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22-1
모든 좋은 것은 우리 앞에 작게 나타나고,
모든 나쁜 것은 우리 뒤에 끝없이 깔린다.
사람의 행동은 신의 조화로부터 멀어져,
실수는 언제나 그 발을 붙잡는다.
희망은 아스라이 멀기만 하니.
나아가는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도 알지 못하고.
눈 가린 채 걸어가는 이여.
두려움과 후회는 그대의 벗.
그리하여 그대는 알게 되리라.
실패하지 않는 것은 신의 몫.
실패하지 않는 것은 신의 몫.
22-2
“백부님이셔…!”
배에 오르는 사람의 모습을 쳐다본 세피아가 그렇게 단언했다.
“확실한가요?”
꽤 먼 데다 상대는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일단 세피아가 저보다 시력이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닛카는 거듭 확인했다.
“버릇이 있어. 심란할 땐 오른쪽 발꿈치로 바닥을 몇 번씩 딛는 버릇.”
세피아가 주저하지 않고 답했기 때문에, 뮤아와 닛카도 틀림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럼 역시 저기군요.”
설마 이런 때에 기분 전환으로 호수에서 유람 따위를 할 리가 없다. 세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작은 섬이 떠 있었다.
성 밖을 둘러싼 것은 물뿐만이 아니라, 호수 위로 몇 개의 섬들이 있었다. 대개는 고작 몇 그루의 나무만 간신히 자라 몸을 숨길 수 없는 곳들인데, 유일하게 중간 정도 규모의 섬이 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으나, 그곳에 별궁이 있다고 세피아가 두 사람에게 말해줬다.
“별궁이라고 해도, 방 세 개짜리의 아주 작은 곳이지만.”
과거 밀의에 쓰였다는 둥, 그다지 밝은 내력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손을 쓰면, 그 석조 건물은 아직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을 터였다. 몇 사람을 가두기에 충분하고, 드나들기 위해선 배가 필요하며,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사람들이 알게 되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라면 식량 정도일까요.”
그것도 미리 넉넉히 챙겨뒀다면, 자주 보충하지 않아도 된다. 물도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저기에 몇 명이나 있을까?”
“저라면, 글쎄요. 인질이 두 명, 감시할 사람도 인질과 같은 수에다 교체까지 생각해서 네 명, 시종 두 명 정도 예상해요.”
“많으면 열 명쯤?”
“그 이상은 힘들겠죠.”
즉 최대 8명 정도를 이 세 명이서 어떻게든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상대 중에는 위사들이 섞여 있는 것도 확실하고, 힘의 차이는 명백하다.
“역시 달려드는 건 어림 없으려나요.”
시드가 있다면 고려해 봐도 되겠지만.
“그럼 어쩌지. 성에 들어가서 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아본다? 차라리 당당하게 고발한다든가.”
왕을 숨긴 곳을 찾아냈다면, 협력자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것도 좋지만…, 확실성이 없고 시간도 없죠. 그래서 좀 더 승산을 늘려볼까 하는데요.”
“뭘 하려고?”
뮤아의 물음에, 닛카가 피식 웃었다.
“체포해보지 않을래요? 돌아오면.”
세 사람은 자연히 호수 위를 미끄러져 가는 조각배로 눈을 돌렸다.
“그렇구나.”
미행 때문인지, 나티아를 따라다니는 호위는 단 한 명뿐이었다. 2대 3이라면, 상대가 빈틈만 보여준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를 인질로 잡으면 제법 유리해진다.
“그럼 어떻게 기습할지를….”
“악!”
그것은 불분명한 비명이었다. 놀라 돌아본 뮤아와 닛카의 눈앞에, 세피아의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물론 세피아가 날 수 있을 리는 없다.
“여어, 재밌는 회의를 하는구나.”
세피아의 입을 막고 들어 올린 그가 상냥하게 말을 건다.
“기습은 특기니까 끼워줘.”
세 사람 모두 한 번씩은 만났던, 그리고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22-3
“타.”
