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7-1.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요?

꿈이 묻는다.

당신이 이 세계에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소녀가 대답한다.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일 일어날지도 모르는 즐거운 일 때문이려나.”

 

  “알기 위해서.”

소년이 대답한다.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그저 궁금한 것뿐이에요.”

 

  “동생을 위해서.”

소년이 대답한다.

  “그리고 우리의 나라를 위해서. 이외에는 필요 없어. 나는 그것만을 위해서 있다.”

 

  “생각해본 적도 없어, 그딴 거.”

소년이 대답한다.

  “아무려면 어때? 난, 나로서 있을 곳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

 

  “돌아가고 싶으니까.”

소년이 대답한다.

  “장래라든가…그런 건 아직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그래도, 지금은 돌아가고 싶으니까. 함께. 쭉 함께 있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그것뿐.”

 

  “당신은 누구인가요?”

소녀가 묻는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꿈.

꿈은 대답한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것.

 

그리고, 당신들을 먹어치우는 것.

 

7-2.

열지의 번영하는 도시, 살레타를 찾아가는 길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열지를 가로지르는 지름길.

하나는 열지를 최대한 피하며 북쪽으로 돌아서 남하하는 길.

어느 쪽이든 장단점이 있어 결정이 어려웠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열지의 혹독함을 쉬이 상상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말로는 들었다. 하지만 그건 과장된 거고, 실상은 그렇게 가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게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열지를 건너는 건 그만두는 게 좋겠다.”

가장 짧은 길로 흘러갈 뻔했던 일행을 말린 건 림이었다.

  “상인들에 끼어간다면 모를까, 이대로는 장비가 너무 허술해. 가급적이면 열지를 지나는 일정은 짧아야 할 것 같아.”

림에게 열지를 지난 경험이 있어 다행이었다.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고는 해도, 그건 지금까지 살아온 장소와 그렇게 동떨어진 환경이 아니었던 덕분이고, 이 일행은 미지의 상황과 조우한 적이 없었으니까.

  “또 돌아간다고? 후딱 가자.”

  “너 말이야, 다른 데랑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서 만만하게 보고 그러지 마. 기후부터 완전 달라.”

시드의 제멋대로인 주장에도 못을 박아준다. 어느새 말투가 꽤 거칠어졌지만, 시드의 태도를 대하다보면 불가피한 상황일 것이다.

  “만만하게 본 거 아니거든. 모래폭풍이 일어나서 생매장되든가, 모래 회오리가 일어나서 생매장되든가, 도적떼랑 만나서 생매장되든가, 그러겠지.”

  “…생매장되고 싶어?”

  “이야기에선 자주 그러던데.”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만담을 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선생과 학생보다 형제에 가까워 보였다.

  “뭐, 확실히 모래뿐이라면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힘들겠죠.”

  “그런 문제야?”

거기 끼어든 닛카의 참견 역시 농담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탓에, 결국 모든 책임은 뮤아의 몫이 됐다.

  “하여튼. 림 씨 말대로 북쪽을 돌아가는 게 좋겠어.”

지도를 둘러싼 다섯 사람 앞에서, 뮤아는 손가락으로 길을 덧그렸다. 북방 산맥과 열지 사이의 구릉지대를 동쪽에 끼고, 바다로 접근했다가 남쪽으로 꺾는다.

  “바다는 호수랑 어떻게 달라?”

  “호수가 뭐야.”

  “커다란 연못 같은 거예요. 북방 산맥에 있을 텐데요.”

  “그럼 꽤 작겠네.”

  “작죠. 바다랑은 비교도 안 되려나.”

  “뭐야, 너희들 바다도 본 적 없어?”

  “본 적 없어.”

  “없어.”

  “없어요.”

  “난 있는데―.”

  “이런 건 그럴 기회가 있었는지 아닌지 그런 일일 뿐이잖아. 으스댈 일인가?”

  “으스대는 거 아니거든.”

  “어떠려나.”

  “나, 보고 싶어.”

  “그렇게 재밌는 것도 아냐. 그럴 바엔 차라리 섬에나 가자. 섬에.”

  “섬 같은 데 안 가요. 다들 멋대로 말하지 마.”

