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15-1
잠든 세피아를 품에 안고 어르던 뮤아는, 두 사람이 돌아오자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아피아는?”
그 덕에 성공적으로 도망쳐 이미 집에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깨지고 말았다. 닛카는 다시 찾으러 갈까 망설였지만, 밖은 이미 완전히 저물어버렸다.
“세피아는 무슨 일이에요?”
새근거리며 자고 있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다지 피곤한 기색도 아니었다.
“닛카가 뛰쳐나간 뒤에, 세피아는 어쩌고 있으려나 싶어서…. 위에 올라가봤더니 아무도 없었어. 깜짝 놀라서 찾으니까 찬장에서 소리가 났고. 열어보니까 이렇게 자고 있었어. 일어나지도 않고.”
닛카가 세피아에게 다가가 호흡이나 맥박을 확인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약이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방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는, 닛카의 손에 작은 병과 컵이 들려 있었다.
“역시 제 짐에 손댄 흔적이 있어요. 거기다 이 컵, 희미하게 냄새가 남아있고. 사용한 건 아피아죠?”
“맞아. 그거.”
뮤아가 침대 위에 나뒹굴던 자루를 내밀었다. 움직일 때마다 짤랑짤랑 소리가 나는 그것은, 열어보지 않아도 돈이 들어있을 게 확실했다.
“찬장에 있었어. 세피아가 안고 있었나 봐.”
즉, 아피아가 세피아를 재우고 품에 돈을 쥐어준 뒤, 찬장에 숨겨둔 것이다. 그 행동의 의미도 어쩐지 짐작된다.
“……아피아는 처음부터 떠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그것으로 자신의 실수가 만회되는 건 아니다. 닛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막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테고, 애초에 추격자가 없었더라면 아피아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세피아를 깨워보죠.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한 닛카가 손에 든 병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겼다.
“조심하시고. 직접 먹이지 말고 냄새를 맡게 하세요.”
후각이 뛰어난 닛카로서는 꽤 괴로운지, 그는 울먹이다시피 하며 뮤아에게 그것을 건넸다. 세피아에게 냄새를 맡게 하자, 세피아는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꺼풀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한다.
“세피아, 일어났어?”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세피아에게, 뮤아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사람들이 없는 마을에 도착한 거, 기억나?”
그러자 세피아는 자기를 쳐다보는 세 명의 얼굴을 알아본 듯했다. 방 안을 둘러본 세피아의 눈동자에 이해의 빛이 차오른다.
“그렇구나.”
세피아는 뮤아의 품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가 버렸구나.”
입을 다물고 고개 숙인 세피아는 그대로 울음을 터트리는 듯했다. 하지만, 긴 침묵 뒤에 들어 올린 얼굴에 눈물 자국은 없었다. 기다려주는 세 명을 본 세피아가 결의에 찬 눈으로 말을 꺼냈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피아도…, 자기가 없어지면 모두에게 털어놓으라고 했어요.”
격식 차린 말투는 평소의 세피아가 하는 말투와 동떨어져 있었지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태도를 달리 하는 데 익숙한 모양이었다.
“부탁드릴게요. 저를, 벽까지 데려가주세요.”
그리고 세피아의 머리가 세 사람에게 깊이 숙여졌다.
15-2
세피아는 물이 담긴 잔을 손에 들고,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은 저희의 배경부터 이야기하는 게 가장 좋겠어요.”
위층의 방에는 앉을 데가 침대밖에 없어서, 네 사람은 거실이었던 곳으로 옮겨 얘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드는 복도 입구 쪽에 진을 쳤다. 뮤아가 몇 번이나 돌아보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타일러도 꼼짝하지 않았다.
“저희들이 자란 곳은 피아칸트라고 하는 곳입니다. 거기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 도시로, 리탄트 중앙에 있어요. 저와 아피아는 거기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세피아는 슬며시 자신의 머리에 감긴 천에 손을 댔다. 그것을 풀어내면, 그의 이마에 새겨진 표식이 드러난다.
“저희가 쫓기는 건, 이 표식 때문이에요.”
그 순간 닛카는 뮤아가 굳는 것을 알아챘다. 닛카는 그녀의 오해를 풀기 위해 끼어들었다.
