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5-1
그것은 뛰쳐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옆을 스쳐가게 한 뮤아는 얼굴에 흩날린 머리카락을 걷어내야만 했다. 가장 맨 앞자리로 복귀해 쭉쭉 나아가는 시드의 등을 본 뮤아가 미간을 좁히며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닛카가 있었다.
뮤아는 지금까지 걸으며 얘기하던 아피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닛카에게 속삭였다.
“방금 뭐였어?”
“오늘은 드물게도 선두에서 나아가지 않네요, 라고 했을 뿐이에요.”
아무리 둔한 시드라도 그 말에 담긴 의미는 헤아린 것 같았다. 헤아렸다기보다는, 정곡을 딱 찔려서 과민 반응했을 뿐이거나.
어처구니없어하는 뮤아에게 닛카가 핑계를 댔다.
“그래도요. 노골적인 시선이 쫓아가는 걸 계속 보게 되는 입장에 서 보세요.”
상황이 변한 데 맞춰 나아가는 줄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피아와 세피아의 지정석이었던 후방을, 지금은 림이 자리를 잡고서 일행 모두를 지켜보는 형태였다. 그리고 언제나 늘 선두에서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아가던 시드는, 이번 출발 때까지만 해도 그랬지만, 첫 휴식을 마친 뒤에는 어째선지 줄의 중간에서 닛카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뮤아와 아피아가 선두에 서게 된다.
등 뒤로 뭔가 꺼림칙한 시선이 느껴진다 싶었더니, 아무래도 거의 노려보는 기세였던 모양이다.
그 광경이 어렵지 않게 상상된 뮤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평범하게 말을 걸면 되는데.”
“정말로요.”
아마 첫 시도부터 좌절되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게 됐으리라. 자업자득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만, 최근 일주일간 술집에 틀어박혀 있던 탓에 시드의 술 냄새가 도무지 빠지질 않았던 것이다. 곁에 있으려 애쓰던 아피아가 기어코 불쾌해질 정도로.
그래서 심술이 났는지, 설마 신경 쓰는 건지, 시드는 대놓고 거리를 두게 됐다.
애초에 사교성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성격이었다.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다루기 어렵다. 지금도 혼자가 된 아피아가 말을 걸 시기를 엿보고 있지만, 뒷모습을 보며 자꾸만 단념하고 있다.
모처럼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더니, 여러 모로 귀찮은 두 사람이다.
“뭐, 성산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되겠지.”
인덴을 떠난 지금은 대삼림을 따라 남쪽으로 걷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성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조금 더 스스럼없는 느낌은 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그 뒤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뭐, 될 대로 되는 수밖에 없지?”
“그렇긴 한데요.”
시드가 계속해서 빠르게 걸어가 버리고, 림이 뒤에서 튀어나와 뒤쫓는 광경을 보면서, 닛카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귀를 막고 있었다.
5-2
림이 무조건 반대한 데다, 좋다고 노숙하는 것도 아니어서, 여정은 숙소가 있는 마을들을 기준으로 짜여 있었다. 여행 중에도 별 문제 없이, 예정된 도시의 숙소를 잡았다.
조금 옥신각신하게 된 것은 방 배정 때였다.
세피아가 있을 때와 똑같이 뮤아와 아피아, 닛카와 시드로 방을 나누려 했더니 림이 난색을 표한 탓이었다.
“여성과 같은 방이라면 조금….”
그러나 또 호위 겸 감시 대상인 아피아와 방을 달리 하는 것은 망설여진다. 그 말인즉슨 아피아와 시드, 그리고 자신을 한 방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뮤아와 닛카는 서로를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는 상관없는데, …으음.”
지금 상태에서 그 두 사람을 같은 방으로 하는 것은 왠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잘 풀릴 가능성보다, 꼬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무래도 림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아직 느끼지 못한 듯했다. 그 이전에, 세발족의 성별에 대해서도 실감하지 못했을 테고.
서로 논의한 결과, 3개의 방을 닛카와 시드, 뮤아, 아피아와 림으로 나누게 됐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시드가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훌쩍 산책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림은 걱정이 된 모양이지만, 일단은 아피아를 우선해야 해서 찾으러 나서지 못할 것 같았다.
“늘 있는 일이에요.”
“금방 또 불쑥 돌아올 테니까.”
