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2-1

세상은 새해를 맞이해, 그라드네라력 7513년을 세게 됐다.

찾아온 나날들은 달라지지 않았고, 송년의 소란스러움도 지나고, 들떴던 분위기도 곧잘 안정된 백의 달 중반쯤. 호리라의 왕도 리라스를 향해, 다섯 대의 록차가 길을 가고 있었다.

그 록차들은 특별히 눈에 띄는 데가 없어 말하자면 검소한 형태였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소재의 질이 옹골차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 사람이 타는 차에 달린 창은 세밀한 격자와 천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끔 엄중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데서 위화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천이 손가락에 의해 살짝 걷혔다.

  “…역시 어디에도 칩거용 오두막은 보이지 않는군.”

그는 간신히 생겨난 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옆의 시종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한지 손을 꽉 쥐고 있는 시종은 듣지 못한 듯, 하지만 말을 거는 기색을 느끼기는 한 듯, 새된 목소리를 냈다.

  “아, 네, 무슨 일이신가요!”

  “이쪽에서는 칩거할 필요가 없구나 하고.”

  “아, 저, 그렇지요. …커튼을 너무 많이 걷지는 마세요. 위험해요.”

  “괜찮아. 만일 보게 되더라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어쨌거나 몸으로 겪어봤다. 얼핏 본 것만으로 저희들이 세발족이라고 간파할 사람은 없다.

아피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시종에게 말을 걸었다.

  “토네리, 여기 들어온 지 약 반 주 정도 됐잖아. 봐, 아직까지 잡아먹히지도 않았고.”

익살스런 말로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역효과였던 모양이다. 부들부들 떨더니 슬쩍 기도를 시작하고 말았다. 그렇게나 무섭다면 처음부터 동행자로 나서지 않는 편이 나았을 텐데. 근거 없는 죄책감이라는 것도 성가신 일이다.

겨우 여기까지 닿았다.

앞으로 더 기다리고 있을 것들을 생각하며, 아피아는 시선을 멀리 던졌다.

연이은 사절의 실종들과 최근의 사변 때문에 협상은 지지부진했으나, 뮤아 일행의 개입으로 사변이 해결된 덕분에 성 안에서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이 시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 열기가 전해졌는지 호리라 측도 양보의 자세를 보였다. 밀어붙여야 할 때였다.

  “하지만 역시 아피아님께서 오지 않으셔도 됐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돌아가요.”

기도를 마쳤는지, 토네리가 몇 번째인지 모르는 그 말을 해왔다. 아피아 역시 여태까지와 같은 대답을 했다.

  “내가 먼저 자처한 거야.”

  “하지만 이런 위험한….”

  “위험하지 않아. 그들은 같은 인간이고, 제대로 생각하면서 움직이고 있어. 나한테 위해를 가할 필요는 별로 없어.”

역시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암살이나 인질 같은 가능성도 고려하고는 있지만, 아피아는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아직은 탐색전의 시기여서, 그런 강경책을 쓸 것 같지는 않았다.

미묘한 시기이기 때문에 자신이 나설 필요가 있었다. 이 협상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뜻을 표명하기 위해서.

벽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이라는 땅에. 실제 벽은 한 대만 때려도 깨진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했다간 벽의 그 뿌리가 남는다. 서두르지 말아야 하지만, 시기를 놓쳐서도 안 딘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아피아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어 언제나처럼 그것을 움켜쥐었다.

 

2-2

전해지는 진동의 간격으로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리라스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읍내의 시끌벅적한 소리와 멀어지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나무가 삐걱대는 소리, 무언가 떨어지는 무거운 소리가 몇 번 거듭된 뒤에야 록차는 그 여정을 마쳤다.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저는 시종장을 맡고 있는 모네스=란테토=도네센이라고 합니다. 이번 리탄트 왕자 전하의 방문을 환영하며 인사와 안내를 드리러 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우선은 한 가지 해결이다. 록차 안에는 안도의 분위기가 흘렀다. 속내가 어떻든 저쪽에서는 이쪽을 역적 집단이 아니라 대등한 상대로서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협상 의사가 있다는 말이다.

