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 31일

번역/여름의 마왕 2020. 10. 20. 08:41

*출처: [각주:1]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7월 31일(목요일) 맑음.

오늘은 기지에 가지 않고, 모토 군과 놀기로 했습니다.

심한 감기라고 들었는데, 많이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

 

모토나오로부터 전화가 온 건 어젯밤이었다. 처음엔 반갑게 전화를 받았던 어머니가, 나를 찾는 전화라는 걸 알고는 갑자기 쌀쌀맞게 대했다. 늘 있는 일이므로, 수화기를 내팽개치듯이 건네도 개의치 않았다.

  “여보세요.”

  “오랜만.”

전화 너머로 들린 모토나오의 목소리는 힘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 한결같은 것 같기도 했다.

  “감기는 괜찮아? 다들 걱정하고 있어.”

  “아…….”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내가 묻기도 전에, 숨도 고르지 않고 이렇게 부탁했다.

  “내일 기지로 가지 말고 떠나지 않을래? 소타로나 신야한테는 비밀로.”

  “응?”

난데없는 권유에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싫은 건 아니지만, 어째서 모토나오가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때 복도 구석에서 니나가 이쪽을 엿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 바라는 듯싶은 눈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다. 분명 같이 가고 싶어 한다. 나는 밑져봤자 본전이란 심산으로 모토나오에게 제안했다.

  “저기, 니나도 같이 가도 돼?”

  “와.”

간단히 허락을 받았다. 니나에게 눈길을 주자, 뜻을 알아챈 듯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덕분에 내 기분도 좀 가벼워졌다. 가끔은 모토나오랑 둘이서만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

  “응, 어디서 봐?”

  “역 앞 서점에서 열 시 반.”

  “알았어, 그럼 내일 봐.”

그리하여 나와 니나는 때맞춰 서점에 얼굴을 내밀었다. 당연하게도 모토나오는 먼저 와 있었다. 모토나오는 내 모습을 알아보고는, 펼친 책을 덮고 안경을 고쳐 썼다.

  “점심은 챙겼어?”

  “응, 주먹밥.”

둘러멘 작은 배낭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모토나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점에서 나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럼 갈까.”

  “어디에?”

느닷없이 그런 말을 꺼내는 모토나오의 뒤에 대고 묻자,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바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작은 역의 시간표는, 낡다고 교체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상하리만치 반짝거렸다. 모토나오와 나는 그 위에 있는 노선도를 올려다보며, 잠시간 말없이 있었다.

  “정말 바다에 갈 거야?”

나는 갑자기 믿을 수 없어서 그렇게 반문했다. 대답은 없었고, 모토나오는 단지 매서운 눈으로 노선도를 노려만 봤다. 그러더니 차분히 자동 발매기에 동전을 넣고는 표를 두 장 구매했다.

  “나, 돈 별로 없어.”

한 장을 건네받은 내가 허겁지겁 호소했는데도, 떠밀리듯이 받아버리고 말았다.

  “히로키는 안 내도 돼.”

  “그치만.”

  “괜찮아, 내가 먼저 불러낸 거니까.”

그리고 모토나오는 개찰구를 후딱 통과해 버렸다. 나는 망설였지만, 여기서 돌아갈 수도 없었기에 그를 쫓아가기로 했다. 니나는 표가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니나는 모토나오 옆에 나란히 서서, 차체가 빨간 전차를 기다렸다.

  “저기, 모토 군.”

모토나오의 굳은 옆얼굴이 맞은편 간판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불안과 설렘을 반씩 안고 그에게 물었다.

  “뭐가?”

  “정말 갈 거야?”

  “갈 거야.”

  “그때 한 말, 신경 써서?”

모토나오는 말 대신 고개를 젓는 것으로 내 질문에 답했다.

  “그럼 왜 갑자기 바다에 가자고…….”

더 물어보려던 내 목소리는, 홈 안 가득 메아리치는 안내방송에 묻혀버렸다.

전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흰색 선 안쪽으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전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흰색 선 안쪽으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무덤덤한 여자 목소리에 이어, 멀리서 덜컹덜컹하는 차체가 내는 소리가 들려오고, 발치의 아스팔트 바닥이 자르르 떨렸다. 소리가 점점 커지며, 산중에서부터 튀어나온 붉은 알갱이가 순식간에 이쪽으로 다가왔다. 선명한 빨강과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을 지나치더니, 이내 그것은 속도를 줄이며 우리 앞에 멈췄다.

  “자, 타.”

