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1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8월 31일(일요일) 맑음.
미리 써놓는다.
우리는 마왕을 쓰러트린다.
반드시.”
***
나는 그렇게만 써두고 일기장을 덮었다. 원래는 잠들기 전에 막차 소리를 들으면서 쓰는 게 습관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가기 전에 미리 써둬야만 했다. 3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일기장의 표지는 장식 같은 것도 없고, 내용도 아직 반을 못 채웠다. 그런 일기장을 책상 맨 위 서랍에 집어넣고 열쇠로 잠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상쾌한 푸른색을 띈 데다 뭉게구름들도 높이 떠 있었다. 꼭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여름날이 시작되는 것만 같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문득 눈을 돌렸더니, 몇몇 아이들이 집 앞 도로를 뛰어가고 있었다. 지난해의 우리들처럼, 하루라도 더 놀고 싶은 부분을 메우려고 열중하는 모습들이다. 나는 저들을 배웅하다가, 그걸 눈치 채고 말았다.
“오빠……!”
니나의 외침에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금세 입이 말라버려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책상 위에 얹은 손끝은 덜컥덜컥, 소리를 냈다.
안개다. 달려가는 소년들을 뒤쫓기라도 하듯, 밟아간 부분에서 피어나는 안개. 전봇대 그림자에 쌓인 안개. 담, 벽, 지붕을 침식하듯 퍼져가는 안개.
드디어 공격이 시작됐다. 정신을 차린 나는 침대에 놓여있던 배낭을 들고, 니나와 손을 잡았다. 마을이 지배당하고 있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아직 도로가 전부 덮인 것은 아닌지, 산에는 검은 그림자라고는 일절 보이질 않았다.
계단을 서둘러 내려가는 도중에 텔레비전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러자 니나가 난데없이 멈추는 바람에, 나도 뒤를 돌아봤다.
“왜 그래.”
“진짜 갈 거야?”
니나는 고개를 숙인 채 꼼짝하지 않는다.
“가지 않으면 죽어.”
“그런데 엄마는 내버려두고?”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나는 초조하게 니나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러는 동안에도 집이 포위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저 사람은 됐어.”
유리문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모습으로부터, 나는 눈을 돌렸다.
“가자.”
그리고 억지로 니나를 타이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길 양쪽에 고인 안개가 스멀스멀 움직여댄다. 걸음이 늦어졌다간 바로 습격당할 것 같아서,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산에 들어가고 나서도, 수풀 아래의 안개가 보이는 탓에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비밀기지 근처에서 소타로와 치코의 모습을 본 뒤에야, 겨우 걸음을 늦출 수 있었다.
“괜찮아?”
내가 무척이나 심각한 얼굴이었나 보다. 소타로가 그렇게 묻는데도, 나는 숨이 가빠서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저거, 안개…….”
“응.”
소타로는 내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이며, 마을을 노려봤다.
“마침내 놈이 왔어.”
모토나오가 말하던 대로다. 저것이 마을을 전부 집어삼키는 순간, 여름방학도 마을 사람들의 목숨도 끝장이다. 그 전에 마왕을 찾아내 쓰러트려야만 한다.
내가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었을 쯤에, 요스케가 나타났다. 요스케는 변함없이 태연한 얼굴로 입을 다문 채, 천천히 산을 올라왔다. 그의 뒤에선, 스즈노가 뒤를 돌아보며 종종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그쪽은 어땠어?”
“뭐가?”
소타로의 물음에도, 그는 무난히 대답한다.
“검은 안개 말이야. 얼마나 나왔어?”
“……뭐야, 그게.”
나와 소타로는 얼굴을 마주봤다. 아무래도 요스케는 안개에 대해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 거거나, 거짓말하는 거거나. 이번에는 스즈노가 답했다.
“상당했어. 길은 어떻게든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젠 가득 찼을지도 몰라요.”
“이젠 마을로는 돌아갈 수 없겠네.”
소타로가 중얼거려서, 나는 나무들 너머의 마을을 내려다봤다. 어수선한 기운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숨어있던 그것이, 돌연 되살아나더니, 여름 내내 비축해온 힘을 해방시키고 있다.
“위험해, 온다, 오고 있어, 어쩌지, 살해당해!”