옷매무새를 가볍게 가다듬은 뒤 위사와 시종을 앞세운 아피아는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햇빛에 빛나는 풀밭 위에서 다섯 명 정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위사였고, 나머지는 시종. 가운데의 키 큰 생이족 남자가 방금 전 소개를 한 시종장인 듯했다. 첫 번째 영접은 이쪽의 인원보다 많은 수로 적의를 의심하게 하지 않았고, 너무 적어서 실례라고 여겨지게 만드는 정도도 아니었다. 협상은 벌써 시작됐다.

아피아는 정면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모습이 비친 그들의 눈동자에 살짝 감정의 물결이 흐르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목을 사게 되리라는 것은 노렸던 바다.

다른 두 종족에게 세발족의 독립은 굴욕의 역사다. 당연히 언급하는 일이 적지만, 나라의 요직에 앉은 사람은 그 개요를 안다.

건국왕 르란트의 이마에서 빛나던 것과 같은 표식을 본 이들은 대역을 세우는 경우를 줄여야만 할 것이다.

  “리탄트의 제1왕자, 아피아=세리크=리탄트=파다입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불구하고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위대한 수호자, 아네키우스의 영광이 여러분의 위에서 함께 하기를.”

인사와 함께 그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는 동작을 한다. 그들 역시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답례해 왔다. 서로가 같은 존재이며, 같은 비호 아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절차다.

  “자, 우선은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긴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십시오. 그 뒤에 폐하와 알현을.”

그리하여 록차에서 공납품을 제외한 짐들을 내렸다. 앞마당부터 바로 성인 탓에 차량의 진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호신용 무기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다른 위험한 것들을 반입할 기미가 없는지 골라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길바닥에서 지켜보며 적당한 대답과 함께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아피아는, 문득 어깨 너머에서 들린 삐걱대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닫히고 있는 커다란 문의 틈으로, 도개교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역시나.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 전제된 나라에서 높은 벽은 수비로서 기능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유우족은 수평비행에 약하다. 여러 겹의 해자로 성을 에워싸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방어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피아는 알아챘다. 자신들의 왕성 또한 이와 같음을. 리탄트의 왕성은 원래 그들과 싸우기 위한 요새였다.

전쟁은 확실히 이제 멀다.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일찍이 있었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는 개국 협상 이전에 정전 협상이 되어야 한다. 르란트가 일으킨 난이 잘못되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백 년은 분명 너무 오랜 시간이었다.

이제야 그 전쟁이 끝을 맞이할 때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아마 호리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아피아가 그런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멈춰라, 이놈들! 그 이상 들어올 생각 마!”

그런 고함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 것은.

 

2-3

남자의 목소리였다.

영접을 나온 눈앞의 일행들로부터 나온 게 아니었다. 그들도 오히려 당황해 하며 목소리가 난 곳을 찾고 있었다. 아피아 역시 반사적으로 그 목소리가 났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모두가 발견했다.

그가 있었다. 왕성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세 번째 문 위에서 팔짱을 낀 채로 거들먹거리며.

  “똑바로 들어라, 세발족의 두목놈!”

또랑또랑한 음성이 앞마당까지 울렸다.

  “용케도 들어왔겠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이 문을 지나지 못할 거고…!”

그 포고가 끊어진 것은, 허둥지둥 달려온 듯한 위사들이 그를 반강제로 문에서 끌어내려서였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기막혀하는 리탄트의 일행에게, 시종장이 땀을 흘리며 설명을 하려고 했다.

  “대,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저, 그분은, 저.”

  “톨라 공작.”

반응한 말에 시종장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벌써 만나보셨습니까?”

  “…아뇨, 처음 뵙습니다.”

  “하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싶은 표정을 짓는 시종장을 향해, 아피아도 속으로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착각할 여지조차 없이, 꼭 닮았으니까요.

확실히 저래서야 무척 사이가 좋거나 무척 사이가 나쁘거나 두 가지 경우가 되겠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곳은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피아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아래를 향해 희미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데 있을 리가 없는데 무심결에 기대하고 만 자신이 싫어졌다. 세피아가 나빴다. 그런 말을 했으니까.

만약에 만나면.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오시자마자 실례를 끼쳐드려 사죄의 말씀도 드릴 수가 없군요. 모쪼록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난데없이 터져 나온 간절한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가, 아피아는 섬찟해졌다. 어느새 무릎을 꿇은 시종장이 사과하고 있었다.

