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16-1
그 안뜰은 성의 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다. 이끼가 낀 석조 벤치는 그늘에 있어 차가웠고, 심어진 나무들이 가린 회랑은 안뜰의 수풀 사이로 들여다보였다.
“그 녀석, 곧 지나가겠지.”
회랑을 등지고 앉은 아피아가 곁에 선 사라리나트에게 그렇게 말했다.
“응….”
수풀 너머를 흘긋거리는 사라리나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팔꿈치를 짚으며 깍지 낀 손 위로 턱을 괸 아피아가 반쯤 어이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아직도 그 녀석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응….”
“계속 말해서 미안하지만, 그 녀석은…… 그만두는 게 좋을 텐데.”
아피아가 주저하며 건넨 충고에, 사라리나트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이내 사라리나트가 고개를 살살 내젓자, 그에 맞춰 부드러운 긴 흑발이 등 뒤에서 흔들렸다. 수 차례 반복했던 대화. 아피아는 사라리나트의 옆모습을 심란하게 쳐다봤다.
“괜찮아, 알고 있으니까. 신분 차이도 크고.”
“그게 아냐, 사라리나트.”
사촌 형제를 나쁘게 말하는 것도 내키진 않지만, 그가 사라리나트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도무지 성실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피아는 그 증거를 싫을 정도로 목격해왔다.
난봉꾼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하게, 손을 대도 문제 되지 않는―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상대만을 골라 노는 걸로만 보였다. 그 태도는 성인이 된 뒤로 더욱 심해져서, 저래도 미성년에는 자숙했던 것인가, 아피아는 기막혀 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피아가 눈을 서슬 퍼렇게 뜨고 있는 덕분일까, 만날 기회가 얼마 없었던 덕분일까, 아직 미성년자인 사라리나트에게는 결정적인 짓을 저지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양쪽이 마찬가지로 놀고 있는 것뿐이라면 바람직하지는 못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사라리나트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적당히 다뤄지다가 버려진 뒤를 걱정하다 보면 울적해졌다. 변변한 영지도 없는 자작이 왕의 형제인 공작 가를 상대로 따질 수 있을 리도 없고, 아피아가 지나치게 참견하다보면, 도리어 젖형제임을 내세워 버팀으로써, 사라리나트에게 부담이 가게 될 지도 몰랐다. 지금도 이렇게 둘이서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1
그래도 당사자인 디디스에게 직접 따지러 간 적도 있었다. 진심이 아니라면, 손대지 말라고.
“……내가 어떻게 해본 게 아니잖아. 저쪽이 멋대로 다가왔을 뿐이지.”
무책임한 말에, 아피아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 없이 다정하게 구는 건 이쪽이지.”
“그럼 쌀쌀맞게 굴면 되나?”
“그건….”
그렇게 되면 사라리나트는 상처 받는다. 아피아가 그러라고 했다는 게 들통 나면 더 크게.
“나한테 할 얘기가 아니네.”
결국 디디스가 그 말만을 남기고 떠나,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디디스는 그렇게 모든 것을 남에게 떠넘긴다. 검을 휘두르던 아피아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도 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어?”
“무슨 뜻이지?”
“강해지든 말든, 상대가 알아서 봐 주잖아. 넌 다음 왕이시니까.”
아직까지도 울컥하는 기억이지만, 아피아는 애써 그런 티가 나지 않게끔 하며 받아쳤었다.
“이기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디디스 너는 무언가 노력해서 이루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나?”
“원하는 건 뭐든지 아무 것도 안 해도 얻을 수 있는걸.”
아피아의 물음에 디디스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단언했다.
“노력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거라면 갖고 싶지도 않아.”
결국 디디스는 손이 닿는 곳을 헤집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데다, 그런 삶의 방식에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건 존경할 수 없어.”
완곡한 비판에, 사라리나트가 바로 반박했다.
“아피아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아.”