“뮤아, 그게 아니에요.”
아버지의 기록에 적혀있었다.
적이었던 세발족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죄인의 표시를 이마에 찍도록 정한 것이 아니냐고.
“호리라에서 이마에 새겨진 표식은 죄인의 증표입니다. 하지만 리탄트에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요. 자, 보세요. 저건 낙인이 아니잖아요?”
듣고 보니, 표식의 주위에는 탄 자국이나 오그라든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만져 봐도 돼?”
“그러세요.”
승낙을 받은 뮤아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세피아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요철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자신의 이마와 똑같은 감촉이었다. 표식은 안에서 비치기라도 한 것처럼 솟아나 있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자 세피아는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잘은 모르겠어요. 그저, 이것은 이렇게 있는 거라는 것밖에. 타고난 것이니까.”
“아피아에게 있던 것도 같은 거야?”
“같은 거예요. 이것은….”
세피아는 확인하듯 스스로의 이마를 한 번 매만진 뒤에 말을 이었다.
“이것은 아네키우스의 선정인이라고 불리는 것. 신에게 인정받은 후계자의 증표.”
그리고 그는 진정한 이름을 고한다.
“저의 정식 이름은 세피아=세리크=리탄트=파다. 리탄트의 10대 국왕, 테피아의 아들이자 아피아와 함께 차기 국왕 후보입니다.”
15-3
순간, 뮤아는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재차 머릿속에서 정리해, 어느 단어에 간신히 닿았다.
“어, 그건…… 왕자님이라는 뜻?”
“음, 뭐, 그런 느낌.”
하지만 갑자기 밝혀진 비현실적인 상황에, 다른 두 사람의 반응은 희미했다.
“왜 나만 놀라고 있는 거야.”
뮤아가 멋쩍어하며 남자들을 둘러봤지만, 두 사람은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아니, 저는 아마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고.”
“그게 뭐 어때서. 시릴하고 다를 것 없잖아.”
수상한 정보를 가진 인간과 호리라의 공주를 반말로 부르는 인간에게 물은 제 잘못이라며 뮤아는 내심 반성했다. 저들에게는 충분히 현실적인 얘기였던 것 같다.
듣고 보면, 칼을 다루는 데 익숙하다거나 갖고 있는 지식이 묘하다거나, 짚이는 데가 없지도 않다. 시드가 공작가의 자제라는 것보다는 연결하기 쉽다는 느낌도 든다.
“저희를 쫓는 사람은 트리프라트 공. 나티아=파다=트리프라트, 아버지의 형. 저희의 백부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혹시 반역이야?”
“……그렇게 되네요. 갑작스러웠어요. 그날 밤, 저희들은 방에서 습격당했습니다.”
그날 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는데, 왠지 묘한 설렘이 감돌았다. 얕은 잠에서 깨어난 세피아가 달빛을 보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발코니로 가는 문을 지났을 때였다. 그 순간 거기 있던 복면 쓴 남자를 맞닥뜨렸다.
순간적으로 세피아는 경직됐지만,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는지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것을 깨트린 것은 근처 아피아의 방에서 들려온 소음이었다. 소리에 놀라 돌아선 세피아를 남자가 뒤에서 붙들었다.
그 뒤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너무나 급박하게 흘러가서, 세피아는 전부를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나는 것은 아피아가 옆방의 발코니에 나타난 것, 난간을 밟고 이쪽으로 뛰어온 것, 그 다음 순간 뜨뜻한 것이 머리에 흐르고 아피아가 자신을 구해낸 것, 그리고 발코니에서 호수로 뛰어드는 순간 느껴진 물의 차가움이었다.
“성은 호수 위에 있어요. 저희는 수영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물가까지 닿았습니다.”
성에 돌아갈 수는 없다. 들어가는 길은 하나뿐이고, 배를 통해 가는 것도 장소가 제한돼 있다.
“그건 침입자가 아니다.”
아피아가 흥건히 젖은 긴 머리를 쥐어짜며 그렇게 말했었다.
“얼굴을 몇 확인했어. 본 적 있는 위사들이더군.”
지금 돌아가면 잡힐 게 확실했다. 두 사람은 왕도를 떠나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그러다 듣게 된 것은 성에 전염병이 돌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저희들도 쓰러졌다는 소문이었다.