홀로 생각에 잠겨있는 아피아의 모습을 언짢아하는 거라고 보았던 모양이다. 저지른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얼버무릴 수도 없다고 판단했을 터였다. 자칫했다간 호리라 전체의 의사로 해석될 수도 있을 테니까.

분위기를 망칠 생각이 없었던 아피아는 서둘러 시종장을 말렸다.

  “부디 무릎을 드세요. 반발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저는 이런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최대한 온화하게 보이도록 의식한 미소를 지으며 무난한 말을 늘어놓아, 어떻게든 시종장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했다. 정말이지, 부모자식이 모두 여러 모로 귀찮은 사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공작에게는 세발족을 원망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사과해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이쪽인 데다, 심지어 사과를 하는 것조차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드에게마저도, 자신은 무엇 하나 보상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더니 또 다시 낯빛이 어두워져버린 것 같았다. 시종장의 시선과 약간 수그러든 귀를 알아본 아피아가 다시 의식적으로 표정을 풀었다.

말썽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뜻밖의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다.

 

2-4

그렇게 세 번째 문을 지나자마자, 아피아는 다음 문제를 맞닥뜨렸다.

하지만 그 일은 예상 밖의 해후에 의한 조용한 충격이라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었다. 방금 전의 소란을 수습하는 위사들 틈에서 아는 얼굴을 찾아내버렸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쪽을 쳐다보는 그와, 아무 생각 없이 흘끗거렸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아피아는 순간 굳어졌다가, 황급히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리며 동요를 억눌렀다.

그렇다. 염두에 뒀어야 했다. 공작이 있다면 그가 고용한 위사인 림이 곁에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동요가 가라앉으니 자신의 대응이 서툴렀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아차.

모르는 척 할 것을 저도 모르게 크게 반응하고 말았다. 이마도 드러내고, 머리도 묶은 데다, 옷차림을 갖췄으니 남이지만 닮았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상상하다, 잔꾀를 부려봤자 어차피 이름으로 들킨다는 생각에 아피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놀란 정도로 보아하니 림의 귀에 아직 자신의 이름이 전해지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머지않아 알게 될 터였다. 생김새와 이름을 전부 알게 된다면,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호리라에 아는 사람은 없고, 불렸을 때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여 눈에 띄지 않게끔, 또 호리라에 습격자가 있다면 일부러 유인해내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런 사태는 상상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으려나, 아피아는 생각했다.

뮤아 일행에게는 일단 저희들의 일이나 리탄트 내부의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것은 향후 개국 협상에서 일이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처사에 지나지 않았다. 호리라의 상부에서 경위를 알게 되면, 왕자가 나서서 침입했다든가, 호리라 백성들의 도움을 받았다든가,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 지점을 많이 내주게 되기 때문이었다.

림은 경솔하게 떠들어대는 성격은 아닐 터였다. 어떻게든 접촉할 기회를 찾아내 사정을 설명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시치미를 떼면 된다.

  “이 자식, 지나가지 말라고 했다, 이 세발족!”

섣불리 움직였다간 위사들의 울타리 너머에서 들리는 저 목소리의 주인과 부딪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자, 자, 이쪽, 이쪽으로.”

어떻게든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지 자꾸만 재촉하는 시종장의 인도로, 아피아 일행은 마침내 본성에 발을 들였다.

세련된 분위기의 건물이었다. 가장 후미진 데 자리를 잡은 본성은 분명히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을 텐데, 손질이 잘 된 덕분인지, 여유로운 시대의 산물인 덕분인지, 열화가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무게를 고스란히 위압감으로 돌린 것만 같았다.

이에 비하면 리탄트 왕성은 투박하고 요새의 특징을 남겨두고 있다. 세워진 상황을 보면 별 수 없지만.

현관의 홀을 빠져나와, 복도를 지나서, 안뜰을 돌고, 회랑을 걷는다. 그 모든 과정에서 뚜렷한 호기심의 눈길이 쏟아지고, 뒤따라오는 토네리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음이 전해졌다.

  “실례했습니다. 여하튼 여러분들의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들뿐이라서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알아봐주실 수 있는 좋은 기회인걸요.”

