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X빛의 전사 CP 드림.
고유 설정값을 가진 빛의 전사가 등장합니다.
*원작과 상충되는 설정은 전부 망상입니다.
*약 2,900자.
파이퍼가 데릭을 다시 만난 건 그 대교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꼬박 2주가 지난 뒤였다. 적지만은 않은 일수에 대개는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눌 법도 하겠으나, 기약 없는 조우를 말하고 갈라선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머쓱함을 느껴도 무방할 시간이었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데릭은 상대를 먼저 알아보고도 인사를 똑바로 건네지 못하고 멋쩍게 시선을 피한 듯했는데, 파이퍼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한달음에 다가가 데릭을 와락 껴안았다. 품 안 가득 들어차는 부피와 낯익은 체취, 그리고 제 등 뒤로 어색하게 얹힌 팔의 무게가 파이퍼의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보고 싶었어―! 데릭, 잘 지냈어? 별일은 없었고? 얘는 여전히 데릭 옆에 딱 붙어있네, 히히.”
제 얘기라는 것을 알아들었는지 아기 오포오포가 폴짝대며 파이퍼를 반기고 건자두 한 쪽을 받아낼 때까지도 데릭은 어색하게만 굴었다. 눈을 마주친 직후부터 지금까지 데릭이 꺼낸 말이라고는 파이퍼가 건넨 인사에 띄엄띄엄 되돌려준 대답과 입버릇처럼 흘리던 의미 없는 ‘아…’ 소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파이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의뢰를 빌미로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얼굴을 맞대며 지내던 무렵에 그랬던 것처럼 쉴 새 없이 재잘댔다. 파이퍼가 마중물 붓듯 퍼붓는 물음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는지, 끝내 데릭이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해서 파이퍼는 데릭이 이제야 막 고지 라노시아에 발을 들인 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정말? 꼽기는 앞순위로 꼽았으면서. 헤맸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 게 빤히 보이는, 헛소리에 가까운 농담을 덧붙인 파이퍼가 키득거렸다. 파이퍼는 2주 전에 데릭에게 들었던 그의 여정을 헤아려봤다. 텔레포를 이용하지 않았을 거라 전제한다면, 오쉬온 대교 남쪽에 자리한 부두에서 서부 라노시아의 맥주 항구까지 항로를 통해 이동한 뒤 다시 고지에 발을 들이는 데 열나흘이란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데릭 역시 파이퍼가 실없는 농담을 흘렸을 뿐이란 걸 이해한 듯, 굳이 설명을 보태기보단 피식 웃고 마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요 근처엔― 아.”
파이퍼는 이번 질문 역시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 답을 대강 알아챌 수 있었다. 데릭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으로 ‘오쉬온’의 이름이 붙은 장소를 찾은 데다가, 남은 행선지로도 그와 관계된 곳을 찾지 않았던가. 애당초 바로 여기서 오른쪽으로 고개만 돌려도 한때 수몰됐던 탓에 잔해밖에 남지 않았으면서도 과거의 위광을 얼마쯤은 간직하고 있는 방랑자의 궁전이 보였고, 이대로 북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외지 라노시아의 니므 하늘유적에 닿을 수 있었다. 파이퍼는 앞뒤 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같이 갈래.”
“어, 그래도 되겠어? 다른 볼일이 있는 건…….”
“전혀! 그리고 만약에 일이 있다고 해도 지금 나한텐 데릭이 가장 중요하니까. 다음에 또 언제 만날지 모르잖아, 그치? 난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단 말이야. 데릭이랑 좀 더 같이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되지? 딴 길로 새 버려도?”
반박할 틈은 주지 않겠다는 양 와르르 말을 늘어놓던 파이퍼가 마침내 허락을 구하며 쳐다본 것은 데릭이 아니라, 자기 어깨 위에 앉힌 파란 새였다. 자기를 거절할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파이퍼의 모습 앞에서, 데릭은 입을 두어 번 뻐끔대다 결국 마땅한 대꾸를 찾아내지 못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기나 했다. 파이퍼가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에도 파이퍼는 도무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꼭 조용히 있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로 떠들었다. 덕분에 데릭은 파이퍼가……
“아니이, 나도 원래는 안 이러거든? 근데 오늘은 아침부터 왠지 모르게 좋은 예감이 들었단 말이야. 데릭이나 다른 누구랑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야 없어도 시도해서 나쁠 거 없잖아.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메티도 응원해 줬으니까. 그래서.”
……재회를 기대해서 일부러 이 부근을 배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쾌하게 느껴진대도 별수 없는 그 얘기가 데릭은 어째서인지 기껍게 들렸다. 파이퍼 특유의 스스럼없는 태도를 마주하고 있으니 차츰 말문이 열려서, 그간의 근황을 얘기하는 것도 쉬워졌다. 데릭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맞장구를 놓던 파이퍼는, 그가 여비를 마련하려고 의뢰를 받던 도중에 어수룩한 신출내기 모험가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근데 이젠 틀린 말도 아니잖아, 그치. 그 입장으로는 경력 0년이지?” 하고 깔깔댔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데릭의 손을 쥐었다. 데릭은 흠칫하면서도 파이퍼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헤헤.”
“……왜 웃어?”
“같이 산책할 정도의 사이는 된 거구나, 생각하니까 너무 좋아서.”
“너…….”
놀리지 마, 하고 데릭이 한숨을 섞어 대꾸하자 파이퍼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파이퍼는 오늘뿐만이 아니라 몇 번쯤 더, 데릭을 만나 함께 걸을 때마다 비슷한 소리를 하며 짓궂게 굴 터였다. 파이퍼와 데릭은 그 사실을 동시에 직감한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치고 나란히 웃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기 오포오포가 의아해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머리 위에서도 무슨 소리가 났다.
“엇. ……오늘 비 올 거란 얘기 못 들었는데.”
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파이퍼의 얼굴 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데릭이 저 역시 비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아마 소나기 정도나 금방 쏟아지고 지나갈 거라고 해도 파이퍼는 뚱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데릭은 그 낯선 얼굴을 보는 게 어쩐지 즐겁게 느껴졌다. 보기 드문 것을 맞닥뜨리면 절로 마음이 벅차고 마는 탐험가의 천성 탓일지도 몰랐다. 제 앞에선 항상 헤실헤실 웃고만 있던 녀석이 입술을 비죽이며 시무룩한 기색을 잔뜩 내비치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목덜미를 간질였다. 다만 데릭은 이 생경한 감각 앞에선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몰라 파이퍼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까지도 파이퍼의 어깨 위에 얌전히 앉아 있던, ‘메티’라는 이름의 파란 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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