멀리서 그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문장이 되지 못하는 단어들을 마구 외쳐대며, 신야가 이쪽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저거 봐, 요스케! 있잖아, 공격하잖아!”
“알았어, 알았어. 쓰러트리면 되지.”
“저런 거 무리야, 못 쓰러트려!”
“흐음.”
요스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신야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자세를 취했다. 싸울 작정이다.
“바보, 무리라니까!”
“일단은 해보자고.”
요스케는 정말 보이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 저 안개가 보인다면 저런 여유가 생길 리 없었다. 실제로 나는 다리가 떨려서 움직일 수가 없다.
나무 그늘들에서, 수풀들 사이에서, 들풀들 틈에서, 검은 안개가 들이닥친다. 이제는 이 산조차 안전하지 않다. 안개가 단번에 증식해온다. 꼭 밀려드는 파도와 같이, 그것이 우리를 집어삼키기 위해 다가왔다.
“요스케!”
스즈노가 외쳐도, 요스케는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순식간이었다.
안개가 머리를 쳐들었다. 보이지 않는 요스케는 당연하게도, 위쪽까지는 주의하지 못한 채 너무나도 무방비한 모습을 드러낸 채였다. 검은 응어리가 그에게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러더니 쏴아, 땅에 퍼져간다.
요스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작전실로 들어가!”
굳어버린 우리 귀에 소타로의 지시가 들어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넓게 퍼진 안개가 발 가까이까지 와 있었다. 끽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리는 발길을 돌려 갱도로 달아났다. 달리면서 뒤를 봤는데, 소타로가 입구 쪽에 멈춰서 크게 손을 휘젓고 있었다. 그 순간,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안개는 소타로 앞에서, 뭔가에 부딪친 것처럼 쩍, 갈라졌다. 그런데도 소타로는 작게 혀를 차고서, 우리 뒤를 쫓아왔다.
“막지 못했어. 틈을 파고 들 거야.”
우리는 작전실로 달려들었다. 누가 램프 스위치를 켜자, 하늘색 빛이 주위를 비췄다. 모여든 얼굴 사이에, 역시 요스케는 보이지 않는다.
“본부 쪽을 살펴보고, 거기도 막아두고 올게.”
소타로는 거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그렇게만 말하면서 작전실에서 떠났다. 남겨진 우리들은 불안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기, 요스케 먹힌 거지?”
구석에서 자기 다리를 부둥켜안고 웅크린 신야가 말했다.
“우리도 그렇게 잡아먹히는 거야?”
평소 같았으면 달래기에 나섰을 스즈노도, 파랗게 질린 얼굴을 푹 숙인 채다. 나도 대답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그저 니나를 안고 서 있었다.
그때, 사아아아, 하는 뭔가 땅을 문지르는 듯싶은 소리와 희미한 헐떡임 같은 게 통로 저편에서 울렸다가, 사라졌다. 불길한 예감이 전원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즈노는 즉각 작전실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채 2분도 되지 않아 돌아온 그녀는, 혼자였다.
“소 쨩은?”
치코의 물음에 스즈노가 고개를 저었다.
“끌려간 흔적이 있어…….”
“거짓말.”
“벼랑 밑에 그 안개가…….”
“신님, 소 쨩은 무사하지!?”
말릴 새도 없이 치코가 비명처럼 외치며 스케치북에 펜을 댔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게 제대로 발동될 리는 없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하지도 않고, 펜은 폭주했다. 치코의 몸을 바들바들 떨리게 하면서, 종이에서 삐져나올 기세로 펜이 달린다.
“머, 멈춰야….”
스즈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떻게 손대면 좋을지 헤매는 모습이다. 그렇게 있다보니 스케치북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 순간, 갑자기 신야가 움직였다.
“치코!”
치코에게 정신이 팔린 우리가 그것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낌새를 알아차린 건 신야뿐이었고, 그렇기에 신야는 외침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그러더니 치코를 감싸듯 안는다. 하지만 신야의 행동은 한 발 늦었다.
떡, 하고 땅에서 검은 장막이 일어났다. 그게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을 덮고, 삼킨다.
“이……!”
스즈노가 손을 들고 거기 달려들었다. 안개를 무찌르기라도 하는 양, 손을 두세 번 휘둘러댄다. 쥔 형태로 보면 죽도를 복제한 것을 들고 있는 듯했다.
