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 20일

번역/여름의 마왕 2020. 10. 19. 12:16

*출처: [각주:1]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7월 20일(일요일) 맑음, 때때로 비.

비밀 기지에서 우리들은 서로 이야기해봤지만, 결말은 나지 않았습니다.

소 군은 이래서야 정의의 편이 아니라고 곤란해 했습니다.”

 

***

 

그날은 아침부터 구름의 흐름이 유난히 빨랐다. 지상에서는 그렇지도 않지만, 상공은 강한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조각구름이 산 너머로 사라졌다.

나랑 니나가 본부에 도착했을 땐, 이미 소타로와 치코, 모토나오가 와 있었다. 입구의 창을 등지고 세 사람을 마주보며 앉은 남녀는, 몹시 불쾌하다는 태도를 숨기지 않는 요스케와 그를 곤란한 듯이 곁눈질하는 스즈노였다. 다시 오겠다더니 정말 온 모양이다.

나는 쭈뼛대며 그들 곁을 지나 모토나오 옆에 앉았다. 니나도 따라서 내 옆에 앉는다. 그들 역시 나를 흘끗 보고는, 말없이 자세를 고쳤다.

  “모토 군, 저 사람들…….”

언제부터 와 있었냐고 모토나오에게 속삭이려던 나는, 그제야 모토나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놀랐다. 모토나오가 눈 밑에 그늘을 드리운 초췌한 모습이어서였다. 내 놀란 낌새를 알아챘는지, 모토나오는 땅을 보는 채로 안경을 고쳐 썼다.

  “잠을 좀 못 자서.”

가볍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가 대답했지만, 어떻게 봐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다만 내겐 그걸 따질 고집이 없었다.

  “만화라도 읽었어?”

  “응. 재밌어서 밤을 새 버렸네.”

얼버무리려는 내 말에 모토나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모토나오라면 설마 정말 만화를 읽느라 잠이 모자랐다고 해도, 만화 같은 멍청한 건 안 읽었어, 라고 말할 터였다. 나는 더 캐물을 수 없어 입을 다물었고, 본부는 도로 불편한 침묵에 휩싸였다.

  “신야는 아직인가.”

나와 모토나오의 대화가 마음에 걸렸을 소타로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무심결에 모토나오의 왼손을 봤다가, 거기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지 않은 것을 간신히 깨닫자마자 더욱 불안해졌다.

  “뭐, 시간도 넘겼는데 먼저 시작할까. 괜찮지요?”

마지막 말은 요스케와 스즈노를 향해 소타로가 물은 것이었다. 요스케가 작게 혀를 차며 답했다.

  “괜찮고말고, 이쪽은 그러려고 온 거다.”

순간 곁에 있던 스즈노에게 그의 머리가 얻어터진다. 그녀는 요스케의 원망스러운 눈초리에도 태연한 표정을 무너트리지 않고, 소타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신들에겐 어제, 요스케 무리가 폐를 끼쳤지요. 분명 오늘은 그 사죄를 위해 여기 온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나이에 걸맞지 않은 태도와 말투를 하는 사람이었다.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데, 소타로가 당혹스러워 했다.

  “으음, 아니, 이제 그건 아무래도 됐고…….”

그의 시선이 순간 내게로 쏟아졌다가, 창문으로 옮겨갔다. 나는 소타로가 바라는 바를 알아채 퍼뜩 손바닥을 움직였다. 그러자 스즈노의 뒤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다리가 세워졌다. 요스케와 스즈노가 놀라 돌아봤으므로, 이번에는 손가락을 아래로 휘저었다. 순간 다리는 받침대를 잃고서 창문 아래로 늘어졌다. 또, 어림잡아 다시 한 번 손을 위로 치켜든다. 조금 흥을 타 버렸는지 다리가 비스듬히 올라와 완만한 미끄럼틀처럼 됐지만, 뭐, 미세한 조정은 할 수 없으니 하는 수 없다. 여기서 저 두 사람은 내 동작과 다리가 움직이는 것의 관계를 이해한 것 같았다.

  “즉, 저희도 같은 걸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회자 역할을 맡은 소타로가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 다음에는 모토나오를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그러므로 그는 보입니다. 그런 힘을 가졌습니다.”