구경거리 삼지 말라는 경고야 있었겠지만, 소용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절은 극비의 방문이라, 성 안의 비밀이라고 해도 공공연히 세발족이 이 나라에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 방문자가 왕자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저희의 나라에 여러분이 방문했을 때야말로 더욱 큰 소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객관적으로 볼 때, 세발족의 모습은 재미있는 데가 없다. 부족할 뿐이다. 그런 탓에 다류라 시대에는 다른 두 종족보다 사람으로서 뒤떨어진다는 취급을 쭉 받았다.

건국왕 르란트.

아피아는 재차 그 이름을 떠올리며 이마의 표식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리탄트 왕위 계승법의 특수성 때문에, 그와의 혈연은 전혀 없다. 그보다도, 르란트는 자식을 한 명도 남기지 않았다. 말하자면 리탄트라는 나라 자체가 그의 자식 같은 것이다.

여기 와서 강하게 느낀다.

이렇게 오래도록 화근이 남을지언정, 르란트의 봉기는 필연이었을 것이라고.

 

2-5

르란트의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분명히 알려진 것은 그가 남쪽에서 나타났다는 것, 무용보다는 지략에 더 가까웠으며, 사람을 잘 끌어당기는 인품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마에 표식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통일왕국에서 세발족의 취급은 너무 조잡했다. 나라의 요직에 오르는 사람이 없고, 대부분은 수확이 적고 위험한 땅으로 쫓겨났으며,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꼽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놈들은 마술사의 일족이니 방심할 수 없다, 놈들은 마술사의 일족이니 그 땅도 위험하지 않다.

과연, 세발족 마술사는 있었으리라. 일찍이 존재했다는 마법왕국의 지도자가 세발족이었다는 것도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유우족이나 생이족 마술사도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 마술사 사냥 같은 때에는 무차별적으로 무기가 휘둘러졌다.

즉, 세발족이라는 것만으로 마술사라고 간주될 까닭은 없었다. 다만 싫은 것을 강요하기에 적당한 이유가 됐을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반란은 수차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진압되었다.

세력이 빈약한 데에다가, 개인 간의 다툼에서도, 날 수 있는 유우족이나 날렵한 생이족에 비하면 신체능력이 뒤처진다. 초반에야 전의를 불태울 수 있어도, 장기전이 되면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패배할 때마다 입장은 더욱 나빠졌다. 수렁에 빠진 세발족은 얻어맞으며 기세가 꺾였다.

르란트의 출현이 조금만 늦어졌다면, 완전히 소용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나타났다. 강인한 의지와 뚜렷한 꿈을 갖고서.

어차피 평소 같은 사소한 알력 다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영주들이 알아서 처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왕가를 비롯한 북쪽의 권력자들은 성산이 포위되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태의 크기를 인식했다. 황급히 진압을 시도했지만, 그 즈음의 다류라 왕국은 영지들이 오합지졸의 양상을 띠고 있는 데다, 대삼림으로 분단된 북쪽과는 연락이 닿지 않아, 도저히 하나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성산에서 적의 이목을 당긴 르란트는 상대가 지휘에 혼란을 겪는 틈을 타 북으로 진군했다.

목표는 곡창지대, 다류라 왕가의 목구멍 제일 안쪽.

그 길로 가던 도중에, 지금은 계약의 땅이라 불리는 곳에서 신과 그 계약을 맺었고, 기세를 올린 르란트군이 현재 리탄트 왕성의 바탕이 되는 요새를 점거해 거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뒤에는 영토 분쟁이라는 난전이다.

피폐해진 양측의 균형 지대가 자연스레 국경선이 되고, 어느새 벽이 세워졌다.

그리고 200년 동안 벽은 양측의 사이에 계속 있었다. 절대적인 경계로서.

 

2-6

아피아는 다시금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스스로는 직접 볼 수 없는, 그럼에도 확실히 거기에 새겨져 빛나는 신의 선정의 증거.

과거의 봉기와 현재를 이어가기 때문에, 아네키우스의 성인(聖印)과는 형태가 완전히 다르더라도, 리탄트 백성에게 있어 이 징표는 무엇보다 신성하다고 여겨진다.

신과의 맹약.

하지만 호리라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인정하면 자기들이야말로 신의 노여움을 샀다는 말이 된다.

설마 하늘의 사자가 나타나 어느 쪽이 좋고 나쁜지 판정해 줄 리도 없으므로, 어디까지 타협하느냐의 문제다.