그런 스즈노의 기세에 밀렸을까, 안개가 흩어졌다. 하지만 흩어진 자리에 신야와 치코의 모습은 없었다.
“히로키 씨.”
스즈노가 험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끼리라도 어떻게든 마왕을…….”
그 순간, 스즈노의 주변에서, 마치 식충식물과도 같이 검은 기둥이 치솟았다. 거기 대항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므로, 스즈노마저 그 급류에 휩쓸렸다. 나는 막을 수 없었다. 단지, 니나를 안고 작전실 벽에 기대 서 있을 뿐이었다.
내 앞의 검은 안개는 한 곳으로 모여든다. 그게 점차 뚜렷한 형태를 갖고, 더욱 짙어진다.
“오빠.”
내 품에서 니나가 중얼거렸다.
“부르고 있어.”
이제는 기둥 형태를 갖추더니, 거기서 차츰 변해간다. 땅에 닿은 부분이 둘로 갈라지고, 윗부분은 잘록한 목 부근을 따라 타원형의 구가 나타났다. 그 구형 아래로는, 가느다란 막대 둘이 중심부인 굵은 원통에서 갈라져 나왔다.
“오라고 했어.”
나한테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니나를 껴안은 채, 벽에 몸을 기대기나 할 뿐.
“안 돼.”
“그치만, 부르고 있어.”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내 귀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니나가 현혹당하고 있다.
갈라진 위쪽의 막대 두 개가 모두 내 앞으로 내밀어졌다. 손가락까진 다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나는 이게 팔이라고 인지했다. 마왕은 이제 사람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검은 마네킹 같았다.
보는 것조차 역겨워 나는 눈을 돌렸다. 달아날 곳이 없다. 저 변화가 끝난 뒤에는, 나도 모두와 마찬가지로 먹힐 것이다.
니나가 내 품에서 버둥거렸다.
“얘기해줘.”
니나도 마왕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나는 초조함을 숨길 수 없어 니나를 나무랐다.
“가지 마, 살해당해!”
“무슨 소리야, 오빠.”
그랬더니 니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정말 의외라는 듯이 되받아쳤다.
“마왕은 죽이지 않아. 데려가기만 해.”
그 말에 놀란 내 손은 절로 느슨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니나가 슬그머니 멀어졌다. 아차, 싶었을 땐 늦었다. 마왕은 그 팔로 니나를 안아들더니, 가슴팍에 밀어넣었다. 검은 안개에 싸이며, 니나의 모습이 사라져간다.
“돌려줘!”
나는 발끈해, 찰나, 두려움마저 잊고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니나가 잡혀간 몸통에 부딪치며 내 몸을 내민다. 안개가 이제는 물처럼 내 몸까지 집어삼키려 들고, 눈앞이 깜깜해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목소리라고 할 수 없는 외침을 내지르며 나는 두 손을 그 어둠 속으로 힘껏 뻗었다. 손끝이 뭔가 따뜻한 것에 닿았다. 작은 손이다. 니나의 손이다. 내 손을 꽉 붙잡는다.
그 순간, 나는 무서운 기세로 뒤로 잡아당겨졌다. 잡혔던 손이 풀려나고, 검은 세계에서 푸른 세계로 돌아가진다. 한참이나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지 못했다. 내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마왕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때까지.
나와 마왕은 서로 쳐다봤고, 내 안에선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마왕의 민둥한 얼굴에 눈은커녕 코조차 없었는데도, 노려보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마왕은 나를 죽일 셈이다. 저 손을 내 목에 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나를 내버려두고, 마왕은 방향을 휙 돌렸다. 그러더니 등 돌린 채 작전실에서 떠났다. 우선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이내 가슴 깊이 분함이 솟았다.
“멈춰!”
소리를 지르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칠 수 없었다.
나는 드디어 알았다. 모두가 마왕에 대해 말할 때마다 느껴지던, 그 위화감의 정체를.
마왕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왕은 나를 잡아가지 않는다. 마왕은 나를 죽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마왕이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이 되고 있다.
“멈춰!”