  “아마 그쪽은 늘리는 거겠지. 물건을 건드리는 건 손바닥만이려나. 거기만 강했거든.”

지목당한 모토나오는 요스케를 흘끔대며 나직이 말했다.

  “당신 쪽은 잘 모르겠지만, 어제 막대 같은 걸 손에 들고 있었어. 죽도 같은 형태였는데.”

스즈노는 좀 전부터 표정이 굳어 있었으나, 그 지적에 다시금 안색이 바뀌었다. 반면 요스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천장 부근을 보며 말했다.

  “어쩐지. 나랑 스즈노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때, 갱도 쪽에서 우당탕 시끄러운 발소리와 함께, “늦었다, 늦어버렸다”라고 말한 신야가 본부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그 빌어먹을 5학년들도 쫓아냈는데, 오늘은 뭐하고 놀아?”

물론 신야답게, 요스케와 스즈노의 존재도 알아채지 못하고, 우리의 곤란한 표정이나 시선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서슴없이 자신의 계획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어제 못한 건배부터 하자. 콜라 미지근해졌지만 참고. 그리고 다음엔 암호를…….”

  “어제는 미안했다.”

갑작스레 뒤에서 말을 건네는 요스케에, 신야는 고양이처럼 펄쩍 튀어 오르며 뒤를 돌아봤다. 어제의 적을 발견해 반사적으로 자세를 갖추는 신야를 향해, 요스케는 이제는 안 할 거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양반다리를 한 무릎에 손을 내려두고, 재차 소타로를 향해 돌아앉았다.

  “존댓말은 빼도 돼. 듣고 있으면 간지러우니까. 이름도 편하게 부르는 게 좋다.”

  “저기, 소, 뭐야, 이거.”

요스케와 신야가 동시에 떠들자, 우선 소타로는 신야를 손짓해서 치코 옆에 앉게 했다. 신야는 부루퉁한 얼굴이 되면서도 마지못해 그 지시에 따랐다. 요스케는 그가 진정되길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나저나 묻고 싶은데, 너네도 여름방학 동안만 이런가?”

요스케가 목적어를 빠트렸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을 모두가 즉각 알았다. 그들의 힘 역시 우리와 동일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처음으로 동갑이 아닌 동료였다.

  “똑같구나.”

소타로가 탄식했다.

방학 동안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우리 다섯이 서로를 동료로 인지한 것도 우연이었다. 2년 전 수영장을 사용한 날, 치코의 발에 쥐가 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지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를 묶은 건 모토나오의 힘이었다.

  “나와 스즈노가 이 기묘한 힘에 대해 깨달은 건 3년쯤 전이었다. 너희들은 어땠어?”

아무래도 그것마저 똑같은 것 같다. 우리 중에서는 치코의 힘만 발견이 늦었는데, 대체로는 비슷한 시기에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말인데.”

흥이 오른 모양인지, 요스케는 진지한 얼굴로 몸을 내밀었다. 곁에 있던 스즈노도 지금까지의 대화로 상황은 파악해서인지, 말없이 그에게 대화를 맡기고 있었다.

  “여기 있는 놈들 말고, 이 힘에 대해 아는 놈은 있어?”

소타로는 거기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부모도?”

요스케의 다그치는 듯싶은 물음에, 모두들 절레절레 도리질을 쳤다. 각자의 사정으로, 우리는 부모에게 상담하거나 털어놓을 수 없었다. 믿어주지 않을 것이 눈에 보였고, 괜히 소란을 피우기도 싫다는 게 우리 모두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건 잘 했네.”

거기서 요스케가 콧방귀를 뀌며 작게 웃었다.

  “나는 실수로 말했다가 아버지랑 형님한테 멍청한 소리 말라면서 병원에 가게 됐으니까. 전치 한 달이었지.”

스즈노의 표정 덕에 요스케의 저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아무래도 저 두 사람은 소꿉친구인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그 짐작이 맞았다는 건 추후에 스즈노에게 들어서 확인됐다.

  “그래서 너희들이 술술 지껄여대는 놈들이면 협박해두자고 생각했지. 그게 오늘 온 이유다.”

