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6-1

“좋아, 그럼 난 잔다.”라며 묘하게 으스대는 양 선언한 시드는, 따질 틈도 주지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거의 달아나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피아 역시 “피곤하니까 쉴게”라고 말하고선 훌쩍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남겨진 세 사람은 말을 꺼낼 틈을 찾지 못해 아무 말도 없이 있고 말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묵직한 것을 싣는 침대에서 나는 공기 소리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그쪽을 쳐다본 뮤아를 향해, 림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렇게 말해도 분명 안색은 괜찮지 않다. 림이 얼굴을 가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 쓰고 있다고는 전부터 생각했지만, 설마, 그런 의미에서 신경 쓰고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그건 어째서일까. 그야 그 시드에다, 게다가 상대가 아피아라면.

  “예전부터 이랬나요?”

  “으음. 오래 전에 림 씨와 함께 하던 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

뭐, 그때부터 싹은 보였지만, 하고 회상하며 뮤아는 대답했다.

  “아니, 저는 괜찮지만요. 저는 전혀. 하지만 주인님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건가……. 시드 님과 몰래 합류하는 것뿐이라면 얼버무릴 수 있다더니……, 보고……. 어쩌지…….”

림의 입장에서 보면 골치 아프기만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보고는 의무다. 정직하게 전달했다간 얘기가 꼬인다. 확실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꼬이게 될 것은 쉽게 상상이 됐다.

림이 고민하는 모습을 본 뮤아는 어떤 의문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시드의 어머니에 대한 사건, 범인은 알려졌지? 림 씨는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일단은. 주인님께서 국내의 세발족 색출을 거듭 제안하고 있어 귀족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얘기예요. 그래도 이번 협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하면서 대하는 분들이 많았고.”

거기서 림은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증인이 시드 님뿐이었다는 이유에서 제법 떨떠름하게 여긴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요.”

어린애의 헛소리로 치부하는 쪽이 제일 분란이 덜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라면 더욱 지리멸렬한 설명이었을 테고.

정말이지 대하기 힘든 성격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성격이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구나 하며 뮤아는 팔짱을 꼈다.

  “그나저나 시드한테 결혼이란 개념이 있다는 것 자체에 놀랐어.”

오히려 그런 제도 따윈 아무래도 좋다, 상관없다 같은 말을 꺼낼 것만 같았었다.

  “아, 그건 아마.”

그러자 림이 그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주인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옛날엔 자주 두 분이서 부인을 두고 다투시다가, 그런 때에, 주인님의 필살기가……. 뭐, 나와는 결혼했지만 너와는 결혼하지 않았지, 라든가, 그랬던 것 같았으니.”

  “아…….”

뮤아는 애매한 대답과 함께 미적지근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어린애 상대로 어른스럽지 못하다, 공작” 같은 솔직한 감상은 역시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보고하는 건 경솔하니까, 좀 더 두고 봐서……. 어떻게든……, 둘 다 지금 여기에 없는 거고…….”

어물어물 결론을 뒤로 미루려던 림이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아, 맞다, 아피아 님 혼자 뒀잖아!”

진정됐는지 간신히 그 사실을 깨달은 림이 황급히 일어섰다. 그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심코 눈을 떼고 있었습니다, 같은 변명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저기, 이 일에 대해서는 내일이라도 다시!”

그렇게 문 뒤로 림의 모습은 사라졌다. 발소리가 옆방으로 향했다가, 잠시 인기척이 난 뒤에야 비로소 잠잠해졌다. 특별히 이상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충분한 짬을 준 뒤, 그렇게 운을 떼며, 뮤아는 닛카에게로 돌아섰다.

 

6-2

아까부터 유독 조용하던 닛카는 뮤아의 눈총을 받고는, 이런,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자신에게 화살이 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무슨 소릴 해서 저렇게 됐는지 알려줘.”

  “뭐, 남자들끼리의 얘기입니다.”

  “그럴 듯한 말로 시치미 떼기 금지.”

  “딱히 시치미 뗀 거 아니에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쉰 닛카가 얘기를 시작했다.

  “별 거 아녔어요.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을 때 하지 않으면 늦는다, 그런 것뿐이었으니까.”

  “흐음.”

  “부추긴 건 나빴습니다만.”

  “나빴다고는 생각하지 않죠?”

  “네, 죄송합니다. 생각하지 않아요.”

