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1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8월 9일(토요일) 흐림 뒤 비.
마왕은 마을을 차츰 지배하고 있다.
모토 군 말대로 도망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
이날은 기지에 모일 때부터 이미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침 일찍, 기자가 밖에 매복해있지 않은 걸 확인한 뒤, 나는 니나를 데리고 기지로 갔다. 앞으로 니나를 두고 나가는 건 무서워서 할 수 없다.
을씨년스러운 하늘 아래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공기가 갇힌 것만 같았다. 하늘이 낮다.
“소 군이다.”
니나가 산 입구쯤에서 뒤를 가리켰다. 돌아봤더니 확실히 소타로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내 모습을 알아봤다고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뭐야, 일찍이네.”
“그쪽이야말로.”
“아, 뭐.”
소타로가 뺨을 긁적이다, 순간 작게 비명을 질렀다. 자세히 보자 소타로의 오른뺨에 세 개의 붉은 선이 나 있었다. 내 시선에 그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들킨 모양인지 신문기자 놈이 어제 와서 말이지, 갑작스러웠으니까 어머니도 흥분하고. 오늘 나간댔다가 붙잡혀서 좀.”
역시 소타로 앞에 기자가 나타난 거였다.
“하지만 계속 거절했더니 (기자도) 돌아갔어. 그들은 단지 마왕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뿐일지도 몰라.”
기지로 가는 길을 오르며 우리는 정보를 교환했다. 소타로는 처음엔 그렇게 말하며 의연한 자세를 보였지만, 내가 어제 기자에게 들은 걸 전하자 금세 표정이 흐려졌다.
“모토의 편지에 거기까지 적히진 않았었지.”
“응, 확실해.”
“그렇다면 놈들은 마왕으로부터도 정보를 얻는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 기자들을 사용해 멤버를 특정하려는 게 아닐까?”
“유도신문일지도.”
“응, 그러면 좋겠는데.”
나도 소타로도 구태여 다른 가능성, 더 간단한 이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멤버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무척 당황한 신야가 본부에 뛰어 들었을 때도, 그를 달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나 아냐, 나, 편지를 줬을 뿐이야, 나는!”
“알고 있어, 신야는 그런 잘못을 할 녀석이 아니라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어제 이불을 덮으면서 생각할 때, (신야가 그랬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에게는 배신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도 분명하겠지만.
하지만 지금의 평정을 잃은 모습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신야는 거짓말에 능숙한 교활함 따위 없다. 소타로가 애써 어느 정도 신야를 진정시켰으나, 그 노력도 요스케가 오며 물거품이 됐다.
나타난 요스케의 왼쪽 뺨은 명백히 부어 있었다. 소타로의 상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보면 왼손에도 붕대가 감긴 채다. 걸음걸이도 어딘가 이상하다. 뒤에선 스즈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따라왔다.
“무슨 일이야!”
모처럼 침착해지려던 신야는 그로 인해 다시 흥분하고 말았다.
“마왕이, 마왕이 그런 거?”
“후지시마다.”
요스케가 망연히 내뱉었다. 뜬금없는 낯선 이름에 우리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이 됐다. 요스케가 더욱 초조하게 말을 내뱉었다.
“내 그룹의 키 큰 놈이다. 본 적 있잖아.”
그 말을 듣자 금방 알았다. (그가) 저 창문으로 들어왔을 때 어떻게 될까 봐 겁을 먹었었다. 그리고 그걸 떠올리는 동시에, 어째서 기자들이 멤버의 정보를 손에 넣었는지도 단박에 알았다.
“그렇지! 우리들만이 아니었지, 그때.”
신야가 손뼉을 딱 쳤다. 우리는 쳐들어왔던 5학년 그룹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반면 당시 그쪽 그룹이었던 요스케는 그 점을 곧장 깨달았을 것이다.
“따졌더니 실토하더라. 본격적으로 혼내줬지. 나머지 녀석들도 실컷 협박해 뒀고.”
“그럼 그 상처는……?”
내 질문에 요스케가 얼굴을 더욱 찌푸렸다.
“그깟 놈들한테 내가 한 대라도 맞을 것 같냐. 이건 염병할 애비랑 염병할 형이지, 개자식들.”