“저희들은 세리크 후작에게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 백부에게 대항할 만한 힘을 가졌고, 확실하게 저희의 아군이 되어줄 사람은 그뿐이었으니까.”
세피아는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겠지만, 그곳은 외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후작의 영지는 리탄트 최남단에 있어요. 거기 가기까지 여러 영지들이 있고, 전원이 저희의 편일 가능성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정한다.
벽을 넘어 낯선 나라를 경유하기로.
15-4
“잠깐만. 거기서 벽을 넘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모르겠어.”
이야기는 뮤아의 물음에 의해 중단됐다.
가령 자신이 마을에서 남쪽으로 가고자 할 때, ‘대삼림을 종단하는 것은 무리니까 벽을 넘어가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아무리 급해도 리탄트를 거칠 생각은 안 할 터였다. 뮤아에게 그것은 너무 비약적인 결정이었다.
세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재개했다.
“그건 이 사태가 벌어진 원인과도 관련이 있어요.”
그것이 모두가 이상해진 원인이다.
“제가 말하기엔 그렇지만, 아버지가 나쁜 군주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에 큰 불만이나 혼란도 없었고, 반역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아버지께서 진행하시던 어떤 계획을 제외하고는.”
어째서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주위 모두에게 반대받으면서도 매달렸는지, 세피아로서는 알 수 없지만 잘못됐다고도 말할 수 없는 그 이유.
“그것은 리탄트와 호리라의 국교 회복이었습니다. 십수 년 전부터 아버지께선 호리라에 사절을 보내며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군. 들어보니 염병할 아버지네.”
뮤아에게는 어느새 얼굴을 내민 시드가 작게 그런 말을 하는 게 들렸다. 그리고 가장 크게 반응한 것은 닛카였다. 닛카는 한숨을 쉬더니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생각한 대로군요. 제 아버지는 그런 사절 중에 한 분이었던 거예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세피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데없는 이야기에 뮤아가 어리둥절해 했다.
“아, 맞다 너. 반은 세발족이라는 게 진짜였냐!”
게다가 뒤에서 들여다보던 시드가 아우성치는 바람에, 곤란하다. 자리를 잘못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진짜고 뭐고. 사실입니다. 두 분께는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비밀로 해서 죄송합니다.”
닛카는 단칼에 자르며 세피아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할게요. 그보다는 이쪽 이야기를 듣죠.”
확실히 지금은 세피아와 아피아가 처한 상황부터 알고 싶다. 시드도 물고 늘어지는 대신 다시 문간에서 떨어져, 복도의 벽에 기대는 자세로 돌아갔다.
“덕분에 저희는 이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는 것처럼 지독한 곳이 아니라는 것도. 게다가 추적자를 헷갈리게 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실제로 발견된 건 한 달 가량 지났던 뒤다. 세피아가 슬슬 들키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아피아는 반드시 추격자가 올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는데, 그게 세피아가 모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는지, 조심성 때문이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희가 일부러 벽을 넘는다는 선택을 한 건,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하는 일이 잘못되지 않았노라고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호리라라고 하는 나라와 일찍이 함께 지내던 종족들과, 다시 어우러지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솔직히, 저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생각했어요. 이 나라에 대해서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쪽에 와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어떤 것은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닛카 외에 저희가 세발족이라는 걸 들킨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바로 다르지 않음을 증명한다.
“어째서 우리가 저런 벽을 세우고 갈라서야만 했는지, 이제는 이상하게 느껴져요.”
벽은 쭉 변함없는 얼굴로 서 있다. 그래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벽에 지나지 않고.
결코 신이 내린 것이 아니라 과거 사람의 손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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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저희는 벽을 넘어 이 나라에 왔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만났어요.”
거기부터는 알고 있는 이야기다.
“지금 쫓아오는 사람들은 큰아버지의 끄나풀들이군요.”
닛카가 확인차 물었다.
“아피아는 그렇다고 했어요. 백부는……, 정말로 왕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이 기회에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거겠죠.”
“어라? 근데 그 백부는 왕의 형이잖아. 왕이 되고 싶은 거면 어째서 동생이 왕위를 이었어?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나?”
