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4-1

질렸다.

분명, 확실히, 틀림없이, 누가 봐도 명백하게, 시드는 현재 상황에 질려 있었다.

그 꼴을 감당한 건 주로 솔리츠였다. 목덜미를 붙들린 채, 거의 연행이나 다름없이 대작을 한다. 뮤아 역시, 폭발해서 멋대로 이탈하는 것보다는 낫겠거니 싶어 묵인할 작정인지, 모르는 체 하고 있었다.

솔리츠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불행한 재회였을 것이다. 설마, 살레타에서 도망친 뒤 겨우 자리를 잡은 땅에서, 오래 전 자신을 달아나게 만들었을 원인과 부딪치다니.

인덴은 대삼림 동쪽 끝에 위치한, 열지를 건너지 않는 경로의 중간 지점이 되는 마을이었다. 여기서 열지로 경로를 틀어 살레타로 향해 가는 사람도 적잖았다. 하지만 반대로 살레타부터 도착한 경우에는 여기로 들르는 일이 적은, 어중간한 규모의 마을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로부터 약 반 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다.

솔리츠는 끌려 다니며 절실히 후회했다.

심지어 남문의 경비에게 연락해 비슷한 사람이 보이거든 가르쳐 달라며 먼저 경계해두기까지 했는데. 설마 북쪽에서 오다니, 예상 밖이었다. 번화가에서 딱 마주치자마자 서둘러 달아났으나, 쫓겨서 붙잡혔다. 게다가 상대는 지루해 하고 있었다.

  “일주일이다.”

뒷덜미를 붙든 채 물어버릴 것만 같은 얼굴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솔리츠는 사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을 센 줄 알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푸념에 지나지 않았다.

  “일주일이나 이딴 데 있었다고, 염병.”

그래봤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하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심심풀이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말하거나 말거나, 심심풀이로 어울려줘야 함이 필연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매일 같이 술자리에 끌려 나가고 있다.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일이 없는 것만큼은 고맙지만, 어쨌거나 마시게 되는 양이 장난 아니다. 날이 갈수록, 마시기도 전부터 벌써 의식이 몽롱해지는 지경이었다.

오늘도 시드가 벌컥벌컥 들이켜는 옆에서, 솔리츠는 엎드린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주인님뿐. 세피아는 없고. 세피아만 왔으면 대환영인데.”

  “뭔 말 했냐?”

  “아뇨, 아무 것도. 그나저나 주인님은 언제 떠나시는 걸까, 하고, 묻고 싶어서.”

  “알까보냐. 나도 묻고 싶다.”

  “뭔가 기다리나요?”

  “어차피 그 빌어먹을 아버지 때문이잖아. 뮤아 놈, 그딴 데 신경 쓰고.”

  “그런데 주인님이 순순히 따르고 있다니 놀랍네요. 그것도 뮤아 양에게.”

시드가 일행을 끌고 간다고 할까, 제멋대로 휘두르는 듯한 인상이 있어서 의외였다. 덧붙여 그를 억누르는 상대가 동갑내기 여자아이라면, 의외성은 한층 더 증가했다.

  “시끄러. 성가시다고.”

  “그렇게 성가신지 잘 모르겠는걸요. 평범하게 착한 아이로만 보이던데요.”

  “그 뒤가 무서운 거야, 절대.”

그런 말을 들어봤자 솔리츠로서는 딱 느낌이 오지 않는다. 어쨌거나 아직 시드가 떠날 기미가 없다는 것만은 확실해, 솔리츠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볶은 산두를 씹으며 슬그머니 한숨을 내쉬는 정도였다.

 

4-2

말할 것도 없이 시드는 처음엔 저항했다. 림에게서 편지가 와 발이 묶인다니, 변변찮은 일이다. 어차피 아버지가 변덕을 부려 잡아오라고 명령이라도 했을 게 분명했다.

내버려두고 얼른 남쪽으로 내려가자며 떠들어댄 시드를 꾸짖은 것은, 당연하게도 뮤아였다.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쓰여 있는 데 거스르는 게 더 이상해!”

뮤아는 그러며 시드의 부루퉁한 얼굴에 편지를 들이댔다. 장부에 적힌 글은 정중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이것을 읽으면 현재 주소를 타이나로 알려주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하는 통보가 단호하게 반복된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만약에 공작님께서 쓰러지신 거라든가, 그러면 어떡해.”

