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20-1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피아가 복도를 걷고 있다.

금방 비틀거리는 다리는 자칫했다간 걸려 넘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간 분명 또 다시.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애초에 이곳에 아군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가야한다. 도착해야만 한다. 보물창고까지.

아직은 이르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세피아는 아직 세리크 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세피아가 거기 도착하면, 더 큰 움직임이 일어날 거다. 아직 나는.

순간, 몸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속에서 느껴진다. 눈앞이 아찔해지더니 보이지 않게 된다. 정신을 차리자, 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아 있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 그렇게 서두르면 안 된다고. 쭉 알고 있었다.

지금은 가야만 하니까. 그렇지만 어디에. …멀리. 벽 너머. 아니야. 그렇게 멀리가 아니다. 지하. 보물창고다. 거기에 백부님이.

이유를 알 수 없게 되어가는 자신이 보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안 돼.

그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이미 늦었어.

발이 미끄러졌다. 충격이 온몸에 전해져 와, 잠시 동안 사고가 뚜렷해진다. 하지만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눈앞에 놓인 융단의 털만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쓸모없구나!

아피아는 이 희극에 힘없이 웃었다.

하잘 것 없는 오해로, 이렇게나 잘 아는 장소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최악의 순간에, 목숨을 허비한다.

이럴 거라면 그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목이 아픈 것만 같았다. 그럴 리는 없는데도. 그건 꽤 오래 전의 일. 이제는 꿈결처럼 아스라이 먼 옛날.

그때, 그대로.

그랬다면 조금은 가치가 있었을 텐데.

그대로 죽어줬다면, 적어도 시드의 기분전환으로서. …속죄로서.

더 이상 이뤄질 수 없는 소망.

서서히 어둠이 내려와 눈꺼풀을 닫았다. 저항할 기력은 더 이상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조금 전의 일이 되살아나기라도 하듯, 아피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20-2

그것은 수차례 거듭된 요구였다.

  “보물창고의 열쇠를 주렴.”

순회처럼 하루에 두 번 정도 모습을 드러내는 나티아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를 찾아왔다. 보물창고에는 계승 의식에 필요한 도구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곳은 오직 왕만이 열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도구를 꺼내 보인다는 것은, 왕의 대리인으로 임명됐다는 증거다.

아피아는 그에게 변함없는 대답을 돌려줬다.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은 같아. 어머님을 풀어주는 게 협력의 조건이다.”

아버지의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리 그래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의 목숨이라면 별로 빼앗을 이유가 없다. 함부로 죽였다가 되려 세리크 측을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피아가 탈환에 나서게 됐을 때, 인질로서 다뤄질 당연한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 돌아온 것은 그것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다 저들의 요구를 순순히 따르는 자세를 보여도 위험하다. 너무 순종적으로 굴면, 자신은 미끼라는 걸 들키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은 따르게 되더라도 반항하며 시간을 끄는 과정이 필요했다.

  “결말이 안 나는군.”

나티아가 한숨을 쉬었다.

나티아도, 그렇게 간단히 따르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상황을 보고, 굽히는 시기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하는 수 없지. 짐작은 하고 있고.”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였다. 나티아의 지시에, 대기하던 위사가 아피아의 두 팔을 붙들었다. 아피아는 이대로 끌려가는가 싶었지만, 백부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아피아의 목덜미에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거겠지. 네가 몸에서 떼놓지 않는 것만 봐도 분명해.”

옷 속에서 꺼내진 그것은 일곱 가지 빛깔을 반짝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다…!”

아피아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부인했다. 그 필사적인 태도가, 오히려 상대에게 확신을 안겨다 준 것 같았다.

목에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머리를 흔들며 저항했지만, 그러는 와중에 싸구려 체인이 뜯어졌다. 그 돌을 손에 쥔 채 떠나려는 나티아를 향해, 아피아가 호소했다.

  “그건 아냐, 그것은….”

내 목숨을 이어주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말하려던 아피아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가족과 주치의뿐이었다. 저들은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붙잡았고, 세피아는 지나쳤다.

저것을 내팽개치는 것만으로 자신의 목숨이 쉬이 버려진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자신이 그럴 생각 중이라는 걸 눈치 챈다면.

자신을 향한 감시가 삼엄해지고, 세피아를 쫓는 추격이 거세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 비밀을 알릴 수 없다.

