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1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7월 23일(수요일) 흐림
기지를 쾌적하게 꾸미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스박스를 가져갔습니다.”
***
아이스박스를 가져가는 것 자체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아버지가 단신 부임으로 집을 떠난 뒤로는 아무도 쓰지 않아 벽장 구석에 뒹굴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런 것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문제는 얼음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점으로, 그랬더니 무겁기도 하거니와 그만한 얼음을 매번 집에서 공수해 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무거운 건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마을에서는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으면 한 데 떠 있는 짐의 수상함을 간파할지도 몰라서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후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집에 있는 얼음 틀의 수에도 한계가 있다.
본부에 빈 아이스박스를 갖고 도착해 그 점을 호소했더니, “그럼 다 같이 가져오면 되지”라며 드물게 일찍 도착한 신야가 시원스레 말했다.
“그랬다간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녹아버리는데.”
그는 나의 반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녹아도 되잖아. 한동안은 차가울 거고.”
“그치만 녹은 거랑 안 녹은 걸 같이 두면, 녹는 속도가 빨라져.”
“어, 왜? 아이스박스 안의 온도는 똑같은데?”
신야의 추궁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한참을 생각해봐도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거기서 소타로가 웃으며 지원사격을 해줬다.
“보온병 같은 데 담아서 가져오면 문제없지. 가져가는 것도 힘들 테니까 박스는 여기 두는 걸로 하자.”
지금 본부에 있는 건 나와 신야와 소타로 세 사람뿐이고, 스즈노와 모토나오, 치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치코는 오늘 주 2회 있는 피아노 교습일이다. 강사는 소타로의 어머니라서, 두 사람은 그 인연으로 사이가 가까워진 듯했다.
“피아노 따윈 빼먹으면 좋을 텐데.”
신야는 그렇게 말하지만, 땡땡이를 치거나 하면 소타로의 어머님께서 분개하실 게 빤한 탓에, 치코에게 그러라고 시킨 적은 없었다. 애초에 치코의 부모에게 있어 우리들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으므로, 만약 피아노를 빼먹고 이런 산중에 함께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간 큰일 난다. 어제 치코와 스즈노를 짝 지은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치코가 남자랑 둘이서 거리를 걷던 게 어쩌다 그분들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두렵다. 일전 PTA에 회부되는 소동이 벌어졌던 건, 여기 있는 사람 모두의 뼈에 새겨져 있다. 그때 도마에 오른 것이 신야였다.
소타로가 치코를 여기로 데려온 것도, 동네에서는 감시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한 그녀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모토가 드물게 늦네. 설마 마왕 군단에게 납치감금 당하진 않았겠지.”
“역시 그건가, 그런 것들은 하늘에서 우르르 날아오잖아. 멋지다!”
“어이, 적을 멋지다고 하면 안 되잖아. 그래도 뭐, 놈이 나타나면 블랙 데빌이라고 이름 지어줄까?”
“무기나 필살기에 쓰일 것 같다!”
소타로와 신야가 서로 장난치듯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곁에서 멍하니 갱도 입구 쪽을 보다가,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하고는 움찔했다. 소타로도 그것을 재빨리 알아채 입구를 돌아봤다. 뒤이어 신야도 주목했다.
“안녕.”
찾아낸 것은 스즈노였다. 늘 그랬듯이 길고 검은 머리칼을 머리 위에서 하나로 묶은 모습으로, 이쪽을 향해 웃어 보였다. 다만 찾아온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고, 그 뒤로 한 아름 더 큰 그림자가 있었다.
“꽥, 요스케다.”
신야가 짓눌러진 개구리 같은 소리를 냈다.
“인사한 거냐, 모처럼 놀러왔더니.”
“그냥 한가한 것뿐이면서.”
“그렇게 말하면, 너한텐 선물 없어.”
그러더니 요스케는 갱도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녹색의 둥근 물체가 스르르 나타났다. 그걸 알아본 신야의 눈이 삽시간에 빛났다.
“수박이다, 수박이다!”
“그래.”
커다란 것이 초등학생의 용돈으로는 보통 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타로가 이렇게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설마 밭에서 직접 서리해 온 건 아니겠지?”