  “잘 됐다.”

  “…좀.”

뮤아는 기막힌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드, 너, 명령은 거스르기 위해서나 있는 줄 알지?"

  “아닌가.”

시드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뭐, 그의 환경에서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 정도일 테니 예정된 대답이지만.

  “하여튼, 나는 기다리자는 데 한 표. 따를지 어떨지는 둘째 치고, 얘기 정도는 들어봐야 된다고 생각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잖아. 닛카는?”

느닷없이 질문을 받은 닛카는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뮤아에게 동조했다.

  “저도 기다리자는 데 한 표.”

  “그러시겠지.”

  “그게 아니에요. 요즘 들어 이상하게 사람들의 흐름에 어수선한 데가 있는 것 같아서. 정확히 말하자면, 분주하게 들락거리는 일당이 있다는 얘기죠. 그것도 어쩐지 상인 같지 않은 사람들이.”

  “그래서 뭔데.”

  “정보를 원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갈 곳에 대한 불온한 소문 못 들었어요?”

  “갈 곳이라니, 성산 말이야?”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는 뮤아를 향해, 닛카는 주워들은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성산 근처인 것 같은데,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날씨가 흐려졌대요. 초원으로부터 마물이 공격해온 게 아니겠느냐고 수군대는 것 같았어요.”

  “마물이라니.”

  “그렇게 말하면 어떤 현상이든 간단히 설명돼 버리니까요.”

  “매몰차네.”

  “어쨌든, 특별히 급한 여행도 아니니 신중하게 가자는 데 한 표라는 겁니다.”

이렇게 시드가 다수결에서 져버린 것이다. 물론 다수결이라 한들 곧잘 따르는 것도 아니지만, 이번만은 왠지 강행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성산에 가고 싶어 애가 타는 것도 아니었다.

그 이래로 적당한 길동무를 발견해 곤드레만드레 마셔대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으나, 슬슬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

  “내일!”

느닷없이 테이블에 잔을 내동댕이치며 외친 시드에, 솔리츠가 움찔거렸다.

  “내일도 아무 일 없으면 난 그냥 갈 거니까, 젠장!”

아무도 모를 그 선언에, 솔리츠는 설마 자신도 그대로 길동무로 끌고 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4-3

그래서 다음날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마셔대기만 했다. 발전한 데라곤 전혀 없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 곤란하므로 솔리츠는 얌전히 어울려줬다.

잘 되면 오늘로 작별이다.

좌우지간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그렇다고 해서 이 이상으로 말려들지도 않게끔 처신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불의의 조우로 물거품이 됐다.

  “즐거워 보이네, 형제여.”

  “그럴 듯한 일을 하고 있군, 형제여.”

누군가들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어깨를 움켜잡았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도적단에서 함께였다고 할까, 형이랍시고 마구 괴롭혀오던 2인조, 유제로 형제였다. 솔리츠는 바싹 굳은 채로 대답했다.

  “아, 네, 오랜만입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어깨를 붙든 손을 놓지 않은 채, 털썩 솔리츠의 양옆에 걸터앉았다. 손아귀에 담긴 힘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는 솔리츠에게, 그들이 양쪽에서 말을 건넸다.

  “어이, 너. 저놈한테 협박당해서 길 안내했을 뿐이라고 그러지 않았냐?

  “네, 저, 그랬습니다.”

  “그럼 왜 다정하게 술잔을 부딪치는 거야, 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어떻게 말해야 이 단순한 녀석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며 문득 곁눈질을 했다가, 막 돌아온 듯싶은 시드가 언짢은 얼굴로 노려보고 있는 것을 맞닥뜨렸다.

  “싫었냐?”

  “아니 저 그게 그런 게 아니라….”

설마 기꺼이 따라온다고 생각했나.

아무튼 뜬금없이 궁지에 몰렸다. 어떻게 대답하든, 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뭔데, 이놈들은.”

망설이고 있었더니 시드가 턱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역시 도적 하나하나의 얼굴은 기억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예전 일의 동료로.”

  “아하.”

소극적인 표현이었지만 이해한 듯했다. 시드가 금세 호전적인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둘 다 단번에 덤벼.”

  “이봐, 이런 데서 주먹다툼이라니 민폐잖아.”

  “더 평화적으로 하지, 꼬맹아. 마침 딱 이런 곳에 있겠다, 주량이라도 견준다거나.”