알고 싶지도 않고, 굳이 따지자면 모르는 쪽은 사라리나트일 텐데. 평소에는 총명한 사라리나트가 왜 이토록 답답하게 구는지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 녀석을 위해서 여자를 고를 거야?”
대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사라리나트가 볼을 붉히며 끄덕였다.
“아피아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어?”
“그래. 그럼 나는 남자를 선택해볼까.”
상대와 같은 성별을 고른다는 건,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거절의 표현이다.
자의와는 관계없이, 아피아는 디디스의 결혼상대로 가장 추켜세워지는 인물이었다. 실제로도 계속해서 혼인 제의가 들어와 디디스가 성인이 되기 직전에 분명하게 거절해뒀지만, 자신이 다른 약혼자를 정해둔 것도 아니니 단념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당연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라리나트는 아피아가 말하는 바를 깨닫자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이야?”
“약속할까?”
그렇게 둘은 손을 맞대고, 손가락을 건다. 아네키우스에게 함께 기도하는 맹세, 약속하는 행동. 떼어낸 후에 손바닥을 쳐다본 사라리나트가 수줍게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아피아는 그만 내뱉고 말았다.
“말해 두지만, 인정하거나 응원하기 위한 게 아니니까. 정말이지, 모르겠어. 그 기분은.”
“아피아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알 거야.”
“나한텐 무리일걸. 상상도 못하겠는데,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정말 생각조차 해 볼 수 없었다. 그럴 자격도, 필요도, 제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모호한 미소를 돌려줬을 것이다.
그래, 있지 않다. 지금도. 그런데.
유달리 큰 덜컹임이 아피아의 눈을 띄웠다. 흐릿한 시야로 사라리나트의 얼굴이 보여, 아직도 성 안뜰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두 손발, 주위를 둘러싼 좁은 나무 벽, 누워있는 나무 의자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자신이 있는 곳을 상기시켰다.
“아피아, 괜찮아?”
함께 록차에 탄 사라리나트가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와, 아피아는 미소를 지었다.
“왜?”
“출발하고부터 계속 잠만 잤잖아. 아프거나 그런 건 아냐?”
“좀 피곤해서 그래. 그것뿐이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무척 피곤하다. 몸도 마음도, 무척.
일단은 얼른 쉬고 싶었고, 무엇보다 지금 동안만이라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었다.
“꿈을 꿨어. 옛날 꿈. 사라리나트랑 약속했을 때.”
그런데 찾아온 꿈이 여러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항상 지키지도 못할 약속만 하네.”
사라리나트의 대답은 없었다. 아피아는 다시 천장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미안, 잠깐만. …아직 졸리니까.”
어둠 뒤로 찾아온 잠이 금세 의식을 덮었다. 반쯤 잠꼬대에 가까운 중얼거림이 그에게 닿았을지 궁금했다.
“미안해, 사라리나트.”
16-2
록차 위에 올라탄 시드는 몸을 뒤로 젖히고 거들먹거리며, 놀라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이상하리만치 당당하게 선언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간 박살내주마.”
위에서 뚝 떨어진 침입자에게, 세발족들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아마 화를 내는 게 좋을지, 어이없어해야 할지, 웃어줘야 좋을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다섯 명 정도가 차를 에워싼 가운데, 중년의 남자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기다려, 기다리게. 음. 자네는 분명히 시드 군이었던가.”
“그게 어쨌다고.”
성의 없는 대답이란 게 바로 이거다. 앞뒤 분간 않는 시드의 태도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토니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 데 올라가서 뭘 하려는 거지?”
“시끄러―. 내 맘이야.”
더욱 대하기 어려운 반응을 얻은 바람에, 토니나는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망설였다. 상대는 신스=톨라다. 지금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추측해보기도 어렵고, 어중간한 질문은 이쪽의 목을 조르는 자충수가 될지도 몰랐다.
“네놈들이 아는 거 전부 말해.”
그러니 그런 말을 들어도 쉽게 정보를 내줄 수 있을 리가 없다.
