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5-1
북방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북림천’ 1이 둘로 갈라지는 지점에, 교역도시 타이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수로를 통해 산맥으로부터 석재와 광물이, 육로를 통해 대삼림으로부터 목재가, 모여서 북으로 남으로 운송된다. 왕도에서 열지와 성산을 향하는 사람들과, 성산에서 왕도를 향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사방으로 떠나간다.
물건들과 사람들이 잠시 거쳐 가는 곳, 도시를 에워싼, 북쪽 돌로 만든 벽 안에 남쪽 나무로 지은 집들이 늘어선 곳, 그것이 타이나였다.
“우와, 사람 많아. 여기도 저기도.”
번화가에는 형형색색의 천으로 장식한 가게의 지붕들이 즐비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목소리도 크다. 다양한 옷차림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그 사이에서, 다섯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애써도, 신기한 것에 눈이 팔려 무심코 두리번거리게 된다. 뮤아는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일행 중에 자기밖에 없다는 걸 알고 조금 침울해졌다.
“들뜬 사람은 나뿐이야?”
“아뇨, 저도 처음이지만요.”
“나도.”
“그럼 조금은 즐겁게 있어.”
“성격이라서요.”
“성가시게.”
“나, 즐거워.”
매정한 동료들 틈에서 나타난 구원자는 세피아였다. 뮤아는 세피아의 머리를 품에 끌어안고선 두 남자를 노려봤다.
“세피아가 제일 어른이네. 세피아랑 즐겁게 걷고 있으니까 좋다―.”
“넌 어린애고.”
시드의 볼멘소리도 모르는 척하며 뮤아는 세피아와 손을 잡았다. 그러다 아피아의 모습을 발견해, 비어있는 손을 흔들었다.
“잠깐 누나 역할 빌려간다?”
“아, 음.”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는 아피아를 보며 아까부터 그가 대화에 많이 끼어들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지만, 그는 늘 한 발 떨어져 세피아와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뮤아는 이번에도 그런 거려니 판단했다. 어쩌면 그도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긴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뭐, 즐겁게 걷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숙소를 구해볼까요? 그 다음에 장보러 가요.”
게다가 닛카의 타당한 제안이 꺼내졌으므로, 농담 따먹기는 잠시 중단됐다. 지금까지 거쳐온 마을과는 달리 여러 선택지를 두고 숙소를 고르면서,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시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찾았다…….”
그 남자는 다소 방심하는 듯했으나, 뮤아 일행의 모습이 인파에 휩쓸려 사라지려 하자 서둘러 그들의 뒤를 쫓았다.
5-2
각자의 방에 거추장스러운 짐들을 풀고 1층에 모이기로 한 뮤아 일행이었지만, 그 자리에는 세 사람밖에 없었다. 뮤아가 닛카에게 물었다.
“시드는?”
“먼저 가버렸어요.”
여전히 단체 생활을 못하는 남자다. 그거야 익히 아는 사실이니 내버려두고, 이런 경우가 드문 쪽에도 물었다.
“세피아는 혼자 와도 괜찮아?”
“장보기는 나한테 맡긴댔어. 뮤아네랑 같이 있으면 안심이라면서.”
대개 두 명이서 함께 움직이던 형제는 지금 동생만 나와 있었다. 뭔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것 같은 형제니까, 뮤아도 캐묻는 것은 그만둔다. 그 대신에 다시 세피아의 손을 잡고 짐짓 활기차게 행동했다.
“좋아―, 그럼 오늘은 내가 누나야.”
하지만 그런 배려가 빗나갔는지, 뮤아는 세피아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서리는 것을 발견했다.
“앗, 미안해. 역시 아피아가 더 좋은 거지.”
이번에 세피아는 손을 놓는 뮤아를 향해 당황했다. 처음 곤란해 했던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그게 아니라.”
세피아도 허둥지둥 입을 연다.
“저기, 그런 게 아니라, ‘누나’가 뭐지 싶어서….”
“어?”
예상 밖의 반문에 뮤아의 말문이 막혔다.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기묘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여자 형제를 말하는 거예요.”
옆에서 그 어색한 대화를 지켜보던 닛카가 참견하며 침묵을 깨트렸다. 아무래도 그런 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뮤아와 달리, 세피아는 납득한 것 같았다.