통로로 나간 마왕에게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뒤에서부터 머리를 들이받고, 팔을 뻗는다. 아직 늦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니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숨을 쉴 수 없고,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펼쳐졌다. 미끈한 감촉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다시 손 같은 감촉을 느꼈다. 서둘러 그것을 부여잡았다.
“너 때문에, 엄마가 이런 걸 참고 있는 거야! 알고는 있어?!”
난데없는 호통이 들려왔다. 그 서슬에 나는 무심코 몸을 움츠리고 손을 놔 버렸다. 겨우 잡았던 손의 감각이 금세 어디론가 흘러갔다.
그건 니나의 손이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 손보다 단단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대체 누구 것이었을까?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또 다시 내 손끝에 뭔가 닿았다. 나는 그걸 잡았다.
“엄마를 지켜줘야지. 그 사람과는 다르게, 버리거나 하지 마.”
귓가에 간청하는 속삭임이 울렸다. 내가 손을 놓자, 도로 조용해졌다.
나는 어떻게든 니나를 찾고 싶어, 니나의 손을 찾아 헤맸다.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손을 잡고, 손을 놨다.
“어찌나 칠칠맞은 아인지. 부끄러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어요.”
“말만 잘 들으면, 행복해지는 거야. 아빠엄마를 너무 걱정시키지 마렴.”
“돌아가자. 야, 가지 않으면 아빠 화낸다. 상담소에 계신 분들께도 폐가 되잖아. 너는 너무 허풍이 심하다니까. 연습하다 당한 거지?”
꾸짖는 목소리, 달래는 목소리, 엄하게 충고하는 목소리. 어느 것도 내가 찾는 게 아니다. 나는 어둠 속을 한결같이 짚으며 찾는다. 오직 하나의 목소리를.
“간식 시간이야, 오빠.”
그리고, 찾았다.
니나의 작고 부드러운 손.
내밀어진 니나의 작은 손을 맞잡았다. 니나가 말했던 추억들이 내 속으로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모든 광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니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다.
“핫케이크다!”
니나가 복도를 팔랑팔랑 뛰어 부엌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포크와 나이프를 나란히 놓는다.
“니나는 있지, 엄마의 핫케이크가 제일 좋아.”
“정말? 기뻐.”
엄마는 미소 짓는다. 행복한 광경.
“이런 건 가짜야.”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광경이 사라지고, 시야는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오른손은 아직 니나의 손을 쥔 채였다. 반대쪽도 잡지 않으면 여기서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어둠 속을 헤집자, 왼손도 금방 발견됐다.
쥐었더니,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역까지 가는 길을 걷는다. 니나의 어깨에 걸린 물병이 무거워서 걷기가 조금 힘들지만, 괜찮다. 어쨌거나 전차를 타러 간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목적지는 놀이공원이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지고, 더위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아냐!”
내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철 같은 거 안 탔잖아!”
정신을 차리니 또 어둠 속으로 돌려보내지고 있다. 양손으로 니나와 연결된 나는, 이젠 두 다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체는 이 안개에 삼켜지지 않은 채, 발바닥으로 땅을 단단히 디딘 느낌이 전해져왔다. 이대로 힘을 줘서 한 발, 한 발, 뒤로 가면 된다.
“니 쨩은 여자애니까, 언젠가는 아빠 곁에서 떠나가겠지.”
“니나, 아무 데도 안 가.”
“그래, 그래. 그럼 아빠랑 약속하자.”
휘감겨오는 정경을 뿌리치며, 나는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빠, 늦게 왔어.”
“그랬네. 이젠 자야지.”
별다른 저항 없이, 니나의 몸이 질질 끌려나오는 듯했다. 내 팔꿈치조차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질 않아서, 니나의 상태를 알 수는 없었다.
“매일매일 늦게까지 큰일이네.”
“일이야. 잘 되면 승진도 있을 것 같아.”
“흐응, 그래. 그렇게까지 여기서 나가고 싶은가.”
숨이 찬다. 게다가 무척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로, 니나의 손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광경이 점점 짙어진다. 뿌리치기가 어렵다.
“사실대로 말하라고!”
“그만해. 니나도 보고 있는데.”
“매번 그렇게 얼버무리기나 하잖아!”
“웃기지 마. 작작 좀 해!”
괴롭다. 괴롭다.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뭔가가 걸리고 있다. 내 머리가 아직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꽤나 뒤로 물러났는데. 뭔가 나를 붙잡고 있다.