“토니나 씨, 실례합니다. 갑작스럽게.”
도움은 숲의 나무들 사이에서 불쑥 얼굴을 드러냈다. 낯익은 닛카의 모습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가 딱히 우군인 것은 아니지만, 록차 위의 소년과는 다르게 종잡을 수 있고 협상 방법도 아는 상대다.
“상당히 줄어들었네요.”
닛카가 록차를 둘러싼 일행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제난이라는 남자한테 볼일이 있는데, 어디로 갔습니까?”
“그와는 헤어졌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듯한데.”
모른다고 하는 것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일 터라, 토니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게다가 알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이미 예상했을 정보다.
“행선지는 모르시나요?”
“그래, 어딘가 가버렸어.”
토니나가 얼버무리려는 순간, 우당탕 하는 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 록차 위에 똑바로 서 있던 시드의 발끝이 록차 천장에 구멍을 냈다.
“아, 발이 미끄러졌어.”
시드가 천연덕스럽게 단언했지만, 일부러 그랬을 것이 불 보듯 빤했다. 인상을 찌푸리던 토니나는 애써 무시하며 닛카를 상대하기로 했다. 아직 저들이 이런 폭거에 나선 목적도 밝혀내지 못했다. 요구하는 상대가 제난인지, 아피아인지에 따라 대응도 달라지고, 그 밖의 다른 목적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었다.
뭐가 됐든, 어떻게 해서라도 저들을 구슬려서 세피아를 내놓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록차 한두 대 정도는 내다줘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걸로 포기해준다면 싸게 먹힌 거고.
저들은 제난이 시원하게 물러나준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도 모르고 있을 테다. 저들이 무슨 일을 겪었을지는 몰라도, 제난의 기분을 상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덕분에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마무리된 거다.
“알려줄 생각이 없는 거라고 봐도 무방한가요?”
“그에게 무슨 용무가 있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렇게 말하면 아실 텐데.”
“잘 모르겠군. 내가 아는 거라면 대답해주겠어.”
제난과 저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것만은 반드시 피하고 싶었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간 제난의 기분이 몹시 나빠지거나, 무척 좋아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성가신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이 어렵지 않게 상상됐다. 더군다나 묻고 싶다는 건 저 록차 위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서 있는 소년에 관한 것일 테니까, 쓸데없는 짓이다.
“그렇다면 여쭤보겠습니다만.”
명백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닛카는 한 번 문 것을 놓지 않았다. 게다가 그 입에서 나온 이름은 토니나가 예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테리카=타이카=솔이라는 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세요.”
16-3
“누군가, 그것은?”
토니나의 대답은 정직한 것이었다. 이름만 보면 당연히 닛카의 가계라는 걸 알지만, 그런 걸 물어봐도 아는 건 없다. 일단은 고객 명단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봤는데, 해당하는 인물은 생각나지 않았다.
한편, 닛카는 짐짓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르신다면 역시 제난 씨에게 물을 수밖에 없겠군요.”
거기서, 토니나는 적당히 떠본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어설픈 수단에 저희들이 제난의 행선지를 누설할 리도 없건만, 대체 무엇을 위해서 빙빙 돌아가고 있는 건지.
“그러고 보니 다른 두 명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고 어울려줄 수는 없다. 토니나는 자신이 화제를 이끌기로 했다. 상대해야 할 것은 저들이 아니라, 세피아다. 형이 붙잡힌 지금이라면 어린애인 세피아를 설득하는 것은 간단할 터였다.
“이쪽의 요구는 알고 있겠지. 동생과 얘기하겠다.”
“그 말에 잘도 내보내겠다.”
“너희의 우정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이건 그와 우리의 문제야. 한 번이라도 얘기하고 싶다고 전해주도록. 그를 억지로 끌고 갈 생각은 없으니.”
“본인을 억지로 납득하게 만들 생각은 있고요.”
