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이온 논CP 드림. 고유 설정값을 가진 빛의 전사가 등장합니다.
*원작과 상충되는 설정은 전부 망상입니다. 이전의 이야기는 이쪽.
*약 5,100자.

*음식을 먹는 것이 생을 지속하려는 의지로써 삶 자체를 상징한다면, 옷을 입는다는 건 그 삶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한 얘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고, 처음으로 유니폼을 배정받고, 차곡차곡 추억을 쌓으며 자기 스타일을 추구하게 되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담길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쓴 글입니다.


 
 파이퍼는 언제나 그랬듯이 빛살이 여관방의 창문을 뚫고 들어오기엔 너무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사위가 아직 한밤중과 같이 어두운 탓인지 파이퍼의 품에 안겨 있던 소녀는 저를 감싼 온기가 곁을 떠나가는 것도 모른 채 꿈결을 헤매고만 있었다. 파이퍼는 소리 죽여 웃었다. 메테이온이 수면을 꼬박 취해야만 하는지, 저와 마찬가지로 몇 시간씩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드는 순간이 꼭 필요한지, 그런 무척이나 사소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조차 파이퍼는 잘 몰랐다. 의식이 있는 생물이라면 으레 잠을 통해 기억을 정리하고 기력을 회복하기 마련이란 말을 어디서 들은 것도 같으니까, 메테이온도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넘겨짚은 채 지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메테이온에게 식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안다. 겉보기에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입술과 치아, 그리고 혀 따위로 이루어진 구강이 존재해도, 그것은 섭취가 아니라 전체적인 조형과 발성을 위해 자리잡힌 기관이다. 음식물을 씹고, 삼키고,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까닭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별들 사이의 머나먼 거리를 이동하는 도중에 곤란을 겪지 않도록 취해진 배려였을 테다. 음식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굶주린 채로 여행을 계속할 수는 없기에, 차라리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파이퍼는 메테이온을 데려오고서도 딱 한 사람 몫의 식사를 챙겼다. 파이퍼가 어제 미리 사 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뒤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잘 잤어, 메티?”
  “응, 잘 잤어. 파이퍼, 아침 식사?”
메테이온이 파이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애는 파이퍼가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늘 그렇게 행동했다. 파이퍼는 끈질기게 주어지는 시선을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뻔뻔했지만, 친구를 모르는 체하고 혼자만의 식사를 마칠 만큼 낯이 두껍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울티마 툴레에서 메테이온을 데려와 함께 지낸 지 꼬박 하루 반이 됐을 무렵에 툭 물어본 적이 있었다. “좀 나눠줄까?” 메테이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특유의 서투른 말씨로 무언가를 먹었다간 탈이 날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아쉬워하는 파이퍼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선 이렇게 덧붙였다. “좋아하는 음식, 반갑고, 먹으면 즐거워. 그 마음이, 전해지니까, 괜찮아.”
 하지만 메테이온에게 전해지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감정이다. 비록 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는 기분이 공유된다고 해도, 입천장을 긁는 빵의 거친 질감과 혀에 스미는 토마토의 산미를 직접 느낄 수는 없다. 한사코 괜찮다고 말하던 메테이온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얘기는 짤막한 문답만으로 싱겁게 끝났으나, 파이퍼는 여전히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메테이온이 자기만의 추억을 쌓길 바랐기에 함께 여행하자고 데려왔으면서, 고작 음식 한 입 나눠주는 것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때때로 마음에 턱 걸리고는 했다. 그러니 파이퍼가 메테이온에게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당연하기 그지없는 수순이었다.

