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17-1

그르쳤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뒹구는 세 개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그들은 처신을 재빨리 결정해야만 했다.

  “어쩔 거야."

유독 깡마른 남자가 안절부절못하며 주범을 몰아세웠다.

  “진정해. 이건 부득이한 경우였잖아. 게다가 보아하니 하인 같은데 어떻게든….”

달래려는 다른 남자에게도 되물었다.

  “이거, 하인이 아냐.”

그가 떠들어댄 말이 판도를 단박에 뒤집었다.

  “여기 주인이야. 공작부인이라고! 본 적 있어. 그런데 어떻게 하겠단 거야!”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태연한 남자, 이 사태를 벌어지게 만든 남자가 대답했다.

  “문제없어.”

그는 말하는 동시에 피를 뒤집어쓴 복면과 겉옷을 둥글게 뭉쳐, 자신의 짐 속에 단검과 함께 던져 넣었다.

  “문제없다니 너, 숨길 수 있는….”

  “목격자는 없어.”

동료들의 책망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보다시피 전부 처리했지.”

그 말을 들은 그들은 다시 내려다본다.

여기까지 쫓겨 온 동족의 남자, 그것을 생각 없이 감싸던 긴 머리의 여자, 그리고 도망치다 말고 돌아온 작은 아이가 피에 젖어있는 모습을.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아무도 시체가 아니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다. 하지만 칼날에 발려있던 독이 이내 저 희미한 생명의 불씨를 꺼트릴 게 분명했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우물쭈물 여기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어이, 준비해둔 자루 꺼내.”

누구랄 것도 없이 나서서, 그들은 뒤처리를 시작했다. 있어서는 안 될 시체를 자루에 담고, 흙에 스며든 피는 어설프게 얼버무리는 대신 남겨두기로 했다. 어차피 나머지 두 사람의 피와 섞여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귀족의 저택이다.

강도가 들거나 원한을 사서 습격당하는 일도 흔하리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런 바보 같은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리 없다.

벽을 넘어온 세발족이 범인일 거라고는.

 

17-2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드의 몸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덤벼들었던 주먹은 가볍게 피해지고, 목덜미를 팔꿈치로 내리찍는 일격에 맞았던 것이다.

  “의식은 붙어 있잖아. 건강하네.”

자세조차 취하지 않고서 히죽대며 웃는 제난을, 시드는 흙투성이가 된 뺨을 닦지도 않은 채로 노려봤다.

전이랑 같은 수법이다. 다른 게 있다면, 전에는 자빠트리려고 했던 것뿐이지만, 이번에는 공격이다. 목덜미 근처의 찌르는 듯한 통증이 힘을 조절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려준다. 심지어 그 공격은 아피아를 상대할 때보다 크다.

아무리 무모한 시드라고 해도, 피할 게 빤한 돌격을 두 번이나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오지 않는 거야?”

그러나 도발을 당했는데 태연할 리가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때려주고 싶은 마음과, 섣불리 다가가도 당하기만 할 뿐이라는 우려가 시드의 안에서 부딪쳤다. 기어이 이긴 것은 투쟁심이었다.

시드는 목 안으로 으르렁대는 소리를 내며 다시 돌진했다.

  “재능이 없구나.”

당연히 그 공격도 맞을 리 없었다. 다리후리기에 걸려, 달려든 기세 그대로 수풀에 돌진하는 처지가 된다. 제난은 기어나온 시드를 향해 비웃음을 퍼부었다.

  “봐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네가 힘깨나 쓴다는 건 들었어.”

시드의 힘에 대해 믿는 것 같지는 않은 말투였지만, 몸으로 직접 확인할 정도로 얼빠진 놈도 아닌 모양이다. 제난은 손이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며 시드에게 물었다.

  “도대체 너는 왜 쫓아오는 거야?”

그 질문은 조금 전 세피아가 한 것과 같은 말이었지만, 제난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너무나도 질리게 느껴졌다.

  “세발족은 원수잖아.”

입을 다문 채 노려보기만 하는 소년을 제난이 몰아붙였다.