노골적인 빈정거림에 토니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납득하는 것이 그를 위하는 길이야.”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아피아가 무사히 도착하는 게 확인되는 순간, 지령은 더욱 강경책으로 바뀔 것이다. 생포보다 손이 적게 드는 확실한 수단을 쓰라고. 그것은 즉.
“아피아를 확보한 이상, 세피아는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죽여도 된다는 거죠?”
뒤숭숭한 말을 서슴지 않는 닛카에게, 토니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닛카의 말은 어떤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습니다.”
“어쩔 셈인가.”
낌새가 좋지 않다. 보이는 태도에 따라서는 저들도 처리해야 한다. 그저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내버려둘 수도 있지만, 문제는 톨라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큰일이다. 이쪽에서 막을 수 있는 규모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나저러나.”
점점 더 위험한 영역에 발을 내딛고 있다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닛카가 고개를 저으며 받아쳤다.
“저희는 무사히 순례를 마치면 그만인데 방해하는 건 그쪽이잖아요. 신의 길을 막았다간 벌을 받지 않겠어요?”
“너희 셋의 순례는 무사히 마칠 수 있을 텐데.”
“저흰 다섯이거든요. 그렇죠, 시드.”
닛카가 토니나의 말을 잘랐다. 난데없이 끼어들게 된 시드가 무뚝뚝한 얼굴로 끄덕거렸다.
“그러니 알려주셨으면 하는데요.”
“모르고, 안다고 해도 더 이상 알려줄 수 없다.”
“뭐, 그러시겠죠.”
토니나는 어쩐지 아까부터 닛카의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전혀 교섭하려 들지 않고 있다. 타협안을 제시해오지도 않는다. 뺀질뺀질 화제를 바꾸기만 하며 시간을 끄는 것 같기도 하다.
형제의 신원을 파악한 것이 사실이라면. 토니나 측의 발걸음을 붙드는 이유는 단 하나, 동생 쪽을 놓아주려는 것이다.
“얘기는 끝이다. 이제 슬슬 비켜주지 않겠나.”
그런 고로 토니나는 대화를 끝내려 했다. 더 이상 저들과 어울려도 얻어낼 것은 없어 보였다.
“싫은데.”
“비켜주지 않는다면 무력을 행사하게 될 수도 있다만.”
여전히 퉁명스레 대꾸하는 록차 위의 소년을 협박하자, 그 소년이 아니라 닛카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시드와 만나는 건 혹시 처음인가요?”
듣고 보니 그랬다. 열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급적 형제하고만 접촉했고, 그 이후에도 일방적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뿐 대면하지는 않았다.
“그것 참 애석하네요.”
닛카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자마자 시드를 향해 손을 흔들고, 순식간에 숲속 깊숙이에 몸을 감췄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갑작스런 돌진에, 구속하란 지시를 내릴 틈은 없었다. 두 사람 정도 쫓아가게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열지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망설여졌다. 인질로서의 가치와 영향력은 톨라 쪽이 더 크기도 했다.
아직도 록차 위에 우뚝 서 있는 소년은 뒤에서 몰래 활을 겨누고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날아서 도망칠 셈이겠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을 위해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를 데려올 생각은 없나?”
“정말이지, 빌어먹을 얼간이구만.”
교섭이 성립될 기미가 전혀 없다.
한숨을 내쉰 토니나가 눈짓으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16-4
손을 떼면, 새들이 서슴없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새의 발목에 달린 표지들도 확인하지 않은 채, 뮤아는 닥치는 대로 새장에서 전서구들을 풀어줬다. 어차피 새들은 자유로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정해진 마을로 돌아갈 뿐인데도.
옆에서 닛카가 빼앗은 서류를 확인하며 변명을 했다.
“뿌리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서요. 저희는 아이들뿐이라 눈에 띄고, 소란을 벌이기 쉬운 사람도 있고. 그렇다면 아예 위치를 알려서 끌어들이는 쪽이 낫겠다 싶어서.”
