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번역/여름의 마왕 2020. 10. 21. 16:19

*출처: [각주:1]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대피소로 이용된 곳은 붕괴를 면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체육관이었다. 인근 도시에서 보내진 원조 물자를 목적으로, 어쨌거나 이 마을을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여기 모여 들었다.

나 역시, 지급받은 담요 한 장을 손에 든 채 구석에 기대어 우두커니 안의 광경을 쳐다봤다.

100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그보다 많은 부상자를 낸 이번 재해는, 광산이었던 시절의 산물인 느슨한 지반과, 공교롭게도 점심시간이었다는 나쁜 타이밍이 불운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집이 부서지고, 많은 사람들의 집이 불탔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굳어 있다. 나도 비슷한 얼굴일 것이다.

  , 있다. 있다.”

꾀죄죄한 옷차림을 한 여성이 나를 발견해 외쳤다. 옆 반 담임이었다. 내 담임은 행방불명이랬다.

  이쪽으로 와.”

그녀가 내 어깨를 위로하듯 감싸고선, 체육관을 가로질러 밖으로 데려갔다. 나는 유일한 소지품인 일기장을 들고 그녀를 따랐다.

오늘은 바람이 거세다. 구름은 벌써 가을 기운을 풍기며 평온하게 하늘을 지나고 있었다.

그 옅은 색의 하늘 아래, 교정에 인영이 하나둘 드리워진다.

  니나…….”

아버지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그가 내 이름만 부르더니,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선생님은 내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였다.

  다행이네, 히로키 군. 아버지가 와줘서.”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얘기하렴.”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 같이 강가를 걸었다. 오랜만에 본 아버지의 등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작고, 축 처진 채였다.

  머리, 짧아졌구나. 헤어질 땐 땋고 있었잖아.”

  어머니가 잘라줬으니까.”

  ……어머니는, 안타깝게 됐어.”

그 뒤로, 우리는 서로 얘기를 나눌 틈도 없이 산에서 내려왔다. 도착한 낡은 집, 내가 싫어했던 함석 벽 집이 부서져 불타고 있었다. 달려간 나는 어머니를 찾아낼 수 없었다. 잔해를 한 번 떠올리려고 해봤는데, 이제는 작은 돌 하나도 떠오르질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손에 넣은 것이라고는, 밖으로 튀어나온 책상 서랍 속에 있던 이 일기장뿐이었다. 책상은 절반 이상이 그을렸는데, 이것만은 간신히 살아 있었다.

어머니는 아직 저 잔해 밑에 자고 있다.

  하지만 너라도 살았으니 다행이다.”

아버지는 피곤한 듯이 웃으며 계속 걸었다. 나는 잠자코 뒤따랐다. 옛날엔 자주 이렇게 산책했었다. 아버지는 천천히 걸었고, 나는 여기저기 뒤지며 보물을 발견해 떠들었었다. 민소매 원피스에서 나온 팔은 검게 익었었다.

  니나, 아빠가 단신부임하기 전의 얘긴데…….”

그는 더 이상 나를 니 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때는…….”

나도 이제 보물은 줍지 않고, 그걸 상자에 넣거나 하지도 않는다.

  밤에…….”

가느다란 힘줄이 돋은 아버지의 팔은, 분명 더 이상 그런 힘이 나오지 않는다.

  기억하고, 있어?”

아버지의 등이 떨렸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무슨 일?”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모토나오 때와 비슷한, 하지만 전혀 다른 것 같은 상실감. 분명히, 나는 어머니가 싫지 않았던 거다.

  있잖아, 아빠 집. 같이 갔었잖아, 바다 근처. 기억나지?”

아버지는 좀 전의 질문을 얼버무리듯, 질문을 거듭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다시 물었다.

  ……아빠랑 같이 갈래?”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짐을 꾸릴 필요는 없었으므로, 행정상의 절차만으로 간단히 준비가 됐다. 어머니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우선은 나를 인수자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모양이다. 역에서 아버지가 내게 건네준 표는 그 환승역까지 가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게,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

  아니, 아무 것도 아냐.”