“그렇구나.”
“그래요.”
“그럼 뮤아는 누나고 닛카는 형이야?”
“그렇게 되네요.”
뮤아는 그런 설명으로 괜찮은가 따지고 싶었지만, 닛카와 세피아 사이의 원만하게 해결되는 분위기를 망치기도 망설여졌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게다가 세피아가 손을 잡아오며 악의 없는 미소를 짓기까지 해서, 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밀어둔 뮤아의 의문은 끝내 하루 만에 해결됐다. 그 계기는 장을 보던 중에 생긴 만남이었다.
5-3
가죽 모자를 씌워봤더니 역시나 잘 어울린다. 생이족 전용의 이 모자는 윗부분이 넓어지는 독특한 형태다. 뮤아는 세피아의 모자 쓴 모습을 닛카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러면 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여기서 말한 귀는 물론 생이족의 귀다. 닛카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소견을 밝혔다.
“그러려면 진짜 귀를 숨겨야 하잖아요. 푹 눌러쓰는 건 이상한데.”
“아, 맞다. 치마를 입어도 꼬리가 없다는 게 보일 거고.”
“망토는 어때요?”
“으음. 역시 어색할 것 같아. 항상 그런 차림이면 거북하지.”
“날개나 귀는 드러내니까요, 보통.”
결손아라는 설명이 통한다 해도, 날개와 귀가 다 없는 사람은 눈에 띈다. 되도록이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쪽이 나았다. 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세 사람은 의류점에 와 있었지만, 효과적인 타개책을 찾지 못했다.
날개나 귀를 감추는 것은 공식적인 석상에서의 예의범절에 지나지 않아서, 평범한 장소를 그런 모습으로 거닐고 있다간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기껏해야 얇은 소재의 망토를 날개로 착각하게 하는 정도가 전부일까. 그럴 바엔 차라리 잔꾀를 부리지 말고, 여태껏 그랬듯이 당당하게 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결손아를 숨기지 않는다, 그런 집단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무난하겠어요. 뮤아한테 미안하지만.”
그렇게 하면 뮤아도 결손아 중 하나로 치부될 수 있다는 얘기니까 이해는 되지만, 닛카가 그런 식으로 양해를 구하는 것이 뮤아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난 전혀 상관없는데?”
“그럼 그렇게 하죠.”
닛카는 모자를 제자리에 두면서 그렇게 결론짓는다. 뮤아의 대답이 의문형인 것은 모른 척한다. 척하는 거다. 그것은 일부러 상대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기 위한 행동으로, 닛카의 버릇 같았다. 닛카는 말을 많이 하지만, 가장 확실한 전달 수단은 이런 식의 행동이다. 그것도 상대의 반응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슬슬 먹을 거라든가 자잘한 걸 사러갈까요…. 그보다 뭐 필요해요?”
“딱히―. 세피아는 뭔가 갖고 싶은 거 없어?”
얌전히 옷 입히기 인형 노릇을 하던 세피아의 손을 붙들고, 뮤아는 가게를 떠났다. 모르고 행동하는 것도 아닌데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이 일행은 다들 각자 사정이 있는 모양이지만, 일일이 참견할 필요도 없고.
“어―. 아피아한테 뭔가 사다주고 싶은데. 과일 같은 거 팔아?”
“있을 거야. 찾으러 갈까?”
“응.”
시장가로 걸어가기 시작한 두 사람을 닛카가 뒤따랐다. 대삼림 일대를 벗어나면 열지로 접어들기 때문에, 물이며 식량 따위를 여기서 최대한 챙겨둬야 한다. 세 사람은 이것저것 따져보고 있었는데, 한 장소에서 세피아가 작게 소리를 질렀다.
“앗.”
“무슨 일이야?”
하지만 물어보는 세피아에게는 고개를 흔든다.
“아, 아무 것도 아냐.”
어떻게 봐도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다. 그래서 뮤아는 방금까지 세피아가 보고 있었던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았다.
길에 늘어선 가게의 활짝 열린 창문 안으로, 시드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거기는 명실상부한 술집이었다.
5-4
안으로 쳐들어가자 시드가 금세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용건?”
“들을 필요 있어?”