닛카는 순순히 시인했다. 저대로 내버려두면 얼마나 시간이 들지 모를 일이었다.

  “일단 부추긴 건 저지만, 설마, 이것저것 생략하고 갑자기 그 단계로 갈 줄은 몰랐어요.”

메마른 웃음을 내뱉는 닛카를 향해 뮤아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수습은 알아서 제대로 해.”

  “……네.”

닛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순식간에 곤란한 얼굴이 됐다. 한 번 불이 붙은 이상, 진정시키기가 꽤 힘들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뭐, 나도 즐거워하면서 부추겼으니까 남 말 못하지만. 별로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하고.”

두 사람의 신분이며 입장은, 본인들의 성격 덕분에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서로 좋다는 것만으로 아직은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 하지만, 그렇지. 다음 해를 맞으면 우리들 어른이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 이외의 것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신전의 설법에서 자주 들었다. 예를 들면, 마을에 대해서. 예를 들면, 배우자나 자녀에 대해서.

  “역시 결혼이 되면 얘기도 달라지겠지. …종족도 다른데.”

뮤아의 무심한 혼잣말에 닛카가 씁쓸하게 웃었다.

  “저는 그런 이유로 제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아, …미안.”

  “아뇨, 보통은 그만두는 편이 좋다는 게 확실한 거고요.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거기가 아니라는 거고.”

  “그러게…….”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인정받을 리가 없다. 확실히 신분만 제외한다면 서로 매달리게 될 지도 모르지만.

  “시드는 됐죠, 시드니까. 별 수 없거든요. 문제는….”

고개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이야기하던 닛카가 입을 다물고 뮤아를 쳐다봤다.

  “어쨌든 내일 설득은 해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상의하기로.”

  “알았어. 나도 뭔가 하는 게 좋을까?”

  “아뇨, 일단은 자제해 주세요.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때 도와주셨으면 해요. 아, 림 씨의 상태를 봐 주시겠어요?”

  “알았어.”

림의 입장으론 다시 생각해보라고 설득할 가능성이 높고, 시드의 성격으론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더욱 고집을 부리고 말 게 분명하다. 꼬이게 했다간 마무리가 귀찮아진다.

시드는 내버려두는 게 좋겠다. 그렇다면,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쪽밖에 없었다.

 

6-3

  “어째서 승낙했어요?”

질문을 받은 아피아는 닛카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갑자기 시선을 돌렸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될지 몰랐을 리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방 안에는 두 사람뿐이라 방해받을 염려도 없다. 닛카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뮤아에게 림과 시드를 잘 맡겨둬 가능한 시간이었다.

이후 반 주 동안 여정은 순조로웠지만, 일행의 분위기는 어색한 그대로였다. 결혼을 선언했다고는 해도, 그것만으로 태연하게 말을 걸 수 있게 될 리는 없어, 시드는 전과 다름없이 아피아의 주위를 맴돌기만 하고, 그의 동향을 걱정한 림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반면 아피아는 이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했을 리도 없는데, 그날 밤의 일을 철회하는 것도 아니고, 시드를 말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서서 그에게 다가가는 것도 아닌 미묘한 거리를 유지했다.

이대로라면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어중간해진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파탄이 확정이다.

일단은 그동안 뮤아와 닛카도 나름대로 꾀를 쥐어짰다. 물론, 어떻게 해서든 성사시킬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결론은, 역시 아무리 몸부림쳐도 무리다, 라는 데 도달할 뿐이었다.

  “시드는 어쩌면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공작님이 어떻게 나올지 난감하지만. 그래도 아피아는 안 되지, 아피아는.”

  “안 되지요.”

둘이서 각자 팔짱을 끼고, 신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차기 국왕의 배우자를 물색하는 중이라고 해도, 오랜 적대국가에서 맞이해도 좋다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동일한 종족이고 옛날처럼 작은 나라들이 분열해 있는 정세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얘기지만. 일단 그런 물색도 없는 상태고, 상류층 이외의 인간들에겐, 벽 너머는 아직도 괴물의 나라다.

  “제대로 국교가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최소 일 대. 그래도 이종족간의 혼인은 소동이 되겠죠. 그 이전에 시드가 그렇게 오래 참을 것 같지도 않고.”

닛카가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처럼 말했다.

  “휙 낚아채서 도망가는 거 아닌지.”

  “아니, 뭐, 그건 괜찮다 쳐도 어디로 도망가게? 어느 나라로 도망가든, 찾아내지 못한다는 건 불가능하잖아.”

