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1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8월 5일(화요일) 흐림.
모토 군의 편지를 다 같이 읽었다.”
***
갱도로 뛰어든 나는 가쁜 숨을 골랐다. 슬쩍 바깥을 둘러봐도 인기척은 없다. 쫓아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옆에서 니나도 작게 숨을 헐떡였다.
조금은 무리했을지도 모르겠다. 능력까지 써 버렸다. 메모나 카메라 가방을 좀 띄워서 떨어트리며 정신을 흩트렸을 뿐이니까, 바람에라도 날린 거라고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이마의 땀을 닦으려던 나는 문득 손에 뭔가를 움켜쥔 채 달렸다는 걸 깨닫고, 손을 열어 그것을 확인했다. 거기 있는 건 구깃구깃해진 종잇조각, 그 기자에게 건네받은 명함이다. 낯선 출판사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잠시 괜찮니, 얘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얼굴만은 상냥한 그 두 사람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츠네카와 모토나오 군의 친구지?”
나는 고개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애한테 뭔가 들은 거 없어? 이봐, 고민이라거나.”
사고라기엔 밤늦은 때였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고, 게다가 전철 앞을 가로막고 서서 마치 멈추려고 했던 것 같다고 들었다, 만약 그가 자살한 거라면 남겨진 사람들이 뜻을 제대로 알아주는 게 그를 위한 것이겠지, 메모지를 손에 든 살짝 덧니 난 쪽이 내게 그렇게 말해왔지만, 눈을 마주치지조차 않았다. 니나 역시 아무 말 없이 내 뒤에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길을 가로막듯이 서 있던 두 사람에게 힘을 사용하며, 니나의 손을 붙들고 달리고 있었다. 이 갱도에 도착하는 내내, 꼭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달아나는 것만 같아 무척이나 분하고 억울했다.
나는 구겨진 명함을 다시 쥐어 뭉쳐서는 하늘 높이 던졌다. 그러면서 어디로든 가 버리라고 빌었다. 금세 그 종이 나부랭이는 흰 구름 너머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빠, 가자.”
하늘을 노려보는 내 손을 니나가 살며시 잡았다. 나는 니나의 손을 맞잡고 갱도로 돌아갔다.
본부에 들어선 순간, 울음소리가 귀에 들렸다. 치코였다.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우는 치코 옆에서, 소타로가 입술을 꾹 다문 채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타로는 내가 창틀을 넘어가자 지친 얼굴로 이쪽을 돌아봤다.
“아, 히로키,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타로와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다.
“치 쨩, 왜 그래?”
돌이켜보면 왜 그러냐고 물을 게 아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어쩐지 울고 있는 치코가 이상하게 보였다.
“기자에게 매복 당했어.”
“……모토 군 일로?”
“역시 히로킨네에도 갔어?”
같은 기자인지 어떨지는 몰라도, 그들은 어디선가 모토나오의 교우 관계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어쩌면 어제 (모토나오의) 집에 간 걸 봤을지도 몰랐다.
“모토가 부모님께 도시의 중학교에 진학하도록 들어서 부담스러웠던 게 아닌가, 같은 쓸데없는 걸 많이 들었어.”
그 얘기는 나로서도 금시초문이었다. 그게 얼굴에 드러났는지, 소타로가 손을 휘저었다.
“히로키도 몰랐나. 아무한테도 말 안 했겠지, 그 녀석.”
그가 붙으면 당연히 이 마을의 중학교에 다니게 될 우리와는 작별이다. 아직 먼 일이고, 굳이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음. 뭐라고 할까…정말이었구나 생각이 든 거야.”
소타로의 어조는 너무나도 가벼워, 길을 걷다가 10엔 동전이 떨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는 듯싶은 태도였다. 그리고 그 10엔짜리 동전을 마셔서 목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사실이었다. 모토나오는 이제 여기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상한 기분이다. 치코처럼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어제처럼 이 세상이 잘못됐다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러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뭘 하려는 걸까.”
우리를 뒤쫓아 애도의 코멘트를 달고 싶어 한다고 보기에는 묘하다. 설마 마왕에 대해 알 리는 없다. 소타로는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놈들, 자살이 아니면 곤란해.”
“사고…로는 안 돼?”
겨우 울음을 그친 치코가 훌쩍이며 물었다. 소타로는 치코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마을 쪽을 증오스럽다는 듯이 노려봤다.
“자살 쪽이 재밌는 거지, 놈들한텐.”
그리고, 나는 소타로가 말한 유서라는 걸로 짐작되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거…….”
등에 멘 배낭을 내려놓은 내가 안에 넣어뒀던 봉투를 소타로에게 내밀었다. 소타로가 그걸 언뜻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받으려고 손을 뻗다가 바로 앞에서 멈췄다.
“뭐야?”
“집 우체통에 들어있었어. 어젯밤에 찾았는데.”
“그런가.”
