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21-1
제난의 모습에 기가 눌린 아피아는 자연스레 숨을 삼켰다.
이상하다. 그가 이 정도의 기세였던가. 싫은 느낌이 커진 것 같았다. 게다가 왜 소매에 팔을 꿰지 않았을까. 팔을 감추고서 무슨 짓을 꾸미는 건가.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제난을 맞닥뜨리지 않았던 것도 같다. 록차 밖에서 들여다보거나 하며 때때로 얼굴을 비추긴 했지만, 호리라를 떠나기 직전부터 지금까지는 전혀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다시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시드의 모습도 이상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살갗을 에고, 어깨를 붙든 손에는 거센 힘이 들어가 있고, 억누르지 못한 그의 떨림이 제 몸마저 흔들어온다.
“모처럼의 복수를 하기에 여긴 너무 좁군.”
제난이 꺼낸 한 마디로, 아피아는 이유를 깨달았다.
어렴풋이 그런 일이 아닌가, 짐작하고는 있었다. 그 때문에 제난과 시드를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럼 시드가 여기 온 이유는.
“일에는 걸맞은 장소라는 게 있지. 따라와라, 신스=톨라.”
말없는 시드를 재촉하는 양, 제난은 기둥들 사이로 몸을 뺐다. 그대로 숨 돌릴 틈도 없이, 난간을 뛰어넘는다.
여기는 3층이었다. 시드가 달려든 덕분에 아피아의 그 의구심도 금세 해결됐다. 제난이 아래층에 나와 있는 지붕이며 나뭇가지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지상으로 착지했다. 그는 도발적인 태도로, 비스듬히 이쪽을 올려다본다.
아피아는 곧 찾아올 충격을 예상해 몸을 움츠렸다. 시드가 쫓아갈 게 당연했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 데 망설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바람을 가르는 소리며 바닥에 착지하는 반동 따위가 전혀 오지를 않았다. 이상하게 느낀 아피아가 눈을 떴다. 그러자 내려다보는 시선이 얽혀들었다.
검고 커다란 눈동자는 분명하게 망설임의 빛을 내비쳤다.
어째서. 망설일 이유 따윈 아무 것도.
“가.”
아무 것도 있을 리가 없는데.
“많이 나아졌어. 여기서 내려주면 돼. 이젠 나 혼자서도 따라갈 수 있으니까.”
아피아는 견디지 못하고, 침묵한 시드에게 말을 걸었다.
“…저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지?”
무서웠다. 그의 망설임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망설이는 시드는 있을 수 없다.
그의 악다문 잇새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 좋아.”
“어?”
알아듣지 못해 무심코 그렇게 대답하자, 시드가 휙,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저딴 놈은 아무래도 좋다고!”
피를 토해낼 기세로 시드가 짖는다. 아무래도 좋을 리가 없다. 그 사실을, 시드의 갈라진 목소리가, 핏발 선 눈이, 아플 정도로 단단히 붙잡는 손가락이, 굳은 표정이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어째서.
“가자!”
“하지만….”
그 순간, 더욱 강하게 끌어 안겨, 아피아의 반론은 도중에 끊겼다. 시드가 난폭한 걸음으로 회랑을 달리기 시작했다.
모퉁이 쪽에 접근하니 황급히 뛰기 시작하는 인기척이 있었다. 그 모퉁이를 돌면, 멈춰서 이쪽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 같은 디디스의 뒷모습이 계단으로 사라지는 게 보인다.
“기다리라고 했잖아, 젠장!”
시드가 짜증을 담아 내뱉은 욕설의 메아리도 사라진 회랑은, 금세 원래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21-2
회랑을 빠져나가는 그림자를 바라보던 제난이 기막힌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
그림자는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금세 반대편 끝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반드시 따라올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계산 착오였던 모양이다. 자신했던 만큼 맥이 풀렸다. 설마 겁먹은 것은 아닐 테고.
“복귀 훈련 정도는 도와줄 줄 알았지.”
바람에 너풀거리는 소매를 털어본다. 오른팔이 나을 가망은 없었다. 그대로라면 괴사할 수순이라, 절단이 불가피했다.
간신히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돌아온 때에, 이 내방이다.
그렇다고 딱히 복수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조금 다른가, 제난은 스스로를 따졌다. 보복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이 상대하지 않아도, 자신이 손수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뿐이다. 물론 직접 해내는 쪽이 기분도 좋겠지만, 뭐 괜찮다.
나는 마음이 넓으니까.
도발에 넘어오지 않을 경우도 염두에 둬서, 좀 전에 ‘도련님’에게도 지시는 해뒀다. 제난은 탑으로 돌아가, 아피아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갔던 위사들에게 수배를 명령했다. 위사들은 제난에게 지시를 받는 게 납득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일단은 따르라는 공작의 지시와 디디스의 이름에 별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제난은 거들지 않고 자리를 떴다.