전혀 걱정하지 않는 두 사람의 말에 간신히 납득하는 듯싶었으나, 그것도 해가 저물 때까지였다. 해가 완전히 달로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는 시드에 안절부절못한다.
“저는 여기서 나가지 않을 거고, 두 사람도 있으니까, 림 씨는 찾으러 가는 게?”
그런데도 보다 못한 아피아의 제안에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무슨 일이 생기면 면목이 없으니까요.”
“그럼, 저도 함께 찾으러….”
“밤에 돌아다니게 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정론이긴 한데, 그렇게 말해버리면 본인의 사면초가다.
“그럼 제가 갈게요.”
그때 불쑥 나선 것은 닛카였다. 림은 잠시 생각하더니, 역시나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역시 아이들이 돌아다닐 시간은….”
“그냥 어슬렁거리려는 게 아니니까요. 있을 만한 장소도 정해져있고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닛카는 림의 제지를 중간에 끊고, 제 할 말만 늘어놓은 다음 냉큼 나가버렸다. 림은 순간 따라가려고 일어섰다가,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주저앉았다. 호위 대상도, 주인과 관계된 경우도 아니라서 무리하게 쫓아가 붙잡기가 어려운 듯했다.
“지금까지 이런 상태였고, 닛카한테 맡겨두면 괜찮으니까.”
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뮤아는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순간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림이 남은 두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두 사람은 사이가 좋은가요?”
“좋은…, 건가?”
“좋은 거 아닌가. 잘은 몰라도.”
림의 질문에 아피아와 뮤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로 같은 방이었고, 공공연히 싸우는 것도 본 적 없으니 아마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뇨, 시드 님과는 맞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의외라서.”
“뭐, 확실히.”
언뜻 보기엔 물과 기름 같다. 평소에도 적극적으로 얽혀대는 분위기는 아닌데, 왠지 서로 인정하는 듯싶은 느낌은 있다.
“말하자면 남자의 우정 같은 거잖아. 난 잘 모르겠어.”
뮤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을에서 지낼 적에도, 남자들의 공범자와도 같은 동류의식이 영 내키지 않았다.
여하튼, 남겨진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얌전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림의 끈기가 다시 사라지기 전에 두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5-3
시드의 발을 멈춘 것은 미묘하게 걸리는 것이 있는 탓이었다. 번화가의 분쟁 따위는 너무 대수롭고, 시드라고 해도 그 모든 분쟁 하나하나에 고개를 들이밀 만큼 얼빠진 놈은 아니었다. 기분이 좋을 때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지금은 그 반대였다.
그러므로 그는 어두운 골목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붙잡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그러다 귀에 들려온 몇 가지 단어를 통해, 범인을 알아내자마자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러니까아, 반편이가 우왕좌왕하는 걸 보면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그거 실례했습니다. 풀어주시면 눈에 안 띄는 데로 이동하겠습니다..”
“얌마. 우리가 그런 얘기 하는 게 아니잖아!”
“이미 기분 나빠졌다니까. 어떻게 해줄 거냐고 묻잖아.”
다섯 명 정도의 취객 무리에 둘러싸여, 자그마한 몸이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고 뭐고, 어떻게 봐도 생각했던 인물이 맞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뭔가 요구하셔도, 들어드리기가 솔직히 어렵습니다. 가진 돈도 별로 없고.”
“이 반편이가 우릴 강도 취급을 하네!”
사람들의 무리가 금세 웅성거리더니, 둔탁한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시드는 말없이 맨 뒤에 있던 남자 두 명의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상대방이 놀라서 뒤돌아보려는 순간, 양쪽 벽에 그 몸뚱이들을 내던졌다. 결국은 주정뱅이들을 기습한 상황이라, 전원을 쳐내는 데 그다지 시간이 들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인기척이 없어진 골목길에서, 시드와 닛카가 재차 얼굴을 마주했다.
“괜찮냐?”
“익숙하거든요.”
상쾌한 얼굴로 옷을 털어내는 닛카에게, 시드가 미간을 좁히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왜 반항을 안 해.”
“저항하면 더 심해질 뿐이니까요. 저는 시드처럼 엎어트릴 수도 없고.”
“그런가.”
“그래요.”
그렇다기엔 일부러 공손한 말투를 쓰는, 지나치게 도발적인 태도였지만.
“그리고 가끔씩은 겪는 게 좋아요, 이런 일.”
이어진 닛카의 말은 시드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말없이 눈썹을 들며 흘려듣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근데 여기서 뭐해?”