산모퉁이에 수박 농사를 짓는 밭이 있어서, 아이들과 농부 아저씨 사이에 매년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건 아냐. 도장 놈들 먹이려고 한 상자 들여온 모양인데, 거기서 챙겨왔지.
“그건, 요스케.”
스즈노의 지적에 요스케가 눈을 찌푸렸다. 그가 상습적으로 슬쩍한다는 건 유명했다. 유명한데 잡히지 않는 건 왜일까 소문이 자자했는데, 여름이라면 그 힘으로 간단히 할 수 있는 거였다.
“얘기할 건 잔뜩 있으니까. 이제 안 할게. 그것보단 얼른 먹자.”
스즈노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했는지, 그는 서둘러 본부 중앙에 수박을 놓았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잘라?”
본부에 칼 따위는 두고 있지 않다. 내 질문에 요스케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거야 이렇게 하면 되잖아.”
우직, 하는 소리가 났다. 내리쳐진 요스케의 손날이 깔끔하게 수박을 깨트렸다. 신야가 해냈다, 해냈다 하며 커다란 조각을 잽싸게 확보했다. 그 뒤로는 수박을 에워싼 채 유유히 간식을 먹는 시간이 되었다.
“너희들, 아직 정의의 편 놀이 하고 있냐?”
요스케가 수박을 크게 베어 물며 질문했다. 나도 한 입 베어봤더니 조금 싱겁고 씨앗도 많았지만, 그럭저럭 달고 맛있었다.
“놀이가 아냐. 세계를 지키는 싸움 중이야.”
신야가 국물을 튀기며 반론하는 탓에, 나는 신야로부터 세 걸음 떨어져서 다시 앉았다.
“세계를 지키는 싸움이라.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봤는데, 역시 마왕은 없잖아. 아니, 예언이나 그림자 같은 게 거짓말이라고는 안 하겠지만, 그 녀석들은 왠지 약해 보이고, 그냥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뿐인 건 아냐?”
요스케가 그렇게 말하던 찰나에 모토나오가 겨우 도착했다. 본부에 들어온 모토나오는 요스케의 모습을 알아보고 미간에 약간 주름이 파였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고리의 빈자리에 앉았다. 그에게 신야가 수박을 내밀었다.
“모톳치도 먹어. 요스케가 가져왔어.”
“음.”
모토나오는 받아들긴 했지만, 붉은 부분을 빤히 보기만 할 뿐 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 뭔가 장치가 됐을까 걱정하는 거라고 짐작한 내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맛있어.”
“응.”
그러자 모토나오도 조심스레 (수박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스케의 얘기는 계속됐다.
“머리 식히고 생각하면 알잖아. 그래서 그놈이 존재한다는 증거 같은 건 찾았어?”
“아니, 뭔가 잘 안 돼. 단서 제로 상태.”
어제 탐문에서는 결정타를 얻지 못했다. 몇몇 곳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다음에는 거길 돌아볼 계획이었다.
“흐음. 담력시험이라면 어울려 주지.”
그걸 요스케에게 말했더니, 그는 태연하게 그리 말해왔다.
“이건 더 진지한 얘기거든.”
“진지고 뭐고,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훅훅 두들겨 패는 게 훨씬 재밌을 것 같은데.”
요스케가 고리의 중앙에 씨앗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그보단 놀자. 마왕은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쓰러트리면 된다며. 아직 한 달이나 남았잖아.”
그러더니 껍질만 남은 수박을 휙 창밖으로 던지고는, 새 조각을 집어 다시 씹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는 단지 한가해져서 놀러온 것뿐인 듯했다. 아마 스즈노에게도 상황은 들었던 모양이다. 소타로와 신야가 얼굴을 마주봤다.
“…뭐, 무리해서 찾아봤자 눈에 띄지 않으면 발견 못하고. 가끔은 숨 돌리기도 괜찮을지도.”
소타로가 그렇게 말하며 모두의 의견을 구하려는 양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지금의 묘한 분위기가 돌아간다면, 하고 찬성했다. 게다가 요스케가 협력해 준다면 더 좋다. 모두들 딱히 반대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좋아, 그럼 결정이다. 그런데 아. 방금 막 생각난 건데…….”
요스케는 곧장 제안해왔다.
“술래잡기는 어떠냐. 능력 써서.”
