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2-1.
“그러니까, 가로질러서 갈 수는 없어!”
뮤아가 테이블을 탕탕 두들기자, 시드도 지지 않으려는 듯 되받아친다.
“왜야, 그쪽이 제일 빠른데.”
“대삼림을 돌파할 수 있겠어?”
“마물 따윈 쓰러트리면 되지.”
“쓰러트린다니…, 그 전에 지름길로 가도 의미 없어.”
“왜?”
“순례잖아. 열지 쪽의 신전도 제대로….”
“나, 순례 같은 거 안 하는데.”
“그럼 끼어들지 마. 애초에, 어디까지 따라오려는 거야?”
“그거야 정해져 있잖아.”
소모적인 언쟁에 뮤아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뭐라고 해도 경로를 바꾸진 않아. 대삼림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열지를 건너서 남쪽으로 나간다. 이게 결정사항. 따라올 거라면 반론은 허락하지 않을 거고.”
그렇게 딱 잘라 말하자, 시드도 더 이상 대들지 않는다. 그저 혀를 차며 방을 나가버릴 뿐. 닛카가 엇갈려 들어왔다.
“꽤나 적당한 취급이네요. 영주님, 그것도 공작 가의 자제잖아요.”
“그래봤자 시드니까.”
“동감이긴 해요. 본인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고.”
그 대소동 이후 일주일 동안이나 숱한 문제를 겪으면서도, 여행은 계속되었다. 틈만 나면 벌어지는 아피아와 시드의 싸움에도 익숙해졌다. 지금은 여행 도중 마을에 들러 하룻밤 머무를 숙소를 잡는 중이었다.
“왜 가출했는지는 들었어요?”
“아직. 얘기해줬어?”
“그냥 말해주던데요. 저 남자, 영웅이 되고 싶다던가.”
“뭐?”
제대로 된 이유가 아닐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당돌한 단어에 뮤아는 어이가 없어졌다.
“들어보신 적 있나요, 스틱스 얘기.”
“있긴 한데. 그 사람 실존인물이던가.”
신의 뜻을 거스르는 마물 따위를 차례로 쓰러트린 거구의 전사, 스틱스 이야기는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단골 소재다.
“만나본 적 있대요.”
“하아…. 그래서 마물 퇴치에 집착하나.”
“그런가보죠.”
마물이 대삼림 깊은 곳을 배회하니 가지 말라는 말을 곧잘 듣지만, 그런 것은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비현실적인 얘기였다. 강도나 도적이 훨씬 무섭다.
“결론적으로는 마의 초원에라도 들어갈 생각인가.”
“뭐, 글쎄요.”
깊숙이 들어간 사람 중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둥, 저주받은 곳이라는 둥, 들어가는 것은 신을 거역하는 짓이라는 둥, 마의 초원에 대한 소문은 대삼림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그 너머에는 일찍이 마술사가 권세를 부리던 왕국이 있었으나 신의 분노에 의해 멸망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좀 더 진정해줬으면 좋겠어. 그러고 보니까 아피아는? 방에 없는 것 같던데.”
가급적이면 두 사람의 대치는 피하고 싶다.
“산책하고 온대요. 세피아랑 같이.”
“괜찮은 거야? 누가 보기라도 하면.”
“괜찮아요. 세발족이 어슬렁거린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거고요. 결손아로 얼버무리겠죠.”
확실히 마물 같은 것만큼이나 현실감 없는 얘기지만, 만일의 경우라는 게 있다.
“그치만 결손아일 리가 없다고….”
“아, 그거 거짓말이었으니까요.”
닛카가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바람에, 뮤아는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날개도, 귀와 꼬리도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잘은 모르지만.”
“…그럼 왜 그 둘이 세발족일 거라고 장담했어?”
“글쎄, 어째서일까요.”
생글생글 웃는 닛카를 보면서, 혹시 이 일행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뮤아의 우려는 커져만 갔다.
2-2.
“상당히 돌아가는군.”
마을 바깥의 인기척이 드문 숲 한구석에서, 아피아와 세피아는 지도를 펼쳤다. 지금의 루트로는 리탄트에서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숲속을 똑바로 지나서 남쪽에 가면 안 돼?”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위험한 모양이고, 일단 허가증도 닛카가 쥐고 있으니.”
“그치만 늦어지면…. 허가증이 그렇게 필요한 거야?”
불안함에 눈물을 글썽이는 세피아의 머리를, 아피아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괜찮아. 우리가 이러고 있는 이상, 녀석들도 무리한 수단은 쓸 수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발견되지 않은 채로 확실하게 침입하는 거야. 그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이 좋은 상황일 수도 있지.”
“어째서?”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해 잘 모르잖아. 저들이 그걸 보충해 준다면, 둘이서만 움직이는 것보다 위장이 될 거야. 시간이 걸리는 게 나쁜 일인 것만은 아냐. 시간을 들일수록 경계심도 줄어들 테니까.”