“그렇다고는 해도 상의 없이 멋대로 저지르는 건.”
“알아요. 반성하고 있어요. ……정말로요.”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자, 닛카가 계속해서 변명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말이 그렇게 못 미더운가요.”
“하는 짓이 항상 그렇잖아.”
“부정은 못 하겠습니다만.”
“반성 해.”
“하고 있어요.”
세발족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던 데다가, 아피아 형제의 그늘에 숨어 정작 본인의 정체는 숨긴 것까지, 닛카가 한 일들은 나쁘다. 아피아를 구하러 가느라 유야무야 됐지만, 본래라면 시드가 폭발해 반죽음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선 뭔가 알아냈어?”
“모르는 것 같았어요. 정말이지 모르겠군요. 그가 파견된 것이 분명한지, 어느 진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뭔가 편지라든가, 유서라든가, 아버지가 남겨두시진 않았고?”
“아뇨…, 그런 개인적은 것은 거의. 아무래도 약학을 연구하던 모양인데, 국교 회복과는 상관없는 주제죠.”
굳이 따지자면, 문화며 관습 등을 조사하던 흔적이 보였다. 그런 조사원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제난의 말투를 생각해보면 그리 평화로운 것만도 아니었을 듯싶었다.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어요.”
“닛카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좋아, 이걸로 끝이야.”
얘기를 하다보니, 뮤아는 모든 새들을 풀어놓은 뒤였다. 반쯤 부서진 록차 안에서는 빈 새장만 나뒹굴었다. 물론 부서진 이유는, 시드가 억지로 끌어온 덕분이다.
시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말로 얘기해봤자 알아듣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닛카는, 처음부터 설득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건 정황 증거뿐이라고 말했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강탈.
록차 안은 닛카의 예상대로였다.
“그 사람, 전서구 담당이었구나.”
“냄새가 났어요. 새 냄새.”
닛카도 서류를 다 확인했는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은 암호까지 알아낼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런 건 안 남겼네요.”
그들의 연락은 당연히 암호로 이뤄져 있을 테니까, 그것을 알아내면 가짜 경고로 제난 쪽의 발을 묶어둘 수 도 있었을 거다.
“그래도 갈 길은 대강 추측할 수 있겠어요.”
빼앗은 서류의 대다수가 전서구의 출납 기록이었다. 토니나는 인상대로 꼼꼼한 성격인 것 같았다. 무슨 편지를 주고받았을지는 몰라도, 전서구를 어디로 날려 보냈는지 파악하면 나름대로 예상이 된다. 동시에 전서구를 빼앗음으로써 상대방의 연락 수단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
“시드랑 세피아는?”
“아직 쉬고 있지 않을까?”
“당장 두 사람을 깨워서 떠나야겠어요.”
전서구가 날아간 대삼림 남쪽의 마을들은 대략 이틀 정도 걸리는 거리를 간격으로 두고 있었다.
록차의 속도는 도보와 큰 차이가 없지만, 마부들이 교대로 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휴식을 취하며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토록이 그리 오랫동안 자거나 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 중간에 교체를 해줘야 한다. 편지들은 교대할 토록을 수배하려는 것이었을 테다.
“따라잡으려면 상당한 강행군이 될 겁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상대는 이쪽의 두 배를 나아가고 있다. 록차를 미리 수배해둘 수 없는 자신들로서는 자거나 쉬지 않는 것도 각오해야만 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분명.”
낙천적으로 말하는 뮤아를 곁눈질한 닛카가 대꾸했다.
“뮤아는 보기보다 훨씬 거친 구석이 있죠, 여러 의미로.”
“뭔가 거슬리는데, 그 말.”
그렇지만 뮤아의 고집 있는 태도가 묘한 안심을 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닛카도 정말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길이 시작됐다.
16-5
그리고 나흘 만에 도착한 마을에서 행운이 찾아왔다.
“아, 왔지, 그런 사람들.”
록차를 구해볼 순 없을까 찾았던 축사에서 그들의 정보를 얻어냈던 것이다.