그는 가죽물병에 술이 채워지는 틈에 또 뭔가 마시고 있다. 이런 본성일지도 모른다지만, 요즘은 너무 지나치다.
“취하지 않지?”
“안 취해.”
“마시는 의미 있어?”
“맛있으니까.”
쓸데없는 문답이 되풀이되고, 닛카와 세피아는 그 대화를 입구에서 지켜보고, 가게 주인은 나 몰라라 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앞으로 2년 정도도 못 참아?”
“너 진짜 말 많네. 여자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다 마시거든.”
그 말투에 짚이는 데가 있어 뮤아는 닛카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그 시선은 단박에 받아들여졌다. 꺼림칙한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말없는 긍정에 지나지 않는 몸짓으로. 뮤아는 미적지근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사람은 계속 같은 방이었다. 이상하게 사이가 좋다 싶더라니, 그런 공통점 덕분인가 하고 납득이 된다.
따지고 들 마음도 들지 않아 시드에게로 돌아서자, 그는 어쩐지 히죽거렸다. 아직 뭔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을 알아차린 뮤아는 놀랐다.
“세피아도?!”
뮤아와 시드 사이에 껴서, 닛카만큼 잘 넘기지 못하는 세피아는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한 번밖에….”
비록 그날 밤뿐이었지만 당시의 일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깜짝 놀란 뮤아를 향해 시드는 의기양양하게 쏘아붙였다.
“알겠냐? 여자는 입 다물어.”
본의 아니게 3대 1의 상황에 몰린 뮤아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세피아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그 말이 곤란한 상황을 불러들일 줄도 모르고.
“저기, 그치만, 나 아직 남자가 아니고.”
그 순간 가게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세피아는 가슴이 철렁했다. 뭔가 잘못한 것 같은데,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너….”
시드가 의자에서 일어나 기세 넘치는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세피아는 그 얼굴이 무서워 울먹였지만, 도망갈 틈이 없었다.
“너 여자였냐?”
“하지만 형제라고 들었는, 어?”
평소라면 편을 들어줬을 뮤아도 당황하고만 있는 게, 목덜미를 붙든 시드의 손을 떼어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어라, 말해주지 않았나요?”
그 상황을 해소해준 것은 뜻밖에도 닛카였다. 그는 언제나와 같은 태연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그게 그들의 특징이에요.”
가게 주인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인다.
“세발족은요….”
5-5
슬슬 모두 돌아올 무렵이다.
아피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이마의 천을 다시 조였다. 그리고는 침대 가에 걸터앉은 채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직이다. 아직.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괜찮다.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타이르며 가슴에 손을 댔다. 손으로 쓸어내리자 딱딱하고, 희미하게 따뜻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그때 쿵쾅거리는 거친 발소리가 방 밖에서 들려와, 아피아는 벌떡 일어섰다. 그 뒤로 문이 난폭하게 두들겨진다.
“어이!”
문 앞에 서 있는 건 시드였다. 그리고 시드의 손에 붙잡혀 있는 것을 알아본 순간, 아피아는 반사적으로 바닥을 박차고 있었다.
다음 순간, 혼신의 힘을 실은 무릎이 시드의 배에 박힌다.
“세피아!”
아피아는 기세가 꺾인 시드의 손에서 세피아를 낚아챘다. 멀거니 있는 세피아를 품에 감싸며 아피아가 시드를 노려봤다.
“무슨 짓이야.”
전혀 봐주지 않았던 탓인지 시드는 잠시 이상한 목소리로 신음하는가 싶더니, 금세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그가 뱉어낸 한 마디는 어차피 또 캑캑 고함지르는 것일 거라 예상하던 아피아로서는 상정 밖의 것이었다.
“소, 속였어 너!”
머릿속으로 여러 가능성을 재며 아피아는 자연스럽게 몸을 굳혔다. 하지만 시드가 내지른 내용은 그런 상상들을 가볍게 넘겼다.
그는 아피아에 대고 삿대질하며 이렇게 외쳤다.
“너희들, 반은 여자라며!”
“…하?”
얼떨결에 멍청한 소리를 내고 마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격앙된 시드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트집을 잡힌 아피아는 당황스러웠다.
“여자라면 여자라고 말해, 비겁하게!”
