미리 다 알려주면, 괜찮다고, 그러면서 안 받을까 봐…….”
데릭은 메테이온이 압박감 따위를 덜 느끼게 하려고 한 차례 숨을 고른 뒤에 이야기를 이어 갔다.
“파이퍼가 너한테 선물을 많이 줬다고 했었지.”
“응.”
“그중에 네가 받을 때까지 비밀이었던 게 있어?”
“아니, 삐삐는, 나한테, 전부 말해줘. 숨기는 거, 아무것도 없어. 선물 줄 때도, 어, 마찬가지?”
“그럴 때마다 네 기분이 어때?”
“간질간질해. 솜털 위에 앉은 것처럼. 삐삐가 나한테, 보물이라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줄 때랑 비슷해.”
“그래. ……이건 내 생각인데, 파이퍼는 메테이온 네가 자기한테 편지를 써 주려고 글을 배웠다는 걸 알기만 해도 무척 기뻐하지 않을까? 그리고 네가 편지에 뭘 적어줄지 기대할 것 같은데.”
데릭이 그렇게 묻자 메테이온은 생각에 잠긴 듯 끙 소리를 냈다. 데릭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 결정은 전적으로 메테이온의 몫이었다. 파이퍼가 메테이온을 향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게 마음에 걸려 설득 같은 짓을 하긴 했지만, 메테이온이 끝끝내 뜻대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테이온이 선언했다.
“삐삐한테 다 말할래.”
“응.”
“그렇지만, 편지도 꼭 써줄 거야.”
선언을 들은 데릭은 ‘잘 생각했다’ 따위의 말은 꾹 삼킨 채로 흐뭇하게 웃으면서 “파이퍼가 선물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네.”라고 했다. 데릭의 귀에 익은 목소리로 헤헤 웃던 메테이온은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잡음이 뒤섞인 침묵이 지나간 후, 다시 파이퍼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얘기 했어? 둘이 사이 좋아진 건 좋아, 좋은데……궁금해서 기다리느라 혼났어. 응? 무슨 얘길 그렇게 길게 한 거야? 메티 얼굴도 밝아졌더라.”
“아. 비밀이야.”
대답을 듣자마자 파이퍼가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으나, 데릭은 웃기만 했다. 메테이온이 파이퍼한테 다 말하겠다고 했으니 굳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직접 물어보지 그래?”
“요샌 나랑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한단 말이야! 어쩌다 그러면 고개를 홱 돌리기나 하고. 봐, 지금도……, 어?”
“흠. 그럼 끊을게. 잘 자, 둘 다.”
파이퍼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데릭은 그래도 괜찮았다. 파이퍼가 메테이온과 며칠간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웃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통화가 끝나고 그새 아기 오포오포도 베개 옆에서 잠들어 적막해진 방 안에서, 데릭은 홀가분함과 허전함 사이 어딘가의 기분으로 자리에 누웠다. 누워 있으려니 파이퍼와 메테이온 생각이 자꾸만 꼬리를 물었다. 메테이온이 파이퍼한테 쓰는 편지는 제게 쓴 것과는 어떤 식으로 다를지, 잔뜩 들뜬 파이퍼가 그 편지를 얌전하게 기다려 줄 수 있을지, 데릭은 그런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들을 몹시도 궁금해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몰려오는 수마 속에서 문득, 저도 그 둘에게 줄 답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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