“갑자기 팔아달라고 해봤자 곤란하니까. 거절했어. 보아하니 데리고 있던 것들도 지쳐보였고, 그런 식으로 다루는 놈들한테는 팔고 싶지 않아서.”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그래서야 멀리 갈 수도 없지. 마을 변두리에서 하룻밤 쉬었던 것 같아. 어제 아침엔 이미 없었지만.”
이 말인즉슨, 거리는 하루 간격으로 좁혀져있는 데다가 상대의 토록들도 지쳐있다는 것이다. 이쪽도 밤에는 걷고, 낮에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록차를 운 좋게 얻어 타거나 고용해서 휴식을 취해두는 강행군을 했으니 그리 여유롭지 않았지만.
“갈까요?”
닛카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확인에 가까워, 모두들 지친 얼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낮에는 잤으니까 난 아무렇지도 않아. 세피아는 갈 수 있어?”
피곤하면 말수가 적어지는 타입인 듯한 세피아는 걸어가는 내내 말을 하지 않아, 뮤아가 걱정하며 말을 걸었다. 세피아는 또 짧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가자.”
“후딱 가자고.”
언제나 그랬듯이 시드가 맨 앞에서 달리고, 그 뒤를 세피아가 쫓는다. 아피아가 없는 지금으로선 뮤아와 닛카가 후방에 붙었다.
“정말 괜찮아요? 붙잡았을 때 지쳐있으면 의미 없는데요.”
“응, 왠지 생각만큼 힘들진 않아. 닛카야말로 피곤한 거 아냐? 힘들면 조용히 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을 하고 있는 쪽이 마음이 놓여서요. 신경 쓰지 마세요.”
시드는 차치하더라도, 세피아나 뮤아의 체력이 유지될지 걱정이었는데 둘 다 뜻밖의 끈기를 보이며 여기까지 여정을 진행했다. 말마따나, 닛카는 어쩌면 제일 지쳐있는 건 자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입장 상 나약한 소리를 뱉을 수 없었고 뱉을 생각도 없었다.
“근데 상대들이 토록을 교체하지 못한 건 운이 좋았네.”
“아마 전서구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을 거예요.”
전서구를 쓰는 이상, 도착하지 않거나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은 불가피한 문제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연락은 사람이 직접 사절로서 가는 것이 제일이다.
“토니나 씨가 전서구 담당이었음이 분명한 게, 내용을 거의 검열해두더군요.”
대략적인 정보의 흐름을 잡기에는 최적인 위치였다.
“전서구 하니까 말인데, 림 씨한테도 아직 연락하고 있나요?”
“지금은 보낼 틈이 없어. 대삼림에 들어왔던 무렵이 마지막이었던가. 연락이 끊겼다고 난리가 나는 건 아니겠지?”
“뭐, 그쪽이야말로 도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톨라 공작 측에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하는 것도 생각은 해봤다. 하지만 죄다 알려버리면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소동이 될 공산이 크고, 당사자인 시드도 거부 반응을 보여 이 방안은 일시 보류됐다. 게다가 아피아가 호리라로 도망쳐왔을 때 먼저 호리라 왕실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것만 생각해봐도, 섣부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국가간의 교섭에 일개 마을 사람이 얼굴을 내미는 것도 역시 꺼려진다.
최악의 경우로 호리라에서 세발족 사냥, 나아가 결손아 탄압이 일어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닛카로서도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
“우리가 쫓고 있는 거, 알려졌으려나.”
“토니나 씨가 연락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무난하죠. 경로를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록차 수배 문제도 있어 경로를 바꾸기는 어려울 거라고 짐작하지만, 걱정은 된다. 그래도 데리고 있던 전서구들을 모두 빼앗긴 데다 시드가 쫓아내 버렸으니 연락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행운을 바라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16-6
밖에서 잠근 자물쇠를 풀고 좁은 입구에 드리워진 커튼을 걷는다. 어두컴컴한 록차 안에 앉아있던 소년이 잠시 이쪽을 봤다가, 곧장 다시 발밑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내가 올 때마다 깨 있네.”