추격자는 분명히 따라붙을 것이다. 이제는 얼마나 종적을 감출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피아의 장담에 세피아는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히 아피아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에선 새가 울고, 은은한 빛이 우거진 잎사귀들 사이로 흘러드는 고즈넉한 노을 풍경이 보였다. 바람에 맞추어 팔을 흔드는 나무들을, 세피아는 엎어질 듯이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나무다. 게다가 어디까지고 뻗어있고.”
“리탄트에는 이런 숲이 없어. 아마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겠지.”
“정말 안쪽에 마물이 있을까?”
“있을지도. 마술사도 있을 거야.”
“조금 무섭다.”
“겁쟁이 세피아.”
“너무해.”
두 사람은 잠시 멋드러지게 뻗은 가지와 석양이 내비치는 나뭇잎들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아피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꺼냈다.
“그럼 세피아는 먼저 가 있어. 나는 마을 주위를 둘러보고 올게.”
“어, 같이 가.”
“안 돼. 두 명이면 눈에 띄고, 뮤아네가 같이 식사하자고 기다릴 수도 있으니까 전해줘야지. 설마 혼자 돌아가는 게 무섭단 소린 안 하겠지?”
“그런 말 안 해.”
그리하여 아피아는 세피아의 뒷모습이 마을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뒤, 가슴 부근에서 손을 꽉 쥐었다. 그런 다음 이마에 묶은 천을 다시 고쳐 매고, 위를 쳐다봤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착지해 온다. 그러나 그 목적은 전혀 온화한 것 같지 않았다.
“적당히 좀 해주지 않겠나, 시드 씨.”
기막히다는 듯한 아피아의 대꾸에, 시드는 코웃음을 쳤다.
2-3.
하늘 높이 걸린 태양은 점차 그 빛을 잃고 있었다. 곧 밤이 다가올 것이다. 땅과 마물의 시간이. 숲이 어수선한 듯 술렁이고, 생물의 기척은 사그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피아는 입속으로 밤맞이 기도를 작게 중얼거린 뒤, 시드를 향해 돌아섰다.
“말해두겠는데, 나는 너 같은 인간이 싫다. 더 이상 따라다니지 마.”
“거절한다.”
시드는 짧게 말을 내뱉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근처 수풀에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할 마음은 충분한 모양이지만, 아피아로선 어울려 줄 이유가 없다.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공작 가의 자제라고? 그럼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지 않나?”
부쩍 냉담한 목소리로 시드를 다그쳐본다.
“아버지 일은 상관없잖아.”
“상관있지. 너는 거기서 도망친 걸 텐데. 무책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말을 늘어놓던 아피아는 차츰 짜증이 났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적어도 이 녀석에게만은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듣고 싶지 않다.
그 심정을 들키기라도 했는지, 시드의 대답은 아피아의 감정을 훌륭하게 거스르는 것이었다. 그는 일부러 한 음절씩 또박또박 발음하며 내뱉는다.
“생각 안 해.”
이젠 아피아도 대화할 마음을 잃었다.
“최악이군.”
그렇게만 내뱉고, 자세를 다잡는다. 얻어맞아야만 알아듣는 놈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 상대지만, 만나버린 이상 하는 수 없다.
가볍게 간격을 재며 아피아는 다시금 시드에게 물었다.
“그 전에 묻는 거다만, 너는 정규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건가?”
시드의 움직임은 힘에만 의지해 너무 엉성했다.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그딴 거, 나한텐 필요 없어.”
아피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차오르는 어둠이 함께 스며들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 차가움이 그의 몸 구석구석을 깨웠다.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아피아는 시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렇다면 넌 역시 날 이기지 못하겠군.”
“멋대로 지껄여라.”
일순, 시드가 땅을 박찼다.
2-4
“옛날, 벽이 생기기도 전, 그라드네라에는 지금보다 암울한 시절이 있었어. 땅에서 마물이 솟아나고, 마술사는 그 마물들과 손을 잡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던 그런 시절.”
뮤아는 어릴 적 신전에서 들은 내용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엮어냈다. 들려달라 청한 세피아가 근처 의자에 앉아 얌전히 듣고 있었다.
“위대하신 아네키우스께선 하늘에서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여기셨어. 아무리 빛을 쏟고 비를 내려도, 사람들의 탄식은 그치지 않았어. 그래서 결국 결심하신 거야.”
“직접 내려가기로?”
“그래, 사람의 모습을 빌려서 내려오셨지.”
그 이야기는 성서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 세피아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다음을 재촉한다.
“응, 그렇게 해서 마물을 잔뜩 해치웠지. 그거랑 순례랑은 무슨 관계가 있어?”