가타부타하지 않고, 모토나오는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나와 니나는 얼굴을 마주봤다가, 출발을 알리는 벨에 떠밀려 서둘러 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냉방이 돼 있어 조금 쌀쌀했다. 모토나오는 4인용 박스 좌석 창가에 앉아, 망양하게 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와 니나도 그의 맞은편에 앉아, 똑같이 거리를 내다봤다. 덜컥, 하고 흔들린 전차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차에 타는 건 이게 처음이다. 어쩌면 옛날에 타 봤을지도 모르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댄 채, 빨갛고 파란 지붕이 산간에 붙어있는 광경을 쳐다봤다. 이윽고 전철이 터널로 들어가 거리의 풍경이 산 너머에 감춰지자, 내 마음은 기대와 불안으로 가득 찼다.

어둠 속, 오렌지색 라이트가 선을 그으며 멀어져 간다. 전철이 터널을 울리며 주행하는 소리와, 귀에 울리는 내 고동 소리가 같은 박자로 새겨졌다.

문득 니나를 봤더니 난처한 듯한 얼굴로 내 옷자락을 붙들고 있어서, 당황했다. 아이들끼리 전철에 탄 불안 때문일까, 아니면 소타로네 몰래 나와 버린 꺼림칙함 때문일까. 복잡한 마음으로 모토나오를 봤더니, 그 역시 나아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창밖을 응시한 채 미간을 좁힌 표정이었다.

  “마을, 보이지 않네.”

말문을 틔우려고 꺼낸 내 말에, 모토나오의 찌푸렸던 얼굴이 펴졌다.

  “응.”

  “어디까지 가?”

  “일단은 환승역까지.”

거기서 다른 전철로 갈아탈 계획이라고 했다. 정말 멀리 가는구나.

창밖으로는 우뚝 솟아난 나무와 어둠이 번갈아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와 모토나오의 대화는 점점 활기를 띄기 시작해, 나는 모토나오가 쉬는 동안 숙제를 했다는 것들을 알려줬고, 모토나오는 그동안 읽었다는 책 이야기를 해 줬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안내방송이 우리에게 종점을 알렸다.

우리 마을과는 전혀 다른 크기의 환승역은 4개 정도의 홈으로 구성돼 있었다. 환승역에서도 나는 모토나오가 구매한 표를 억지로 넘겨받았다. 다음에 탈 전차는 빛바랜 하늘색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색깔이었다.

  “다음은 어디까지?”

  “말했잖아, 바다야.”

물었더니 모토나오가 조금 부루퉁하게 대꾸했다. 여기는 아직 산중이라 표 값이 오백 엔 정도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구태여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니나의 손을 붙들고 정차한 전차에 올라탄다.

대면식 좌석에 앉아있는 대부분은 노인이었다. 그 한 켠에 자리 잡은 우리들은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노출됐다.

  “얘들은, 어디 가니?”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우리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주눅이 들었는데, 모토나오가 당당하게 응대했다.

  “잠시 심부름입니다. 부탁받아서.”

  “어머, 어디까지?”

모토나오가 답한 지명은 나로선 들어본 적 없었고, 어떤 곳인지도 짐작되지 않았다. 다만, 그 지명에는 ‘海’라는 글자가 포함돼 있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탔을까, 안내방송이 그 지명을 불러 우리는 전철에서 튀어나왔다.

우리가 내린 그곳 역시 시골마을이었다. 우리 마을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지는 않았고, 논과 밭이 펼쳐진 땅이었다. 개찰구를 지나 척척 걸어가는 모토나오의 뒤를, 나와 니나가 또 다시 따라갔다.

바다 같은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양이, 모토나오의 발치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그림자를 점차 늘려갔다. 바람이 불 때면 논둑 좌우에 돋아난 녹색의 벼 이삭이 출렁였다. 앞에는 저 멀리 산이 있었다.

저 산 너머에 바다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었다.

저 산을 넘으면.

모토나오의 걸음은 빨랐다. 나와 니나는 점점 뒤떨어지게 돼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에게 외쳤다.

  “모토 군, 기다려.”

그는 그제야 나와의 거리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뒤로 돌며 멈춰서는, 난처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렸다. 그러다 나와 니나가 따라잡자, 불쑥 하늘을 올려다봤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배고프겠네.”

듣고 보니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부인하지 않는 내 손을 이끈 모토나오가 길가의 풀숲에 앉았다. 나와 니나도 그 옆에 앉아, 배낭에서 투박한 알루미늄 호일 뭉치를 꺼냈다. 직접 만든 거니까 별 수 없지만, 모토나오가 웃지 않을까 싶어 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모토나오는 이쪽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아까처럼 하늘을 멍하니 쳐다볼 따름이었다.

  “모토 군은 안 먹어?”

  “배고프지도 않고, 안 가져왔으니까.”

