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이르아노・파질・네세레의 에피소드를 산발적으로 적당히 휘갈겨 쓴 시리즈. 완결."
*게임 본편과 연결되는 스포일러 有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저무는 밤
심지는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듯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불빛이 발견되면 당연하다는 양 새것으로 갈았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여기에 등불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단둘뿐이었다.
시종들을 내쫓은 당사자인 그녀는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렇게 방해하는 사람 없이 마주앉아 본 건 얼마만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떠오르는 것은 까마득한 과거의 날들, 아직 성별이 정해지지 않았을 적이다.
그 당시엔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끝날 시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득히 먼 훗날의 일처럼만 느껴졌다.
하지만 끝은 갑작스레 들이닥친다. 그날 밤처럼. 오늘 밤처럼.
“…정말로, 가는 건가.”
건조한 입술에서 나온 말 또한 무미건조했다.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컵 속의 액체가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렸다.
“머무를 생각은 없나. 조금이라도. 적어도 그 아이가 왕이 될 때까지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돌아보는, 그날 밤과 같은 그의 눈동자가 모든 것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애를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답 대신 부탁을 한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아마도 왕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향해서.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를 붙잡을 수 있을까.
얼핏 머리 한 켠을 스친 그 상상을, 그녀는 시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잘 알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모든 게 정해져 있다. 그날 밤부터 줄곧.
방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크게 어른거렸다. 기어이 사그라졌는지 올려다 본 시선 안에는 다른 것이 들어왔다.
그가 쿡쿡 웃고 있었다.
“정말로 왕다워지셨어요. 처음엔 어떻게 될지 걱정했는데.”
“갑자기 무슨 말인가.”
살짝 기분이 상한 그녀가 되묻자, 그는 태연하게 다 타들어간 촛대를 아직은 여유 있는 옆의 촛대로 바꾸고, 다시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슬슬 형식적인 얘기는 끝내지 않겠습니까. 필요한 수속도 마쳤고요.”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이런 밤에 어울리는 말은. 생각하며 그녀는 입술 끝을 올렸다.
“그러는 자네야말로 예의 차린 말투를 계속하고 있지 않나. 자네부터 예전처럼 굴면 될 텐데.”
“그렇네요. 그럼…, 음….”
잠시 어물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문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보다 어렵군요.”
“그런 것이라네.”
하하 웃고 나니 방 안의 분위기도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그제야 그녀는 제 앞에 놓인 컵을 들고 슬쩍 입을 댔다.
“뭐, 서로 태도에 대해선 한 수 접어두기로 하지. 그럼 형식적인 이야기 말고 무엇을 할까?”
“다른 이야기를.”
“흐음.”
“추억 이야기가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밤에는.”
온화하게 미소 지은 그를 보고 있자면, 농담 한 마디 정도 하고 싶어졌다.
“과연. 어릴 적의 실패담 따위로 나를 망신 줄 생각인가. 여전히 고약한 심보로군.”
“네, 그때 이야기를 해요.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계셨을 때.”
후우, 숨을 내뱉은 그녀의 입이 다물어졌다. 곧 그녀는 컵을 내려놓고, 자세를 바꾸며 턱을 괸다.
“…그리고 선대의 치세에 대해서, 말인가.”
그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무엇부터 얘기할까.”
신이 깨어나기 전까지, 두 사람에게는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되찾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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