제난이 그렇게 말을 건네며 차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어젯밤에는 흔들리지 않아 푹 잤으니까.”
대꾸의 구석구석에 숨기지 못한 가시들이 돋쳐있다. 들어오길 바라지 않는 게 빤하지만, 물론 그런 바람을 들어줄 리는 없었다.
“그런가. 도련님이 걱정하시더라.”
아피아는 이동하는 중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식사도 그다지 먹지 않는지, 반 정도를 남겨대곤 했다.
이 상황에서 의기소침해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하지만 묘하게 걸리는 점이 있어, 제난이 직접 나선 것이다.
“며칠 있으면 이 나라와도 작별이야. 꾀병을 부리면서 도망갈 틈을 엿보는 거라면….”
“손대지 마.”
이마로 뻗은 손가락이 도리질에 의해 거부된다. 두 손이 구속된 아피아가 손수 뿌리칠 수 없는 탓이다.
“나는 너희들한테 반항하거나 도망칠 생각 없어.”
그리고 아피아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뇌까렸다. 예전 같으면 노려봤을 참이다.
포획된 이후로, 어째선지 이 꼬맹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아, 뭐 그러겠지.”
그래서 제난은 억지로 아피아의 턱을 잡아들어 앞을 보게 만들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소년의 눈동자에는 혐오의 빛이 일렁거리지만, 부추겨볼 틈도 없이 그 빛이 시들어버린다. 예전처럼 저항하는 기색도 없어서, 제난은 내심 혀를 찼다.
“네 눈은 포기한 놈의 눈이야. 뭘 하든 상관없는.”
몇 번이나 본 눈, 무관심과 무감정을 가장하는 눈.
“하지만 절망은 하지 않았어.”
그러나 정말 마음이 꺾였다고 해도, 평온한 얼굴 뒤로 맥박과 감정이 스며들어 있다.
“재미없네.”
좌절로 너덜너덜해진 것도 아니고, 때려줄 빌미가 될 만한 저항도 하지 않을 것 같다. 너무 어중간해서 생각보다 지겹다. 좀 더 놀 수 있을까 했더니.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이놈의 희망이 타인을 향한 믿음에서 비롯됐으리라는 점이었다.
제난은 눈을 내린 그의 얼굴이 다시 저를 쳐다보게 만들고, 물었다.
“무슨 짓 하려는 거야?”
“아무 것도.”
“그 순진한 동생한테 희망이라도 걸었나. 세리크 측에 가서 나라를 되찾겠다든가 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그가 매달릴 것은 그것밖에 없음이 자명했다. 역시 다소 수고를 들이더라도 동생까지 데려오는 쪽이 좋았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미 늦은 얘기지만.
“뭐 됐어. 조만간 그런 얼굴도 못 할 테지.”
제난은 이제 장기전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지금 단계로는 제약이 너무 많다. 일단은 분부를 받잡아 공작의 신용을 벌고, 이후로도 가까이 지낼 수 있게끔 만들어두는 게 중요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고상하신 왕족을 욕보일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무의미하게 서둘러 뭉개버리는 것은 아깝다.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사양 말고 말씀해주세요?”
불쾌해질 만한 간드러진 목소리로 대화를 마치고, 아피아를 놓아준 제난이 차에서 나왔다. 그러자 부하인 청년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제난 님, 실례합니다만.”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요령도 없어 보이는 녀석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 이국의 땅을 밟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왕의 흉행을 막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이상에 불타고 있을 것이다. 쓸데없다.
제난이 청년을 곁눈질로 쏘아보며 물었다.
“토록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곳에서 교체할 예정은 아니었지만, 이전 마을에서 착오가 있어 일단은 시도해봤다.
“아, 그게, 역시 수가 적어 무리인 듯하고…. 그보다 연락이 왔습니다.”