요스케는 애써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는 기색이었지만, 어떻게 봐도 하고 싶어서 안달 나 있고, 분명 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건 이래저래 그쪽이 유리하잖아.”
하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신야가 불평했다. 뭐, 그 정도 반박은 요스케도 예상한 모양이다. 책상다리로 앉았던 다리를 다시 꼬며 여유롭게 덧붙인다.
“당연히 내 경우에는, 내 손으로 만져야만 터치 유효로. 이러면 어때?”
나는 거기서 좀 생각해서, 치코가 없다면 유불리가 있다고 해도 나름대로 모두들 쓸모 있는 능력이니 상관없겠다고 결론지었다.
“괜찮지 않아?”
그리하여 이렇게 의견을 내니, 가장 약할 터인 내 찬성에 신야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여기서 딱히 옥신각신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험악해지는 건 사양이다.
“자, 그럼. 가위바위보다.”
요스케가 꽤나 강제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지금, 나는 수풀 속에서 숨죽이고 있다. 다리 부근에 느껴지는 모기의 기척이 성가시다. 멀리서는 신발 소리가 격하게 울렸다. 아무래도 신야와 소타로 같은 애들이 다투는 듯했다. 쪼르르 돌아다니는 신야 주위로 소타로가 어떻게 벽을 만드는지 두 사람이 싸우는 걸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모토나오는 힘의 발생원을 찾아서 거기서 도망쳐 다닐 테니까, 의욕 넘치는 요스케가 두 사람의 싸움에 난입한 곳이 주요 전쟁터가 돼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데 끼어들고 싶지 않으므로, 최대한 숨어 있다가 한 번 정도 술래가 되는 밸런스면 적당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깨를 툭 치는 것에 펄쩍 뛰었다. 돌아봤더니, 스즈노가 있었다.
“미안해, 히로키 씨. 요스케에게 말려들게 해서.”
그녀는 부스럭대며 내 옆으로 들어왔다. 수풀은 아직 충분히 넓었다.
“아뇨…….”
“저 녀석도 말이지, 저렇게 마음껏 힘을 써 본 건 처음이라 신이 난 거야. 하나자키 군에게도 폐를 끼쳤네.”
“소 군은 꽤 즐거워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스즈노는 고작 한 살 차이인데 중학생쯤으로 보일 만큼 어른스러웠다. 그건 외모뿐만이 아니라 말투나 몸짓에서도 그렇다. 곁에서 보니 길고 검은 머리는 윤기 나고 보송보송한 게, 내 푸석하고 이상한 데가 있는 머리와는 많이 달랐다. 어쩌다 입을 다물어버린 내게, 스즈노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뭐, 의욕 있는 사람들끼리 하게 해두죠. 저러다 질릴 테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본격적으로 주저앉은 그녀는, 내 귀에 입을 대고 목소리를 낮췄다.
“저기, 히로키 씨, 조금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녀의 망설임이 전해져 와, 왠지 말하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어째서 히로키 씨는 그런…….”
스즈노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 머리 위의 수풀이 파스스 격렬하게 울렸다. 무언가가 무서운 기세로 거길 지나간 것이었다. 둘이서 모두 서둘러 하늘을 쳐다봤지만, 거기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
벌레 치고는 소리가 너무 컸기에 스즈노에게 그렇게 물은 순간, 뒤에서부터 큰소리가 내질러졌다.
“너희 말이지―, 숨바꼭질이 아니라고!”
틀림없이 요스케의 불평이다.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았다. 위를 통과한 건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그럼 도망칠까.”
스즈노가 머뭇대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
“괜찮아, 괜찮아. 저 녀석, 그런 부분만큼은 고지식하니까.”
나는 스즈노의 손에 붙들려 수풀에서 뛰쳐나왔다. 돌아보자 요스케가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손에 목덜미를 잡혀 넘어질까 염려했는데, 요스케는 기어이 그러지 않았다.
“우하하, 빈틈이다! 신야 슈퍼 킥!”
곁의 나무줄기에서 갑자기 그에게 날라 차기를 걸어 온 신야와의 싸움에 말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술래잡기라기보다는 서바이벌 게임에 돌입한 모습이었다. 그 틈에 스즈노와 나는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달리는 내내 스즈노는 깔깔 웃었고, 덩달아 나도 웃었다.
매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 달력은 연재 당시인 2003년 7~8월을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