다음은 그 도련님의 재치에 달렸다. 끼어들 생각은 별로 없다. 이쪽이 팔을 잃은 원인이 그 꼬맹이라는 걸 바로 알아채고 도망쳐온 것은 높이 산다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다.
“놈이 있다면…, 다른 놈도 있다.”
그놈 혼자서 조금도 들키지 않고 이 성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분명, 그 동생 쪽도 함께 왔을 테다. 이 성에까지 같이 침입했을지는 몰라도.
하지만 침입했다면, 형을 내버려두고 따로 행동하는 목적은 하나다.
거처는 제게도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지금까지의 동태를 관찰하다 보면 대강은 짐작이 간다.
제난은 탑을 등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21-3
추격전은 마침내 끝을 고했다. 디디스가 계속 위로 올라간 끝에,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지났다. 아피아는 거기에 샛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다려, 시드.”
따라서 문을 열려던 시드에게, 아피아는 미리 단단히 일러두기로 했다.
“디디스는 아마 날 넘기라고 할 거야.”
크게 짖고 난 뒤 다시 입을 다물어버린 시드가 이 말을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순순히 따라.”
단, 이렇게 말했을 때 눈썹이 꿈틀거렸기 때문에, 아마 듣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피아가 자신의 의도를 마저 설명했다.
“그걸 내팽개치면 본전도 못 찾잖아. 빼앗아오려면 가까이 가야지.”
호수에 빠지면 회수할 가망이 없다. 그보다는 방심하게 만들어서, 빼앗고 달아나는 쪽이 나아보였다.
시드는 코웃음을 치며 불만을 표했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않는 게 일단 승낙한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피아도 이번에는 문에 손을 댄 시드를 말리지 않았다.
문이 열린 그 앞에 펼쳐진 것은 하늘이었다. 중앙에 뜬 신의 위광을 받으며 찬란하게 개어 있다.
일찍이 파수를 목적으로 했던 탑은 그 임무를 마친지 오래라, 찾는 사람도 적은 옥상은 손질도 게을리 한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돌바닥이 갈라진 틈으로 풀이 돋아났고, 벽도 절반 이상이 무너진 채로 보수되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디디스는 각오한 듯 이쪽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디디스, 그걸 돌려줘.”
궁지에 몰린 그를 자극하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며 호소한 아피아를 향해, 디디스가 힐난하는 눈빛을 보냈다.
“넌 사라리나트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난데없는 발언에 아피아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설마 그런 이유로 그를 끌어들였나?”
뒤이어 분노가 북받쳤다. 이번 일 때문만이 아니었다. 계속 애매한 태도로 사라리나트를 현혹시킨 게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용서할 수 없다.
“사라리나트는 소중한 친구, 그뿐이다.”
그러나 아피아의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디디스는 무척 담백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아.”
그리고 그가 이어서 꺼낸 말이, 좀 전보다 더 강하게 아피아를 흔들었다.
“지금은 잘 알지. 너, 사라리나트한테도, 저놈을 볼 때 같은 얼굴은 하지 않았잖아.”
아피아는 무심코 시드를 쳐다봤지만, 시드는 전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단지, 디디스를 무척 불쾌한 듯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안심 같기도 하고, 아쉬운 것 같기도 한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든 아피아가 다시 디디스를 쳐다봤더니, 그쪽도 싫다는 듯이 시드를 째려보고 있었다.
“아피아를 이리 내놔, 이종족놈.”
조금 전의 담백한 상태에서 일변한 디디스가 시드에게 던진 말은 명백한 적의로 가득했다.
“멋대로 이 나라에 발을 들이지 마. 오만한 차별자의 후손이.”
시드의 눈썹이 더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본 아피아는 불안해졌다. 아까 했던 대화를 시드가 잘 이해하고 있을까?
“싫어.”
역시나 그 불안은 적중했다.
“누가 내놓는대. 거절한다.”
단호히, 끼어들 틈조차 없이, 시드가 거부의 대답을 했다. 자연히 주위에는 험악한 공기가 흘렀다. 충돌은 필연이었다.
“…금방이다. 기다려.”
시드가 아피아를 내려놓고, 자신의 주먹을 맞부딪쳤다. 그러자 디디스도 주머니에 목걸이를 넣고 자세를 취했다.
“움직이기 힘들잖아.”
혀를 차며 웃옷을 벗어던진 시드의 등을 처음 본 아피아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등이…!”
“어?”
시드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아, 귀찮아서 떼버렸어.”
“떼….”
말문이 막힌 아피아는 보지도 않고, 시드는 디디스와의 거리를 좁히며 순식간에 주먹을 휘둘렀다.