“찾으러 왔습니다.”
“뭘.”
“당신이요.”
“왜.”
“림 씨가 걱정해서요.”
“걱정하게 놔둬.”
단 한 마디로 화제를 내팽개친 시드가 다시 물었다.
“왔으면 어울려 줄 거지?”
“좋아요.”
닛카 역시 설득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선뜻 넘어갔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던 듯했다.
두 사람은 근처 가게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5-4
역시나, 혼자서 마시기도 아쉬웠을 것이다. 시드는 처음 시작이 어렵지, 한 번 사귀게 되면 의외일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고는 한다.
의욕적으로 주문하는 시드를 옆에서 지켜보던 닛카는 그와 자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니, 둘이서 이것저것 떠들어댈 텐데 숙소에서 뭘 어떻게 마셔, 그치?”
투덜대고는 있어도 말하는 만큼 싫어하지는 않는다. 정말 불쾌하게 여겼더라면 함께 행동하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걱정하는 거예요. 어떻게 봐도 시드가 마시는 양은 너무 많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괜찮잖아.”
“정말 조금도 취하지 않나요? 눈앞이 아찔해지거나 졸렸던 경험은?”
“밤이 되면 졸리지만.”
정말이지 시드의 몸은 어떤 구조로 돼 있는지 모르겠다. 비밀이지만, 닛카는 옛날에 이렇게 둘이서 같은 방을 지냈을 적에, 시드의 음료에 몰래 마취제를 탄 적이 있다. 비밀에 부쳐진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약물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곰을 잡는 데 쓰는 더 강력한 약제를 시험해봤다. 다행스럽게도 그 역시 전혀 듣지 않았다. 깜빡 먹혀들었다간 난처했을 뻔했다.
그런 대화를 나누다가 주문한 것들이 나와 각자 입을 댔다. 시드의 취향은 여전히 독한 술이라 닛카가 미간을 찌푸렸다. 취하지 않는다면 물이나 과즙도 매한가지일 것 같은데, 본인은 그 맛을 좋아한다고 우겨댔다. 그 말도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닛카는 그 외의 더 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근처에 있기가 어색해요?”
“어색하달까, 시끄러우니까.”
“아피아 얘기예요.”
순간 시드가 한눈에 알아볼 만큼 경직된다. 알기 쉽지만, 그래서 무척 성가시다. 시드는 정곡을 찔렸을 때 부정하거나 얼버무리는 게 아니라, 입을 다물어버리는 성격이다.
“시드,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있어요.”
그가 입을 다물면 닛카는 대개 묵과하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닛카는 저 침묵을 깨기 위해 깊이 파고들었다.
“본인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잖아요.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면 네네 알아서 눈치를 봐주던 때와는 달라요.”
“뭐야, 그게.”
“알아들은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돼요.”
그런 식으로 말한다고 평온해질 시드가 아니다. 금세 좀 전의 흥이 식어 닛카를 흘겨봤다.
“내가 언제 너희한테 그런 걸 요구했어.”
“가만히 있으면 똑같을 거란 말이에요. 아피아와 헤어지던 때하고. 계속 양조실에 틀어박혀서 제대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멋대로 같이 올 거라고 단정 짓고. 그 승부는 아피아의 계책이었을걸요.”
아직도 그 당시의 일은 새삼스러운 것 같았다. 상처가 후벼지게 된 시드는 약간 움츠러들었다.
“아피아는 여기 그렇게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어요. 또 같은 일을 반복할 생각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이제 이 일에 더 이상 참견하지 않을 테니까요.”
단언하는 닛카에게 무언가 대꾸하려던 시드는, 결국 무뚝뚝하게 입을 닫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시드. 말은 결코 마음을 따라잡지 못해요. 하지만 말로 하지 않으면, 거의 전해지지 않아요.”
그래서 추격을 가했다.
“제대로 된 게 아니어도, 한 마디라도 좋으니까, 말로 전해보지 않을래요?”
그 물음에, 시드는 여전히 말을 꺼내지 않고서 손에 쥔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5-5
그렇게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시드는 추가 주문을 하지도 않고 빈 잔을 움켜쥔 채였고, 닛카는 자신의 잔을 조금만 목 뒤로 넘겼다. 도수가 독한 술이지만 그다지 고급스러운 것은 아닌지, 혼합물의 맛이 혀에 남았다. 자연스레 그 맛이 무엇에 의한 건지 판별하려는 자신을 알아차린 닛카가 남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말을 잘하는 건, 그래서인가?”
