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낫세x레하트(고유 설정 있음.)
*애정B 엔딩 이후: 아이를 가진 두 사람이 2세 이름 짓습니다.
*다소 비현실적인 묘사 있음
*약 2,270자
아네키우스가 눈을 감기 시작했을 무렵에 켜뒀던 촛불들이 절반 넘게 타 들어가, 침실은 제법 어두컴컴했다. 그러나 그토록 밤이 깊었는데도 여전히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있던 타낫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저보다 먼저 잠든 아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한참 일찍 잠자리에 드는 레하트를 아내로 둔 그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몇 년이나 한 침대를 써온 덕분에, 다시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레하트가 결코 깨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던 타낫세는, 가만히 레하트의 뺨에 손을 얹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이 손바닥 아래서부터 전해졌다. 곧장 익숙한 모양새로 엄지를 움직여 말랑한 뺨을 마저 어루만지자, 레하트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타낫세의 입에서도 덩달아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타낫세는 레하트가―‘종종’보다는 잦고 ‘자주’보다는 드문 빈도로―보여주는 어린애 같은 구석을 맞닥뜨릴 때마다, 정말로 어렸던 레하트의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이 어리석게 생각되었고, 그런 자책감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벅찬 마음을 만끽하고 말았다. 과거가 어찌 되었든, 결국 레하트는 자신의 반려가 되어 매일 밤을 곁에서 무방비하게 잠에 든다는 사실이, 더군다나 첫 만남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저 작은 몸으로 제 아이까지 품고 있다는 그 사실이, 타낫세에게 행복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기분을 선사해주곤 하는 탓이었다.
그는 입가에 걸린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손을 옮겼다. 그리 밝지 않은 방에서도 내내 눈에 들어오던, 이마의 표식을 향해서. 촘촘히 덮인 앞머리를 조심스레 쓸어 넘기자 드러난 표식이 발하는 한결같은 빛깔은, 타낫세로 하여금 묘한 울렁거림을 느끼게 만들었다. 타낫세는 저도 모르게 머뭇대며 표식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어쩐지 체온이 맞닿는 것과는 또 다른 기묘한 온기가 흐르는 감각에 소름이 돋는 것도 잠시, 그는 어느새 눈꺼풀을 들어 올린 푸른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헤헤, 타낫세에.”
“그, ……내가 깨웠나? 미안하…….”
“아냐, 타낫세 때문이 아니라.”
아닌가? 맞나? 레하트가 혼자 중얼거리며 타낫세의 오른팔을 붙들어 제 배 위에 턱하니 올려뒀다. 아이를 품은 지 석 달… 반년을 훌쩍 넘겨 둥글게 불러있는 배에 손을 대는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타낫세는 뻣뻣하게 굳을 따름이었다. 그런 타낫세를 흘끗 쳐다본 레하트가 킥킥 웃으며 못다 한 말을 마쳤다.
“우리 아기가. 얘, 엄청 활발한 아이인가 봐.”
“……다행히 널 많이 닮나 보지.”
“안 되는데~. 난 얘가 타낫세를 닮았으면 좋겠어. 아가, 아빠한테 인사할래?”
그런다고 복중의 아이가 알아듣기나 할까, 생각하면서도 레하트가 하는 양을 묵묵히 지켜보던 타낫세는, 곧, 제 손 안에 전해지는 작지만 분명한 움직임을 느꼈다. 부정할 수 없는 태동이었다.
“…….”
“신기하지? 타낫세도 뭔가 말해봐. 자주 말 걸어주는 게 좋대.”
무슨 말을? 타낫세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직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은 아이에게 건네줄 만한 말로 딱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레하트가 기대 어린 눈빛을 한 채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타낫세는 끝내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흠…, 어머니를 너무 힘들게 하면 안 된다.”
“그게 뭐야, 에헤헤…. 엄마는 괜찮아.”
작게 웃은 레하트가 여전히 제 배 위에 얹힌 타낫세의 손을 덮듯이 쥐자, 다시 한 번 태동이 느껴졌다. 먼젓번 것보다 더 강한 힘이었다. 일순, 부부는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어느새 자세를 바로잡은, 타낫세였다.
“레하트, 그…, 우, 우리 아이 이름으로 생각해둔 게 있다만.”
“정했어?”
“확실하게 결정지은 것은 아니야. 단지, 네 이름의 일부를 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상관없지만, 그렇게 할 거면 이것도 넣어줘.”
“무엇을?”
“나만의 아이가 아니니까, 타낫세의 이름도 들어가야지. 첫 글자만이라도 같은 글자로 해.”
“그러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입속말로 무언가 중얼거리던 타낫세가, 툭, 한 단어를 내뱉었다.
“테레하テレハ.”
“테레하……. 아가, 마음에 들어? 응?”
앗. 마음에 드나 봐. 레하트가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지은 채 타낫세를 올려다봤다. 그거 다행이군, 짤막하게 대답한 타낫세는 슬그머니 제 자리를 찾아, 레하트를 마주보며 누웠다. 촛불이 그새 다 탔는지 어디선가 희미하게 탄내가 났다. 두 사람의 저택에 아이가 얼굴을 들이밀 날까지, 시간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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