21-4
뭔가 이상하다.
주저앉아 움직일 수 없게 된 아피아는, 시드의 공격을 디디스가 죄다 피하는 것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아까 바로 도망쳤다고 해도, 디디스는 결코 약하지 않고 겁이 많지도 않았다. 지금도 한 번 맞으면 치명적일 시드의 주먹을 잘 제치고 있다. 지하에서 맞닥뜨려 아피아를 알아봤는데도 되찾으려 하지 않았던 건, 시드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디디스는 왜 이런 도망갈 곳 없는 장소로 왔을까.
길을 잘못 들어서? 초조해서?
아피아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디디스는 자신만큼이나 이 성을 잘 알고 있다.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럴지도 모른다. 성 안의 전원이 백부의 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아마, 백부가 완전히 포섭한 원인은 이 탑에 배치된 자들뿐일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이 탑에서 아피아를 내보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디디스 혼자 상대할 이유는 없다. 아군인 위사들을 찾아내, 여럿이서 검거하려 드는 게 보통이다.
자기 혼자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디디스는 그럴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실패다운 실패를 해본 적이 없는데, 그건 실패할 만한 일들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란 얘기다. 그런 디디스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를 과신할까.
그럼 답은 하나다.
그는 일부러 여기에 왔다. 여기에 확실한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 수단은 뭐지?
그때 울린, 유달리 큰 파괴음에 아피아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드의 주먹이 옥상의 벽을 깨트리고 있었다. 파편이 후두둑 쏟아진다.
이대로 시드를 내버려뒀다간,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성에 알려진다. 백부에게 이점은 없을 것 같다.
“기다려, 알았다. 돌려주지.”
그 점을 눈치 챘는지, 디디스도 손을 들고 품에서 목걸이를 꺼내 시드에게 내밀었다. 싱거운 마무리에 시드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항복한 상대를 칠 수는 없어, 돌려받기 위해 디디스에게 다가갔다.
그렇지만 처음 대치한 위치에서 한참 떨어져서, 둘 다 먼 구석으로 이동해 있다. 시드의 동작들이 엉성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지금도 디디스는 미묘하게 위치를 바꾸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피아는 어딘가에 생각이 미쳐 눈을 멀리 돌렸다.
유도하고 있어?
시선의 끝에는 또 하나의 탑이 있었다. 그 위에는 여러 사람의 인영이 있고, 그들은 햇빛이 반사돼 반짝이는 무언가를 이리 겨냥하고 있다. 시드의 무방비인 등을 향하고 있다. 시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아챌 틈이…
안 돼.
통증도, 나른함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건 안 돼.
몸이 가벼워, 땅을 짚으면 금방 일어날 수 있다.
그것만은, 안 돼.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발이 간단히 몸을 움직인다. 가깝다.
절대로.
닿는다.
절대로, 안 돼.
괜찮다. 제때 닿는다.
21-5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영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디디스가 내민 목걸이를 빼앗은 시드는, 옆을 스치는 바람에 문득 뒤를 돌아봤다.
찰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몇 번이고 들려온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건 눈앞이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가리고 있는 것은 사람의 몸. 활짝 벌린 손으로, 저쪽이 보이지 않게. 그게 흔들린다. 싫은 소리가 난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축축한 소리. 하나, 둘, 셋. 뭔가 코끝을 찌른다. 역겨운 냄새. 눈앞이 뿌얘진다. 그때의. 그리고, 바로 최근에도, 코가 막힐 정도로.
사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알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겨눠진 등에서 튀어나와 햇빛에 반짝이는 끝. 늘어진 빨강. 하늘을 사이에 둔 건너편 탑의 여러 사람들. 뒤돌아본 순간에 전부 파악하고, 이해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져서 좋을 리가 없었다.
왜냐면,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계속, 자신은, 그것을 위해서.
그때부터 계속.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끼어든 소리에 의해 그쳤다.
“시드, 미안…해.”
그것은 도중에 끊어져 말이 되지 않는 소리. 그것은 최후의.
“고마….”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몸이 앞으로 떠밀렸다. 벽은 무너져 있다. 그 앞에는 아무 것도 없다.
떨어진다.
순간 얼어붙어 있던 몸이 움직였다. 발이 자연스레 땅을 박차고, 손은 당연하다는 듯이 앞으로 내밀어진다.
살아나지 않을 거라는 건 깨닫고 있었다. 설령 잡는다고 해도, 화살이 치명적인 곳을 꿰뚫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생각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날개가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음만이 자신을 이끈다. 그게 분명 자신에게 맞는다.
맞아, 그때의 나는.
몸과 함께 멈춰있던 마음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저, 그때는.