“니 쨩, 이리 와.”
“아직 남았는데.”
“됐으니까, 자.”
그림책을 읽고 있던 니나를 안고서, 그녀는 뺨을 비비며 이렇게 속삭인다.
“니 쨩은 아빠 없어도 괜찮지?”
니나는 그 목소리에 불안한 기색을 담고서도, 무척 자연스럽게 물었다.
“아빠, 어디 가?”
“아빠는 있지, 나쁜 사람들한테 끌려갔어.”
“근데, 아빠 저기 있어.”
니나의 바로 옆에서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는 이쪽과는 등을 진 채,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없는 거랑 똑같아.”
니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 팔에 매달려 외치듯이 묻는다.
“왜, 왜? 나쁜 사람이 누구야?”
“자, 누굴까. 니 쨩은 누구라고 생각해?”
질문에 질문이 돌아와 니나의 머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갈팡질팡하며 어머니의 옆모습, 그리고 아버지의 등과 방 안을 둘러본다. 함부로 대답할 수는 없다. 어머니의 눈이 웃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니나는 간신히 대답을 찾았다. 좀 전까지 읽었던 그림책에 그려져 있던 것. 아들이 아무리 호소해도 아버지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
니나는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마왕?”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고, 니나의 시선을 살핀 그녀가 입술에 미소를 머금는다.
“아아, 마왕 말이지. 아, 그래. 놀랍지도 않지.”
그러더니 짐짓 즐겁다는 듯 웃어댔다. 니나는 자기가 한 대답이 맞은 건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그녀의 등에 팔을 감았다. 꽉 밀착한 덕분인지 어머니 몸의 온기가 강하게 전해졌다.
“니 쨩은 마왕에게 잡혀가거나 하면 안 돼. 아빠처럼 되면 안 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를 외면했다. 어머니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아버지의 등이 잘게 떨린다는 걸, 니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 얘기대로라면 납치당하는 건 아이 쪽이다, 라고 생각했던 걸 니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이 납치당하는 걸 깨닫지 못한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발버둥을 쳤다. 이런 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그때 욕실에서의 일이다.
온몸이 젖어 있었다. 마음에 들어 하던 원피스도, 풀어헤친 머리카락도, 하나같이 젖어서 살갗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날. 옆에 서 있던 어머니 역시 젖어 있었다.
목덜미에 가윗날이 닿는 섬뜩한 감촉이 느껴진다. 나는 그냥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얌전히 보고만 있었다.
“니나는 나쁜 애니까.”
훅.
“필요없어.”
훅.
“그러니까…….”
마왕이 데려간 거야. 이 소리도 없고, 숨도 쉴 수 없는 세계로.
목에 손이 얹어지고, 힘이 들어온다.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온 몇 개의 거품이 하늘로 떠오른다. 하늘이 흔들흔들 일그러지고,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가……어머니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번뜩이는 두 눈.
어머니의 얼굴에서 왠지 미움은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울먹이듯이 일그러져 있는 것 같다.
‘네가 유혹한 거잖아!’
녹색과 오렌지색 체크무늬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괴롭다. 답답하다.
떠오르고 싶었다. 띄우고 싶었던 거야, 나를.
나는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 힘은 그런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마왕의 이 어둠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해도 발이 뒤로 가질 않는다. 내 안에서는, 아직이야, 아직이야, 하고 누군가 외쳤다.
새끼고양이는 사람 냄새를 풍겨서 버려지고, 죽여졌다. 그럼 나한테 냄새를 묻힌 건 누구지?
‘……니 쨩.’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냄새가 내 코에 닿았다. 이건, 술 냄새.
‘니 쨩은, 아무 데도 안 가지?’
남자의 목소리다.
‘……를, 좋아하지?’
불현듯이 배 아래쪽에 둔탁한 통증이 밀려온다.
“싫어!”
목소리가 나올 리 없는데도 나는 소리를 지르며. 죽을힘을 다해 뒤로 나동그라졌다. 내 몸이 어둠 속에서 스르륵 빠져나오고, 공기가 내 코와 입에 밀려 들어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은 아직 뭔가를 단단히 부여잡고 있다. 올려다보자 마왕의 등에서 겨우 튀어나온 니나의 손과 내가 이어져 있었다.