이런 망설임은 상대를 붙잡으려던 기세를 꺾이게 만들었다. 나티아는 흘끗 아피아를 쳐다보더니, 멈추지 않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열린 문 뒤로 디디스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위사의 팔을 어떻게든 뿌리치려고 잠시 몸부림치던 아피아는, 금세 그 움직임이 헛된 시도라는 걸 깨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탈진해 고개 숙인 아피아를 침대에 남겨둔 채로, 두 위사는 문을 굳게 닫았다. 자물쇠도 걸어버렸을 테니, 여기서 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침대에 앉은 자세 그대로, 시트를 양손으로 움켜쥔 채, 아피아는 입을 다물었다.

 

20-3

물론, 망설일 틈도 우울에 잠길 틈도 아피아에게는 없었다.

침묵은 판단을 위한 시간이다. 이제는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판돈이라면, 스스로의 목숨일까.

한시라도 빨리, 통증을 견딜 수 있는 동안에.

아피아는 고개를 들자마자 일어나 달려 나갔다. 붙잡고 있던 시트가 펄럭이자 위사들이 깜짝 놀란 얼굴을 하는 것이 언뜻 보였다. 아피아가 그들을 향해 달려갔더라면 그런 얼굴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금세 검거 당했을 뿐이겠지.

그들이 놀란 것은, 달려 나가는 장소가 반대쪽, 발코니였기 때문이다.

  “머, 멈춰!”

뒤쫓아 오는 소리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서, 아피아는 계속해서 달려가 난간으로 뛰어 올랐다. 자신의 방과는 다르게 옆방 발코니와 거리가 있고, 아래로는 호수가 아니라 멀찍이 단단한 땅이 있다.

그런 건 알고 있다.

아피아는 일말의 주저 없이 거기서 뛰어내렸다. 금방 찾아온, 덜컥 몸을 흔드는 충격에 시트를 손에서 놓고, 아래층 발코니로 굴러 들어갔다. 머리 위로, 난간에 늘어트린 시트의 끝자락이 나부끼고 있었다.

  “어이, 아랫방이다!”

  “열쇠는!?”

  “몰라!”

윗방의 소동을 엿들으며, 열려있기를 빌고 문으로 달려갔다. 행운은 아피아의 편을 들었다. 사용하는 사람 없는 방을 잠그지 않은 채로 방치해 둔 것 같았다.

보물창고는 이 탑의 지하에 있다. 백부를 따라잡아 되찾아야만 한다. 도망갈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은 아직 죽을 수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이르다.

나는 그저 그러기 위해서 있는데. 그것조차 되지 않는다든가.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아피아는 인기척을 피하면서 달려갔다. 탑의 구조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추격자들이 아마도 목적을 오해하고 있는 것 역시 다행이었다. 추격자들의 수가 적다는 것은 아마 탈출구를 봉쇄하는 쪽으로 인원을 배치시키고 있는 탓이다. 탑 안을 마구 쫓아다니는 것보다야 그쪽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피아의 목적이 탈출인 경우에만 그렇다.

도망갈 곳이 없는 지하로 갈 거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발견되지 않은 채로 지하에 도착한다. 몇 되지 않는 채광창의 빛이 겨우 비추는 복도는 어둑어둑하고 숨이 막혀, 아무리 조심해도 발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은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발을 내딛을 때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통증 때문이기도 했다. 흐트러진 맥박이 귀 뒤에서 요동치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마 안 남았으니까.

스스로를 달래도 몸은 속아주지 않았다.

보통 때라면 가까운 거리인데, 지금은 너무 멀기만 하다. 온몸 구석구석이 비명을 질러댄다.

아프다. 아파. 아파.

늦었다.

그렇게 아피아는 쓰러져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도 찾지 못할 이곳에서, 마지막 순간이 성큼 다가왔다.

 

20-4

짐을 내리는 상대로부터 슬며시 떨어져, 닛카와 시드는 성 안뜰로 나왔다. 복잡한 구조의 건물은 자칫 했다간 헤매게 될 것이 자명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금방 들켜, 이거.”

  “들키겠죠.”

  “괜찮아?”

  “결국은 얼른 해치워야 할 상황인데 이런저런 잔꾀를 부려서 뭐하겠어요.”

우레니의 주선을 받아 성에 식량을 납입하는 상인들 사이에 끼어든 것이었다. 성의 구조상, 일단은 밖에서 음식을 들여야만 하기 때문에, 이 납입은 변함없이 계속 되고 있었다. 병의 소문 때문에 일꾼은 부족한데, 3명 몫의 일을 해낼 만한 뚝심의 소유자가 나타났다면, 출신도 그다지 묻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대로였다.

하지만 출입 인원은 확실하게 세고 있다. 모자라면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책망을 받는 게 두려워, 최대한 발각을 늦추고자 할 상인들에게 발목을 잡힐 일은 없다.