  “그 녀석의 목을 졸랐던 것도 너지? 불쌍하게 위협당하고, 비난받고. 그래놓고 같이 가자니, 이상하지 않아?”

이번 질문에도 시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지켜보는 중인 세피아를 흘끗 쳐다보기는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세피아도 시드를 보고 있었다. 나무라는 시선도 아닌데 시드는 떨떠름한 마음이 들었다. 뒤이어 제난이 재차 못을 박았다.

  “네 얼굴 같은 건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데?”

  “시끄러워!”

떳떳치 못한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시드는 끝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으르렁, 목을 울리며 그가 외쳤다.

  “녀석이 뭐라고 말해도 상관없어―. 애초에 네가 하는 말을 믿겠냐.”

  “직접 들어야 납득하려나?”

  “듣기 전에는 모른다!”

시드가 무턱대고 내뱉어도, 제난은 기분이 상할 기미조차 없다. 상하기는커녕, 활짝 웃으며 이렇게 운을 뗄 따름이었다.

  “그럼 너도 데려가주지.”

불과 호흡 한 번의 틈이었다. 시드가 꺼림칙한 예감을 느낀 순간, 이미 그의 품 안에 있었다.

계속되는 속삭임과 느닷없이 배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어째서 너는 그때 죽어버리지 않았지, 신스=톨라?”

그 위화감은 곧 뜨거움으로 변한다. 내려다보니 어느새 박혔는지 모를, 희미하게 빛나는 칼날이 있다. 칼자루의 적은 부분만 보이는 채로.

  “이것저것 귀찮네.”

그 말을 이해할 틈조차, 시드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옆구리 깊숙이 꽂힌 단검이, 다음 순간 옆으로 죽 일직선을 그었다.

 

17-3

세피아의 눈앞에서 선혈이 가늘게 흩날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시드의 등이 스륵 무너져 그와 대치하고 있던 남자의 모습이 바로 보이게 된 순간, 차츰 세피아의 등에도 차가운 것이 전해졌다. 쥐어짜는 듯한 비명이 한 박자 늦게 목에서 흘러나왔다.

  “앗…….”

피 냄새. 방금 전 흩날렸던, 남자가 든 단검에 눌어붙은, 쉬지 않고 땅에 흘러내리는 피 냄새가 세피아의 코에 와 닿았다.

튄 피를 가슴팍에 묻힌 사내는 눈앞에 있는 소년의 몸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 어디가 좋을까. …목이 제일 간단하지만 너무 손이 많이 가.”

거기에 대답이라도 하는 양 남자의 발밑에서 신음이 올라오지만, 그것은 말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괴로운 울림이다. 살아 있다. 그렇지만.

  “시….”

세피아는 무심결에 시드에게로 달려갔으나, 쓰러진 시드를 넘어온 제난이 단검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멱살을 잡으며 가로막았다.

  “날개는 당연하고, 다음엔….”

세피아의 몸은 그대로 들어 올려져, 근처 나무에 떠밀렸다.

  “너한테 기회를 줄게. 어디가 선물하기에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난데없는 질문이 온다. 사내의 말이 뜻하는 바를 알아들은 세피아가 몸을 떨었다. 그의 어조는 아주 가벼웠지만, 농담이 아니라는 게 분명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짓을.”

  “빈손으로 돌아가면 네 형이 실망할 거야.”

세피아는 눈앞의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만 데려가면, 충분해.”

잡히면 안 되지만, 그 이상으로 시드가 저런 짓을 당하게 둘 수 없다. 하지만 세피아의 궁색한 협상은 제난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은 듯했다. 그는 단박에 이런 답을 돌려주었다.

  “많아서 나쁠 건 없지.”

심지어 말문이 막힌 세피아를 보며 미소까지 지었다.

  “자, 어디가 좋아? 빨리 고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게 될 텐데.”

세피아의 볼에 딱딱한 감촉이 전해진다. 그것은 제난의 오른손에 들린 단검의 칼등으로, 미끈거리는 것이 피부를 어루만지는 게 느껴진다. 비린내가 세피아를 더욱 위축시켰다.

  “고를 수 없다면 하는 수 없지. 눈이라도 도려낼까? 아, 아니면 저 못된 손이 나으려나.”