다시 삼천포로 빠지려는 회의를 제자리로 돌리려는 뮤아로서도, 관심없는 주제는 아니었다.

  “아―, 그치만 나도 바다는 좀 보고 싶은가…….”

그런 뮤아의 중얼거림을 시드가 놓치지 않았다.

  “치사해, 치사해―!”

  “시끄러워! 섬에 가는 거랑 조금 더 가서 바다를 구경하는 정도는 전혀 다르잖아!”

이후로도 티격태격하다 마침내 정해진 여정은, 북쪽 부근에서 바다까지 나아갔다가 남쪽으로 진행되는 무난한 것이었다.

 

7-3.

여정대로라면 모레쯤에 대삼림을 떠나게 된다. 당연히 지금까지와는 환경이 달라지므로, 열지에 대한 대비도 얼른 해두는 게 좋았다. 어젯밤에 늦게까지 회의한 탓도 있어서, 일행은 하루만 더 이 마을에 머물며 기력을 보충해두기로 했다.

그렇게 각자 여유로운 낮 시간을 보내느라, 마을 주변을 한 바퀴 돌던 닛카는 뜻밖의 장소에서 낯익은 모습을 발견해 말을 건넸다.

  “또 신상을 닦는 건가요?”

  “또라니. 왠지 항상 닦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뮤아는 손을 멈추고 돌아섰다. 마을 어귀의 썩어가는 신당 속 조각은 어깨 근처까지 얼룩을 닦아내 나뭇결이 번들거렸다.

  “처음에 본 모습 덕에 인상이 남았어요.”

  “마을에 있을 땐 자주 했어. 그땐 비를 피하고 나서였지만.”

뮤아와 닛카가 처음 만난 곳은 사레그아 마을 근처의 신당이었다. 비를 피한 뮤아가 처마 끝을 빌린 감사의 표시로 신상을 닦던 도중에, 닛카가 지나갔던 것이다.

  “집에서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침까지 그치지 않았고. 그래도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같이 간다고 해서 놀랐었어.”

그날 내로 순례 허가증을 받아온 것도 놀라웠다. 신전에 다녀온 모양이었으니, 아피아 형제 같은 방식의 일처리는 아니었겠지만.

  “여러 가지 귀찮았거든요, 분명. 언젠가는 떠날 거라고 생각했고, 그 언젠가가 그때였다는 느낌으로.”

  “내가 계기?”

  “그러려나요.”

뮤아는 내심 그건 닛카가 결손아라는 것과도 관계가 있으리라고 내심 생각했다. 닛카는 사람에 대해 미묘하게 거리를 둔다. 아마 마을에서도 그랬으리라.

  “그런데 잘도 그런 빗속을 돌아다녔네.”

  “뭐, 아네키우스께서 이끌었다는 걸로.”

  “지금은 뭐하고?”

  “산책이요. 뮤아야말로 지금 뭐하고 있어요?”

그의 대답은 늘 미심쩍은 데가 있으나, 뮤아는 달리 캐묻지 않고 질문에 답했다.

  “마을에 왔을 때 봤더니 너무 먼지투성이다 싶어서. 게다가 뭐랄까, 이젠 여기 올 일도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좀.”

  “방치된 채라는 건 이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신당이란 거죠.”

  “금세 다시 더러워질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길가에도 이런 신당은 흔하게 서 있다. 순례의 흔적인지, 그 이전부터 있던 건지, 어느 쪽이든 신을 찾는 마음의 결실임이 분명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버려진 모습이 퍽 서글프다. 닦는다고 해서 되살아날 것도 아니니까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데도, 뮤아는 닦아두지 않으면 내내 마음에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면서 마저 닦아내기로 한 뮤아는 다시 천으로 목상(木像)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어깨가 끝난 다음에는 날개다.

  “신관님께 들은 얘긴데, 어느 종족이 아네키우스와 더 가까운지 싸웠대. 닛카도 알아?”

문득 생각나서 물어봤더니, 닛카는 역시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그 바보 같은 신학 논쟁인가요.”

  “진짜 바보 같아.”