중요한 것은 침입에 성공하는 것뿐이었다. 할 일이라고는 성사 여부에 관계없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뿐이다. 예외가 있다면, 비밀리에 잡혀 처리되는 것.

  “실패하면 시드가 노력해주세요. 틀림없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걸요. 뭐, 좋지 않은 역사겠지만.”

  “음.”

알고 있는 건지, 시드는 어쩐지 건성으로 대답한다. 닛카는, 일이 그렇게 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까, 상상했다.

곧 두 사람은 나무 그늘이 짙은 장소에 도착했다. 잘못 됐나 주위를 둘러봤더니, 수풀 뒤에서 손 하나가 팔랑팔랑 흔들린다. 들여다보자 주저앉은 채인 세피아와 뮤아가 보였다.

  “잘 됐어?”

  “간 것 같아요. 그쪽은 발견되지 않았나요?”

  “괜찮은…것 같은데.”

이 두 사람이 발견되면 난리가 났을 게 분명하니까, 괜찮은 거겠지. 세피아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웅크린 뮤아를 향해 있다.

  “이제 무거운 건 싫어….”

뮤아가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세피아만은 당당하게 들여보낼 수 없었다. 들켜서 붙잡히면 본전도 못 찾고 소동이 일어날 텐데,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그리하여 세피아와 뮤아는 몰래 잠입하게 된 것이다. 침입 경로는 다리. 다만 위가 아니라 아래. 뮤아가 무리를 해서라도 세피아를 안고, 다리 밑을 날아서 호수를 건넜다.

  “뭔가 자란 게 있어서 찔렸고….”

유우족은 수직이동은 할 수 있지만, 평행이동은 할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다리를 붙들고 힘을 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세피아를 떨어트리지 않는 데 주의를 쏟으면서 그 과정을 해내야 한다. 또, 그 이전에 두 명의 몸무게를 지탱하며 날아오르는 것만도 상당히 힘들다.

  “정말이지, 시드가 날개를 뜯어버리지 않으면 좋았을 텐데.”

  “것보다 얼른 가자.”

시드라면 세피아를 안고 나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거다. 성급한 판단을 나무라려던 뮤아의 잔소리를, 시드는 거의 흘려들으며 모두를 재촉했다.

  “잠깐, 잠깐. 어디로 가?”

  “놈이라면 안쪽 탑 같은 데 있겠지.”

  “아마 그럴 거예요.”

세피아가 말하는 ‘놈’이라는 게 제난인지 아피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여 닛카도 수긍했다. 원래는 왕족이 거주하던 탑을 그대로 폐쇄해 격리시킨 것 같았다. 병이라는 표면상의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했다. 우레니와의 사전조사로, 탑의 발코니에서 아피아의 모습이 보인다는 소문이 성에 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 일일이 묻지 마.”

  “그치만 분명 경비가 있을 텐데? 때려눕히고 간다는 말은 안 돼.”

  “어디든 들어가면 되는 거지.”

설마 시드라고 해도, 뒷문 같은 게 척 하니 열려있을 거라는 식의 상상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어렵기로는 정면돌파와 비슷한 수준이다.

  “좀 더 정보를 모아서 가고 싶은데, 기다려주시겠어요?”

닛카의 물음에 시드가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었다. 기다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잡지 않을 테니까 가세요.”

짐짓 쌀쌀맞아 보이는 닛카의 대꾸에, 시드는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일어서서 자리를 벗어나려고 한다.

  “시드.”

등 뒤에서 호소하는 세피아의 목소리에, 시드의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

  “…부탁해.”

그 한 마디의 부탁을 알아들었는지 아닌 건지, 시드는 그대로 수풀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20-5

  “시드 혼자만 내버려둬도 돼?”

뮤아의 그 의문도 틀리지는 않았다. 쫓아갈 거라면, 바로 가지 않으면 늦는다.

  “지금의 시드는 평소 이상으로 남의 말을 안 들어요. 말려도 소용없고, 따라가는 건 무모해요.”

  “그건 포기하는 거야, 신뢰하는 거야?”

  “둘 다겠죠?”

  “잘 모르겠지만 무책임한 말이네.”

  “시드라면 괜찮아.”

두 사람의 대화를 막은 것은 세피아였는데, 그의 말에는 일말의 주저도 보이지 않았다.

  “뭐, 나도 괜찮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아피아랑 만나서 다툴까봐 걱정이야.”

왜인지는 몰라도, 갈라지던 날에 매우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닛카에게서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일 때문이라면,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다시 불이 번질 법도 하다.

  “괜찮아.”