여부를 가리지 않겠다는 투로, 제난이 명령을 내린다. 세피아를 붙잡은 채 먼저 올라탄 그를 거역할 수도 없는 탓에, 뮤아와 닛카도 마지못해 조각배에 발을 들였다. 그러자 제난은 세피아를 대충 내팽개치고는 노를 들었다. 그는 한 손만으로 잘도 노를 저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히 세 사람과는 등진 자세가 됐다.
닛카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닛카가 세피아에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세피아, 뛰어…!”
그러나 그 외침은 둔탁한 소리에 의해 끊겼다. 배가 크게 흔들리고 물보라가 일어났다.
“뭐….”
“뭐긴, 보는 대로지.”
제난은 뮤아의 항의마저 끊어먹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세피아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를 작게 내면서, 바닥을 뒹굴며 경련하는 닛카에게 매달렸다.
제난은 입술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감추지 않으며 물었다.
“설명이 필요한가?”
그가 물에서 건져든 노를 닛카에게 사정없이 내리쳤던 것이다. 눈 깜짝할 새도 없는 강력한 타격이었다. 그 위력은 쓰러진 닛카의 부은 뺨이며 입에서 흘러내린 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땅히 항의할 말조차 도저히 떠오르지 않은 뮤아는, 그저 제난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그럼 질문도 더 없는 것 같고. 갈까요, 왕자님."
그 시선을 시원스레 흘려 넘긴 제난이 세피아에게 노를 들이댔다.
“네가 뱃머리에 서.”
이 상황을 거스를 수는 없다.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닛카를 뮤아에게 맡기고, 세피아는 지시에 따랐다. 두 사람과 세피아를 떼어놓으려는 양, 제난은 그 사이에 서서 배를 호수로 몰았다.
“…어떻게 우리가 있다는 걸 알았어?”
이 상황에서는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세피아는 어떻게든 도망갈 틈을 찾기 위해 제난에게 말을 걸었다.
“예상은 했지? 친구가 친절하게 알려주던데.”
“시드는 죽어도 그런 말 안 했을 거야.”
“실제로 이렇게 찾아왔잖아?”
“시드와 싸웠으면 그렇게 여유로울 리가 없어.”
그것은 뒤를 돌아보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한, 반쯤은 발악과도 같은 도발이었다. 게다가, 만약 시드와 싸운 게 사실이라면, 그는 반드시 그 얘기를 들먹였을 것이다.
“과연. 마저 잃었을 거라는 건가.”
쿡쿡 웃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뭐, 그렇게 신경 써주지 않아도 적당히 처리는 해뒀어. 자, 이쪽도 도착이군.”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릴 틈도 없이, 섬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덤불 속에서 망을 보던 남자가 활을 겨누는 게 보였다. 경계하는 눈길로 저를 바라보는 감시인에게, 제난이 손을 들고 인사했다.
“여여, 수고가 많아.”
“기다려. 여기엔 아무도 못 들어간다.”
“보면 알잖아? 선물 가져왔는데.”
머리를 쿡 찔린 세피아가 앞으로 나갔다. 당연히 이 얼굴을 알아본 듯한 감시인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이미 보고하러 갔다. 잠시 기다리도록.”
“일처리가 빠르네.”
“뒤의 두 사람은 뭐지?”
“덤. 꽤 재밌는 물건이야.”
제난이 말을 마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닛카를 안은 뮤아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아직 자고 있나. 곤란하게.”
“…시드랑 왔어야 했는데.”
“그래, 그래. 어이, 그놈의 머리를 드러내. 너도 겉옷 벗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귀와 날개가 나타나자, 감시인의 눈빛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벽 너머의 괴물들이지.”
비웃는 제난의 태도가 불쾌해, 뮤아는 아예 경악의 눈초리를 보내는 감시인 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남자는 압도당한 듯, 당황한 듯, 섬 안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 보고를 하러 갔던 것 같은 또 한 명의 감시인이 모습을 드러내, 지령을 알렸다.
“데리고 오라는군.”
22-4
돌아온 남자가 그대로 선봉을 맡는 모양이었다. 그에게 세피아를 내민 제난이 뮤아를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너는 오고, 그건 두고 간다.”