신의 모습은 새의 날개를 가진 중성적인 용모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즉, 유우족은 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위를 주장하고, 생이족은 짐승의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반박했다. 만에 하나, 그때 세발족이 있었다면 성별이 없다는 점을 내밀어 참전해 왔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왕권과 관련된 거였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선 진심으로 토론한 것도 아니잖아요.”

호리라의 왕권은 현재 유우족이 계승하고 있으며, 생이족 중에는 그 사실을 불만스럽게 여기는 일부도 존재하는 것 같다. 서민의 입장에선 별로 상관 없는 데다 뮤아에게도 먼 세상 이야기로나 들리지만.

  “애초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부터 검토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아네키우스의 모습은 사람이 인지할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아네키우스의 뜻을 전하는 사자-천사라는 설도 강하고.”

성서에서는 신의 외모를 언급하지 않는다. 모두 이럴 거라고 생각해도 근거는 거의 없다. 닛카로서는 언제나의 삐뚤어진 견해를 꺼낸 것뿐인데, 그 말에 어째선지 뮤아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다. 눈짓으로 물었더니 그녀는 쭈뼛거리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닛카가 퍼뜨릴 거란 생각은 안하지만, 그래도 일단 비밀이야. 사실은 나도 순례를 떠나려던 계기가 있거든.”

  “성산을 보고 싶다던 게 아니었나요?”

뮤아가 고개를 가로젓고는 손을 입에 대며 목소리를 낮춰, 닛카는 귀를 가까이 댔다.

  “사실은 있지, 천사를 봤어.”

 

7-4.

평소와 다름없는 푸른 하늘, 평소와 다름없는 햇빛, 평소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바람.

그것은 별다른 예감도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날이었다.

밭에 나간 아버지와 오빠의 점심을 들고, 뮤아는 마을길을 걷고 있었다.

기후가 일정한 그라드네라에서는 모두 한꺼번에 같은 작물을 출하할 수 없다. 1년 내내 작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시기를 달리 해 농사를 짓는다. 같은 밭 안에서 날짜를 조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무디카=투카 마을은 집집마다 재배 날을 정하고 있었다. 뮤아의 집은 이제 곧 수확할 철이 되어 제법 바빴다.

  “뮤아, 밭에 가?”

뒤에서 이름을 불려 뒤돌아봤더니 한 소년이 달려오고 있었다. 뮤아는 멈춰서 소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안녕, 레사.”

  “점심 먹으러 가려고?”

  “응.”

  “나도 아저씨한테 갖다드릴 게 있어. 같이 가자.”

숨을 헐떡이며 말하는 레사는 뮤아보다 한 살 아래로, 이 마을에서 하나뿐인 잡화점을 운영하는 집안의 장남이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잘 따른다.

  “그거 갖다 준 뒤에 시간 있어?”

  “오후에는 신관님을 도와드리기로 했어.”

레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수확이 시작되고 나면 남동생들을 돌보는 데 바빠 신전에 다닐 수 없게 된다. 지금밖에 갈 짬이 안 났다.

성인까지 2년도 남지 않았다. 이제는 슬슬 스스로의 앞날을 생각해볼 때였다. 이대로 마을에 머무른다면 문제 없지만, 그 외의 길을 바란다면 빠른 시일 안에 결단을 내려야 할 터였다.

마을은 좋아하고, 크게 불만도 없다. 하지만 그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건방질까.

  “포도는 상태가 어때?”

  “그럭저럭.”

시시한 대화를 나누며 밭까지 걸어갔다. 지나가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왠지 초조해진다.

그 초조함은 단순한 물음이다.

이대로 여기에 계속 머물러도 괜찮은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을 헤치고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키 작은 포도나무가 줄지어 푸른 잎을 바람에 흔드는 한결같은 광경.

하지만 문득 시선을 위로 돌린 뮤아는 흠칫했다.

하늘의 푸름을 등에 진 누군가가 서 있었다.

유우족 특유의 불안정한 부양이 아니다. 마치 거기 땅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 있었다.

외모를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거리에서 저도 모르게 뚫어져라 관찰하고 말았다. 성별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다. 머리는 허리 근처까지 길게 자라났지만 조금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등에 난 날개는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었다.