제난은 세피아를 실컷 위협한 모양이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손이 힘을 빼, 세피아는 제난이 다음 짓에 착수하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만둬!”

세피아가 그를 막으려 소리쳤다.

  “그런 짓 하기만 해봐. 아네키우스의 이름을 걸고, 용서하지 않아!”

그 시도가 어느 정도 먹혀들었는지, 제난이 다시 세피아를 되돌아봤다.

  “아네키우스의 이름을 걸고?”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 뮤아와 닛카가 도착해봤자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될 뿐이다.

  “신을 거스르는 짓을 하는 건 어느 쪽일까, 왕자님?”

 

17-4

그 물음에, 세피아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너야.”

스스로가 보기에도 이상할 정도의 자신감으로 단언했다.

  “우리가 올바른지는 알 수 없어. 그래도 너는 틀렸어.”

압도당해서는 안 된다. 굴복해서는 안 된다.

눈앞의 정체 모를 남자는 아직도 무섭지만,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런 생각이 솟구쳤다. 자신이 굴복당하는 것은 남자가 원하는 것, 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은 확실히 겁쟁이지만, 그래도 세리크=리탄트=파다이기에.

그 생각이 남자에게 바로 전해진 것 같았다. 남자의 눈에 있던 빛이 바랜다.

  “마음에 안 들어, 그 오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자신의 입장을 알고는 있어?”

속삭임에는 독이 가득하다.

  “나는 너희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어. 사지를 붙여서. 내가 받은 명령은 그것뿐이지.”

단검의 감촉이 뺨에서 가슴으로 내려왔다.

  “이 말은 즉, 마음은 어떻게 돼 있어도 상관없어.”

두려움과 긴장으로 경종을 울리는 심장의 박동을 진정시킬 수 없다.

  “최악의 경우엔 말이야, 몸만 멀쩡하다면 된다는 거야. 왜인지 알겠어?”

정당한 왕을 꼭두각시로 만든다.

하지만 아무리 인질을 잡고 협박을 하더라도, 무리하게 몰아세울수록, 언제까지나 얌전히 꼭두각시로 남아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완벽한 꼭두각시를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가 아이만 낳아주면 돼. 선정인을 가진 아이로.”

선정인은 혈연과 관계되지 않는다. 왕의 아이라고 해서 표식을 갖는다는 법은 없다. 다만 출현하기 쉬운 혈통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는지, 최근 3대째 이어진 파다 가문의 혈통은 4대에 이르러 형제 모두 선정인 보유자라는 전례 없는 사태를 일으켰다.

그들의 아이 또한 선정인을 가질 확률이 무척 높았다.

후견인이 되기에 부자연스럽지 않고, 태어날 때부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선정인 보유자를 입수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

  “그런 건 각오하고 있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조금 쓰라렸다.

하지만 여기서 꺾일 수는 없다.

  “우리들은 계승자. 당연히, 이 몸은 리탄트에 바쳐졌어.”

제난은 그 반격도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럼 이런 건 어때?”

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다음, 다음 왕이 내 자식인 것도 꽤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왕자님?”

동요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반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숨이 막히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제난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눈을 크게 뜨고서 굳어 있었다.

목 안에서부터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제난은 만족스러운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였다.

  “유감스럽게도 너는 아직 작으니까. 다른 쪽도 아직 이르고, 뭐, 금방이지만.”

  “그런 건…, 그런 건 백부님도 용납하지 않….”

간신히 쥐어짠 세피아의 반론은 점점 작아진다.

  “알리지 못할 정도로 망가트려 줄 거야.”

그러나 세피아가 말을 마치지 못한 건 제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어깨 뒤로, 일어서는 인영을 알아본 덕분이었다.

 

17-5

처음 들린 것은, 뭔가 삐걱거리는 것만 같은 소리.

  “너냐.”

숨소리도 거칠게 쉬어버린 그 중얼거림.

가슴에 닿았던 딱딱한 감촉이 갑자기 거둬진다.

  “너였냐.”

뒤이어 이상한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힘줄이 터지는 소리.