닛카를 가만히 놓아두고 배에서 내린 뮤아는, 뒷덜미를 붙들린 채 끌려가게 됐다.
“좋아, 그럼 갈까.”
“이봐!”
닛카와 제난을 번갈아보던, 남은 감시인이 불만스러운 듯싶은 말투로 불러 세웠다. 정체 모를 것을 떠맡게 돼 불안한 것 같았다.
“구속해서 적당히 밀어 둬. 금방 찾으러 올게.”
반면에 제난은 단박에 잘라버리며, 안내를 맡은 쪽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 안내역 역시 고개를 저었다.
“데리고 오라는 건 세피아님에 한해서다. 너나 이종족도 여기서 기다려.”
“흐음. 혼자 데리고 가는 중에 달아나버리면 어쩌게? 게다가….”
그때였다. 호수를 사이에 둔 건너편, 성에 서 있는 탑의 옥상에서 잔해가 무너져 내린 것은. 제난을 제외한 전원이 흠칫 놀라며 그쪽을 돌아봤다.
“그렇지. 게다가 저기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려주려고 온 건데.”
감시인들은 저들을 그렇게 구워삶으며 히죽 웃는 제난을 막겠다는 판단은 내리지 못했다. 다시 명령을 들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린다.
“좋아, 알겠다. 함께 간다. 단, 일단은 밖에서 기다려. 이걸로 됐지?”
“예에, 예에. 그 정도는 양보해주지.”
받아들인 제난은 탑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뮤아를 억지로 섬 안쪽에 나아가게 하며, 그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렇고말고. 네가 생각하는 대로야.”
뮤아가 움찔하는 것을 놓치지 않은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금방 끝날걸.”
그리고 다시 안내역을 세피아와 함께 먼저 가도록 했다. 제난은 뮤아를 몰아세우며 그 뒤를 따라갔다.
호숫가에는 감시를 계속하는 위사 한 명과 배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는 닛카만이 남았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었어.”
나무들 너머로 제난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위사는 혀를 찼다. 공작의 직속인지 뭔지는 몰라도, 뻐길 만한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왕자를 모두 확보했다는 공을 세움으로써 더욱 거들먹거리게 될 게 빤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정권을 집어삼키려 들지도 모른다.
작금의 사태는 파다 가문의 지나치게 오래 된 왕위 독점으로 경직된 정권, 즉 귀족들의 자리를 뒤엎을 유일한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적어도 20년, 아니, 계속해서 파다 가에 계승자가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더라도 이만큼 이어진 파다 가에서 새로운 후보자를 포섭 또는 제거한다면, 이 체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알 수 없다. 반기를 들고 나선 것 역시 파다 가문 출신의 트리프라트 공작이라는 것이 찜찜하긴 해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감시 역이라니….”
중요한 역할인 건 맞는데, 너무 시시하다. 그렇다고 벽 너머로 가는 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저런 이종족이 있을 법한 곳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남자가 언뜻 호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거기에 이종족의 모습은 없었다. 게다가 배도 보이지 않는다. 잘못 봤나, 황급히 뒤를 돌아본 위사는 수면에 파문을 남기며 물가로부터 멀어져가는 그 모습을 발견했다.
“뭣!”
어느새 회복한 소년이 노를 저어간 것이다. 발견된 것을 깨달아 당황한 기색이었는데, 노를 젓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이 닿을 거리는 아니었다.
그제야 간신히 활을 들고 있었다는 걸 떠올려낸 감시인은, 배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놓칠 수 없다. 공로는커녕 큰 실수가 된다. 하지만 비틀거리는 탓에 겨냥하기가 어렵고, 죽이게 된다면 아마 좋지 못하다. 화살을 누가 쐈는지 성에서 알아보다 이 섬을 주목하게 되면, 더욱 더 좋지 않다.
그 잡념이 영향을 미쳤는지, 첫 발은 스치지도 않았다. 서둘러 쏜 두 번째도 겨우 배에 박혔을 뿐이었다.
세 번째 화살은 어깨에 맞았다. 하지만 소년은 잠시 넘어지는가 싶더니, 금세 다시 일어나 노를 저으며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에 들어가버렸다.