뮤아의 말문이 막혔다. 잘못 봤을 거라며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려도,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인물은 험궂은, 하지만 어딘가 슬픈 표정으로 그저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 지상으로 눈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뮤아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

상대는 눈이 마주쳐서 놀란 것 같았다. 자신의 뒤에 아무 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또 다시 뮤아를 쳐다봤다. 물론 뮤아도 눈길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 없이 시선이 부딪쳤다.

이대로 기묘한 눈싸움이 될까 싶었을 때였다.

  “왜 그래, 뮤아?”

레사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그걸 방해했다. 뮤아의 집중이 흔들렸다.

  “저, 저거…….”

보이냐고 물으려던 찰나에, 그 인물이 모습을 감췄다. 하늘을 휘휘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았어?”

  “어, 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레사의 얼굴이 모두 말해주었다. 못 봤거나, 보이지 않았거나. 그런데 그건 무엇이었는가.

그 뒤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늘었지만, 그 모습은 한 번도 다시 보지 못했다.

 

7-5.

이야기를 다 들은 닛카의 첫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사기꾼 같은 거?”

  “믿으라고는 안 하는데, 처음엔 좀 놀란 척해도 되지 않을까?”

  “사기라고 해도 의미를 모르겠지만요.”

가짜 날개를 단 사기꾼 이야기가 흔하다지만, 마을 소녀에게 모습을 보이고 사라지는 데 무슨 이득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뒤로 마을에 나타나 면죄부를 판다면 몰라도.

  “그럴듯한 거라면, 그날 아침에 꾼 꿈이 기억과 섞였다든가.”

  “아, 음. 아마 그런 거겠지. 역시 나 같은 건 성인(聖人) 같은 체험을 할 리도 없고. 그래도 그런 꿈을 꾼다는 건 내가 그런 걸 원하는 걸까 싶었어.”

지시대명사가 유난히 많은 것은, 뮤아의 복잡한 심경을 나타낸 탓일 것이다.

이제 신화의 시대는 아득히 멀고, 천사의 계시니 신의 사명이니 하는 데 실감을 느끼는 사람도 드물다.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시드가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것과 동급이다.

  “마을을 한 번쯤 떠나보고 싶었던 건 분명하고, 성산을 보고 싶었던 것도 확실해. 그치만 계기는 역시 그거야.”

(목상의) 상체를 다 닦아낸 뮤아가 한숨처럼 숨을 토해내며 그렇게 말했다. 거기다 대고 닛카가 이렇게 물은 건 놀림 반 걱정 반의 마음이었다. 생각에 잠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눈을 흐리게 만든다.

  “그럼 성산에 도착했는데, 신탁 같은 게 아무 것도 없으면 어쩌려고요?”

  “반대야.”

하지만 뮤아는 닛카의 염려를 싹둑 잘라버렸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순례에 나섰어. 이야기 같은 게 아니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보통. 성산까지 갔는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럼 잘못 본 거네요, 하고 속 시원하고.”

그녀의 대답은 명확하고 단호하다. 시드와는 다른 방향으로 꼿꼿하다. 건전하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그래서 장난기가 일어난 닛카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럼 무슨 일 있으면?”

그러자 목상을 닦던 뮤아의 손이 멈췄다. 뮤아는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찌푸린 얼굴로 닛카를 쳐다봤다.

  “……어쩌지?”

  “아니, 모르죠, 그런 거.”

내가 본 것도 아닌데 물어봤자 곤란하다.

  “뭐든 겪고 나서 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기야, 신의 계시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거부할 수나 있는 건지부터 의심스럽지만.

  “그런가.”

일단은 뮤아가 납득했기 때문에, 닛카는 그런 의문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참. 그런데 왜 아네키우스가 아니라 천사라고 생각했어요?”

  “음―, 위엄이 부족했다고 할까. 놀란 얼굴이 사람 같아서였나.”

  “그렇군요.”

 

7-6.

풀려난 새는 지붕에 난 출구를 통해 하늘로 날아갔다. 새의 다리에 묶인 통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멀어진다. 림은 자신의 편지가 보내지는 것을 확인한 뒤, 주인에게 인사하고 가게를 나섰다.