나무로 밀어붙이던 힘이 사라진 탓에, 세피아는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우두커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제난의 오른팔이 뒷짐을 쥔 자세로 비틀어져 있다. 소리는 거기서 난다. 하체를 피로 적신 소년이 그 오른팔을 쥐고 있었다. 소년의 검은 눈동자에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네놈이.”

오른팔이 으깨지려고 한다. 붙잡혀있는 팔꿈치 위의 뼈가 박살나 살이 뒤틀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드의 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동안, 세피아는 오히려 실감을 느끼지 못해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만나자마자 아피아에게 주먹을 날리다 거목을 쓰러트렸던 그 힘. 도적을 내팽개치고, 록차를 끌어온 그 힘.

그 힘은 이렇게나 가차 없이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아피아는 알고 있었을까?

  “큭…!”

제난은 신음하며 몸을 틀어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시드의 손아귀는 철과도 같은 단호함으로 그를 쉬이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제난이 구슬땀을 이마 가득 흘리면서 빈 왼손을 내질렀다. 그 손 안에서 금속이 반짝이는 것을, 세피아는 목격했다. 시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아차릴 여유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도 모른다.

안 돼!

말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단검을 빼들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아도 안다. 칼부림을 하는 순간을 피해왔지만, 훈련은 계속해서 받았으니까.

벌떡 일어나, 그 기세에 맡긴 채, 아래에서 위로.

거기에는 노렸던 손목이 있다. 잘 벼려낸 칼날이 바로 상대의 피부와 살점을 도려낸다. 곧장, 시드의 머리에 박히려던 작은 단검이 떨어진다.

  “시드, 조심해!”

그제야 세피아의 입에서 주의를 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들은 탓일까, 시드가 세피아에게로 휙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제난을 향한 주의가 분산됐다. 그 순간 시드의 손이 뿌리쳐진다.

제난은 상상조차 못할 날랜 움직임으로 두 사람과의 거리를 벌렸다. 오른팔은 축 늘어졌고 왼손은 피를 흘리는 데다, 얼굴도 창백하지만, 그는 웃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경기를 일으키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다 점점 크게.

  “이래서야 안 되지.”

세피아는 물론이거니와 시드 역시 그에게 덤벼들지 않고, 그 미치광이 같은 모습을 보고만 있다.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잖아. 졌다.”

갑자기 웃음이 뚝 그친다.

  “잘도 해냈군.”

그리고 순간적으로 쏟아진 날카로운 시선이 세피아의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다시 만나길 바라지. 신스 톨라, 왕자님.”

그 말을 끝으로, 제난은 근처 수풀로 사라졌다.

 

17-6

세피아는 그 순간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타났다는 것은, 아피아가 근처에 있다는 것. 지금 따라잡지 않으면 제때 붙잡을 수 없다.

  “멈춰!”

달려 나가는 세피아 뒤에서 시드도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쫓아오는 것 같던 목소리가 갑자기 희미해져, 들리지 않게 된다.

  “죽여버….”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서 뒤를 돌아본 세피아의 눈에, 무릎을 꿇은 시드의 모습이 들어왔다. 헉헉대는 호흡과 땅에 흘러내린 피. 갑작스레 연이어 벌어진 일들에 잊고 있었던 사실.

  “시드!”

두고 갈 리가 없었으므로, 세피아는 돌아와 시드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좀 전의 제난 못지않게 안색이 나쁘고 핏기도 전혀 없다. 꽉 누르고 있는 상처는 아직도 벌어진 채인지, 손가락 사이로 붉은 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해.”

자신의 머리에서도 피가 식는 것을 느끼면서, 세피아는 일단은 자신의 옷으로 상처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갖다 댄 윗도리가 순식간에 주홍색으로 물든다.

이런 상태로 움직여서 팔 하나를 박살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어떡해…. 이러다, 시드, 죽으면….”

분명히 생사가 연루되는 출혈량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 번 그 생각이 들자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흘러나온다. 세피아는 하는 수 없이 흐느껴 울면서 상처를 눌렀다.

  “안 죽어.”