뮤아는 다시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세피아의 말은 틀림이 없지만 이상한 지점들이 있다. 세피아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태어난 순서, 능력, 인품, 핏줄, 그런 것은 리탄트의 왕위 계승에 일절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왕위는 사람이 아니라 신에게 달린 것.
“이유는 단 하나. 백부에게는 선정인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뿐이에요.”
선정인을 받은 자만이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받아 이름에 리탄트를 넣는 것이 용납된다. 즉 호리라에서처럼 계승권 몇 위 같은 표현은 일절 없다.
“리탄트에서는 왕의 아들이라고 해서 후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정인은 한 세대에 단 한 사람, 타고나는 것. 왜 나타나는지, 어떻게 해야 나타나는지, 누구에게서 나타날지는 전혀 알지 못해요.”
왜냐면 그것이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 예를 들어서, 나처럼 왕과는 전혀 관련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표식만 있으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되는 거야?”
“돼요. 그런 경우도 존재합니다.”
세피아가 딱 잘라 말했다.
“다만 나오기 쉬운 가문이 있기는 한 것 같아요. 최근엔 3대째 파다 가문이 이어갔고.”
그것은 기묘한 제도로 보인다. 세피아의 이마에 나타난 표식은 주로 아네키우스를 나타내는 문장과 모양도 다르고, 신기하긴 하지만 그런 것으로 왕을 결정해도 되는 건가, 뮤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왕의 아이로 태어났다고 해서 왕에 걸맞다고만은 할 수 없는 거다.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복도를 흘끗 쳐다봤다. 혈연이라는 것도 썩 믿음직하지 않은 방식일지 모른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방금 한 세대에 한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아피아에게도 있죠?”
“저희는 특수한 사례예요. 옛날에도 한 번, 두 사람이 나온 적은 있지만, 저와 아피아처럼 형제가 가진 경우는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지금 그 표식을 가진, 다시 말해 왕의 자격을 가진 자는 리탄트의 현왕과 아피아, 세피아, 세 명입니까?”
세피아는 닛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닛카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닛카가 묻기를 기다리던 세피아는, 그가 입을 열지 않자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제 얼추 다 얘기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리크 영지에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저는 표식을 가졌을 뿐,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에 지나지 않아요.”
자리에서 일어선 세피아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저를 계속해서 동행시켜 주세요. 성산 근처의 벽을 넘자마자 세리크 영지입니다. 저는 반드시 거기 가야합니다.”
그제야 뮤아의 위화감이 뚜렷해졌다.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면 무척 이상하다.
“그건 문제되지 않지만…, 그것보다 아피아는 어떡해?”
아피아를 구하러 가잔 얘기가 아니었나. 당연히 세피아가 아피아를 도와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다. 그렇게 묻자 세피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뮤아는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세피아는 눈을 피하며 평온하게 말했다.
“아피아는 성으로 돌려보내질 거예요.”
“그럼 그 전에 도와줘야 하지 않아?”
“……그건 아피아가 바라는 게 아닙니다.”
세피아는 애써 냉정한 목소리를 가장하는 것 같았다.
“저희는 약속했어요. 어느 한쪽이 잡혀가도 도와주지 않기로. 남은 사람이 반드시 세리크 측에 간다고. 그러니 아피아를 도우러 갈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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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의 말은 뮤아에게 석연찮은 기분을 안겨다줬지만, 뮤아는 반박을 망설였다. 저는 외부인에 불과하다. 당사자들밖에 모르는 것도 있다. 게다가 저희들은 보잘 것 없는 아이들의 집합이라, 섣불리 구하러 갔다가 세피아까지 잡히는 것도 염려된다. 그 점을 생각하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아군이 되어줄 어른들을 구해서 탈환하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도 기분이 개운치 않다.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다.
“얘기가 좀 다른데요.”
그때,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있던 닛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말해도 될까요?”
반대할 이유야 누구에게도 없다. 무언의 동의를 얻은 닛카가 얘기를 시작했다.
“자, 뮤아.”
“어, 나?”
분명 닛카가 본인의 사연에 대해 세피아에게 물어볼 줄 알았던 뮤아는, 갑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는 데 깜짝 놀랐다.