  “그러니까 어느 나라도 아닌 곳으로.”

  “그거 설마.”

자연스레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간다. 초원 너머에 우뚝 솟아 나날이 커져가는 산, 그것을 지나간 곳.

마의 초원, 그리고 그 끝에 있다는 《마지막 마법왕국》 테라소. 일찍이 신의 분노로 멸망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장소.

  “아무리 그래도 그건….”

간신히 웃는 뮤아를 향해 닛카가 물었다.

  “못할 것 같아요?”

  “할지도 몰라.”

  “그렇죠.”

당돌함과 기세만이 장점인 시드다.

어디까지 현실을 이해하고, 어디까지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대해 파악하고 기대하는지는 의문이지만, 막상 꿈을 이룰 수 없게 되면 성을 내며 행동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이 된다. 물론 그때는 앞뒤를 가리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방금 언급된 장소는 지금 가게 될 곳 근처다.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최악의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상황을 타파할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시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6-4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상대인 아피아였다.

시드의 엉뚱한 구혼이라도, 거기 수긍하지만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본인은 그럴 생각이 아니더라도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어째서 승낙했느냐는 닛카의 물음에, 아피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닛카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다그쳤다.

  “설마 정말로 시드와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니, 그야 문제없이 할 수 있다면 저희도 환영이지만, 그건.”

어쩌면 자신들만 아는 사정에 의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 그렇다고 알려주면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아피아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상대는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져 있어.”

아피아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게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예요. 그 상대를 시드가 죽일 수도 있잖아요.”

뭐, 죽이지는 않아도, 반쯤 죽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죽일 수 있다면 대단하지.”

닛카는 웃으며 온순하게 흘려듣는 아피아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피아도 시드의 성격에 대해선 뼈저리게 알고 있을 터였다. 더 이상은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런 속내가 읽혔을 것이다. 아피아가 갑자기 숨을 내쉬었다.

  “…닛카는 몰랐어? 세피아, 시드한테밖에 말하지 않았구나.”

그리고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중얼거렸다.

  “시드는 알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말 하지 않아.”

닛카는 불현듯 불쾌한 예감을 느꼈다.

듣지 않는 편이 좋다고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귀찮게 될 거라고.

지금까지는 그 소리에 따라 관여하지 않는 길을 선택해왔다. 그렇게 하면 필요 이상의 귀찮은 일들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제게 관여하고 싶지 않아해, 무승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묻지 않는다면 듣지 않는 것도 할 수 있다. 늘 그렇듯이 한 걸음 물러선 데서 지켜보는 것이 편하고 좋다.

  “…무슨, 얘기예요?”

그럼에도 그 질문이 입에서 흘러나왔고, 질문을 받은 아피아는 곧잘 숙이고 있던 얼굴을 닛카에게로 향했다. 어딘가 초점이 맞지 않는, 공허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내 몸은,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없어.”

고백은 유난히도 담담한 울림을 띠고 있었다.

  “상당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안 되나봐.”

말문이 막힌 닛카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아피아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걱정할 것 없어. 그건 시드가 배려한 거지, 진심이 아니니까.”

 

6-5

닛카는 그제야 아피아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의문이 많았지만 정리되지 않고, 겨우 빠져나온 것은 부끄러울 정도로 높아진 목소리였다.

  “기, 기다려주세요. 성인이라니, 그런.”

반면 그 반응을 받은 아피아는 침착한 모습으로 독백을 계속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반년이나 버티면 좋은 편인가. 되도록 그런 일은 없으려고 하지만, 내일 갑자기라는 것도 없다고는 못해. 그때는 당황하지 마. 리탄트 측에서는 알고 있으니까, 알려주면 될 뿐이야. 누구의 책임도 되지 않아. 되지 않게 해뒀어.”

  “그런, 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리탄트로서는 다음 왕이 벽 너머에서 살해당했다는 게 되지 않나요?”

  “표면상으로는. 선정인을 가진 연장자가 계승자가 아니라는 건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그래. 쓸데없이 파헤쳐지는 건 피하고 싶었으니까.”

쉼표처럼 다시 나온 아피아의 한숨은 먼젓번 것보다 길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어. 왕위를 잇는 것은 세피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납득이 됐다.