시시할 정도로 작았던 스스로가 침입자들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복수 같은 것보다, 일단.
세발족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도, 아무래도 좋아.
기뻤던 건, 세발족이라고 들어서가 아니었어.
함께 가기로 한 건, 세발족이기 때문이 아니었어.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을 본 직후인데, 정면에서, 주저하지 않고.
그런 녀석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강하게.
강하게 있어야 했다.
남자가 아니라든가 반칙이고, 감싸진다니 반칙이다.
왜냐면, 나는, 그저.
그때부터 죽.
그저 자신을 감싸던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아피아!”
시드가 손을 뻗었다.
자신이 지금 있는 자리도, 지금 처한 상황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잡지 못하는 것만이 두려웠고, 망설임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아주 당연하게, 턱을 딛고서, 그는 뛰쳐나가고 있었다.
21-6
그리고 그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던져지는 짧은 시간. 그 동안 일어난 일을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소년의 손이 닿는 것을 보았다.
떨어지는 대로 힘껏 껴안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소년의 날개는 힘을 발할 수 없었고, 지면은 무심하게 두 사람을 기다렸다.
물론 도와줄 생각이었다. 여기서 둘이나 줄이는 것은 너무 쓰리다. 다소 부자연스럽겠지만 별 수 없다.
그러지 못한 건,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가 움직이려던 순간, 소년이 무엇을 느꼈는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로 그를 응시했다.
정말 이쪽의 모습을 인식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 눈빛이 거센 탓에, 그가 멋대로 판단했을 뿐이다.
돕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그의 판단은 아마 옳다. 손을 댔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늘은 끝난다.
땅이 가까워진다.
소년은 소리 없이 외쳤다.
마음은 올곧게 그에 화답한다.
너무나 거칠게 돋아나는 격류.
순식간에, 날개가 짜여졌다.
불필요한 것은 녹아 사라지고, 메워진다.
땅은 그들을 잡지 못했다.
눈이 핑핑 돌아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행한 것보다 발산된 것이 컸다.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시나 울린다.
땅이 웅성대는 것을 그는 감지했다. 그들은 틀림없이 이 출현을 알아챈다.
하지만, 이 순간에 이르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조용히 물어온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는 대답했다.
“…아버지. 네. 괜찮습니다. 순조로울 거예요.”
다시 한 번, 인도자인 자신을 떠올린다. 동시에 발탁된 이유도.
“나와는 다르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래, 그들은 스스로를 올바르게 알고 나아갈 것이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어버린 자신과는 다르다.
이마에 통증이 밀려온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는 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의 몸을 스쳤다. 그 바람은 그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흔들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그는 고개를 아래로 돌렸다.
땅에 닿아, 풀밭에 누운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당분간 괜찮겠지.
그래서 그는 이제 한곳으로 눈을 옮기기로 했다. 하늘을 가르며, 그는 사라졌다.
21-7
비가 내린다.
뺨을 때리는 감촉이 그 사실을 알려준다.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벽을 넘었던 그때도 비는 쏟아졌다.
은혜의 물, 땅을 씻어내는 힘, 세상을 감싸는 신의 사랑의 증거. 하지만 그것은 차갑고 무거워, 마치 너는 잘못됐다고 비웃는 것처럼.
너는 그냥 도망가고 싶은 거라고.
그렇지만 어디로 가더라도 너는.
알고 있다. 그래도.
즐겁다.
멀리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붙잡힌 손가락의 틈으로 뭔가를 욱여넣는 걸 알 수 있었다. 딱딱하면서도 따뜻한 느낌.
또 비가 뺨을 때렸다.
…그것이 차갑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끌리듯이 눈꺼풀이 열린다.
흐릿한 눈 끝에 비치는 것은 구름 한 점 없이, 그저 빠져들 것만 같은 푸른 하늘.
그 밝음에 눈이 멀어 있으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누가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얼굴을 한, 그가.
그런가, 나는.
생각났다. 하지만 어째선지 있어야 할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옷은 확실히 찢어져 있는데, 옷 밑의 상처는 사라졌고, 가슴에 얹은 손가락을 움직여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직은 괜찮은 걸까. 조금만 더, 여기에 있어도.
“…미안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쉰 목소리가 닿았는지, 툴툴대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시끄러워.”
“미안해, 시드.”
“사과하지 마.”
무뚝뚝한 말투인데, 평소 같은 기세가 없었다.
“내가 죽여도 된댔지.”
어딘가 흔들리는 음색.
“그럼, 내가 죽일 때까지 마음대로 죽어버리지 마.”
만났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죽여버리겠다고 외치던 그의 격앙이.
그것은 불과 두 달쯤 전의 일이었다.
“…마음대로 죽어버리지 마, 이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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