그러던 와중에 마침내 시드가 입을 열었다. 닛카는 질문에 답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줄곧 혼자였으니까, 자연스럽게. 주장을 펼치지 않으면 없는 취급이었거든요.”
시드는 그 상황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잠자코 있어도 지나치게 챙겨지곤 했을 테니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은 상상할 수 있는 범주 밖이겠지.
“뭐, 어머니가 계셨어도 똑같았나. 그런 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렇지 않고서야 정체 모를 뜨내기랑 결혼하지도 않았겠죠.”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와 결혼함으로써 본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염두에 뒀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아마 부풀어 오른 기분에 그대로 휩쓸렸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었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딱히 똑똑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요. 죽은 것도 사고…라고 할까, 확실하게 말하자면 식중독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그가 남기고 간 약간의 저축은 있었지만, 생활이 넉넉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런 어머니가 처신이 발랐을 리도 없다.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건 자신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녀대로 어떻게든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는 결과가 그것이었다.
“우연히 제가 자리를 비웠을 때 야생초를 요리에 써버렸고. 구분이 어려운 종류니까 혼자 있을 때는 손대지 말라고 했는데, 별 수 없었어요.”
풀을 뜯는 걸 보고도 마을 사람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관여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만한 일이었다.
“끝까지 글을 못 읽었어요. 아마 그 사람도 꾸준하게 가르친 것 같은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 있으니까.”
글을 읽을 수 있는 편이 좋았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마음을 준 상대는 벽 너머의 낯선 존재라는 걸 알았는지조차 불분명하므로.
물어보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물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죄송합니다. 제 이야기만 했네요.”
“…아냐.”
시드는 짧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표정이 꽤 굳어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할지는, 아까 말한 대로예요. 말하면 돼요. 생각하고 있는 걸 솔직하게.”
“그런가.”
그는 그제야 컵이 비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같은 것을 주문해 단번에 들이켜고는 일어선다.
“자, 돌아간다.”
“네, 그렇게 하죠.”
어떻게 나올지는 몰라도, 그는 결의를 한 것처럼 보였다. 닛카는,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처럼 막혀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너무 안일한 것이었다.
5-6
숙소로 돌아왔더니, 아직 전원이 잠들지 않은 채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꽤 늦었네.”
“수색과 설득에 시간이 걸려서요.”
뮤아가 명백한 술 냄새를 풍기는 닛카에게 그렇게 말을 건넸더니, 쉬이 흘려보낸다. 뮤아는 뭐 상관없지만, 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시드를 쳐다봤다. 저런 표정이지만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닛카가 나름대로 잘 해낸 모양이었다.
그러다 닛카의 입가에 남은 얼룩을 알아챈 뮤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주먹다짐 같은 거, 했어?”
“설마요. 그러다 죽어요. 제가.”
“그럼 지금까지 뭐했어?”
“사태를 나아지게 하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약간.”
그 성과가 곧 나타날 듯했다.
어디에 갔는지 묻고는 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삼가도록 설교하는 림을 대하면서도, 시드의 주의는 분명 아피아를 향해 있기 때문이었다. 덩달아 아피아도 그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어색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야, 아피아!”
그리고 마침내 시드가 각오를 다한 것 같았다.
그리 무뚝뚝하게 부르고는 곧장 아피아 앞에 성큼성큼 다가갔다.
뮤아와 닛카는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며 지켜보고, 림은 의아한 얼굴을 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멈춰 세우지는 않고, 시드는 다음 말을 망설이는 듯했으며, 아피아는 입을 다문 채로 그 말이 나오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묘한 침묵은 시드가 거칠게 내지른 말에 의해 깨졌다.
“……우리, 결혼할 거니까! 알았지!”
거의 달려들어 물어뜯는 듯싶은 말투였다. 덕분에 어느 누구도 잠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드의 얼굴이 분노로 차 있지 않았다는 점이나 그가 한 말이 결투 신청이 아니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중요성과 터무니없음을 이해하고 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
뮤아가 시드의 뒤통수를 실수로 후려갈기고 만 것은, 어이없어서만이 아니었다.
그 너무나도 당돌하다 못해, 사려도 맥락도 분위기도 아무 것도 있지 않은 시드의 청혼에.
“……응.”
작지만 분명하게, 아피아가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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