제난에게 쫓기던 그 순간에 아피아는 어째서 자신을 방패삼아 이쪽을 도망치게 했는지. 아피아가 납치된 뒤에 세피아는 어째서 돕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과는 다른 말을 했는지. 세피아가 어째서 다음 계승자에 대한 물음에 확답을 주지 않았는지.

닛카는 세피아가 정체를 밝혔을 무렵 자신이 말하다 만 것을 떠올렸다.

그래, 아피아는 처음부터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타고난 약함이니까. 이런 나이까지 살아남긴 했어도, 사실은 더 빨리 그런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세피아가 태어났을 때,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무척 안심했었고.”

아피아가 가슴에 손을 넣어 체인을 끌어냈다. 철컥철컥 울리는 섬세한 줄 사이로, 작은 돌이 매달려 나왔다. 왕자가 몸에 걸치는 것 치고는 검소한 물건이었다.

  “이게 내 목숨을 이어줬어.”

일곱 가지의 빛깔로 반짝이는 기묘한 색의 돌이었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안정되지 않고,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어. 모르니까. 이 돌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쥐고 있었다는 것 같아. 놓치면 가슴에서부터 온몸이 아파져. 떼 놓으면 아마 죽게 되겠지. 마지막까지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손에 들어서 보여 달라고 부탁할까 하는 생각이 닛카의 머리를 스쳤으나 역시 망설여졌다. 가만히 있자 아피아가 그것을 다시 집어넣었다.

  “넷테 선생님, 이전번 일로 돌아가신 우리 주치의는 신의 은총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떨까. 내가 죽어서 이걸 필요로 하지 않게 되기 전까지는 섣부르게 조사할 수도 없으니.”

  “…하지만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닛카의 중얼거림에 아피아가 눈썹을 들어 보였다.

  “으응. 지금은 좀 시험해보는 것도 무섭지. 역시 아프고. 시드에게 물어보면, 몇 번이나 폐를 끼쳐왔으니까…….”

  “그게 아니라 아피아 자체의 얘기예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아까부터 의아했다. 아피아의 어조는 어딘지 남 일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성격 나쁜, 아주 나쁜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닛카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왠지 상태가 좋아서. 예전엔…, 너무 긴장했었어.”

  “그 상태 그대로 계속 좋거나 하지는 않을 텐데요.”

  “좋지 않겠지. 혹시 성인이 될 때까지 유지한다고 해도,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할 테니까.”

  “성인식…인가요.”

  “응, 맞아. 이쪽은 형식뿐이던가. 우리는 꽤 힘들어, 성인이 되는 거. 이렇게 말해도 나도 경험은 없고, 다 들은 것뿐이지만.”

세발족에게 있어 성인식과 뒤이은 한 달 남짓의 기간은 성별을 결정하는 의식이자 기간이었다. 몸이 많이 변하는 만큼 체력도 많이 쓰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아버지의 기록에서 읽은 닛카는, 제게도 올까라거나, 온다면 괴로운 것은 싫다거나, 생각하고는 했었다.

다시 한 번 묻는 눈길을 던지자, 그것을 받은 아피아가 살짝 미소를 짓는 것으로 답해왔다.

닛카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농담이 아니다.

 

6-6

  “잘도 호리라의 사절이 되는 허가가 나왔네요.”

그렇게나 벼랑 끝에 몰려있는데도 정체모를 이국땅에 보낼 각오가 된 것이다. 아피아가 부모님과 재회했을 때의 광경이 생각났다. 어머니였던가, 거의 통곡에 가까운 상태로 그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껴안고 있었다.

  “자처했어,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적임자였으니까.”

지위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확실히 아피아가 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벽 너머로 가서 교섭을 하라니, 그만한 지위가 있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봤자 일단 흔쾌히 승낙하지는 않을 터였다.

  “정말 나여서 잘됐지. 이렇게 성산으로도 갈 수 있으니까.”

  “앞으로 어쩌려고요?”

닛카가 재차 물었다. 아까부터 사라지지 않는 불길한 예감 탓인지, 튀어나온 말의 어조는 스스로도 생각지 못할 만큼 강한 어조가 돼 있었다.

유괴범의 지시대로 성산에 가는 건 됐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동족의 호위를 이끌지 않고 움직이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오늘내일 하는 위험한 몸인데다 본인과 주위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이상하다. 너무 이상하다.

역시나 아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야. 그건 당해낼 수 없어. 시릴은 찾을 수 없다.”