돌연, 그가 왼팔로 본부의 벽을 후려쳤다. 진심으로 해버렸는지 유리창이 자르르 떨렸다. 스즈노가 부랴부랴 그의 팔을 붙들려고 했지만, 요스케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상처가 벌어지잖아요!”
“됐잖아, 그딴 건.”
말과 달리 격앙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말도 억양 없이 평온하다. 다만 눈만은 가라앉아 있다.
“그래서 그 기자들이 포기할 때까진 집에 못 가니까, 여기 좀 빌리자.”
만사를 막론하고 요스케는 그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딱히 상관없었는데, 스즈노만 강력히 반대했다.
“안 되지, 그래봤자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잖아요!”
“그럼 뭘 하면 해결되냐? 우등생한테 빤한 말을 듣는 것도 민폐다.”
“그건…….”
“잠시 동안은 얻어맞지 않는 게 낫지.”
스즈노는 잠시 땅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양 주먹을 꾹 움켜쥔 채였다. 그러더니 그녀가 고개를 들고서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나도 여기 남겠어.”
“바보 같네.”
“누가 할 말인데.”
두 사람 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당연하게도 옆에서 보고 있는 우리가 참견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 있었다. 그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나도.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 나도 여기 있고 싶어. 집은 싫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신야.”
“그거야 들켰잖아. 마왕한테 들켰는데, 우리들. 내려가면 틀림없이 습격당해. 그러다 모토처럼”
“신야.”
소타로가 재차 호명하자 신야는 입을 다물긴 했지만, 그래도 의견을 번복할 생각이 없음은 자명했다. 혹시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돌아가지 않는 건 무리다. 자칫하면 큰일이 나. 게다가 여긴 변변한 식량도 없고, 이불이나 화장실, 욕실도 없어.”
“집에 돌아가는 거야말로 그놈들이 노리는 것 아니겠어.”
소타로의 설득에, 신야는 뾰로통해진 것처럼 고개를 돌리며 투덜댔다.
“히로키는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라니….”
그러더니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 기자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도 당연한데, 집에 가지 않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나는 문득 알아챘다. 딱히 난처한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입을 다문 나는 신야 안에서 자동으로 찬성이 돼 버린 모양이었다. 조금 기운을 차린 신야가 떠들어댔다.
“봐, 이런 상황에선 돌아가는 게 잘못이야. 집에 가도 될 리가 없어. 도망가자, 소. 여기서 도망가면 마왕도 안 쫓아올 거야.”
신야의 말은 점점 애원하는 어조가 됐다. 소타로는 완전히 당황해 구원을 요청하듯 날 쳐다봤지만, 나도 별 수 없었다.
“도망쳐서 어떻게 할 건데.”
“소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그래도 소타로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자, 이제는 대들기 시작했다.
“돌아가고 싶다, 가고 싶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잖아.”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면 되잖아. 아무도 안 잡을 거니까.”
“잠깐 기다려, 치이는 어쩌게. 그쪽은 내버려 둘 생각이야?”
“치코도 여기 오면 되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집에 있는 게 더 위험하지 않나. 어제도 그렇게 겁을 먹었는데, 소는 무시하고 돌아왔잖아.”
“무시 따위 안 해!”
“그럼 어쩔 건데? 치코를 내버려두게?”
신야가 이상하게 침착하고 소타로는 궁지에 몰린, 평소와는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마 소타로에겐 승산이 없을 터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소타로 또한 집에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할 테니까.
“오빠, 집에 안 가?”
니나가 내 옷을 잡고선 불안해하며 물었다.
“가지 않아.”
“왜?”
“집에 가고 싶어?”
“왜냐면 엄마가 있어.”
“응.”
“엄마 혼자는 외로워.”
“외롭지 않아.”
나도 모르게 니나의 말을 단호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니나가 놀란 얼굴로 내 옷을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알았어….”
그러더니 그토록 작게 속삭이고는, 더 묻지 않았다.
멀리서 낮은 천둥소리가 들리고 희미하게 비 냄새가 났다. 이에 맞서듯 매미가 더욱 요란하게 울어댔다.
소타로와 신야의 말다툼도 다시금 치열해졌다.
“소는 늘 핑계만 대면서. 그렇게 전부 잘 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다고.”