요스케는 웃음을 머금고서, 그렇게 우리를 향해 무시무시하게 굴었다. 어제까지였다면 나는 그 섬뜩한 미소에 완전히 주눅이 들었겠지만, 지금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는 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동료다. 그리고 아마 저쪽도 이제 우리를 동료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우린 말하지 않아. 이건 동료들만의 비밀이니까.”

소타로가 그렇게 말하자 “그럼 됐고.”라고 시원스레 얘기를 마쳐준 것만으로도, 그 점은 명백했다.

  “뭐야, 모처럼 마음 놓고 힘을 사용해서 싸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몹시 시큰둥한 목소리로 신야가 투덜댔다.

  “뭣하면 얼마든 상대해주지. 이쪽도 한 번 그래보고 싶었으니까.”

  “잠깐, 요스케.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죠.”

  “신야, 그건 나중에 해.”

금세 싸우려는 두 사람을 스즈노와 소타로가 말렸다. 어제처럼 험악하진 않은데, 어쩐지 두 사람은 곧잘 싸우는 것이 공통점인 것 같다.

  “원래 정의의 편에게 적은 따로 있잖아. 자기들끼리 갈라서는 건 별로지.”

아직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은 신야를 향해, 소타로가 그렇게 수습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신야는 생각났다는 양 외쳤다.

  “아, 맞아맞아. 마왕, 마왕. 왠지 우리의 적으로 손색없는 느낌이지?”

그 순간 모토나오와 치코의 모습에 눈에 띄게 수상쩍었다. 반면 요스케의 표정에는 불신의 기색이 서렸다.

  “엥? 정의의 편? 마왕? 뭐야, 게임 얘기냐.”

  “못 들었어? 치코가 점을 쳤잖아. 근데 이렇게 생각하니까 두근거린다. 기지가 생기면 악의 조직도 나오는 거지, 응. 뭐, 그게 당연한 거니까 말이야.”

신야는 완전히 평소의 컨디션을 되찾아 요스케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신야의 편한 말투에 요스케가 화라도 낼까 걱정했는데, 역시 먼저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했던 만큼, 요스케는 간단히 대꾸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저 녀석이 뭐라고 했던가. 그게 어쨌는데.”

요스케의 노골적인 삿대질에, 치코가 펄쩍 뛰어올라 소타로의 등 뒤로 숨었다.

  “실례예요, 요스케.”

  “어? 뭐가?”

스즈노가 나무라자 요스케는 모르는 척 손가락을 거두다가 멋쩍은 듯이 콧등을 긁었다. 치코는 소타로의 뒤에 숨은 채로, 그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치이의 능력은, 예언이야.”

그래서 치코 대신 소타로가 설명을 시작했다. 치코로부터 건네받은 스케치북의 첫 장을 모두에게 펼쳐 보인다. 다만 거기서 볼 수 있는 건 마구 그어진 선뿐이라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 소타로는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거기에는 오십음도와 ‘네’/‘아니요‘라는 글자, 그리고 토리이가 꼼꼼히 적힌 새 페이지가 있었다. 여름이 되기 전에 치코가 만든, 특별한 스케치북이었다.

  “코쿠리 상이네요.” [각주:2]

스즈노가 들여다보며 말했다.

  “여름 동안에는 딱 들어맞아. 질문하는 방법이 잘못돼서 의미가 어긋난 경우는 있지만, 대체로는 반드시 맞지.”

재작년 여름방학 말에는 너무 까불댄 신야의 다리가 부러진다는 것도 알았고, 작년에는 식중독이 발생한다는 빵집에 드나들기를 자제해 액운을 피한 적도 있었다. 치코의 예언은 적중한다. 그래서 유사시가 아니고서야 다들 쓰지 않는다.

소타로의 주장에, 요스케는 금세 굳은 얼굴이 됐다.

  “어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잖아. 네가 그런 질문을 한 건가?”

요스케에게 질문을 받은 치코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뭔가 잘못된 거네. 너희가 우리랑 같은 힘을 가졌다는 건 인정하겠어. 따라서 나는 이제 너희를 건드리지도 않을 거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말해주면 도와주지. 근데, 마왕 같은 바보 같은 얘기엔 어울려주지 않아.”

요스케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정의의 사자 놀이를 할 나이도 아니고.”