  “무조건 이길 승부에 뭔 재미가 있어.”

거친 콧김과 함께 말을 자르는 시드에게, 형제가 샐쭉 달라붙었다.

  “그렇게 도망가는 사람은 안 되지.”

  “자신이 없어?”

그제야 솔리츠는 형제의 의도를 깨달았다. 제재를 가하러 온 게 아니라, 시비를 거는 척 하며 공짜 술을 마시고 싶을 뿐이었다. 아마 요 며칠 상태를 살펴본 뒤에 나왔을 것이다. 여전히 쩨쩨하다.

  “후회하지 마라.”

시드도 간단히 넘어갔다. 심지어 가게 주인에게 시원스레 돈을 죄 내주고는, 주문한 대로 가져가라는 얘기까지 한다.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에게는 “돈을 뜯긴다”는 개념이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았다. 성씨를 물어보면 굉장한 얼굴로 째려보기 때문에 태생을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럴 듯한 것은 아닐 터였다.

그러므로 솔리츠는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야, 네가 기록해.”

혼잡을 틈타 도망치려 했더니, 시드에게 붙잡혀 그런 명령을 들었다. 거절할 수 있을 리는, 당연히 없었다.

 

4-4

당연히 시드가 질 리 만무했다.

어정쩡하게 시비를 걸어왔다가 쫄딱 망한 형제의 뒤통수를 보며 시드는 혀를 찼다.

  “약해.”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거북했던 솔리츠는 물잔을 한 손에 쥔 채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것도 이것 나름 형제의 의도대로 된 것이기는 했으리라.

아마 가장 좋은 전개는 술에 떡이 된 시드의 쌈짓돈을 받아가는 것이었겠지만. 설마하니 자기들이 얽혀오기 전부터 마구 마셔대던 시드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술집 여기저기에서 칭찬이며 조롱의 소리가 터져 나오는데도, 정작 승자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시시해. 시시해, 시시해. 시비건 주제에 이 정도냐?”

짜증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잠시 투덜거리며 술을 들이켜던 시드는, 불현듯이 침착한 눈으로 솔리츠를 들여다보며 명령했다.

  “저놈들 벗겨.”

  “가, 가죽을요…?”

  “뭔 가죽이야. 옷, 옷.”

널브러진 상대와 기세등등한 눈앞의 상대, 어느 쪽을 우선시해야 할지는 고려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솔리츠는 의도를 알 수 없었음에도 형제의 옷을 벗겨냈다. 건네주려고 했더니 거절한다. 강도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역시 시시해.”

  “그야 재미없죠. 여자애 상대라면 몰라.”

꾀죄죄한 남자의 알몸에 흥미를 느껴도 곤란하다.

  “그, 몽땅 벗겨먹었다, 하고 신나게 떠들어대는 놈들 있잖아.”

  “아, 뭐, 글쎄요.”

  “시시하네.”

이대로라면 다시 자기가 당할 차례임을 직감한 솔리츠는 황급히 주위에 뭔가 없는지 둘러봤다.

그 결과, 반지하의 술집에 들어온 림이 깜짝 놀라게 된다. 어쨌거나 그 자리에 있던 것은, 찾고 있던 사람이 반나체의 남자들에게 쓱쓱 낙서를 해대는 광경이었으니까.

그는 경어를 쓰는 것도 잊은 채로 주인의 아들에게 물었다.

  “뭐, 뭐해?”

  “화풀이.”

  “…재밌어?”

  “전혀.”

내뱉듯이 말하던 시드가 휙 먹을 던졌다.

  “이제야 오고. 뭔 일이야? 림 선생님이 안 와서 이런 짓 한 거라고.”

그런 말을 들어도, 림으로서는 자신이 늦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경위가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아니…. 뭐, 일단은 밖으로 나올래?”

  “음.”

권유를 선뜻 승낙한 시드가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으로 향할 때, 어쩐지 안심한 듯 생글생글 웃으며 이쪽을 배웅하던 남자를 발견한 림이 아는 사람인가 싶어 시드를 쳐다봤지만, 시드는 돌아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는 탓에 그냥 서둘러 따라갔다.

그러다 갑자기 입구에서 멈춰선 시드에게 부딪칠 뻔했다. 그가 얼어붙은 까닭에 대해선 짐작이 갔다. 어깨 너머로 들여다봤더니, 거기에는 어김없이 아피아가 있었다.