 답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왔다. 아무도 안겨다 주지 않은 고민거리를 스스로 떠안고 난 뒤 파이퍼 역시 제 곁자리를 지키는 친구를 빤히 들여다보는 때가 늘어, 순식간에 이변을 알아챈 덕분이었다. 새벽의 혈맹이 해산을 선언한 자리에서 꺼냈던 말(“전에 얘랑 약속한 거 봤잖아? 이번엔 둘이서 여행을 갈 거야.”)을 지키기 위해, 가고 싶은 곳을 도무지 짚어내질 못하던 메테이온에게 파이퍼가 그러면 자신의 여행을 되짚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해서 함께 검은장막 숲을 지나던 무렵의 일이었다. 귓전을 웅웅 울려대는 시린 바람 소리가 여상하게 느껴지는 그 숲속에서 파이퍼는 문득, 메테이온이……지난날 봤던 모습과 조금 달라진 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메테이온의 머리칼이 다소 길어진 것 같았고, 키가 아주 약간 자란 것도 같았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었다. 메테이온의 얼굴은 파이퍼가 머나먼 과거에서 처음 조우했던 당시의 앳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였다. 메테이온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성장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어서, 파이퍼는 두세 번쯤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선 아무렇게나 뻗쳐나가려는 생각을 단 한 줄기로 정리했다. 키가 자라고 있다면 옷을 갈아입어야겠구나.
 파이퍼는 제가 조금씩 자라날 때마다 받았던 새 옷가지를 돌이켜봤다. 결국 얼마 자라지 못한 제게 끝내 맞지 않아서 매번 허리띠를 조이거나 소맷단을 접어야만 했던 그 옷들마저도 얼마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지를. 비록 메테이온은 아무 데나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서 기성복 대신 손수 지어준 옷을 입히게 될 테니 치수가 남지 않을 테고, 그래서 파이퍼가 어릴 적 겪었던 순간들을 겪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파이퍼는 사랑하는 아이에게 추억을 몇 점 남겨줄 수 있겠단 기대로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파이퍼는 발치에 나뒹굴던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흙바닥 위로 이런저런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다. 머리 옆에 날개가 있는 구조를 생각하면 목 부분에 여유를 주는 게 좋겠지. 마냥 얌전하기만 한 애는 아니니까 움직이기 편한 형태로, 그럼 기장은 너무 길지 않게, 그래도 귀여운 얼굴에 걸맞게 충분히 귀여운 게 좋을 텐데. 그때 갑자기 어느새 작고 통통한 푸른 새의 모습으로 변해 파이퍼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메테이온이 말을 걸었다.
  ‘이건……나를 그린 거야?’
  “맞아, 메티한테 선물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
  ‘선물?’
  “응.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꽃처럼 감동적이진 않겠지만. 근데 나 신경 써서 억지로 좋아하진 마, 알았지?”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던 메테이온은 마음에 드는 표현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그저 헤헤 웃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파이퍼도 덩달아 웃었다.

 그리고 파이퍼는 그날 밤 자신의 오해를 깨달았다. 가방 구석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줄자를 메테이온에게 들이밀고 난 뒤였다. 명확한 디자인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필요할 듯한 부분은 죄다 측정해서 수첩에 적어놓았더니, 그것을 언뜻 들여다본 메테이온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숫자가, 헤르메스가 쟀을 때랑, 많이 달라.” 그 말을 들은 파이퍼는 우선 고개를 갸우뚱했다. 메테이온이 조금 자란 것처럼 보이긴 했어도 아주 크게 변하진 않았는데, 숫자가 크게 달라졌을 리가 없었다. 확인차 몇 가지 질문을 한 파이퍼는 메테이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대략 400cm, 그러니까 파이퍼가 잘 아는 단위로는 약 13플름에 몇 일름쯤 더해진 크기라는 걸 알게 됐다. 파이퍼는 약간의 계산을 해보고 얼떨떨하게 내뱉었다.
  “안, 안 자랐네?”