  “객실은 이쪽입니다. 왕자 전하께선 안방, 따르는 분들은 오른쪽 방에 침대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생각에 잠긴 채로 걷다보니 어느새 본성 깊숙이 도착해 있었다. 시종장이 문을 열며 일행을 안으로 이끌었다. 정성스럽게 준비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세 칸짜리 방이다. 여기서 일을 겉날린다면 호리라라는 나라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여겼으리라.

  “먼 데서 오셨으니 오늘은 모쪼록 편히 쉬어주십시오. 무언가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말씀하신 대로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알현은 언제 드릴 수 있습니까?”

  “내일 중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환영회도 내일 밤에.”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딱히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이쪽에서 헌상한 물품들을 음미하거나 대응 방침을 조정하는 시간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일정을 받아들였다. 시종장이 인사하고 방을 나가자 긴장된 공기가 약간이나마 풀렸다.

일주일 정도는 여기 머물게 될 터였다. 달이 바뀌기 전에는 성과를 손에 넣어 리탄트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피아 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피곤하실 텐데 어서 주무세요.”

향후의 행정을 머릿속으로 조립하고 있으려니, 토네리가 염려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아니, 그다지 피곤하지 않아.”

  “그렇지만….”

잔뜩 흐려진 토네리의 얼굴을 보며, 아피아는 그녀가 어째서 이 파견에 지원했는지 떠올리고 씁쓸하게 웃었다.

  “알았어. 그럼 말대로 좀 쉬어볼까.”

생각이야 침대 안에서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쉬어야 다른 사람들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긴장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많이 지쳤던 것 같다. 몸의 욕구를 거스르면서까지 생각에 잠길 엄두가 나지 않아, 아피아는 그대로 눈을 감기로 했다.

 

2-7

이 날은 날씨가 좋았다.

걷은 세탁물들은 폭신하게 말라 접기도 편했다. 세탁물을 개는 팔과 동시에 움직이는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200년 만에 찾아온 진귀한 손님들이었다.

  “봤어?”

  “봤어, 봤어. 땡땡이 쳤다는 걸 들켰는데도 역시 오늘은 안 혼났어.”

  “왜냐면 말이야, 반장(洗濯頭)도 볼일이 있는 척하면서 보고 있었으니까.”

  “누가 봐도 억지로 꾸며낸 볼일이었잖아. 혼낼 수가 없지.”

  “그래서 어땠어?”

  “어땠냐니…. 사실 별로 가까이에서는 못 봤는데…, 뭐랄까, 김이 샌달까.”

  “잠깐. 이건 틀림없는 중대사야. 분명 역사서 같은 데 실릴 거라고. 왜 그런 시시한 소감이야?”

  “어, 그치만 그야, 그래서야 꼭 그냥 결손아 같잖아. 왕자라고 해도 어린애고.”

  “확실히 어떤 괴물이 올까 기대했었지.”

  “그런 것 치고는 설레어 하지 않던데, 너.”

  “무서운 거 보고 싶었는데.”

지나가던 늙은 여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까르르 웃는 젊은 아가씨들을 째려봤다.

  “무슨 소리야. 그 이마의 표식 못 봤어?”

  “아, 그러고보니 뭔가 있었던 것 같아.”

  “그건 마물의 왕이라는 증거야. 녀석들은 그렇게 마물이랑 계약하고 있다고. 방심하면 안 돼. 마물들은 언제나 처음엔 그럴 듯한 얼굴을 하면서 쳐들어오니까.”

그런데 있잖아, 하며 젊은 아가씨들이 얼굴을 마주봤다.

마물 같은 게 나오는 건 성서나 이야기 속에서만이고, 대낮부터 그런 것을 무서워 할 만큼 어린애도 아니라, 이런 이야기는 재미있거나 어떻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녀들의 관심은 곧 환영을 위해 내일 밤 열린다는 무도회로 옮겨가, 귀족들에 대한 품평과 준비에 관한 푸념으로 화제가 변했다. 그녀들의 기세에 대항하지 않은 늙은 여인은 홀로 세탁물을 분류하며 중얼거렸다.

  “아네키우스님께서 애써 벽을 만들어주셨는데. 임금님께서 마물의 침입을 허락해버렸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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