“말하자면,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일찍이 아네키우스께서도 걸어가신 길이라고 해.”
그것은 리탄트의 성서에 없는 부분이라서, 세피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뮤아의 손가락이 지도를 더듬었다.
“우선은 리라스. 왕도. 이곳에 강림한 아네키우스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설파했고, 남쪽을 향해 대삼림을 걸어가는데….”
“이 열지라는 곳을 지나서 남쪽 초원으로 빠져나갔다.”
“맞아. 열지에는 강한 마물이 있어서 격렬한 싸움이 됐다지. 거기 가서 자세히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마지막이 성산이구나.”
뮤아와 세피아의 손가락이 동시에, 남단에 그려진 커다란 산봉우리에 닿는다. 그것은 그라드네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목적지였다.
“구제를 마친 아네키우스께선 여기서 하늘로 되돌아가셨다. 저쪽 나라에서도 이 산은 보이지?”
“보여. 리탄트에서도 보여.”
“우리는 아네키우스와 함께 이 산으로 향하는 거야. 그게 순례야.”
하지만 그런 관습이 성행했던 것은 옛날 일이다. 지금은 제도가 남아있긴 해도, 옛날처럼 성인이 되면 반드시 떠나야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세피아는 다시 지도 위의 순례길을 손가락으로 덧그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럼 아네키우스는 리탄트에는 오지 않았다는 거야?”
“으음. 그런 거려나.”
세피아의 의문에 뮤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벽 너머 나라의 일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세발족을 정체 모를 괴물 같은 것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눈앞에 있는 소년처럼 아네키우스를 믿는 같은 인간이리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저는 많은 부분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만요.”
곤란해하는 뮤아를 도운 것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닛카였다.
“거짓이라니?”
“예를 들면, 리라스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게 수상하죠. 물론 지금은 왕도지만, 적어도 제국 시절엔 정화된 평원 근처에 수도가 있었을 텐데요. 다류라 시대에도 다른 곳이 수도였을 거고요. 즉, 아네키우스가 방문했기 때문에 수도가 됐다는 건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걸요.”
닛카의 말에 이번에는 뮤아가 당황한다.
“그럼 순례는 의미가 없는 거야?”
“글쎄요. 사실이든 거짓이든, 아네키우스의 흔적을 좇으려는 행동은 축복받는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전설이라는 건.”
이야기에 숨어있는 수많은 거짓들. 확실히 지금은 분명한 게 있다. 세발족은 괴물이 아니고, 마술사도 아니며, 성스러운 벽을 넘을 수 없는 존재도 아니다.
‘옛날 옛적에는 유우족도 생이족도 세발족도 같은 나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뮤아의 머릿속에 문득 그 문장이 떠오른 순간, 방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2-5.
조금 늦어진 식사는 비록 호화롭지는 않아도, 나름대로의 맛과 양이 일정했고, 무엇보다 노숙을 하던 때와는 다르게 따뜻해서 고마웠다. 순례 풍습이 시든 지금으로선, 옛날에는 하루 간격의 거리마다 있었다는 숙소들도 거의 없어진 탓에, 노숙도 불사해야만 했던 것이다.
테이블에 앉은 네 사람은 각자의 페이스대로 말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시드는 정말 제멋대로야.”
뮤아는 보이지 않는 소년에 대해 분개했다.
“식사 정도는 다 같이 해도 되잖아.”
“뭐, 그가 허가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여기서 먹을 필요는 없죠.”
“그런 문제가 아냐. 여기 말고 외지인들이 식사를 하는 곳이 있어?”
“보이지 않네요.”
그리 큰 마을도 아니고, 여행자들이 자주 들르는 곳도 아니니, 그런 시설의 수요는 적다.
“어디까지 따라올 셈인지는 몰라도, 같이 다닐 거라면 좀 더 협동심을 가져야 할 거라고.”
시드가 딱히 신분을 내세우는 건 아니지만, 성장 배경이 있는 탓인지, 그에게는 어긋난 부분이 있었다. 이전의 마을에서도 그랬다. 자기 저택에서라면 마음대로 굴어도 상관없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참, 아피아는 본 적 없어?”
질문을 받은 아피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숲속에서 헤매는 게 아니면 좋겠는데.”
“마물퇴치다―, 이러면서 숲속으로 돌진할 것 같으니까요.”
그 광경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낼 수 있었으므로, 일행은 웃어도 좋을지 걱정해야 할지, 미묘한 표정이 되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돌아오면 얘기해야겠어. 닛카, 돌아오면 알려줘.”
“알겠어요.”
그러나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도 시드의 모습이 방에 나타나지 않아, 뮤아의 의욕은 헛돌기만 했다.
2-6.
누군가가 부르는 듯싶어, 눈을 뜬 세피아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고 잠시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울림은 꿈속의 어둠으로부터 들려온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그리운 목소리였던 듯해서 조금 슬퍼졌다.