이동하는 도중에는 제대로 연락을 취할 수 없다. 타이나, 살레타 같은 큰 도시라면 전서구의 왕래도 빈번하지만, 들르게 될 작은 마을 같은 데선 왕도로부터 직접적인 연락이 가능할지 의심스럽고, 중계를 통한 연락도 시간이 걸려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가 불명확하다.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할지, 림은 망설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시드가 열지에 발을 들이게 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말리면 말릴수록 그만두려 하지 않을 거고, 내버려뒀다간 더 엉뚱한 짓을 벌일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며칠 전엔 잠시 눈을 뗀 틈에 사라졌다가 너덜너덜한 옷차림으로 돌아왔었다.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졌다느니 하는데, 어째서 미끄러졌는지는 알려주지를 않았다.

말하고 싶진 않지만 동행하던 이들도 어딘가 수상쩍다. 아이들밖에 없어서, 어떤 연유로 시드가 이 안에 들어가게 됐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순례를 할 정도로 시드의 신앙심이 두터웠던 것 같지도 않았다.

  “으음. 호위…같은 걸까요. 저희들만으로는 불안하니까, 따라와 준 거예요.”

뮤아의 그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실상을 보면 전혀 납득이 안 된다. 제멋대로 쏘다니는 호위는 없는 법이다. 시드의 성격만 봐도, 그런 기특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결손아 쪽에 무슨 생각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도 못 들었고.

일행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아피아라는 소년이었다. 명확히 시드가 의식하고 있다. 벼랑에서 떨어질 때도 함께였다는 데 의구심도 든다. 무엇보다, 만난 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낯선 상대인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기분 탓이라며 넘기기엔 그 미묘한 위화감이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곤란한 것은,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시드가 어쩐지 생기 넘쳐 보이는 것이었다.

  “녀석의 소문은 너도 들었겠지만.”

처음 알현했을 때, 공작은 인사 뒤에 불쑥 그렇게 말했다. 녀석이라는 게 공작의 외아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톨라 공작 가의 일을 맡게 됐을 때, 위사 동기들로부터 소문 같은 것이 마구 불어넣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는 것도 우스워서, 림은 끄덕였다.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나돌지만, 저는 그런 데…….”

  “아니, 마물이라든가 터무니없는 걸 제외하곤 다 사실이다. 조심하게.”

하지만 거짓말이라며 부정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공작은 선뜻 소문을 인정했다. 오히려 그렇게 간단히 인정되는 바람에 림의 마음에 의심이 깃들었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는 아이가 훈련장의 기둥을 내리찍고 위사 두셋을 한꺼번에 집어던졌다는 게 사실이란 말인가.

  “보면 알 거야. 미리 일러두는데, 자네에게 시드의 교육을 맡기고 싶어. 처음 한 달 정도는 이 집에 익숙해지고, 그 다음 일이 되겠지만. 도중에 무리라고 생각되거든 말하게. ……아, 거절했다고 해서 위사 자리까지 해고할 생각은 없으니까 괘념치 말고.”

물론 자식의 교육을 맡는다는 것은, 젊은이로서는 분에 넘치는 영예다. 보통은 경험의 부족을 염려할 텐데, 공작의 말투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녀석은 여러 의미에서 제대로 되지 않았어. 지금이 전란의 시대라면 쓰임이 있으련만….”

그 순간 공작의 눈은 먼 곳을 헤맸으나, 이내 다시 림에게로 쏟아졌다.

  “뭐, 말해봤자 소용없었나. 시드에 대해선 존댓말도 생략해도 되고. 그 녀석도 그게 편할 거야. 아니, 조만간 그렇게 되겠지. 어쩔 수 없는 바보거든, 녀석은.”

고개를 숙인 채 듣던 림은,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아들이 아니라 공작의 소문으로, 이런 거침없는 말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시드의 가출이 발각됐을 때에도 이런 태도를 고수했다.