우리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남자가 정말이지 바보같이 그렇게 말하며 본부를 떠났다. 그가 다리에 발을 디딘 그때였다. 뱃속을 울리는 소리가 하늘부터 땅 끝까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주위가 삽시간에 시커멓게 변했고, 뒤이어 한 줄기 빛이 번쩍였다.

금세 엄청난 양의 비가 본부 지붕 위로 퍼부었다. 우리는 서둘러 일어나 창문을 닫고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랬는데도 마치 북 속에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가 덮쳐왔다.

  “돌아갈 수가 없잖아, 이러면.”

혀를 찬 요스케 역시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소타로가 손전등을 세 뼘쯤 앞으로 굴려 보냈다.

창밖은 새하얗다. 깨진 창문 틈으로 흘러든 물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였다. 마치 모든 것이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마왕, 너희들은 죽어, 여름의 끝에서, 나를 찾아 쓰러트리면…….”

소타로가 되뇐 치코의 어제 자 예언이 상황에 너무 맞아떨어진다.

  “치이의 예언은 절대 빗나가지 않아. 예를 들면, 내가 내일 차에 치인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그럼 집 안에만 틀어박혀있어도 치이는 거야.”

  “하아?”

결국 이야기에 휘말리는 처지가 된 요스케는 여전히 이 전개를 우습게 여기는 듯했다. 스즈노 쪽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는 있지만,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고 해도 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타로의 말은 사실이었다.

  “왜, 치이지 않으면 정말인지 모르는 거잖아. 반드시 맞는다니까. 집안에 있어서 치이지 않았으면, 밖에 나가서도 치이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러면 맞았는지 아닌지도 몰라.”

신야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소타로를 지원했다. 요스케는 멍한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그때 소타로가 치코에게 스케치북과 사인펜을 건넸다.

  “치이, 괜찮을까?”

  “……응, 될 것 같아.”

치코는 안색이 나쁜데도, 새 페이지를 바닥에 펼쳐놓고 사인펜 뚜껑을 열었다. 말을 아무리 늘어놓아봤자 믿지 않을 테니, 실제로 보여줄 작정이다.

질문은 아주 단순했다.

  “신님, 신님, 이 비는 언제 그칠까요?”

자, 하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펜이 미끄러진다. 글자를 따라가면 ‘곧’이라는 게 된다. 바깥의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릴 뿐, 그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야, 야. 이렇게나 내리고 있잖아. 쉽게 그칠 리가…….”

그러나 요스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빗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입을 다물어버린 그의 눈앞으로, 비의 장막이 산 너머로 사라지며 금세 햇볕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기 시작했다.

  “소나기였나 봐.”

감탄한 것 같기도 하고 곤란한 것 같기도 한 숨을 내쉬며, 스즈노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어쩔 거냐는 듯한 눈길을 요스케에게 보낸다. 요스케는 아직 납득할 수 없는 듯, 잠시 허공을 노려보더니 이렇게 반박했다.

  “아니, 잠깐. 꼭 들어맞는 거면, 그런 예언에 무슨 의미가 있어?”

  “예언의 내용이 우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면, 피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식중독에 대한 예언의 경우엔, 우리가 그 가게만 가지 않으면 될 뿐이었다. 식중독은 반드시 발생하는 거라서, 우리가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우리에 대한 일은 최대한 점을 치지 않으려고 해.”

  “하지만 이번엔 분명 너희라고 했었잖아. 그건 우리가 뭘 하든 죽는…….”

거기서 요스케의 시선이 흔들렸다. 넉넉히 5초 동안 굳어있던 그가, 다시 외쳤다.

  “뭐?!”

  “그게 문제야.”

우리도 어제 거길 짚고서는 깜짝 놀랐다. 요스케도 마찬가지인지, 당황하며 얘기를 부정하려고 들었다.

  “근데 어제 건 아까 한 예언이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응. 그래서 어제 건 혹시 예언이 아닐 수도 있다 싶은데.”

  “저게 일부러 움직여서 지어낸 거 아니냐!”

요스케로부터 큰소리를 들은 치코가 부들부들 떨며 다시금 소타로의 뒤로 숨어버렸다. 그녀에겐 잘 모르는, 하물며 연상의 남자에게 지탄받는 것은 각오하고 있어도 무서운 일일 터였다. 소타로는 그녀를 감싸 안는 것처럼 양팔을 벌렸다.