“만약 뮤아가 이미 존재하는 나라의 왕이 되려고 한다면 뭘 하겠어요?”
그것도 엉뚱한 질문이었다.
“왜?”
“괜찮으니까요.”
“어, 그게…, 왕을 해치운다?”
어쩔 수 없이 생각한 답을 했다. 제가 보기에도 단순한 대답인데, 닛카는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제일이죠. 하지만 해치우고 나서가 힘들어요. 좀 더 평화적인 방법은?”
“음, 그럼, 혼인?”
그리 말하는 순간, 뭔가 뾰족한 것이 목덜미를 찌른 것민 같아, 뮤아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두운 복도뿐이라, 뮤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왕이 되지 못해요.”
“그리고…, 왕을 죽인다, 일까.”
“호리라에선 그렇게 왕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닛카는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려 보였다.
“리탄트에서는, 선정인 없는 자는 왕이 될 수 없다. 절대로.”
호리라처럼 배우자에게도 계승권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뮤아는 그 의미를 잠시 생각해보다가, 이내 찌푸린 얼굴이 된다.
“그럼 어떻게 해도 왕이 될 수 없잖아.”
“그렇죠. 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무리예요.”
거기서 닛카가 난데없이 세피아를 돌아봤다. 두 사람의 대화를 굳은 얼굴로 지켜보던 세피아가 움찔 몸을 떨었다.
“만약 표식을 가진 자가 모두 사망한 경우엔 어떻게 되나요?”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땐 바로 새 계승자가 태어났다고 했어.”
“그렇군요. 그런데 그런 계승자가 어디서 태어날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세피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닛카는 청산유수로 말을 늘어놓았다.
“즉, 왕위를 찬탈하고 싶은 자에게 그 방식은 어리석다. 계승자가 자신의 진영 안에서 태어날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찬탈자에게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침묵 뒤에, 유일한 답이 말로써 나온다.
“정당한 왕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
그것밖에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그러냐는 뮤아의 시선에 닛카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정말로 묻고 싶은 건 다음입니다.”
앉아있는 세피아가 무릎 위로 주먹을 꼭 쥐고 있다는 것을, 뮤아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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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묻고 싶은 것은, 다음의 정당한 왕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닛카가 꺼낸 말은 이미 답이 나온 질문의 반복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아, 뮤아가 거기 끼어들었다.
“그건 아까도 들었잖아. 아피아나 세피아지?”
“맞아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 왕은 둘 중 누구냐는 거죠.”
닛카의 빙빙 에둘러가는 버릇은 최근 들어 아주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 같다.
“왕은 두 명일 수 없지요. 이런 경우엔 어느 쪽이 즉위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즉각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물음이었는데, 세피아는 몹시 난감한 것 같았다.
“전례가 없으니까.”
그것은 분명히 도망치는 말이다. 정해져 있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계승과 똑같이 다뤄질 것 같은데요.”
통상적으로, 상속은 첫째가 한다. 리탄트에서도 그것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피아가 계승하는 쪽이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겠죠. 그 증거로, 그 추적자들도 당신보다 아피아의 확보를 우선시하고 있었어요. 아피아를 내준 채로 당신이 움직이면, 그건 반역이라고 간주되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잖아.”
국왕이 붙잡혀 있는 이상, 설령 아피아와 세피아가 함께 세리크 영지에 당도한다고 해도, 현 국왕을 내쫓는 반역자 취급이다. 이 상황에 있어서는 순순히 잡혀가는 것 외의 방법은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싫은 일이지만 타국의 사람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아피아라면 당연히 알고 있었을 거라는 거지. 정당한 후계자와 반역자는 어지간한 결점이나 세력차가 없는 한, 후계자 쪽이 유리하잖아요. 강제로 즉위한 거라고 알려봤자 반역자의 허튼소리로 치부될 공산이 크니까. 그런데도 정통성 있는 후계자인 자신이 잡히는 쪽을 택하는 건 이상하죠. 게다가 뮤아, 열지에서 아피아가 보인 태도를 떠올려 봐요. 그게 누구 하나가 붙잡히면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걸로 보이던가요? 그러니까 어쩌면 아피아는 처음부터…….”
“……맞아.”