“아니, 뭐, 예?”
그런 아피아의 귀에 대고 세피아가 경위를 소곤거렸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아피아의 맥이 풀렸다.
“그러니까, 세발족은 성인이 될 때까지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거, 그 얘기지?”
그걸 말하지 않았다고 비겁하다 욕먹을 이유는 없다. 그보다, 두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굳이 말해둘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우린 남자도 여자도 아냐. 굳이 말하자면 여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고.”
“그러니까 반은 여자잖아!”
“아니라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시드 때문에 아피아의 짜증이 점점 격해졌다. 대체 왜 그런 것에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저희들이 남자든 여자든 시드와는 상관없지 않나 싶었다.
“그럼 내가 여자라고 해둬. 아니지만. 여자라면 어쩔 건데?”
거기서 그만 뒀으면 좋을 텐데, 무심코 묻고 말았다.
“그야 당연하잖아. 여자를 전력으로 상대하겠냐고!”
대답이 기막혔다. 아피아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되받아쳤다.
“말은 잘 하네. 한 번도 나한테 이긴 적 없는 주제에!”
“뭣…!”
시드가 도발에 넘어와 달려드는 것은 아피아의 계산대로였다. 분노에 눈이 멀어 빈틈이 된 발치를 노렸다. 그리고 균형을 잃은 시드의 몸을 보다 가볍게 한 번 더 걷어찼다. 당연한 결과로, 시드는 뒤로 쓰러지며 복도에 엉덩방아를 찧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우리들한테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 시드=신스=톨라!”
거절 선언과 함께 문이 닫혔다. 제자리에서 문을 노려보던 시드의 눈앞을 낯익은 가죽물통이 가렸다. 돌아보니 닛카가 옆에 서 있었다.
“챙겨뒀어요. 여기요.”
시드는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어 뚜껑을 연다. 독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5-6
“다시는 그러지 마.”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는 네 명밖에 없다. 뮤아의 분노도 확실한 체념으로 바뀌어, 그 한 마디만 남겼을 뿐 추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드만큼은 아니어도 꽤 놀랐어. 세발족은 그렇구나.”
뮤아는 목소리를 낮추고서 아피아에게 말을 걸었다. 네 사람이 앉아있는 곳은 가게의 가장 후미진 곳인 데다 주변도 소란스러워서,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대화의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이쪽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돼 있다는 게 이상하지만.”
“그런가. 그렇겠지. 성인이 되면 선택한다는 건 어떻게 해?”
“성인식…여기도 있나? 신전에서. 그때 아네키우스 앞에 맹세하며 세례를 받는다. 그 뒤에 점점 고정되는 느낌인가.”
“어. 그럼 옷의 차이는 있어? 여기는 보다시피 남자와 여자의 옷이 다르잖아.”
“성인이 되면서 체형이 바뀌니 구별은 하지만, 여기만큼 크게 차이나진 않아.”
“흠. 굉장하다.”
뮤아는 흥미로워하는 모습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비로소 아피아 형제가 세발족이라는 타 종족인 게 실감나는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몰개성한 모습이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아무런 특징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시드는 대단했죠. 안색이 바뀌던걸.”
닛카가 세발족에 대해 알려주자마자 세피아의 뒷덜미를 낚아챈 채 가게에서 뛰쳐나갔던 것이다. 남겨진 뮤아와 닛카가 나뉘어 쫓아갔고, 여관에서 닛카가 찾아냈었다.
“저기… 이쪽에서는 남자나 여자 같은 걸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이번엔 세피아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그는 돌려서 말하고 있었지만, 질문을 받은 닛카는 그 진의를 간파했다.
“시드 얘기인가요?”
대화의 흐름에 아피아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글쎄요. 여기선 일단 여자들은 서로 들이받거나 하지 않지만. 거기선 어떤데요?”
“다 자라면 남자가 되는 쪽이 강하니까 전투를 위해서…. 그렇지만 ‘상대가 여자라면 싸우지 않는다’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
“그 차이네요. 그쪽은 미분화의 시기가 있으니까 그렇겠죠. 여기서는 태어난 순간부터 여자는 여자라고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왕족이나 귀족의 신변을 경호하는 위사로 여성이 채용되는 일은 없다.