이쪽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헤아렸는지, 청년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 행동이 흥미를 생기게 할 리도 없었으므로, 제난은 글을 확인한 뒤 쥐어짜줄 작정이었다.
청년을 구한 것은 그 연락의 내용이었다.
읽자마자 제난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매가 누그러진다. 뿐만 아니라 제난은 은연중에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좋아, 좋아, 좋아. 정말이지 좋은 애들이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심상찮은 분위기에 떨고 있는 청년을 향해, 제난이 슬며시 눈을 돌렸다.
“어이.”
“네…, 넵!”
“너한테 잠시 지휘를 맡긴다.”
갑작스러운 하명에 대답하지 못하고 놀라 눈을 번쩍이는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난이 말을 계속했다.
“알겠지. 천천히 가. 내가 따라갈 수 있게. 혹시 모르니까 안에 있는 놈한텐 내가 없다는 거 알리지 말고.”
그리고 제난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선물도 금방 갖고 올게.”
16-7
나무들 사이를 누비는 길을, 시드는 빠르게 지나갔다. 피곤함 따위를 느낄 겨를은 없었다. 오직 앞만 보고 간다.
그것을 쫓듯이 세피아가 걸음을 내딛었다. 어떻게 해도 시드보다는 좁은 보폭이 되는 그가 거의 종종걸음을 치다시피 해서 따라오며 말을 건넸다.
“세발족, 싫어하지.”
시드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진짜 싫어.”
망설임 없는 말투에 세피아가 계속 물었다.
“…그럼 어째서 도와주려고 해?”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즉답이지만, 세피아는 얼굴을 찌푸리며 대꾸한다.
“그거, 답이 아니야.”
그리고 다시금 묻는다.
“왜 그러고 싶은지 물었어.”
“아무래도 됐잖아, 그딴 건.”
건성인 대답에 세피아가 또 다시 캐물었다.
“되지 않아!”
그제야 시드가 고개를 돌려 세피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세피아는 못을 박기라도 하듯이, 그의 눈을 보며 물었다.
“알려줘.”
혀 차는 소리가 세피아의 귀에 들렸다. 연달아, 불만스러운 듯한 중얼거림도.
“시끄러―. 난 그냥….”
시드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그냥, 그때 있지.”
그리고 다시 한다.
“그 때.”
시드의 발은 무심하게 나아가는데, 말은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세피아는 끈기 있게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없었다.
“멈춰!”
앞을 주시하고 있던 시드가 갑자기 그렇게 경고하며 걸음을 멈춘 탓이었다. 그의 시선을 쫓아가자 인영이 보였다.
세피아는 처음 보는 인간. 하지만 그게 누군지 금방 알아챘다.
“여어, 신스=톨라.”
자그마한 사내가 다정하게 손을 흔들었다. 시드는 대답 대신 주먹을 꽉 쥐었다. 명백한 적의가 세피아의 살갗을 자극했다.
세피아는 뒤를 돌아봤지만, 어느새 뮤아와 닛카를 따돌렸는지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배달해주느라 수고가 많네.”
차라리 두 사람이 없는 게 나은지도 모르겠다. 세피아가 단검의 칼자루에 손을 댔다.
저항하는 기색인 두 사람을 향해, 제난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꼬맹이들은. 다루기도 힘들고 곤란해.”
하지만 그 탄식에는 기쁨이 담겨 있다.
“당연히 알고 있겠지, 왕자님. 깜빡 실수해버려도, 형을 잡은 지금은 변명이 통하거든.”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세피아는 기가 질렸지만, 자리에서 달아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널 죽일 생각은 없지만.”
거기서 시선은 작은 소년으로부터 벗어나 함축적인 말과 함께 유우족 소년에게 향해졌다.
“자, 신스=톨라.”
그 순간, 시드가 땅을 박찼다.
- 원문은 乳兄弟. 같은 유모 밑에서 자랐는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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