나와 아버지의 대화는 점점 길어졌다. 조금 있으면 부자연스러움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친구한테 인사라거나, 그런 건 정말 괜찮고?”

아버지가 주저하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답했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만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면 좋지. 아마도 작별 인사만 하고 말 터였다.

  그렇구나.”

나와 아버지는 개찰구를 지났다. 이 노선의 복구는 빠르게 진행된 모양이고, 운행 일정도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5분 정도면 전차가 도착한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정말로 이 동네를 떠난다.

문득, 개찰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역무원으로 들리는 목소리와 낯익은 목소리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놀라 고개를 들자, 소타로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소타로가 개찰구를 넘어와, 내게 달려왔다.

  히로키, 가는 거야!?”

역무원도 그를 잡는 걸 포기한 모양이었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다.

  .”

  그런가……. 쓸쓸해지겠네.”

아버지가 수첩을 한 장 찢어서, 주소를 적어 소타로에게 건넸다. 소타로가 가볍게 인사하고 다시 나를 쳐다봤다.

  편지, 편지 보낼게.”

멀리서 전차 소리가 들려왔다. 메마른 음성의 방송이 흘러나오고, 몇몇 손님들이 플랫폼 끄트머리로 이동했다. 소타로는 갑자기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뭔가,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생각이 안 나.”

  .”

나로서도 할 수 있는 건 그저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홈에 붉은 차체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공기가 분출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아버지의 재촉을 받은 나는 소타로로부터 돌아섰다.

  그럼, 소 군. 안녕.”

  , 편지 쓸게, 반드시.”

전철 안에선 리놀륨 냄새가 났다. 등 뒤에서 소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로키, 모토는 너를…….”

철문이 닫히고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소타로의 모습이, 역 건물이, 그리고 마을이 뒤로 흘러간다.

산허리에 들러붙은 여러 지붕들이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모습은 여전하다. 다만, 산의 일부가 무너져서 맨살이 드러난 데가 있고, 산 중턱에 보이던 잿빛 건물들은 온데간데없다.

그것이 내가 본 그 마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 여름의 기억도 끝난다.

지금, 내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멀리서부터 유난히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내 어깨에 걸린 머리를 쓰다듬고, 일기장의 빈 페이지를 곧장 넘긴다. 일기장 끝에 그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일기장을 덮어 무릎에 내려두고, 이번에는 편지를 펼쳤다.

소타로에게서 편지가 도착한 건, 3년 가까이 지난 뒤였다. 소타로의 특징인 각진 글씨체로 주소와 이름이 적힌 봉투에, 우표도 제대로 붙어있고, 소인이 찍혀있다.

인사가 지나간 뒤에는, 모두의 근황이 적혀 있었다.

신야는 아버지가 심한 부상을 입어 후유증을 앓고 있단다. 그 계기로 어쩐지 부부 사이가 원만해졌다는 모양이다. 그런 두 사람을 돕겠다고 신야가 의욕에 넘쳐있는 것 같은데, 또 너무 열심인 건 아닐까, 소타로가 걱정하고 있었다.

부모가 전부 실종된 것은 치코다. 아무래도 그날, 치코를 찾아 산에 들어갔던 게 아니냐고 한다. 무너진 갱도나 주택 안에 있었다면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친척에게 맡겨졌다. 종종 편지가 온다는 것 같았다.

요스케는 형을 잃었다. 무너진 선반에 맞은 모양이고, 그 일이 같이 병원에 입원 중이던 아버지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듯하다.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일한 후계자가 된 요스케지만, 언동이 격렬해졌다고 소타로가 전해왔다.