  “저기…. 오랜만, 이라고 하면 될까?”

어떻게 나와야 좋을지 몰랐다는 양 수줍은 얼굴을 한 아피아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는 여기까지 안내를 맡았던 뮤아가 히죽거리고 있었다.

  “…거스를 걸 그랬지?”

뮤아의 짓궂은 질문에도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시드는 입을 다문 채 얼른 그쪽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그에 맞춰, 웬일인지 아피아도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뒷걸음질을 쳤다. 의뭉스런 얼굴을 한 시드가 발을 더욱 앞으로 내딛자, 아피아 또한 슬슬 물러갔다.

  “왜 도망가.”

  “저기, 왜냐면 시드, …그게.”

말을 더듬는 아피아를 대신해, 뮤아가 쌀쌀맞은 시선으로 시드를 지적했다.

  “저기요. 스스로는 눈치 못 챘는지도 모르지만, 너 냄새나. 술. 술 냄새나니까 당연하잖아.”

그 말에 이상하다는 듯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시드를 내버려두고는, 뮤아는 아피아의 손을 붙든 채 재빨리 움직였다.

  “어쨌든 숙소로 갈게. 시드는 먼저 가있든가, 떨어져서 따라오든가 해.”

  “야, 임마, 기다려!”

어느새 더욱 적당해진 시드의 취급에, 림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4-5

  “그런데 무슨 일이야?”

몸을 추스르자마자 바로 쏟아진 뮤아의 직설적인 물음에, 아피아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좀 떨어진 데서 노려보고 있던 시드가 쓸데없이 입을 열었다.

  “뭐가, 뭔데.”

  “저기, 설마 아피아가 휘휘 놀러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같이 갈 거야? 세피아는 안 왔어?”

  “아, 됐으니까. 좀 조용히 있어.”

끝까지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는 듯싶은 시드를 방치하고, 뮤아는 아피아의 상태를 살폈다. 아피아는 겨우 림과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결심한 듯 경위를 말하기 시작했다.

개국 사절을 자신이 맡아 호리라 왕성에 갔던 일, 개국 교섭 자체는 순조로웠던 일, 그리고 무도회에서 벌어진 그 사건.

시릴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시드는 얼굴을 구겼지만, 납치됐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어이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그딴 걸 가져가서 어쩌게? 끓여먹으려고? 맛없어, 절대.”

  “네네, 조용.”

시드의 잠꼬대를 끊은 뮤아가 닛카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사건, 이지?”

  “틀림없는 대사건인데요. 뮤아, 감각이 조금 둔해진 것 아닌가요?”

공작의 아들이라거나, 왕자라거나, 나라의 전복이라거나 겪은 뒤에, 이야기뿐인 공주 유괴를 들으면 실감이 더욱 부족한 것이다. 닛카가 나서서 아피아에게 물었다.

  “그럼 범인의 목표는?”

  “닛카는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반문이 돌아오고 말았다. 닛카의 성격상, 그렇게 되면 떠올렸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게 된다.

  “우선은 세발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저희가 알고 있으니까요. 다음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생이족인 귀족들, 왕위 탈환을 노리는 사람들이 짚이는데요.”

옛날에는 유우족과 생이족이 교대로 맡고 있었다던 왕좌는 어느새 유우족이 점거하고 있었다. 그 대신인지 신하들 사이에는 생이족이 많아, 과거의 세발족과 같은 취급은 아니더라도, 역시나 불만을 품은 일파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가장 먼저 조사가 됐을 테고, 이번 사태를 일으키는 것도 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죠.”

가령 세발족을 끌어들인 왕이 나라에 혼란을 일으켰다고 규탄해볼 수는 있겠다. 다만, 개국 협상이 막 시작된 지금으로선 이른 감이 있다. 나라를 열지 말지는 이제부터다. 외교를 위해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개국할 생각은 없었노라고 국왕 측이 말을 꺼내면, 규탄의 정당성이 금세 희박해진다.

이를 감안하면, 개국 반대파의 짓이라고 해도 너무 성급했다. 게다가 사절인 아피아를 해친다면 모를까, 공주를 휘말리게 해서 얻을 이점이 없었다. 자신의 진영으로 포섭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너무 위험한 양날의 칼이다.

  “그 정도로 귀족 사회가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나요?”

  “몰라, 그런 거.”

일단은 시드에게 물어봤지만, 냉담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뭐, 그에게 물은 쪽이 잘못했다.