다시 그렇게 말한 세피아가, 어물어물 말해왔다.

  “아피아한테, 시드는 오래 전부터 특별했으니까.”

  “특별하다고 해도 그건 나쁜 의미에서….”

  “어느 쪽이든 특별하다는 건 변함없어.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그리고 그는 갑자기 말을 끊었다.

  “…게다가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까.”

잠시 침묵하던 세피아는 고개를 들어 닛카를 쳐다봤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찾아야지.”

  “그게 급선무죠.”

아피아를 돕는 것도 중요하나,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무엇보다 그 일이 필요하다.

  “그러니 시드는 오히려 화려하게 눈길을 끌어주는 게 좋고요.”

본인이야 그럴 의도가 없겠지만, 그가 움직이면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그 그늘 아래 숨어 움직이는 게 최선이었다.

  “그치만 세피아의 부모님도 시드가 간 탑에 있다고 돼 있어.”

그렇다면 양동(陽動)은 되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뮤아에게 닛카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표면상으로는요. 저라면 비장의 수단을 모두가 아는 곳에 갖다 놓고 싶지 않아요. 소심해서.”

공적을 얻으려는 자들이 탑에 쳐들어와 탈환해가면 끝이다. 또, 서로를 볼모로 쓸 부모와 아피아가 가까이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럼 어디 있다고 생각해?”

  “찾기 어렵고, 공격하기 어렵고, 지키기 쉬운 곳. 탈출하기 어려운 곳이 좋겠어요. 그리고 환경이 너무 열악해도 곤란하네요. 중요한 인질이니까.”

  “제법 좋은 조건인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는?”

  “저는 이 성의 내부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요.”

거기서 생각하기를 포기한 닛카가 세피아에게로 눈을 돌렸다. 책임을 떠맡은 세피아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다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짚이는 데는 있어.”

하지만 그 얼굴은 약간 흐리다.

  “그치만 거기라면….”

그가 말한 장소는, 확실히 그런 표정을 지을 법한 험한 곳이었다.

 

20-6

싫은 예감이 든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근거 따위는 없다. 언제라도, 자신이 움직이는 데 그런 귀찮은 건 필요없다.

그냥, 서두르라고 떠드는 마음을 따를 뿐이다.

나무 사이를 헤치며 탑으로 달려간다. 이따금씩 뭐라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다 흘려듣는다. 너무 당당하게 굴어서인지, 아직으로선 쫓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탑 뒤쪽으로 돌아가자 닫힌 문이 눈에 들어왔다. 인기척은 없는 탑이다. 불길할 정도로 고요한 이 자리를 망가트리는 데, 시드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아, 힘껏 당긴다. 문 전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삐걱댄다. 한 번 놓았다가, 다시 잡아당기면 너덜너덜하게 뜯긴 손잡이가 손 안에 잡혀있다. 이제 문은 그저 부서진 판자에 지나지 않았다. 지체 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악!”

갑자기 그런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찌푸리고 안을 들여다봤더니, 무거운 문과 벽에 낀 견습 위사 같은 젊은 남자가 기절해 있다.

우연히 문을 등지고 있었는지, 자세를 취하는 게 늦어 벌컥 젖혀지는 문을 정면으로 맞은 모양이었다. 붙들어 정보를 캐낼지 생각해봤는데, 금방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아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보다 먼저 발이 움직였다. 바닥에 깔려있는 털이 긴 융단을 짓밟으며 쭉쭉 나아간다.

  “이봐, 이상한 소리가….”

  “기다려, 함정일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누군가 확인을….”

어쩐지 앞이 소란스러워 시드는 혀를 찼다. 평소 같으면 밀고 갔을 텐데,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옆 계단으로 빠지기로 했다.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기로 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어두운 복도 끝에서 생각지도 못한 그 모습을 발견했을 때, 시드는 진심으로 놀랐다. 빠른 걸음이었던 게 뜀박질이 됐다.

  “뭐하는 거야, 너!”

대답은 없다. 아피아는 바닥에 엎드린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야!”

어깨를 흔들어도 반응하지 않고, 붙잡은 팔은 차가운 데다 축 늘어져있다. 확인을 위해 그 몸을 뒤집은 시드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머리카락이 넘어가 보이는 목덜미 왼쪽에서, 작지만 또렷한 네 개의 거무스름한 멍울을 찾아내버렸기 때문이었다.

…목을 조른 것도 너지?

끈적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불쌍하게. 네 얼굴 같은 건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데?

시드는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이 걸린다. 몇 번이나 느낀 감촉. 그래, 간단히. 언제라도 간단하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었어.