스즈노는 가족을 잃진 않았지만, 세 사람 다 중증에 가까운 상태라고 했다. 그들이 귀갓길에 타고 오던 전차가 전복돼서란다. 스즈노는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병원에 수용된 가족들을 돌보고, 어질러진 집안도 정리했다고 한다. 한때는 지쳐있었는데, 조금씩 진정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소타로는 집은 무사했는데, 나처럼 그 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봉투 뒷면에 적힌 소타로의 주소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그 마을에 있다. 방해물이 사라졌을 그때까지도. 지금도 아직 있는 걸까.

또 다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편지가 날아갈 것 같아서, 나는 당황해 편지를 붙잡았다. 매해 이맘때면 읽는 통에, 편지는 벌써 누렇게 바래고 너덜너덜하다.

여름이라고는 해도 오봉이 지난 이곳 바다는 해파리가 많아서, 아버지 댁 근처인 이 백사장에도 관광객이 잘 나타나질 않는다. 밀짚모자를 고쳐 쓰고선, 거의 외워버린 다음 장을 읽었다.

묘하게 크기가 고르지 못한 글자들은 망설이면서도, 글을 써 나갔다. 소타로가 계속 마음에 걸려하던 것. 마왕에 대해.

생각해봤어. 마왕은 우리를 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서두는 그렇게 시작됐다.

어째서 마왕이 우리에게 예언을 했을까? 중요한 건 그 부분이야. 그리고 자길 찾아내라고도 했지. 우릴 죽일 작정이었다면, 기습하면 됐잖아. 그때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마왕에게 잡혀갔던 소타로 일행은, 상처도 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삼켜졌던 동안의 기억은 없다고 했다.

생각할수록, 우리를 지켜줬던 것만 같아.

나는 일어섰다. 스커트에 묻은 마른 모래가 주르륵 흘러내려, 그걸 쫓아가듯이 아래를 쳐다봤다.

낮의 햇빛 덕분에 발치에 드리워진 그림자 안에서, 어린 손이 불쑥 내밀어졌다. 이젠 팔꿈치까지 나와 있다. 나는 슬쩍 몸을 굽히고 손을 뻗어서, 내 손끝을 상대의 작은 손끝에 가져다 댔다.

나는 소타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나는 마왕에게 삼켜지지 않았고, 그리고 아직도 먹히고 있으니까.

천천히 잡아보면, 어둠에서 뻗은 손과 내 손이 섞이며, 손바닥이 맞닿는다.

흘러들어오는 풍경.

바다다.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여름 바다.

파도를 헤치고 니나가 달린다. 벗겨진 샌들에 얻어맞은 모래는 물결에 끌려가고, 모래밭에는 여러 가닥의 곡선이 그어졌다. 갈매기는 머리 위에서 울면서 날고 있다. 가끔 그녀는 뒤돌아보고, 두 개의 그림자가 자기를 지켜보는지 확인한다.

니나는 오래전부터 이 바다를 알고 있었다.

나는 아직 니나가 보던 풍경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뻗은 그녀의 팔은, 팔꿈치가 드러나자마자 움직이지 않아서, 나도 잡아당기는 걸 멈추고 손을 풀었다. 나와 니나 사이에는 아직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다.

문득 눈을 들었다가, 짚으로 만든 배가 파도에 휩쓸려온 것을 발견했다. 누가 바다에서 던졌던 물건이 돌아온 걸까, 아니면 강에서 온 걸까.

나는 그걸 집어 들고서, 파도에 띄워봤다. 그것은 가라앉지도 않고, 하늘하늘 흔들린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밀려가는 파도에 잘 올라탄 듯이 바다를 향해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바이바이.”

나는 그것을 배웅하며, 어린 니나처럼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젠가 나는 니나를 거기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커다란 짚배를 만들자. 그리고 거기에 이 일기장과 편지를 올려야지. 짚배는 바다를 건너서, 어머니나 모토나오의 곁에 닿을 것이다.

 

그때에, 나의 그 해 여름을 가득 메웠던 추억은, 그 마을과, 거기 사는 사람들과, 거기서 봤던 풍경들과, 작별한다.

 

 

  1. 달력은 연재 당시인 2003년 7~8월을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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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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