그 위화감을 해소시켜줄 단 한 가지 대답이 드디어 입에 올랐다.

  “대외적으로 나는 아직 차기 왕이라는 입장이야. 탈환 도중에 제1위 왕위 계승자의 죽음은 충분히 걸맞은 희생으로 보이겠지. ……명실상부한 무승부야.”

리탄트는 관대한 마음으로 계승자의 죽음을 용서한다. 그러면 호리라도 용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양자가 모두 피해자가 되고, 그 상실에 걸맞은 보상이 필요해진다.

  “……그렇게 화친 협상이 재개되고?”

  “부자연스러운 흐름은 아니지.”

언뜻 보기엔 분명 미담일 법한 얘기였다. 자식에게 들이닥친 갑작스러운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 부모로서는 적어도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었노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림 씨에게는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톨라 공작이라면 세발족을 죽게 만들었다고 개인적으로 벌을 주지는 않겠지?”

  “않겠죠. 그렇지요.”

닛카는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만난 것은 잠깐이었지만, 적어도 명령을 내린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길 성품이 아니라는 짐작은 됐다. 더군다나 세발족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이 감싸는 방향으로 갈 것 같았다.

아피아는 이전의 동행자들과 몰래 합류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세움으로써, 주변으로부터 부당한 압박을 받을 시종들과 호위들을 멀리 보낸 것이다.

  “미안. 모두 불쾌하게 만들었어. 걱정도 할 거고, 염려해주겠지. 하지만 이러는 게 나았어.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거든.”

  “다른 방법은 없었나요?”

물으면서도 닛카는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이렇게 할 리가 없다.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거다.

예상대로, 아피아는 그 물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얼버무려두길 잘한 것 같아. 지난 번 일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내 존재가 딱 좋은 수단이 돼 줬어."

뿌리치려는 듯 밝게 가장한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이 이마의 표식도, 그 돌도, 분명 그런 목적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 나는, 내 역할을 다 해야만 해.”

반박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말들은 분명 몇 번이나 생각해보고 단념해왔을 게 틀림없는 것들이었다. 막힘없는 아피아의 대답들이 그 점을 말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었다고, 닛카는 회상했다.

아피아는 언제나 결정을 내려두고 만다. 결코 상의하지 않은 채로 판단을 끝내버린다. 감출 수밖에 없었던 사정 탓도 있겠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피아가 이따금씩 보내던, 아피아를 향한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한 시선. 세피아의 그런 언행 곳곳에서도 보였던 것. 그런 성질이었다. 아피아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닛카는 포기했다. 정면에서 예상되는 공격을 걸어봤자 방비를 무너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경계를 굳힐 뿐이다.

그러니 처음으로 돌아간다.

첫 번째 의문, 근본적인 위화감에.

  “왜 느닷없는 구혼이 배려라는 게 되는지 도저히 모르겠는데요.”

거기를 다시 찔릴 줄은 아무래도 몰랐던 것 같다. 아피아는 당황한 얼굴이 되어 횡설수설하며 말을 찾았다.

  “그건…, 그게……, 저기…….”

  “일단, 누구를 위한 배려인데요, 그거.”

  “아니, 그러니까…, 내, 그, 마음을 말이야, 알아서……,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거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은 방금 전과 사뭇 달랐다. 말하는 내용에서도 따지고 들 게 너무 많다.

  “배려일 뿐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필요는 없죠? 흘려들으면 서로 좋고. 림 씨는 진심으로 받아들이던데, 너무 안쓰럽잖아요.”

  “저, 확실히 그렇긴 한데……, 그래도…….”

  “어째서 승낙했어요?”

아무래도 얼버무릴 수 없다고 각오했는지, 아피아가 여기저기 방황하던 시선을 자연스레 땅에 떨어트려 멈추고, 붉게 달아오른 볼을 감추려는 양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기뻤으니까, 일까…….”

그렇게 툭 중얼거린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6-7

옆방은 들어서기도 전부터 소란스러웠다. 열고 들어갔더니, 안에서 말다툼하는 두 사람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듯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그 근처 침대에 걸터앉아 구경하고 있던 뮤아가 눈길을 줬다.

조용히 고개를 저어보이자 탐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쪽은 어때요?”

닛카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며 뮤아에게 다가갔다. 보다시피, 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뮤아가 중앙의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만큼이나 다퉈대면 오히려 재밌어.”