남자는 망설임 끝에 보고하러 가려다가, 담당하는 장소를 내버려두고 친 국왕파의 침입이 일어나면 최악이라는 생각을 했다. 왕자가 도망친 것도 아니니, 동료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22-5
현기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게다가 웃길 정도로 어깨가 아프다.
빼내기 위해 화살에 손을 댔지만, 건드리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져 포기했다. 한 발만 박힌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시드가 아니니까 이런 건 봐줬으면 좋겠는데요….”
닛카는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배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를 저었다. 추격자는 없는 것 같고, 성에서 저격당할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아마 섬과 섬을 왕복하는 것만은 검문을 하지 않도록 준비해둔 모양이었다.
세피아에게 요령을 들어두긴 했지만 제대로 연습한 적은 없다. 휘청대며 불안하게, 그러나 나름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나아가지 못해서 제자리를 맴돌다 붙잡히거나 사살당하면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의식을 잃고 있었던 건 찰나였다. 하지만 틈을 엿보기 위해 뮤아와 상의해 기절한 척 했다. 결론은, 역시 저희들만으로는 별 도리가 없겠다는 것이었다.
시드를 데려오든지, 성 안에서 어떻게든 아군을 찾아내든지 해야만 한다.
“…그래도 세피아가 없는 지금으로선 후자는 절망적이죠.”
생판 모르는 이의 허튼 소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줄 사람은 없을 터였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편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선은 시드와 합류해야 한다. 잘 되면 아피아도 함께 있을 테니까.
닛카는 자연스레 눈앞의 탑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의 소동은 분명히 시드의 짓이다. 그렇다면 탑으로 어떻게 침입할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때였다.
나아가던 앞에서, 뭔가 폭발했다.
대처할 틈도 없이, 충격에 몸을 떠밀린 닛카는 넘어졌다. 귀가 울리고, 숨이 막히고, 생각이 흐트러진다. 의식이 다시 어둠에 휩싸일 뻔했지만, 여기서 기절할 수는 없기에 닛카는 필사적으로 배에 매달려 상황을 확인했다. 그러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건물, 나무, 풀, 그리고 무엇보다 호수는 변함없이 잔잔하고 잔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성에서 난리가 난 기색도 없었다.
그럼, 방금 나를 밀어 넘어트린 건 대체 뭐지?
저 혼자 환청이라도 듣고 쓰러졌다는 걸까. 꼭, 소리가 그만한 무게를 가지고 귀를 뚫으며 지나간 것만 같았는데. 아직도 이명이 남아 어지럽기만 한데.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닛카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보류.”
배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수상하다며 눈길을 끌지도 모르는데, 생각에 잠겨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뭍까지 도착은 할 수 있게끔 머리를 비우고 노를 저어갔다. 그 덕분에 여전히 휘청대면서도, 배를 선착장까지 이끌어 지상에 닿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하지만 현기증이 더욱 심해졌고, 통증은 맥박에 맞춰 고막을 울렸으며, 발밑이 어지러웠다. 두세 발짝 나아간 곳의 덤불에 주저앉고 말았다.
--를, 빨리, 찾지 않으면….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말도 확실치 않아, 닛카는 그대로 덤불 속으로 쓰러졌다.
22-6
온몸에 도는 통증과 바로 가까이에서 들린 짐승 같은 비명이 다시 의식을 일깨웠다. 그 목소리가 스스로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소리, 내지 마.”
엎드린 등 위에서 그런 속삭임이 드려왔다. 알려주지 않아도, 지금 입을 열어봤자 나오는 것은 신음 정도일 뿐인데. 그래도 소리를 내지 않도록 꾹 버텼더니 곧 어깨를 단단히 죄는 느낌이 들고, 약간이나마 편해졌다. 그렇게 된 뒤에야 상대를 확인할 여유가 생겼다.
거기에는 동갑으로 보이는 낯선 소녀가 있었다. 세발족일 테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성별이 없는 소년이겠지만.
“당신, 아피아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
닛카의 눈동자에 떠오른 의문의 빛을 알아챘는지, 상대는 입을 열자마자 그렇게 물었다.
