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낫세x레하트(고유 설정 있음.)
*애정 루트 기반
*다른 제목으로 고민한 건 Bloom이었는데, 대안이 있다면 영어 제목은 굳이 쓰고 싶지 않아서…
*약 3,200자
새로운 해가 되고 달의 색이 두 번이나 바뀌고 난 무렵이었다. 무사히 분화를 마친 타낫세의 사촌동생이 계승 의식을 위한 준비에 몰두한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그러나 의식은 아직도 치러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계승자인 레하트가 칩거를 마치지 못한 탓이었다.
들려온 바에 의하면 레하트는 신전에서 여성을 선언하고 돌아간 그날 밤부터 몇 주를 내리 앓았다고 했다. 고열에 시달리다 못해 종종 정신을 잃은 적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총애자가 사경을 헤맨다는 소문을 옮긴 사람들은, 아네키우스 님께서 자신의 실수를 거두시려는 게 아니겠냐는 소리도 덧붙였다. 그런 무심한 말을 들을 때마다 타낫세는 바짝 애가 탔다.
레하트가 오래도록 앓고 있는 건 신의 뜻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분화라는 건 기껏해야 한두 달 남짓 걸린다고들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한두 달 가까이 거기에만 체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중대사다. 그런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제가 저지른…, 아니, 언제 저질렀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그 일 때문에, 레하트가 맞이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면 그냥, 당장 제 혀라도 깨물어서 죽고 싶었다. 그러나 타낫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 심정은 둘째 치고, 일단, 레하트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
“…나는 네가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겠어.”
작년 마지막 날, 레하트의 한결같은 대답 덕분에 끝내 그의 진심을 받아들인 타낫세는―아직 상태가 좋지 않을 레하트를 오래 붙잡아두고 싶지 않아―아쉬운 마음을 억누르며, 품에 들어 올렸던 그를 자리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돌아섰다. 그리고 걸음을 떼려던 순간, 레하트가 등 뒤에서 타낫세의 팔을 붙들었다.
“저기, 타낫세, 잠깐만.”
“……할 얘기가 남았나? 그, 그렇지, 확실히 내가 일방적으로 떠들어대고 있었으니까….”
“아냐! 별 거 아니지만, 이거.”
타낫세가 건네받은 것은 손수건이었다. 곱게 개켜진 채였으나, 여기저기 잔주름이 가 있는 것을 보니 꽤 오래 지니고 있던 물건인 듯했다. 무슨 이유로 준 것인지 알 수 없어 레하트를 가만히 쳐다보자, 레하트가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어물거렸다.
“……기다리는 동안 보고 싶어질지도 모르잖아.”
“…….”
“오랫동안 못 만날 테니까, 그러니까, 그럴 때 위안 삼아줘.”
아, 가 봐야겠다, 그거 다음에 만나면 돌려받을 거니까 잊지 마, 약속이야, 레하트는 그렇게 말을 늘어놓고 후다닥 자리에서 벗어났다.
제 방으로 돌아간 타낫세는 그 손수건을 침대 옆 작은 서랍에 넣어뒀다. 거기 옅게 남아있는 레하트의 체취가 행여나 지워지기라도 할까 봐, 들고 다닐 엄두조차 못 내고 서랍을 잠갔다. 저렇게 잘 모셔뒀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대로 돌려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타낫세는―레하트의 목소리를 내는―얼굴이 흐릿한 여성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해가 바뀐 날 저녁, 레하트가 사경을 헤맨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매일 밤마다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
타낫세는 지금도 무사히 돌려줄 수 있게 된 그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그는 레하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까지 겪던 불안과는 또 다른 초조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며, 만지작거리던 손수건을 겉옷 주머니에 집어넣고 손은 다리 위로 가지런히 모았다가, 테이블 위에 도로 올린 양손을 기도라도 하듯 맞잡았다가, 다시 풀고 손등을 긁적였다가 하고 있었다.
레하트가 제 방에서 나온 것은 기실 열흘은 됐다고 했다.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리리아노와 바일은 계승식 때문에 얘기할 것이 있으니 그랬겠지만, 며칠 전 찾아온 유리리에의 얘기를 들어보니 무슨 이유에선지 제 순번이 한참이나 밀린 듯해 아직도 입이 깔깔했다. 유리리에는 (적어도 타낫세가 생각하기에는) 평소처럼 제멋대로 설교를 늘어놓다가, 제발 예전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는데, 덕분에 타낫세는 제가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할 실수들을 헤아리느라 지금 당장 다가오는 인기척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 곁에 다가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일어섰을 땐, 이미 상대가 저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였다. 그래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누군지 못 알아챌 정도는 아니었다.
“레하트.”
“응. 보고 싶었어.”
레하트의 목소리가 기억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타낫세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그 다음에는 제 등에 기대진 무게감이 가볍다고 생각했고, 레하트의 키가 여전히 저보다 작다는 걸 알았고, 제 허리께에 둘러진 팔을 흘끗 쳐다봤다. 희고 가냘픈 팔뚝이 어쩐지 안쓰러워 돌아서려던 순간, 레하트가 그를 좀 더 세게 끌어안았다.
“잠깐만 이러면 안 돼? 정말 잠깐만이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
“아무도 안 와. 말해뒀으니까.”
“그런가. ……지금은 좀 괜찮나? 상태가 꽤 좋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괜찮아. 앞으로는 걱정할 일 없을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으응. 있잖아, 타낫세는 나 보고 싶었어?”
“……그래. 보고 싶어, 지금도.”
“그럼 이상하게 보면 안 돼. 그럴까 봐 걱정했거든.”
그렇게 말한 레하트는 포옹을 풀고, 두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타낫세도 레하트의 박자에 맞추어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그제야 간신히 마주한 레하트는…, 그러니까, …….
“여, 역시 이상하지…. 많이 변했으니까, 그, 타, 타낫세?”
타낫세는 레하트가 당황하는 기색을 느끼면서도, 그를 도저히 놓아줄 수가 없었다. 미분화 적에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잘 입지 않던 치렁치렁한 옷차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길어진 새까만 머리칼, 분화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앳된 티가 남은 얼굴 같은 것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제 품에 안긴 레하트에게서 전해지는 체향이나 온기, 쭈뼛대며 제 등에 감기는 팔 같은 것이 마음을 더 벅차게 하는 탓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타낫세는 레하트를 안은 팔을 풀지 않고, 거기 들어간 힘만 느슨하게 줄이며 다시금 레하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빛을 발하는 선정인이 이마에 새겨져 있고, 햇살을 머금은 호수의 물결처럼 밝고 푸른 눈동자가 저를 쳐다보는,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그 얼굴을.
“……이래서야 정말로 아름답게 핀 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언제는 진부한 표현이라더니.”
핀잔이라도 주는 듯한 말투는 웃음기가 섞인 채였다. 다행이야, 예쁘게 보여서. 레하트가 소곤대며 고개를 숙여 타낫세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타낫세는 뭐라 더 말하지 않고, 그냥 레하트의 등을 몇 차례 쓸어 내렸다. 손수건은 이제 언제라도 돌려줄 수 있을 테니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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