닛카의 연설은 억누른 듯 묵직한 목소리에 가로막혔다. 세피아는 온몸을 떨어서, 한 마디 한 마디를 억지로 목에서 쥐어짜내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님은 이미 살해당했을지도 몰라. 살아있어도, 아피아가 잡히면 반드시 죽어. 아피아가 다음의 왕이니까. 그놈들은 즉위와 혼인을 강요하겠지. 하지만 그 일엔 시간이 걸려. 내가 세리크 영지에 도착해서 안전해질 정도의 틈은 만들어질 거야.”
목이 잠겨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세피아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리고 아피아가 없어지면……, 나만이 정당한 왕이야.”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감당하려는 그에게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을 빼고는.
뮤아는 아까부터 등 뒤로 느껴지는 무거운 압력이 신경 쓰였다. 줄곧 목덜미를 찌르던 찌릿찌릿한 느낌이, 이제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느낌을 주는 발생원이 천천히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보지 않아도 위험한 공기가 등에 닿는 게 느껴진다. 돌아서서 그것을 확인해볼 수는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죽는다.
그런 근거 없는 기분이 와 닿는 중압감이었기 때문이다.
“야.”
“히익!”
자신을 부른 것도 아닌데, 뮤아는 엉겁결에 의자째 비켜섰다.
“다시 말해봐. 누가, 뭐라고?”
문을 막다시피 하며 팔다리를 벌리고 선 시드가, 거의 짐승과 진배없는 흉포함을 몸에 두르고서,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15-8
녀석이 싫었다.
녀석의 눈이 싫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한 눈이 싫었다.
초조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세발족이고.
빌어먹을 놈이고.
거슬리는 말을 하고.
강하고.
강하게 있어야 했다.
“……아피아가, 항상 옳으니까.”
그런데 멋대로 지껄이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뭐가 자신이 원인이냐. 뭐가 자신이 약하다는 거냐. 거짓말쟁이. 사기꾼. 세발족놈. 비겁한 놈.
그러고보면 내가.
젠장.
“그렇게 하면 백부의 명분도 없어져. 싸움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뭐가 죽여도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녀석을 죽인다고?”
함부로 사라지더니 녀석이 죽는단다. 이 녀석도 모르는 새에, 모르는 곳에서 사라진단다. 뭐야, 그게. 까불지 마. 웃기지 마. 웃기지 마라!
“시드, 그런 식으로 말……!”
“그렇잖아. 틀려?”
눈을 떴더니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 영원히, 없다.
그 순간의 기분을 알고 있다.
“틀리지 않았어.”
그런 기분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우리는 리탄트를 위해서 살아가야 해.”
아무리 말을 거듭해도.
“그게 표식을 받은 자의 소임이니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속이 쓰리다.
장례 행렬이 종을 울린 것조차 모르고 꿈은 눈앞에서 일그러지고 뜨거운 몸에 피가 흐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무슨 연유에서였는지도 모르는 채 무언가가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엿이나 먹어라 밀려든 감각이 고개를 치켜들고 그건 내가 아닌 녀석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이것은 나쁜 꿈이다 전부 나쁜 꿈이다 세상이 그런 일그러진 꿈에 침략 받으려 하니 잠들어선 안 되고 깨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깨어나는 순간에, 따뜻했던 피부가 껄끄러운 돌처럼 변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악몽으로, 반복해서 찾아와 아물지 않는 상처를 마구 긁어댄다.
조바심이 난다.
왜 자신이 이런 기분을 느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세발족 탓이다.
벽 같은 걸 넘어오려 한 잘못이다.
“아, 그렇구나. 그래.”
세발족과 엮인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럼 나는 여기서 작별이다.”
그렇게 하면, 이제 싫은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15-9
시드는 그렇게 내뱉고, 문간에서 몸을 떼어내 발길을 돌렸다.
“어, 자, 잠깐, 시드!”
놀라 만류하는 뮤아를 매정하게 대한다.
“나는 너희들과 같이 가지 않겠다고 했어.”
“기다리라니까!”
불빛이 없는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는, 곧 짐을 들고 돌아왔다.
“그럼.”
그리고 뮤아의 제지도 듣지 않고, 짧은 인사와 함께 집에서 떠나려고 했다. 닛카가 묻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숲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아피아를 구하러 가는 건가요?”