“어떻게 그걸?”
“당신들과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아피아를 데려간 건 나니까.”
그래서 자신의 귀가 드러나 있는데도 신경 쓰지 않았구나, 닛카는 납득했다. 왠지 상대방의 입장도 알게 됐다.
“전향이라도 하신 건가요?”
그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다. 당장 붙잡히거나 넘겨지지는 않을 거라고 짐작해 질문하며 동정을 살펴보기로 했다.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하지 않아. 역시 벽은 열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가요.”
“당신들은 벽을 열고 싶어서 아피아에게 협력하고 있어?”
질문을 받은 닛카가 뺨을 긁적였다.
“뭐…, 그렇지는 않아요.”
“그럼 어째서?”
“음, 개인적으로는 다른 목적도 있지만, 일단은 동료니까요. 나머지는 기세에 맡기고.”
돌이켜보면, 아피아가 납치된 뒤로 여기까지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였다. 따지고 보니 기가 막혔다.
“같아.”
그 말에 눈앞의 소년이 시선을 떨군 채 중얼거렸다.
“아피아는 소중한 친구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니까, 당신을 도와주겠어.”
그는 점점 대답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피아가 돌아와도, 아무 것도 잘 풀리지 않을 거야.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이제 아피아는 못 만나게 될 거고.”
붕대를 쥔 손이 떨리는 것을 발견한 닛카는, 잠자코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도, 그런 건, 알고 있었어. 나는 그냥….”
그때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로 들렸지만, 지금 나무를 흔들 정도의 바람은 불고 있지 않았다. 방향은, 딱 두 개의 탑 사이다.
닛카는 시험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살이 빠진 덕분인지 통증도 제법 나아져,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확인한 닛카가 함께 있는 소년을 재촉했다.
“일단은 저쪽으로 가볼까요. 아마 아피아가 있을 거예요. 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닛카라고 합니다.”
“사라리나트.”
통성명을 한 두 사람은 함께 걸어갔다. 사라리나트의 안내에 따라 탑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더니, 역시나 안뜰로 들어가는 입구를 감시인들이 막고 있었다.
“이봐, 기다려, 너희들. 탑에 가까이 가지마. 가면….”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붙잡으려던 감시인은 닛카의 머리에 눈을 돌렸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사람은 감시인의 겨드랑이 밑으로 빠져나갔다.
“아, 기, 기다려!”
저지하는 말을 뒤로 한 채, 또 이상한 소리가 난 성의 뒤로 달려갔다. 그러다 거기서 본 것은, 사뭇 우습게도 보이는 광경이었다.
22-7
시드가 포위당한 채 으르렁거리고 있다. 뭐, 당연한 상황이다. 문제는 그가 들고 있는 무기였다.
탑의 3층에 닿을 정도인 나무를 뽑아들었다고 한다. 이미 몇 번 휘둘렀는지 잔가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주위는 떨고 있다. 그야 저걸 상대하는 것도 곤란하지, 닛카는 주위 사람들을 동정해봤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맞서려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나무에 후려쳐지는 형태로 견제당해 좀처럼 손을 댈 수 없는 것 같았다.
“있어, 저기에, 아피아!”
옆에서 어리벙벙해하던 사라리나트는 어느새 회복했는지, 안뜰의 한 구석을 가리키며 닛카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거길 봤더니 확실히 나무들 틈새에 쓰러져있는 사람의 모습과, 그 나무들 틈에 숨어 그리로 다가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역시나 시드와 대치하고 있는 쪽은 미끼였다. 시드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빨리 아피아를 확보해 자리를 벗어나는 쪽이 현명하다. 그리고 물론, 닛카로서는 그렇게 되면 곤란해진다.
몸을 숨긴 수풀에서 일어난 닛카가, 시드에게 주의를 줬다.
“시드, 뒤!”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시드는 아피아에게 다가가는 그림자를 발견하자마자, 들고 있던 나무를 전방의 남자들에게 던지며 엄청난 기세로 달려 나와, 곧장 뛰어차기를 했다. 그런 엉성한 공격이 맞을 리는 없었지만, 빗나간 발이 맞은 나무가 보기 좋게 부러졌으니 본인의 의도가 어쨌든 협박으로는 적절했다. 허둥지둥 도망가는 사람들을 시드가 고함을 지르며 쫓았다.