  “됐어, 됐어. 자네를 탓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고. 이 집구석은 초대부터 멍청하거든. 그놈이라고 갑자기 나아질 리가 없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림을 바로 세운 공작은, ‘그 바보가’라며 한숨을 내쉰다. 값진 물건들을 들고 갔으니, 어지간히 사치스럽게 굴지 않는 이상 1년 정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놈도 고집이 세지만, 이쪽도 양보할 생각 없어. 톨라 가는 부수든가 부서지든가 하나지. 최종적으로는 쇠사슬이든 뭐든 묶어서 데려올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짓는 당돌한 미소가 시드와 닮았다고, 부자지간이라면 당연할 감상이 느껴졌던 것을 림은 기억하고 있었다. 닮았다고 말하면 양쪽 다 화를 냈지만. ‘그럼 시드 님은 어머님을 닮았습니까’라고 공작에게 물어봤을 때는 더욱 싫은 얼굴을 했었다. 결국, 그 녀석은 돌연변이라는 답이었다.

  “그래도, 잠깐은 풀어둬라. 죽여도 죽지 않을 놈이니까 달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을 증명하듯, 시드는 지금도 쓸데없이 건강하게 여행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또래가 없는 저택에서는, 어른들 틈바구니에 겉돌았을지도 모르겠다.

  “무리해서라도 데려가야 하나……?”

중얼거리는 림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디서도 오지 않았다.

 

7-7.

하늘을 나는 날개는 그 벽을 쉽게 넘는다. 새는 두려움을 모른다. 신과 가까운 탓일까. 그들은 바다 위조차 뛰쳐나간다고 한다.

  “바다를 건너는 건 무리야?”

세피아의 질문을 듣고, 새가 나는 모습을 올려다보던 아피아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마. 바다를 건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고…. 북쪽은 위험해.”

  “왜?”

  “우리 편일지 모르니까.”

단정적인 아피아의 대답에 세피아의 얼굴이 흐려졌다. 세피아는 목소리를 낮췄다.

  “저기… 아피아. 아버님은 나쁜 짓 하지 않았지?”

어조에 섞여든 심각한 기색에, 아피아는 몸을 굽히고 앉아 세피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그치만, 내가 나쁜 짓을 한 게 아니면, 어째서 모두가 적이 됐어?”

세피아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혀있고, 수그린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그제야 아피아는 그의 질문이 갑작스러운 게 아님을 깨달았다. 갑자기 저희들에게 닥쳐온 재난의 원인을 세피아 나름대로도 쭉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상대가 나쁘다고 치부해버리는 게 아닌, 상황을 보고 판단하려는 세피아의 총명함에 아피아는 내심 안도했다. 유약한 성격으로 얕잡히기도 하지만, 저보다 훨씬 냉정하고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처럼 말을 꺼내지 않고 담아뒀겠지.

아피아는 세피아의 등에 손을 올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안아줬다. 타국의 여정에서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세피아는 아버지가 하려던 게 나쁜 짓이었다고 생각해?”

잠시 진정시키고 나서 되묻자, 세피아는 조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처음 들었을 땐 불안했어.”

  “다들 마찬가지야. 그래서 아버지께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퍼졌는지는 쉬이 판단할 수 없다. 안전할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를 고르는 게 무난했다. 그 선택이란 남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괜찮아. 안심해도 돼. 아버님은 좋은 일을 하시려고 했어. 그건 틀림없다. 세피아도 아버님을 믿어드려야지.”

아피아는 세피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포개며 속삭였다.

좋은 일이라고 올바른 것은 아니고, 설령 좋으며 올바른 일이라고 해도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나쁘거나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선이나 정의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피아는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세피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다. 지금 머뭇거리다가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생각을 하는 것은 안전해진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침묵하는 거짓말.

문득 그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지만, 아피아는 몰래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저 역시 아버지를 믿는다. 그저…….

  “알았어. 미안해, 이상한 말 해서.”

세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피아의 눈을 정면으로 들여다봤다.

  “있지, 둘이서 돌아가자. 같이 돌아가자.”

아피아는 그에 대해 미소로 화답했다.

이 또한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희망이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작게 열린 창틈으로 바라보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방 한 켠에 매달린 새장에서 새를 한 마리 꺼내더니, 그 다리에 편지가 담긴 통을 매달았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대상인 형제와 비슷한 인물 발견. 인상을 적은 글과 일치. 이마는 양쪽 다 숨기고 있어 미확인. 순례 행렬에 끼어 동쪽으로 향할 듯. 조속한 지원과 연락을 바람.」

풀려난 새는 마을 위를 한 번 돌더니, 곧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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