닫힌 나무 창문 틈으로 창백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다가간 창문의 빗장을 풀고 살짝 연다. 하늘의 중심에는 휘영청 달이 걸려 있다. 낮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한 빛이지만, 마의 시간이 되어도 아네키우스가 이 세계를 지켜봐준다는 증거다. 직시할 수 없는 낮의 햇빛보다, 이쪽이 왠지 세피아의 마음에 들었다.
“응…….”
바라보고 있으려니, 빛에 반응했는지 뒤에서 아피아가 작게 신음한다. 깨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세피아는 창문을 닫았지만,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몰래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숙소 앞에 나올 뿐이니까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느닷없이 강한 바람이 불어 숲이 술렁이는 바람에, 세피아는 움츠러들었다. 시커먼 덩어리가 마을을 에워싸며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역시 무섭다. 하늘은 똑같게만 보이는데, 얼마나 멀리 온 걸까.
“…누구냐?”
그때 등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와, 세피아는 반사적으로 뛰어올랐다. 뒤를 돌아보고 그곳에 있는 사람을 확인한 세피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굵은 눈썹을 가진 유우족 소년이 숙소 앞 벤치에 진을 치고 있었다.
“꼬맹이 쪽이었나.”
아피아로부터 혼자일 때는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주의 받은 상대가 눈앞에 있다. 그것도 그의 옆을 지나가지 않으면 숙소로 돌아갈 수 없는 위치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세피아는 무심코 인사하고 말았다.
“아, 안녕하세요.”
“뭘 겁내는 거야, 너는.”
그러나 인사 역시 매정하게 되받아쳐져, 더 이상 할 말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어떻게 숙소로 돌아갈까 고민 중인 세피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시드는 빈 잔에 액체를 따른다.
“아, 어린애까지 때릴 정도로 한가하진 않으니까 안심해라.”
그러며 한 모금 들이켜더니,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 액체를 땅바닥에 뱉어냈다. 세피아는 또 다시 놀라서 어깨를 움츠리다가, 땅에 생긴 얼룩에 붉은 것이 섞여있음을 알아챘다.
“저기…혹시, 다친 거예요?”
쭈뼛거리며 묻는 세피아를 향해 불쾌해하는 시선이 꽂힌다.
“딱히. 입 안을 베여서 소독한 것뿐이야.”
“죄, 죄송해요.”
“왜 사과하는 거야. 모르겠는데.”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말들 이후로 한참이나 침묵이 이어졌다. 그 동안 세피아는 갈 데 없이 서 있고, 시드는 그저 연거푸 잔을 들이켰다.
“어이.”
“아, 네, 네.”
“뭣 때문에 계속 서 있어, 너. 잠이 안 와?”
“아, 그게…, 그런 건 아닌데….”
“마셔라.”
위축된 세피아에게 정체 모를 액체가 가득 찬 잔이 내밀어졌다. 거절하는 것도 무서워서 한 입만 마시기로 한다. 목구멍을 넘어갈 때 따끔거리는 특유의 감각에 세피아는 떠올렸다. 그는 이게 뭔지 알고 있었다. 미성년자라서 평소에는 허락되지 않지만, 가끔은 마셔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거 술이잖아요.”
게다가 세피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상당히 독하다. 이렇게까지 목이 아팠던 적은 여태껏 없었다.
“그야 그렇지.”
“왜….”
술을 마시고 있어요, 마셔도 되는 거예요, 따위를 물으려다 입을 다무는 세피아의 의문에, 시드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한다.
“나한텐 아니지만, 너는 잘 수 있을 거 아냐.”
그 말이 뜻하는 바를 곧잘 이해할 수 없어 세피아는 어리둥절해 한다. 그러자 시드가 다시 위압감을 발해왔다.
“됐으니까 마셔라. 어린애가 밤중에 어슬렁거리는 거 아니다.”
무뚝뚝한 말투로 재촉 받아 잔을 입에 갖다 댄다. 몇 번 반복하는 사이에 잔이 텅 비었다.
“좋아, 가서 자. 잘 거지?”
과연. 이만큼이나 마시면 온몸이 달아올라 시야가 어지럽고 눈꺼풀이 무겁다. 동시에 아까처럼 겁을 먹지는 않은 스스로를 깨닫는다. 눈앞의 소년이, 아피아가 말하는 것만큼 너무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물어본다.
“저기요.”
“뭐야. 가서 자라고.”
“왜 우리를 싫어해요?”
잘 알아내면 앞으로 아피아와 사이좋게 지내줄지도 모른다.
“…알려줘?”
하지만 그런 기대는 허망했다. 돌아오는 대답에, 세피아는 입을 잘못 놀린 것을 후회한다.
“내 어머니를 죽인 게 세발족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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