그것은 고의적으로 시드의 신경을 긁는 질문이었다.
“하?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냐!?”
즉각적인 반응을 닛카가 놓치지 않았다.
“이유야 충분히 있잖아요.”
닛카는 태연한 얼굴로 받아쳤다. 시드는 아피아를 구하러 가는 거라고 생각되는 게 재미없을 테니까,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서는 떠날 마음도 먹지 않을 것이다.
“세발족을 도울 이유 따윈 하나도 없어. 대체 어떤 이유로 그래야하는지 말해봐.”
시드는 닛카가 여느 때처럼 까다로운 억지를 부리며 끈질긴 공격을 해올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 수법엔 넘어가지 않을 거라며 자세를 잡았다. 그래서 들켰던 것이다.
“당신이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가장 단순하고, 가장 중요한 그 부분을.
“아닌가요?”
바로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제기랄.”
욕설은 오기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시드는 닛카를 꿰뚫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째려보며 손을 뻗었다.
“그거 내놔.”
닛카가 무릎에 올려뒀던 검을 들고서 시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도 갈 테니까요. 시드만 갔다간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눈치 못 챌 것 같고.”
“쓸데없는 참견이야. 나 혼자로 충분하니까 오지 마.”
“스스로 벌인 일에 책임지게 해주세요.”
시드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세피아에게로 홱 고개를 돌렸다.
“야, 세피아.”
그리고,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불렀다.
“너는 그대로 세리크한테 가는 거, 그걸로 좋냐?”
질문을 받은 세피아가 눈을 피했다.
“그치만 그게 아피아가 바라는 거니까…….”
“그 녀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내 알 바야.”
시드는 팔짱을 낀 채, 좀 전까지의 조바심은 없었던 것처럼 차분하게 거듭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 거잖아. 그 녀석을 죽게 만들고, 잘도 왕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그것은 물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싫어!”
세피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치고 있었다. 한 번 입 밖에 낸 생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싫어. 역시 싫어. 없어져 버리는 건 싫어.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건 싫어!”
몇 번이고 들었다. 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그러니까 각오하라면서 저를 계속 타일렀다. 울거나 말거나, 그 사실은 바꿀 수 없다. 우는 것은 그저 아피아를 곤란하게 할 뿐인, 어린애 같은 짓이다. 마음 편하게 보내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다.
하지만, 역시.
이것은 울어도 되는 일이다. 울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각오도, 납득도 할 필요 없다.
그냥, 싫다.
굵은 눈물을 쏟으며 흐느끼기 시작한 세피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은 시드가 속삭였다.
“좋아, 가자.”
시드는 고개를 끄덕이는 세피아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한편, 뮤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뮤아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커다란 한숨과 함께 충고의 말을 토해냈다.
“너희 말이야, 지금부터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 상대는 일단 록차를 전속력으로 달릴 거야. 무모하다는 소리 안 들어?”
“잔소리는 귀에 박혔어.”
시드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뮤아의 잔소리를 흘려들었다.
“일단 너한텐 따라오라고 안 했잖아. 넌 마음 편하게 어딘가 순례를 계속핫”
난데없이 코끝을 얻어맞은 시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전혀 아프지 않지만, 화가 난다.
“뭔 짓이야!”
뮤아는 덤벼드는 시드에게 다시 오른손으로 코끝을 튕기는 시늉을 하며, 하나하나 훈계조로 말했다.
“알겠어? 난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얘기를 들었었다고. 어딘가 가라니, 네가 할 말이 아니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겠단 거야, 넌.”
“같이 간다고. 세피아한테 이상한 물이라도 드는 건 참을 수 없어.”
“저는 걱정 안 하시나요?”
“닛카는 알아서 해.”
그리고 뮤아는 세 사람을 차례로 짚으며 지적했다.
“다들 잊어버렸나본데, 너희 전부 멋대로 날 따라왔던 거니까.”
“같이 갈 거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
“무슨 말 했어?”
귀찮아진 시드는 고개를 저으며, 닛카의 손에서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검을 가로챘다. 그 검을 허리에 매달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선언했다.
“서두른다. 놈들이 벽을 넘기 전에 잡아주지.”
말리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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