그 혼잡을 틈타, 닛카는 아피아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마치 새끼를 지키는 어미 곰 같네요.”
목소리에 반응한 아피아의 눈동자가 처음에는 불안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닛카의 모습을 알아보고는 안도의 빛으로 변했다.
“시드는 어땠어요?”
“…성을 너무 무너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노력이 필요한 목표군요.”
목표를 달성할 가망은 없어 보인다. 내던진 나무에 맞은 탑의 외벽은 일부가 무너지고 있다. 쓸데없이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손대지 말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시드의 고함이 또 울려 퍼진다. 목소리를 들은 닛카가 이쪽으로 돌진하는 시드를 보고 도망칠까 말까 고민하고 있자, 땅울림이 코앞에서 딱 멈췄다.
“아, 뭐야. 닛카야?”
아슬아슬하게 알아봐준 것 같다.
“좀 전에 말 걸었잖아요.”
“그랬어?”
반사적으로 돌아봤을 뿐, 누구의 목소리였는지는 구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단 안전을 확보하기는 했으므로, 닛카는 수풀에 손짓해 기다리게 해뒀던 사라리나트를 불러들였다.
“누구?”
“아피아의 친구래요.”
“흠.”
여전히 금방 흥분하는 데 반해서 주위에 관심이 적다. 그 설명만으로 시드는 간단히 납득하면서도 주위를 경계했다. 4명이 됐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싸울 수 있는 건 시드뿐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아피아를 맡겨두고 치고 들어갈 수 있게 된 셈이니까, 다소 유리해진 것도 틀림없었다.
22-8
자리는 교착 상태에 있었다.
포위당한 쪽은 정보를 교환하느라 바쁘고, 포위한 쪽은 나설 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뭐야, 그 얼굴이랑 어깨는.”
“계획대로, 라고 말해주기엔 조금 실수해서요.”
“괜찮냐?”
“너무 아파서 돌아가고 싶네요.”
“그래, 돌아가.”
“무리예요.”
진담인지 의심스러운 대화를 서로 진지하게 나누는 시드와 닛카를 곁눈질하며, 사라리나트는 누워있는 아피아의 뺨에 손을 댔다.
“아피아…, 미안해…. 미안.”
그러며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소꿉친구에게, 아피아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왜 그래, 사라리나트. 울 것 없어.”
“심한 짓을 당한 거지요?”
“당하지 않았어.”
“옷도 찢어졌고 피가 묻었는데….”
“아, 괜찮아. 다친 건…, 응. 아니었고. 이건 좀 착오가 있었을 뿐이니까.”
실제로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백부로서도 이쪽이 부상을 당하면 곤란할 테고, 지금까지 정중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여러 가지 실수가 있었을 뿐이다.
“…배신자라고 비난해도 되는데. 그러면, 분명히 나는, 받아들일 거야.”
“하지만 사라리나트는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어.”
그것을 배반이라고 한다면, 처음에 백부를,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의 신뢰를 배반한 것은 자신이다.
“아마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어.”
아니면 누구나 무언가를 배신했거나.
“야, 그놈 죽이러 간다. 알았지.”
거기서 갑자기 시드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그렇게 말했다. 눈짓으로 되물었더니 닛카가 간단히 설명을 해줬다. 제난의 출현, 부모가 있는 곳,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를.
“배 어딨어.”
“기다려. 그건 안 돼.”
척척 서두르려는 시드를 아피아가 황급히 만류했다.
“들이닥쳤다가 인질이 되면 별 수 없어. 그러니까, 그쪽이 그런 짓을 못하게 해야지.”
그리고 아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미안, 의식은 돌아왔는데…. 아까부터 몸이 전혀.”
끝까지 말하기도 전에 시드가 아피아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에게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듯했다.
“그럼 어디로 가.”
“…보물창고로 돌아가고 싶어.”
결의에 찬 눈으로, 아피아가 선언했다.
“성을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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