모토나오가 죽은 장소와 내 집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소인(消印) 없이 직접 넣은 거라고 간단히 판단이 설 것이다.
“읽었어?”
“처음만 읽다가…가져왔어.”
혼자서는 도저히, 밤에 내 방에서 다 읽을 용기가 없었다. 소타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내 편지를 받았다. 치코도 울음을 그치고, 젖어버린 커다란 눈으로 편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느닷없이 갱도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그 기자들이 여길 찾아왔나 긴장해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거기서 나온 건 늘 만나는 얼굴이었다.
요스케랑, 그에게 끌려 온 신야다. 신야의 입은 요스케의 고집스런 손에 꽉 막혀 있었다. 조금 전의 소동은 신야가 버둥거리며 날뛴 탓인 듯했다.
소타로가 요스케에게 왜 그러냐고 눈짓으로 물었더니, 요스케는 (신야를) 제압하고 있는 채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 녀석이 말이지.”
순간, 신야가 요스케의 팔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그 사람들한테 말하자, 모토는 마왕한테 살해당했다고!”
“이런 말이나 꺼내니까 붙잡아 온 거야.”
“그치만 사실이잖아!”
“사실이든 아니든…….”
신야도 모토나오의 죽음을 실감해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을 것이다. 치코가 벌떡 일어나 신야 곁으로 다가갔다. 눈이 빨개서 울었다는 걸 금방 알아챈 듯, 신야는 치코를 보고 조금 주눅이 든 것 같았다.
“뭐, 뭐야, 치코.”
“신 쨩, 앉아.”
“뭔데.”
“앉아.”
치코는 물러나지 않았다. 신야는 곧 입을 다물더니, 소타로 옆으로 돌아간 그녀 곁에 석연찮은 얼굴을 하고서 주저앉았다. 뒤이어 저런…, 하는 느낌으로 앉는 요스케에게 소타로가 물었다.
“스즈 씨는?”
“아, 이제 오겠지.”
타이밍에 딱 맞춰, 갱도에서 스즈노가 나왔다. 스즈노는 요스케에게 말을 걸며 착석했다.
“따라오지 않은 것 같아. 산 아래쯤에선 더 안 보였어.”
기자들은 쫓아올 만큼 집요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우리에겐 일단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이 기지는 결코 발견되고 싶지 않았다.
“이것으로 다 모였군.”
스즈노, 요스케, 신야, 치코, 소타로, 나, 니나 순으로 우리들은 늘어섰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무의식적으로 소타로와 간격을 두고 앉았다는 걸 깨달아, 다시금 묘한 기분이 되었다. 왠지 거북하다. 꾸물대며 고쳐 앉아, 소타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히로키한테 이걸 받았다.”
소타로가 모두의 가운데 슬그머니 편지를 놓았다. 다들 거기 주목하며 숨을 삼켰다.
“모토의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한다.”
“뭐가……적혀 있는데?”
신야가 달려들어, 금방이라도 열 것 같은 기세로 받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보지 않았어. 지금부터 함께 보려고 하는데.”
찬성이냐 반대냐를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모두가 소타로의 수중을 주목했다.
나는 서두만은 읽었었기 때문에, 반대로 눈을 돌리고 싶었다. 모토나오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편지를 쓸지 계속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보내든 보내지 않든 써 두도록 하겠습니다. 밖에는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실은 어제 직접 만나 이야기할 생각이었지만, 역시 입으로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글로 작성해 정리해두려고 합니다.
이것을 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할지 말지 결정하세요. 나는 그러는 게 좋을지 나쁠지 모르겠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마왕이 정말 두렵기 때문입니다.
소타로는 처음부터 한 장씩 읽으며 돌려간다. 신야와 치코의 손에 넘어가고, 다음에는 스즈노와 요스케, 그리고 나와 니나가 마지막이었다.
몇 번이고 모두에게 얘기하려 했지만, 어떻게 말해도 알아주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마왕은 그날 이래로, 마을 도처에 있습니다. 검은 응어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땅에서 온 것 같습니다. 아스팔트에서도 나옵니다. 나와서 자욱하게 쌓였습니다. 여름방학 초반에 본 것은 전신주 아래서 아른거릴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치코의 곁에 있던 거랑 똑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마왕의 힘입니다.