“시드는 그렇게 보여도 단단히 교육받았으니까요. 여성은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새겨둔 거예요.”
“하지만 우린 미분화니까 관계없어.”
아피아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닛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간단히 납득할 문제가 아닌가보죠.”
어쨌거나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성격이니, 생각을 잘 바꾸지 못한다는 것도 상상이 된다.
“그런데, 이제 시드는 어떡하지.”
지금까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를 하던 뮤아가 숟가락질을 멈추고 그렇게 말했다.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는 세 사람에게 뮤아는 설명했다.
“왜냐면 시드가 따라온 건 아피아랑 싸우고 싶어서였지?”
“따지자면 그렇게 되려나요.”
너무 태평한 반응이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아피아 역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따지지 않았다.
“설마 이대로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그래주면 고맙겠는데.”
단지 입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따름이었다.
5-7
그 무렵, 화제의 주인공은 하릴없이 번화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길바닥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를 천으로 덮었을 뿐인 수수한 점포들이 늘어선 거리는, 밤이 깊어지는 지금도 환하게 불을 피워 사람들이 가득했다. 땅돼지 꼬치를 하나 사 먹으며 걷다가, 시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이야기판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귀를 기울여봤더니 스틱스의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에, 그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 순간 그의 어깨가 붙잡혔다.
“찾았다.”
낯익은 목소리라서 돌아보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시드는 동요하지 않고 대꾸했다.
“뭐야, 림 선생님인가.”
거기 있는 것은 톨라 공작의 위사이자 시드의 가정교사를 맡았던 림이었다.
“‘뭐야’가 아냐. 정말이지….”
림은 시드의 태도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당황하거나 도망이라도 갔으면 좋겠다. 전혀 기죽지 않은 모습으로 보건대, 시드는 자신의 가출이 정당하고 켕기는 데도 없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선생님은 이런 데서 뭐해?”
묻고 싶은 건 이쪽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간 무의미한 대화로 흘러갈 수도 있어서, 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찾으러 온 게 당연하잖아.”
시드가 가출한 건 리라스에 있는 저택에서였는데, 서쪽은 톨라 영지고 동쪽은 산맥이니 남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남쪽으로 간다면 이 타이나를 지날 가능성이 높았다. 림은 거기에 승부를 걸어 이 도시로 직행했던 것이다. 2주 만에 고생을 보상받았지만, 이대로는 보람이 없다.
“흐응. 아버지가 잡아오라고 명령한 건 아니지?”
사이가 나쁘면서도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다. 감시가 소홀했음을 사과하는 림에게, 공작은 확실히 신경 쓰지 말고 잠시 풀어두라고 말했었다. 그걸 설득하고 무리하게 찾아 나선 건 저였으니, 성과 없이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위사로 발탁된 지도 두 달.
아드님의 교사 역할이 맡겨져 영광이었는데, 설마 곧장 가출할 줄은 몰랐다. 실제로 접한 건 한 달도 되지 않았으니 사임할 필요는 없고, 보통의 수단이 먹혀들지 않을 것 같은 후계자라는 것도 알았지만, 그뿐이었다. 아직 아무 것도 가르치지 못했는데 물러나 다른 임무를 맡을 마음은 없었다.
“그런 게 아냐. 어쨌든 일단 돌아가. 가서 제대로 대화를….”
하지만 그렇게 설교하는 동안, 시드는 슬렁슬렁 인파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봐, 기다려!”
여전히 제멋대로인 그의 장단에, 림은 앞으로 얼마나 어려워질지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5-8
강 근처에 세워진 장벽은 물기를 빨아들여, 켜켜이 쌓인 돌 틈으로 이끼가 끼었다. 그 벽에 귀를 대자 바깥의 물결이 연주하는 이명 비슷한 소리가 돌 속에서 울리는 걸 알 수 있다.
벽. 안과 밖을 나누는 것.
그런데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일까?
“오래 기다리셨죠.”
말이 걸려와 아피아는 벽에서, 생각에서 몸을 떼었다. 뒤를 돌아보자 하얀 털에 덮인 짐승 귀가 돋아난 소년이 거기 서 있었다.
“무슨 일로?”