그리고 닛카는 양손을 들어 보였다.

  “항복입니다. 제가 가진 정보로는 아무 것도 짐작되지 않아요. 그저, 성산에서 일어난다는 소란과 약간 관련이 있다는 것만 알겠는데요.”

그런 대답을 받은 아피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관련 있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러 이렇게 합류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네.”

작게 탄식한 아피아가 이야기를 이었다.

  “응…. 시릴은 아마 성산 근처로 끌려간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4-6

그 소문이 아피아에게 들려온 것은 호리라 왕성에 머문 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자기들도 남겠다며 말을 듣지 않는 토네리나 위사들을 어떻게든 달래 리탄트로 돌려보낼 짬이 생긴 바로 그때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사람의 인지를 벗어나는 수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있거든 알려달라고 부탁한 덕분이었다. 마중을 나오라고 한 그 상대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위치를 알려올 것이라고, 아피아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수하를 부릴 수 없는 이 나라에서 확실한 증거는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계기를 잡은 뒤 스스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림 씨한테는 정말 폐를 끼치네요.”

지금 생각하면 그 만남은 행운이었다. 림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이야기가 진행되지도 않았다.

  “아뇨, 전혀 폐가 되지 않아요. 주인님께서도 내켜하셨고.”

림이 복잡한 웃음을 지어, 아피아도 덩달아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것은 “힘을 보태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빈틈없이 감시하라”는 뜻에서 내켜했던 것일 테니까.

설마 세발족인 데다 왕자인 사람 혼자 서성거리게 둘 리는 없어, 시종이라는 명목으로 감시를 붙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계속 궁금해 했을 테니까요. 덕분에 개운해졌습니다. 그러니까, 딱히 뭔가 없더라도 제가 먼저 자처했을 겁니다.”

그것을 예측했기 때문에 아피아가 림에게 접촉을 해뒀던 것이다. 개국 반대파 최대 파벌에 소속된 위사라는 입장에 일장일단이 있지만, 열성적으로 나선 덕분에 판단의 저울이 좋은 방향으로 기울었으리라.

  “하지만 설마 그 편지의 진상이 리탄트 왕가의 분쟁과 관계돼 있었다니 놀랐어요. 뭔가, 다른 숨기는 건 없겠죠? 지금이라면 뮤아 씨나 닛카 씨가 왕의 사생아라고 해도 놀랍지 않아요.”

아뇨아뇨아뇨, 하고 뮤아도 닛카도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뭐지, 그 유괴범. 뭔가 더 요구하지도 않고, 데리러 오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 건 납치범의 언행 때문이기도 했다. 아피아가 얘기한 게 아니었다면, 지어낸 게 아닐까 싶었을 것이다.

  “마술사…. 마술사인가. 으응.”

  “아마도 만나면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그건 달랐어.”

생각에 잠긴 뮤아에게 아피아가 다짐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뮤아는 딱히 마술사라는 말 자체를 의심한 게 아니었다.

  “그 사람, 왠지 하얀 사람은 아니었지, 설마?”

뮤아의 물음에 닛카는 그러고 보니 하는 얼굴이 되고, 아피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된다.

  “아니, 어느 쪽이냐 하면 검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어쨌냐고 눈으로 물어도, 뮤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동작을 해보였다. 여기서 숲속에서 만났던 마술사 같은 인물에 대해 말해봤자 복잡해지기만 할 따름이다. 성산 근처의 그 수상한 상황을 조사했음에도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면 알려주는 게 좋겠지만.

  “하여튼, 걸리는 게 있으니 가서 확인해볼 수밖에 없다는 상황인 거네. 일단은 성산인가.”

말을 돌리려는지, 뮤아가 그렇게 정리하며 아피아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아피아 역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본다.

  “이 상황에서 이런 말하기도 뭐하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서 기뻐.”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자연스레 껴안는 모양새가 되어 재회를 기뻐하는 두 사람을, 남자들이 멀리서 들여다본다.

  “…시드도 끼어드는 게 어때요.”

  “내가 왜.”

  “그래서 상황은 알았죠?”

  “아무튼 성산에 간다는 거지, 같이. 그런데 세피아는 안 오고.”

이해한 건지 알 수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닛카는 시드를 내버려두고, 림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희들, 대체로 늘 이런 상태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림 선생님은 왜 오는 거야?”

  “역시나 얘기를 안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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