지금, 창밖을 보면 비를 맞아도 떠내려가지 않고 어른대고 있습니다. 새까맣습니다. 엄청나진 것 같습니다. 저것은 두려운 것입니다. 마을이 저것에 삼켜질 때, 아마 모두가 죽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왕이 어디 있는지는 이렇게나 새까매서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창문 쪽에 검은 안개가 튄 것 같다. 두렵다. 찾는 것도 무리다. 비가 거세다. 이 비 때문에 저 안개는 더욱 강해진 것 같다. 분명 이 태풍도 마왕이 한 짓이다. 놈은 우리를 찾고 있다. 그런 낌새가 난다. 저놈이 왜 지금까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는지 알겠다. 저놈은 우리를 못 찾았다. 그렇기에 마을 전체를 한꺼번에 무너트리려 하는 것이다. 발각되면 죽는다. 도망치는 게 좋다. 역시 돌아오지 말아야 했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밖으로 나가면 그건 없었는데. 비가 그친다. 보이는 곳의 지면이 모두 검어지고 있다. 마왕은 마을을 뒤덮으려 하고 있다. 이런 건 쓰러트릴 수 없다. 이젠 무척 새까맣다. 빠르다. 도로의 멈춤 표지 따위는 전혀 보지 않는다. 저건 아무도 모른다. 걸을 때마다 신발 뒤에 그 검은 것이 끈적하게 들러붙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싫다. 역시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 저기 붙잡힌다. 도망치지 않으면 저것은 계속 다가온다. 가끔 저것은 돋아나 있고, 점프하듯이 솟구친다. 나가면 삼켜질지도 모른다. 어째서 나밖에 보이지 않는 거지? 모두에게 보이면 알아줄 텐데. 이 마을에 있으면 안 된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온통 새까매진다.
우리가 저런 걸 쓰러트릴 리가 없다. 도망쳐. 도망치는 수밖에 없어. 서두르지 않으면 늦는다. 벌써 늦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먼저 가겠다. 이걸 읽거든 서둘러 도망쳐라.
마지막은 갈겨써졌다.
읽는 내내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했다. 다 읽고 나서도 잠시 꼼짝하지 못했다. 바깥에서 나무가 부스럭대는 순간, 치코가 바닥에서 튀어 올라 소타로에게 매달렸다.
모토나오는 그 태풍의 굉장한 바람 속에서, 자신의 방에 앉아 홀로 이런 것들과 마주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 창밖을 봤다간 마을에서 검은 안개가 솟구쳐 엄습해올 것 같았다. 우리는 오롯이, 고리 중앙에 놓인 봉투를 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모토나오는 마왕에 의해 궁지에 몰렸다. 나랑 니나밖에는 진정한 의미를 모를 부분, 돌아오지 말걸 후회하는 모토나오의 고백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모토나오는, 도망가려던 것이었다. 그걸 내가 눈치 챘다면, 그보다 내가 함께 가지 않았다면, 모토나오는 바다에 도착했을지도 모르는데.
마왕에게 살해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마왕은……어떤 놈이야…….”
신야가 오도카니 중얼거렸다. 마왕은 편리한 존재일 터였다. 우리에게 쓰러질 악역. 이야기에 흥을 돋우는 연출자. 이런 전개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마왕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치코의 예언을 떠올렸음이 자명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마왕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그건 이제 이야기의 장치도, 애매모호한 의미로 해석되는 말장난도 아니다. 빵집의 식중독처럼, 반드시 일어나는 현실의 사건이다.
“오늘 마왕 이야기는 없다.”
그 불길한 상상을 끊듯이, 소타로가 쉰 목소리로 단언했다.
“오늘은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자.”
이의는 없었다. 어두운 거리를 걸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골목에 쌓인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검은 안개가 언제 우리를 철로로 떠밀지 모르니까.
우리는 허겁지겁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소타로가 편지를 모아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있지, 그거, 내가 가져가도 될까….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고.”
그때 신야가 소타로를 쳐다보며 어물어물 그런 말을 꺼냈다. 소타로는 내게 편지를 돌려주며 난처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역시 모토가 히로키한테 보낸 거니까, 히로키가 허락해야지.”
신야의 진지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상관없었다. 솔직히, 그 편지를 갖고 있는 게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다.
“좋아.”
나는 신야한테 편지를 건넸다. 신야는 정중히 받아들어, 자기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장례식은 어쩌지?”
그리고 모두들 돌아가려고 할 때, 은근히 피하고 있던 화제를 곧장 꺼낸 것은 스즈노였다. 거기에 대해선 우리들 사이에 분명 내키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제 일도 있고, 기자들이 어슬렁거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있었다.
“응, 아무래도 가야겠지…….”
하지만 가지 않는 것도 왠지 싫다. 모토나오에게는 안 됐지만, 그를 따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모두들 갈까 말까 하는 분위기가 됐다.
거기서 확실히 거부한 건 요스케였다.
“그런 데 갈 것 없잖아.”
“잠깐, 요스케. 거기까진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
스즈노가 당황해 말려도, 요스케는 팔짱을 낀 채로 말을 이었다.
“그 녀석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런 집보단 너희들이랑 같이 있는 편이 즐거웠던 거 아냐? 그럼 그런 데 갈 거 없어. 가봤자 기분도 안 풀려.”
요스케의 그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나는 아마 불경을 읊든, 향을 피우든, 꽃을 바치든, 그리고 죽은 모토나오의 모습을 보든,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끼리 장례식 치를까.”
문득 떠오른 듯 고개를 들고 꺼낸 소타로의 그 제안에, 대답은 모두에게서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 달력은 연재 당시인 2003년 7~8월을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