멍울과 손가락의 위치가 딱 들어맞았다.

너는,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시, 드….”

갑자기 들려온 그 목소리에 시드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살짝 벌어진 눈꺼풀 아래서, 눈동자가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 아래로 희미한 맥박이 느껴졌다.

  “여줘….”

살아있다. 아직, 살아있다.

  “얼른, 죽…줘, …이제.”

공허한 눈과 목소리가 이쪽으로 보내진다.
차가웠던 시드의 배가 금세 뜨거워지고, 초조함을 닮은 열이 곧장 시드의 머리끝까지 끓어올랐다.

  “싫어.”

시드는 내뱉듯이 선언했다.

  “난 그런 짓 안 해. 그럴 리가 있냐.”

그리고 목을 붙든 채로, 아피아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그 몸을 앞으로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잃어버렸구나. 어디야. 가자.”

그 말을 들은 아피아가 안심한 표정으로 시드를 올려다보다가, 잠시 후 시드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지막, 까지……무슨 욕시….”

  “시끄러워. 대답할 거 아니면 조용히 있어.”

바로 앞에 있는 아피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려는 듯, 시드는 휙, 엉뚱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20-7

느껴진 것은 따스함이었다.

서서히 스며드는 그것은 기억에 남아있는 것으로, 조금 몸이 편해졌다. 눈을 떴더니, 마찬가지로 기억에 남아있는 얼굴이 보인다. 자꾸만 말을 걸어와, 흐릿한 의식 속에서 대답했다.

  “목의 그거, 어디 갔어. 야.”

  “보물창고에.”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짜증스러운 물음이 되돌아온다.

  “보고? 거기가 어디야?”

  “여기서 쭉 가면 있어.”

  “뭐야, 이대로 쭉 가면 돼? 거기 있어?”

  “백부님이 잘못 가져갔어. 그건 그런 게 아닌데, 그건, 그냥 내….”

  “아, 알았어. 뭔 얘긴지 모르니까 더 말하지 마.”

입을 다문 채로 흔들리던 도중에, 이상한 것을 눈치 챘다. 왜 여기 있는 것의 위치를 묻고, 대답하고 있는 걸까?

서서히, 통증으로 몽롱했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지금 있어야 할 장소, 지금 처해있는 상황, 눈앞의 인물의 연관성 없음에 겨우 생각이 닿는다.

아피아가 숨을 삼키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시드, 어째서…!”

  “시끄러워.”

  “어째서 여기에…?”

  “시끄럽다고 했잖아. 입 막아버린다.”

절대 이쪽을 보지 않으려는, 찌푸린 얼굴이 눈앞에 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한결같은 그 인상.

아피아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생각을 정리했다.

옷 위에 목걸이는 없고, 옷 아래서 흔들리는 느낌도 없다. 역시나 빼앗긴 그대로다. 하지만 밀려들던 어둠은 사라졌고, 아직 기분이 나쁘지만 사고는 멀쩡하게 할 수 있다. 아픔도 가라앉아 있었다.

어째서인지, 아피아는 알 것 같았다.

혼란을 틈타, 뺨을 품에 더욱 들이밀었다. 전해져오는 체온이 환각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이 열은, 세계와 자신을 이어가는 것.

그때, 앞에서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서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나온 디디스가, 발소리를 듣고 이쪽을 쳐다보더니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디디스의 손 안에서, 목걸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헤아렸는지, 그의 판단은 빨랐다. 아피아가 말을 걸기도 전에 갑자기 몸을 돌려 달아난다.

  “기다려, 그건 돌려줘, 디…!”

  “쫓아간다.”

시드 역시 아피아의 말은 듣지도 않고 달려 나갔다. 계단을 뛰어오르고, 복도를 달린다. 시드는 체력이 좋지만 민첩한 편은 아니어서 따라잡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시간 문제였다.

햇빛이 비치는 밝은 회랑에, 그 인물이 기다리고 있지만 않았다면.

  “도련님, 좋은 판단이에요. 저걸 상대하지 않았던 건 말이죠.”

엇갈리며 도망가는 디디스에게 뭔가 말해주던 그 인물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중얼거리더니, 조심스레 이쪽을 돌아봤다.

그와 대치한 시드의 긴장은, 어깨의 통증으로 모습을 바꾸어 아피아에게도 공유됐다.

미소를 띤 채 싹싹한 말투로 말을 걸어오는 남자는, 본인의 기분이 나쁘다는 걸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야, 신스=톨라―. 우연이군.”

기둥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남자의 오른쪽 소매가 너풀거린다.

  “자, 결말을 내볼까.”

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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