나와 니나가 서로 쳐다봤다. 그러다 두 개 중 하나를 모토나오의 눈앞에 내밀었다. 보이면 부끄럽다는 생각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진 채였다.

  “우린 하나로도 배부르니까.”

모토나오는 처음엔 거절하려고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두지 않으려고, 나는 모토나오의 얼굴을 지그시 노려봤다. 결국은 내 승리로, 그는 마지못해 받아먹었다. 나와 니나도 반씩 나눠 입 안 가득 넣었다. 주먹밥은 미지근하고 딱딱해 그리 맛있지만은 않았는데, 모토나오는 불평하지 않았다.

멀리서 솔개 우는 소리가 났다. 주위에 인적도 없어, 모르는 사이에 다른 세계로 휘말려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 이 세계의 사람을 전부 지워버린 것 같은.

마왕이.

비로소 나는 그 단어를 떠올려냈다. 그러고 보니 마왕 탐색 얘기를 여기 올 때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없는 일인 것처럼 내 머리에서 쏙 빠져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하고 말하던 소타로의 목소리가 돌연 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미안.”

  “뭐가?”

그때, 난데없이 사과하는 모토나오에게 놀라 나는 반문했다.

  “바다, 없는 것 같아.”

아무래도 아까부터 그걸 계속 신경 쓴 모양이다. 나는 모토나오의 고지식함에 조금 웃어버리며 내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응, 괜찮아.”

그러고 나서 우리는 한참이나 거기 앉아있었다. 이 마을 공기는 우리 동네와 달리 모래 맛이 별로 안 났고, 풀냄새가 진했다. 산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인지 햇볕이 강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맨다리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다. 바다에 가면 더 강해지는 걸까. 나는 맡아본 적 없는 바닷물 냄새를 상상했다.

모토나오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본들, 나부끼는 구름 정도나 있을 뿐 딱히 재밌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좋아?”

  “틀렸어.”

물어보자 그가 단언으로 내 질문을 뿌리치고선, 주저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땅을 보는 게 지겨워졌다고 할까.”

  “응?”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러더니 목을 과장되게 몇 번이나 가로젓고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풀을 털었다.

  “돌아갈까.”

어느새 주위는 저녁 기색이 완연하다. 나는 모토나오의 손을 잡고 역까지 가는 길을 걸었다. 내 남은 손은 니나가 잡았다. 우리는 전철처럼 이어진 채 역으로 나아갔다.

돌아가는 길 역시 모토나오가 표를 사줬다. 아마 그는, 돌아오는 요금까지 생각해 다녀올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바다가 있을 만한 곳을 골랐을 것이다. 모토나오는 완벽주의지만, 때때로 이런 허술한 짓을 한다. 물론 나는 이런 모토나오가 싫지 않았다.

우리는 갈 때와 반대의 루트를 통해, 마을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모토나오에게 마왕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데, 매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전혀 나아가지 않은 얘기를 꺼내봤자 소용없다. 더군다나 모토나오는 피곤한 듯, 잠든 니나만큼은 아니더라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모토나오는 이렇게 밤늦게 귀가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 역시 물을 수 없었다.

완전히 어두워진 창밖을 보며, 나는 묘한 기분에 잠겼다. 항상 내 방 창문에서 보던 불이 켜진 창 너머에, 지금은 내가 타고 있다. 어쩌면 또 다른 내가 지금 내 방에서 이 창문을 바라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마을의 이름이 안내되며 전철은 무사히 거기 도착했다. 내린 것은 우리뿐이었다.

  “오늘은 고마웠어.”

역 앞에서 감사 인사를 했는데, 모토나오는 말이 없었다. 아직 졸린 걸지도 몰랐다. 나랑 니나는 몇 번이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그럼 내일 봐, 라고 말하곤 돌아가기로 했다. 모토나오의 집과 우리 집은 정반대 방향이다.

  “히로키, 니나!”

그러나 등을 돌린 순간 이름이 불려, 나는 그를 돌아봤다. 때맞춰 급행 전철이 홈을 지나는 바람에, 쾅쾅대는 굉음에 뒤섞인 모토나오의 목소리가 우리 앞에 닿았다.

  “다음엔 바다까지 갈 수 있게 할게.”

모토나오의 그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기지에 올 거지?”

  “물론 가지.”

이번에는 모토나오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손을 흔들며 떠났다.

나는 추후에 이 일을 가장 잘 떠올리게 되었다. 만약 모토나오가 돌아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소지금 전부를 사용해 표를 샀다면, 우리는 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겁이 많았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설령 과거의 우리들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은 같은 일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바다에 도착했더라면, 이 뒤에 벌어진 모든 일들이 분명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1. 달력은 연재 당시인 2003년 7~8월을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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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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