  “그건 우리도 물어봤지. 엄청난 힘에 의해 멋대로 움직였다는 것 같아. 읽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랬어. 치이가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그때, 치코 옆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어.”

모토나오가 조용히 중얼거린 그 말에 농담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원래 모토나오는 그런 농담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시커맸어. 감촉은 우리 힘이랑 같았는데, 보통 우리 건 노란 색이나 오렌지색에 가까워. 그런데 그건 정말 까맸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고.”

곁에 있는 나는, 모토나오의 전신이 잘게 떨린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니나도 새삼 겁먹었는지 내 소매를 붙들었다.

  “그건 마왕이다.”

그렇게 모토나오는 입을 다물고, 그날 돌아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본부에 침묵이 가득 차올랐다. 침묵을 깨트린 것은 요스케의 초조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너희는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러니까 모두들 순순히 여기서 포기하고 자살하자는 제안이냐?”

겨우 원래의 주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소타로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몸을 숙이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마왕을 쓰러트린다.”

  “무슨 짓을 해도, 예언은 들어맞는다며.”

  “잘 생각해봐. 마지막에 ‘나를 쓰러트리면’이랬잖아. 거기서 방해를 받아서 나머진 모르겠지만, 흐름을 보면…….”

  “마왕이란 걸 쓰러트리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단 건가.”

그게 우리들이 어제 내린 결론이었다. 여태껏 회피 조건이 붙은 예언들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

우리는 거기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 상급생 두 사람에게도, 선택사항은 이것밖에 남지 않았을 테다. 다만 요스케는 이 길을 고르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 주저 없이 출구인 창문을 뛰어넘었다. 그러고선 느긋하게 말했다.

  “뭐, 그 얘기는 너희가 알아서 해. 마왕의 정체는 여름방학 숙제였습니다, 하는 결말은 내지 말고.”

  “야, 너, 죽는다니까.”

다급해진 신야가 일어나 떠나려는 요스케의 등에 대고 외쳤다. 하지만 요스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럼 그걸로 됐잖아. 내 수명이 거기까지였다는 걸로.”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그렇게나 말할 뿐인 것이, 정말 가세해줄 마음은 없는 듯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금까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던 스즈노가 일어났다.

  “요스케, 나는 남을 거야.”

똑같이 떠날 생각인가 지켜보는 우리들 앞에서, 그녀는 그를 향해 예상 밖의 선언을 했다. 거기엔 요스케도 반응해 돌아봤다.

  “진심이냐?”

  “죽고 싶지 않은걸.”

잠시 서로가 진의를 탐색하는 것 같았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요스케로, 그는 다리 옆에 침을 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을대로 하면 되잖아.”

그러더니 부러 화살을 돌리며 소타로를 쳐다봤다.

  “너, 소타로랬던가. 네 능력은 못 들어봤는데.”

요스케의 물음에 소타로가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고는, 꼭 자동차 와이퍼처럼 손을 교차했다가 벌린다. 요스케가 얼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덥겠지.

  “앞쪽에 손 뻗어봐.”

소타로가 재촉하자 요스케는 망설이다가도, 소타로의 손이 가로질렀던 공간에 손을 내밀었다. 요스케의 팔꿈치가 이상하게 굽은 채로 더 뻗어지지 않았다.

소타로는 공기를 굳힐 수 있다. 그건 꼭 더운 여름날 냉방이 잘 된 방에서 밖으로 나갔을 때와 비슷했다. 더운 공기가 질량을 갖고서 밀어내는 듯싶은, 그 감각.

  “흠.”

요스케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점이나 힘이 보이는 거, 물건을 띄우는 거나 이런 걸로, 어떻게 마왕을 쓰러트릴 셈이냐?”

  “어떻게든 해야지.”

마왕이 어떤 놈이고 뭘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지금으로선, 소타로도 순순히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그 반응에 요스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우리를 빙 둘러봤다.

잠시나마 그도 남아서 힘을 보태주려나 싶었는데,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요스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곧장 발길을 돌려 다리를 건너 가버렸다. 우리는 그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럼 작전회의라도 할까?”

그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소타로가 돌아서서 그렇게 말했다.

 

 

  1. 달력은 연재 당시인 2003년 7~8월을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2. '분신사바' 비슷한 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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