물론 숫자가 줄어들기는 했다. 고대 인류의 크기에 맞춰서 만들어진 사역마는 어떤 계기를 통해 현생 인류들의 크기에 맞는 단위로 비율을 맞춰 줄어들었다. 다만 그 계기라는 것이 당시 유일하게 모습을 알고 있었던 파이퍼의 마음에 의해 재현되는 과정이었던 덕분에, 제 어깨쯤까지 오던 키라는 어설픈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 모습에서 위화감 한 톨 느끼지 못하던 파이퍼는 구체적인 수치를 재본 지금에서야 메테이온의 변화 아닌 변화를 똑바로 깨달았다. 요컨대 메테이온은 그 크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몇분의 일로 줄어들기는 했을지언정, 요만큼도 자라지 않은 그대로라고…….
  “그러면 왜…….”
왜 자란 것처럼 보였지? 파이퍼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메테이온도 답을 줄 수 없는 것 같았다. 저를 따라 머리를 갸웃대는 메테이온을 보고서 파이퍼는 생각을 그만뒀다. 추운 바람이 부는 곳에서 본능적으로 깃을 부풀린 것을 잘못 해석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애당초 선물을 주려고 했던 건 메테이온이 성장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마음을 위한 일이었다는 걸 거듭 떠올리며 파이퍼는 메테이온에게 다시 여러 가지 물음을 던졌다. 특별히 원하는 형태가 있는지, 좋아하는 색은 어떤 것들인지, 따로 요구하고 싶은 것은 더 없는지. 메테이온은 명확하게 바라는 것이 없었지만, 좋아하는 색만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꽃밭에 있는 꽃들, 다들, 각자 다른 색이야.”
  “전부 좋아?”
  “응. 그치만 꼭 골라야 하면, 있지, 그러니까―”
맑은 하늘의 푸른빛과 그 안에서 흘러가는 구름의 흰색이 특히 좋다는 대답을 파이퍼는 어렵지 않게 수긍했다. 그건 메테이온이 이미 입고 있는 옷의 배색이기도 했다. 눈에 익어서였을지는 몰라도, 파이퍼도 메테이온에게 그 색들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을 생각해낼 수 없었으므로 새로 지어줄 옷 또한 원래 입고 있는 모양에 약간의 변화만을 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 이후의 일은 정말이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파이퍼는 하고자 하는 일을 미룬 적이 도통 없었던 탓에, 옷의 형태를 그려내고 필요한 재료를 구해서 마름질하고 꿰매는 일에 겨우 며칠밖에 쓰지 않았다. 곁에서 그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본 메테이온은 가봉한 의상을 입어볼 순간이 오자 머리 옆에 달린 양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리고 원래 입던 옷보다 살짝 더 길고 풍성해진 치맛단을 흔들어보며 해맑게 웃었다.
  “예뻐! 뭉실뭉실한 느낌. 파이퍼,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 그래도 아직 다 완성된 건 아니야."
파이퍼는 메테이온에게서 미완성된 옷을 도로 받아내며 말했다. “고쳐야 할 부분은 없는 것 같으니까, 그럼 이틀 정도면 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형태를 보기 위해 대강 꿰맨 옷을 다시 단단히 감치고 장식을 다는 데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어림짐작에서 나온 말에, 메테이온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응, 정말 기뻐. 좋아. 파이퍼가, 오랫동안 열심히 했어.”
  “오래? 기다리기 힘들어?”
  “그게 아니라, 어……, 설탕 듬뿍 사과, 기다릴 때하고, 비슷한 기분이 들어. 그래서 지금도 좋아.”
메테이온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파이퍼는 엷게 미소 지었다. 메테이온이 그동안 받아온 것은 창조 마법에 의한 것들이었다. 탄생 자체가 그랬고, 원래 입고 있었던 옷도 그랬고, 이번에 파이퍼가 건넬 새 옷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었던 꽃밭이 그랬다. 그런 기억이 가득 쌓인 아이에게 마법을 쓰지 않고 옷을 짓는 과정은 지난하고 번잡스러운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번거로운 과정을 지나는 내내 파이퍼는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메테이온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도록 만든 것 같았다. 메테이온의 말을 들은 파이퍼는 더 이상 자신의 동행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약속대로 며칠이 지나, 새 옷으로 갈아입은 메테이온은 파이퍼의 손을 쥐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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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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