주종관계이기도 하고, 사제관계이기도 한 두 사람이 대치한 채 서로를 노려보며 말다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림 선생님은 그 녀석이 싫다는 거잖아.”

  “아니, 그러니까 내가 싫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잖아. 싫은 것도 아니고, 그보다, 내가 싫어하든 말든 그거랑은 상관없잖아.”

  “그럼 왜 반대하는 거야.”

  “아니, 반대라든가 할 문제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말할게. 차분하게 생각해줬으면 하는데. 무리지?”

여유가 없는 탓인지 림은 존댓말을 완전히 내팽개치고 있었다. 시드에게 완곡한 말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어쩌면 평화 관계로 그쪽은 용납할지도 몰라. 그 부분은 그쪽 문제니까 넘어간다고 쳐. 이쪽 문제를 생각해봐. 이런 걸 주인님이 수긍할 리가 없잖아. 사람이 좋다든가, 그런 문제가 아냐.”

  “아버지 따위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는 게 당연하지. 결혼이란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

  “아까부터 개인이니 문제니 그런 거 뭔 말인지 몰라! 내가 말했잖아! 뭐가 문젠데! 그냥 그 녀석이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대화가 원점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닛카가 우선 뮤아에게 물었다.

  “이런 느낌으로, 쭉?”

  “쭉.”

아피아와 닛카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게끔 두 사람을 붙잡아둔다고 했지만, 뮤아가 나설 틈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방치해두는 편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쪽은 끝났어? 역시 대답해주지 않았고?”

  “네…, 뭐.”

  “그렇구나. 내가 물어도 무리겠지.”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보다, 슬슬 말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뮤아의 물음을 간단히 잘라낸 닛카가 점점 더 험악해져가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몇 번째로 주고받는 문답인지는 몰라도, 반복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네. 이젠 시간 끌 필요도 없고, 참전해볼까.”

닛카의 유도에 별다른 의심도 없이, 뮤아는 팔을 걷어붙이며 두 사람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억지로 떼어놓았다.

  “네, 네, 네. 좀 확인할 게 있는데.”

  “뭐야.”

끝나지 않는 말다툼으로 잔뜩 심통이 난 시드의 가슴에 뮤아가 손가락을 들이대며 물었다.

  “결국엔 말인데, 시드는 아피아를 어떻게 생각해서 결혼하고 싶다는 거야?”

  “내 거지, 다른 놈들 게 아니니까, 그럼 결혼해서 더 뺏기지 않을 거지만.”

다만 그런 어딘가 어긋난 변변찮은 이유를 가슴을 펼치며 말하는 데는, 뮤아로서도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근본이 굽었다고 할까, 비뚤어졌다고 할까, 못 써먹어. 이거.”

그럼에도 태도는 꼿꼿하다 못해 변명이 없다. 뮤아의 투덜거림에도 금방 달려든다.

  “그러니까 너희들, 뭔 말 하는 건데.”

  “몰라? 난 말이지, 마음에 대해서 물었어. 제멋대로인 이유 같은 거 안 물어봤어. 닛카도 너한테 갑자기 청혼하라고는 안 했잖아. 아까부터 듣자듣자 했더니 그런 얘기 안 했지? 그럼 확실히 물어보겠는데, 아피아가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자기 것으로 하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그거지?”

  “뭣……!”

그러자 시드가 말문이 막힌 채로 눈을 꿈뻑였다. 알기 쉬운 속도의 반응이다.

  “그런 말 안 했다!”

  “말 안 했으니까 묻잖아!”

이래서야 분명히 불리하다. 정색하고 나선 뮤아를 시드가 이길 리는 없었다.

  “시, 시끄러워! 너희랑은 상관없잖아!”

결국 도망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마무리 대사를 토해낸 시드가 방을 나가버렸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닛카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렸다.

시드가 안다니, 그럴 리 없잖아요. 하물며 배려라니.

물론 아피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를 리가 없다. 알고 싶지가 않을 뿐이다.

닛카는 아마도 지금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한 것은 자신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을에 있던 때의 자신이라면 이런 상황도 상관없었다. 그럼 다음은 어떻게 되려나, 하며 물끄러미 구경만 하면 되었으니까.

알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소망이었다.

하지만 알고 싶은 것만 알 수는 없다. 언제나 관찰자의 입장에만 남을 수는 없다.

이제야 실감하기 시작한 그 사실이, 가슴에 무척 무겁게 다가왔다.

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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