마왕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무반응이었다. 지금이라면 간단히 니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손에서 힘이 빠진다. 단단히 얽었던 손가락이 풀리고, 내 손이 툭 떨어진다. 작은 손가락은 내 손가락들을 찾아 허공을 헤맨다. 나는 그걸 쳐다봤다. 행복한 니나.
나는 분명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니나는 내 짐이다. 니나만 없으면, 나는 이 집에서, 이 마을에서 떠날 수 있다.
니나의 손이 나를 부르기라도 하듯이 움직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이젠 돌아가지 않아……거기로는.”
그 순간,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굉음과 함께, 뭔가 널빤지 같은 게 천장을 뚫고 떨어졌다. 흙 알갱이가 내 위로 우수수 쏟아진다. 나와 마왕 사이를 파고든, 작전실 입구에 문처럼 세워진 그것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생각에 잠길 겨를은 없다.
땅에 닿은 손바닥으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일순, 이상한 소리가 내 몸을 꿰뚫었다. 꼭, 열차가 다가올 때와 같이, 낮은 땅울림.
나는 간신히 깨달았다. 니나의 말이 귀에 생생했다.
“마왕은 죽이지 않아.”
죽음을 초래하는 것은 마왕이 아니다.
여름의 끝, 그 죽음은 이제부터 온다. 멀리서 발소리를 울리며 찾아온다.
순간, 굉음과 충격이 나를 덮치고, 쏟아지고, 치솟고, 흔든다. 그렇게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모든 광경이 흔들리다, 모든 감각이 없어져서, 모든 것을 알지 못하게 됐다.
나는 어둠에 휩쓸렸다.
처음 느껴진 건 입 안에 퍼진 흙의 맛이었다. 딱딱하고 퍼석퍼석한 흙에 돌도 섞였는지 껄끄럽다.
주변은 어둡고 온몸이 너무 아프다. 나는 이마를 훔치며 억지로 눈을 떴다. 희미했던 시야가 차츰 뚜렷해지고, 손에 묻은 축축한 것이 붉은 색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없는 걸로 봐선 시답잖은 일일 것이다.
어디선가 저녁놀의 빛깔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있는 장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좁은 장소다. 나는 나뒹굴고 있고, 얼굴 바로 위에 천장이 다가와 있다. 천장은 아무래도 몇 개의 나무로 짜여 있었는지, 거스러미들이 일어난 표면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때,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이건 내 앞으로 내려온 거다. 그리고 이건, 요스케가 만들고 내가 하늘로 띄웠던 그 다리다.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둘러봤더니, 하체 쪽으로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슬금슬금 이 좁은 공간에서 기어 나갔다. 지금 상황을 잘 모르긴 해도, 여기 있다간 까딱하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밖에서 둘러봤더니 내 생각이 맞았던 것으로 판명됐다. 내 몸을 덮고 있던 그 다리 위에 다량의 흙과 돌이 덮여 있어서, 꼭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양새였던 것이다.
둘러보면 그곳이 작전실 안이라는 게 명백했다. 하지만 땅이 흙더미에 파묻혀 우리 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천장 일부가 무너져 하늘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발밑을 살피면서 쌓인 토사를 올라, 밖으로 탈출했다.
갱도가 완전히 무너져 있다. 빠져나온 곳에서는 옛 본부, 버려진 주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산산이 부서진 채로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데에, 본모습을 간직한 주택은 없었다. 산의 나무들도 꺾이고 쓰러진 데다, 땅에도 금이 갔다.
반대로 돌자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내 눈앞에 펼쳐진 마을의 풍경도 기억과는 딴판이었다. 건물 대부분이 무너졌고, 곳곳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기로 뒤덮인 마을이, 내게는 마치 검은 안개가 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서둘러 뒤져봤더니 조금 떨어진 곳, 갱도가 무너진 듯싶은 장소에, 흙에 파묻힌 사람의 등이 몇 개 보였다. 세어봤더니 틀림없이 5명이었다. 얼른 달려가, 숨을 쉬고 있는 걸 확인했다.
“일어나, 얘들아, 일어나.”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등을 흔들면서,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8월 31일 오후 12시 42분, 진도 6.
그것이 우리 마을에 남겨진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