길가의 떠들썩함과는 멀리 떨어져 주위에는 인기척이 없다. 이런 곳으로 불러낸 속셈이 밝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받아들인 건 제게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탓이었다.
“저는 시드가 아니라서 결투 신청은 하지 않아요. 편하게 계셔도 괜찮습니다.”
경계 태세를 간파한 닛카가 양손을 들며 말을 잇는다.
“시드라고 하니까, 낮의 일은 좀 불쌍했어요.”
일부러 그 이름을 거론하는 의도가 내다보였다.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식사 시간이라고, 감싸고 싶어졌나?”
“성가시긴 해도, 좀 지나치게 생각한 것 같아요. 그에게도 좋은 데는 있으니까요.”
“어디가?”
그렇게 반문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닛카는 조금 뜸을 들였다가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예를 들면, 그는 정직하죠. 저희랑 다르게.”
“난 거짓말 같은 거 안 했는데.”
“그런가요?”
오늘의 닛카는 확실히 짓궂은 말을 한다. 낮부터 쭉 불쾌한 기분을 느낀 아피아는 슬슬 질리고 있었다.
“……그래.”
“말하지 않으면 거짓말이 아니다, 오해한 상대가 나쁘다, 그런 건 궤변이에요.”
그것은 찔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닛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의도적인 침묵은 거짓말이에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죄송해요. 직설적으로 말해도 대답하지 않으실 것 같아서요.”
그는 화제를 끌어내 아피아가 침묵하며 빠져나갈 틈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런 화술은 서툰 데다, 초조해져서 신중하게 굴기가 어려웠다.
무심결에 시드와 주먹다툼을 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했다가, 스스로의 그 생각에 기분이 상했다. 오늘은 운수가 나쁘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이상한 흐름에 떠내려갈 것 같았다. 아피아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치고 나가기로 한다. 피하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 너는 너무 잘 알아. 세발족에 대해 거기까지 아는 이곳 사람같은 건 들어본 적 없는데. 평범한 마을사람이라는 건 거짓말이지?”
아피아의 물음에 닛카는 말없이 그의 시선을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골목에는 다른 빛도 없이 희붐한 달빛뿐이라, 닛카의 표정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웃는 얼굴인 듯해서 아피아는 섬뜩해졌다.
“입 다물고 있으면 당신이 오해하겠죠. 당연히.”
타이밍을 쟀는지 가벼운 목소리가 그 자리에 흘러나왔다.
“단언컨대, 저는 아무런 연고도 없고 힘도 없는 평범한 마을사람이에요. 아마 당신이랑 대치할 일도 없을 거고요.”
좀 전에 받은 인상을 지우기도 어려워 아피아는 납득하지 못했다. 의심스러워하는 아피아를 향해 닛카가 거듭 말했다.
“보시다시피 제 부모 중 한 명, 털어놓자면, 어머니 쪽이 생이족입니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난 귀를 잡아 보였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하죠. 아버지는 유우족일 거라고. 저는 계속 침묵으로 거짓말했습니다.”
닛카가 말하는 바를 깨달은 아피아가 놀란다.
“설마…….”
결손아라고 하는 것은 모자란 것이며, 이종족간의 혼인에 의해 태어난다. 요컨대 아버지가 유우족이라는 것이 거짓이라면, 답은 하나뿐이다.
이번에는, 닛카는 침묵으로 답하지 않았다.
“그래요. 제 아버지는 스스로를 결손아라고 위장한 세발족이었어요. 이해되시나요?”
그것을 의심할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보는 것만으로 세발족이라는 걸 간파했다. 그는 세발족에 대해 무척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남자라는 성별을 갖고 있으면서도, 선이 가늘어 세발족에 가까운 외모였다.
“당신이 제 아버지를 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무관하다고 생각되지도 않아요. 당신은 벽을 넘어왔죠. 자신을 결손아라고 속이는 방법도 알고 있고요. 당신은 이 나라에 오래 전부터 세발족이 침입하고 있다는 걸 아는 거예요.”
아피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의도적인 침묵이 아니라, 단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부모님은 이미 다 돌아가셨으니 뭐라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궁금해서 단서를 찾고 있을 뿐이에요.”
- 원문은 ‘北森川’. 발음의 편의를 위해 비슷한 林을 음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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