“그럼 물어볼게, 치이를 어떻게 집에서 나오게 할 건데? 반드시 난리가 나. 그럼 끝장이야.”
소타로 최대의 반론은, 요스케가 끼어들며 단박에 뒤집혔다.
“어렵지 않지, 납치해 오면.”
요스케가 그렇게 말하며 불쑥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무도 없는 건너편 창문이 열리고, 바로 옆에 서 있던 나무 가지가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그리고 그 가지가 창에서 방 안으로 스르르 들어왔다.
“이렇게만 하면 되잖아.”
요스케 말대로, 그의 힘을 사용해 재빨리 일을 처리하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건 소타로도 부정하지 못한다. 소타로는 도망칠 곳이 없어졌다.
“소 군.”
나는 입술을 깨무는 소타로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튼 치이한테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게 어떨까? 멋대로 결정해도 안 될 것 같아.”
“…그렇지.”
그 말에 소타로의 침울한 얼굴 위로 약간의 빛이 든 것 같다고 생각된다. 소타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야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히로키 말대로 치이한테 확인하고 정하자. 집에서 나오고 싶다고 말하면 데려온다, 그걸로 됐지.”
“당연히 말할 거야.”
소타로는 신야의 트집에도 주눅 들지 않고 컨디션을 회복해, 늘 그랬듯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여럿이 가면 들키기 쉬워. 나랑 요스케 둘이서 다녀온다.”
신야가 못마땅한 얼굴을 했지만, 자기가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다 말해버린 이상 별 수 없다 생각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어서 소타로는 나와 스즈노를 쳐다봤다.
“갑작스런 얘기였으니까, 준비할 게 있다면 몰래 집에 돌아가서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말인즉슨, 필요한 것을 조달해달라는 얘기일 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타로는 신야를 쳐다봤다.
“신야는 여기를 지켜 줘. 마왕에게 들키면 위험할 테니까.”
꽤나 스스로(의 페이스)를 되찾은 듯싶은 말투였다. 물론 신야가 부정할 리도 없다.
우리는 일단 해산했고, 그렇게 내가 어느 정도 장비를 가지고 기지로 돌아왔을 땐 벌써 해질녘이었다. 니나도 거들어서, 수건 이불 몇 장과 아버지가 낚시할 때 쓰던 고형 연료며 휴대 렌지도 가져왔다. 그 큰 짐들을 띄우는 걸 목격당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기가 어려웠던 탓에 시간이 걸렸었다.
그런데도 나를 맞이한 건 신야와 스즈노 두 사람뿐이었다.
“소 군 네는?”
“아직.”
한가한 신야가 대답해줬다. 그 모습으로 보건대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비가 내릴 것 같네요.”
저녁에 접어들자 구름은 더욱 두껍게 드리워졌다. 천둥은 어느새 산 너머로 지나간 모양이지만, 그만큼 일단 내리기 시작하면 길어질 낌새였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회를 엿보는 모양이지. 식사 준비해둘까요?”
나는 스즈노의 제안에 응해서, 마루에 비닐 시트를 깔거나 음료 잔을 준비하거나 했다. 어쩐지 소풍 같아서 즐거웠다. 그새 신야도 가세해 내가 가져온 스토브를 만지기 시작했다.
본부에는 차츰 어둠이 깔렸다. 우리는 손전등을 바닥에 놓아 조명으로 삼았다. 위에다 매달면 더 밝겠지만, 그랬다간 멀리서도 빛이 목격되고 만다.
“아, 비다.”
이따금 밖의 상황을 살피던 신야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도, 소타로와 요스케가 돌아올 기미는 여전히 없었다.
“설마 붙잡힌 건…….”
신야의 불안도 당연하다. 그의 머릿속에선, 불어난 마왕의 부하들로 거리가 넘쳐나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일단 아까 집에 돌아갔을 땐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소타로네가, 예컨대 치코의 부모에게 발견됐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 보고 올게.”
견디지 못한 신야가 기어코 일어서려 했을 때였다. 갱도 안쪽에서 발소리 같은 게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숨죽여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리 너머에 나타난 건 세 개의 그림자였다.
여름방학이 거듭되려 하고 있다.
- 달력은 연재 당시인 2003년 7~8월을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