대답은 의외로 또렷하게 돌아왔다. 재차 들여다봤더니, 시드가 어금니를 악문 채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죽겠냐. 안 죽어―. 나는 안 죽어. 절대로, 안 죽어.”

거듭할 때마다 헛소리에 가까워져가는 그 말을 멈추고 싶어, 세피아는 시드의 머리를 품에 끌어안았다.

이윽고, 눈물로 흐릿해진 세피아의 눈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17-7

  “……정말로 죽지 않을 줄이야.”

뮤아가 큰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당사자가 눈썹을 올리며 자못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싫냐?”

  “한 번 정도는 잠자코 들어. 그렇게 깊은 상처인데 내장이 전혀 다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돼. 뭐야, 그 튼튼함은.”

  "튼튼하다고 할까, 운이 좋다고 할까. 내장이 비어져 나오지 않아 다행이었네요. 나왔으면 꽤 긴장감 있는 사태가 됐을 거예요."

  “시끄러―.”

계속해서 나오는 저런 말들에 기분이 좋을 리는 없으나, 강하게 반박하기도 어려운지 시드는 그저 옆으로 돌아앉으며 혀를 찼다. 한결같은 모습에 뮤아와 닛카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사후 보고지만 말은 해둘게.”

뮤아가 입을 열었다.

  “톨라 공작에게 전서구를 보냈어.”

  “뭔 짓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림 씨 앞으로. 무시당할 가능성도 생각해서 우리 마을도 경유하도록 보내뒀어. …일어나지 말고.”

예상대로 분개한 시드는 닛카가 지긋이 어깨를 눌러도 아랑곳 않고 몸을 일으킨다.

  “두 사람의 사정을 자세히 알리지는 않았어. 아피아가 납치됐는데 범인이 세발족인 것 같다, 알리는 건 그것뿐이야.”

  “다만 림 씨도 의심했었으니 두 사람이 세발족이라는 건 들키겠네요.”

  “놈한테 알린다고 뭐가 돼.”

뮤아는 전혀 납득하지 않는 듯한 시드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우리보단 훨씬 많은 게 되겠지.”

  “알리는 사이에 도망칠지도 모르는데. 것보다 빨리 쫓아가야….”

  “시드, 그런 상처로 쫓아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튀어나올 기세인 시드를 붙든 것은 그 한 마디였다. 시드는 다시 자신이 있는 장소를 둘러보고, 방의 구석에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세피아의 모습을 발견했다. 통증이 가신 하복부로 눈을 돌렸더니, 붕대가 과장스럽게 감겨있었다.

  “뭐야 이거.”

붕대를 풀어내려던 시드의 손을 뮤아가 거침없이 쳐낸다.

  “만지지 마! 실도 아직 안 풀었어!”

  “이까짓 것 아무렇지도 않아.”

  “터무니없이 굴지 마. 게다가 벌써 일주일 정도 지났어. …못 따라잡아.”

시드와 세피아를 발견해서, 인근 마을로 옮기고 상처를 꿰맨 뒤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침묵하는 시드에게, 닛카가 만약을 위해 설명을 보충했다.

  “그들은 일직선으로 서쪽에 가고 있었어요. 어딘가 벽을 빠져나갈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거겠죠. 여기서 벽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그들은 호리라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요.”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벽을 넘기 전까지 잡는 것뿐이다.

  “이미 늦었어요, 시드.”

침묵이 내려앉은 사이로 시드의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또.”

그것은 어느 때보다 무력하게 들려서, 뮤아와 닛카도 덩달아 눈을 떨궜다.

  “또 다시 나는….”

하지만 시드는 갑자기 숙였던 얼굴을 든다. 그리고 꿰뚫는 듯한 시선을 세피아에게로 보냈다.

  “야, 세피아. 너, 여기로 넘어왔던 곳 기억하지?”

  “어, 아, 응. 아마.”

지켜보고만 있던 세피아는 느닷없이 이야기에 끼게 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대답한 뒤에야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을 눈치 챈다.

  “기다려, 설마….”

그 설마를 저지르는 게 시드라는 것이다.

  “벽을 넘는다.”

그는 주위의 당황은 개의치 않고 당당히 선언했다.

  “이대로 끝내서야 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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