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11-1
요란한 바람이 정면에서 몰아쳐 앞길을 막는다. 나아갈 때마다 모래와 돌멩이가 얼굴에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오히려 즐거워진 시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 속을 돌진했다. 입을 열면 모래가 들어오는 탓에 꾹 다문 채 지은 웃음은 차라리 으르렁대는 것에 가까웠지만.
“어이, 어디야.”
바람이 지나가 시야가 트인 곳에서, 시드가 한 손으로 질질 끌고 온 청년을 향해 물었다.
“모, 몰라!”
생이족 청년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는 뮤아 일행에게 처음 말을 건 남자였다. 도망치는 도적들의 뒷덜미를 대충 붙들었는데, 당첨이었다. 사실 말단은 아닌 쪽이 좀 더 좋았지만, 뭐, 이건 이것대로 다룰 수 있는 거다.
“파묻히고 싶어?”
“……그게, 알아보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뜻으로.”
다섯 살 정도 연하일 시드의 협박에도 즉각 반응한다. 만에 하나, 관록이 쌓인 중년 남자 상대로는 이렇게 잘 풀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물론 여기 올 때까지 쌓인 것도 풀 겸 한 번 머리끝까지 묻어준 덕에 생겨난 솔직함이기도 하다. 그는 꾸물꾸물 품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계측을 시작했다.
“그러니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거점이 여러 군데 있어서, 이렇게 되면 위치를 바꿀 확률이 높은데.”
“다 돌아보면 되지.”
“물을 갖고 있지 않은데요.”
“애써봐.”
“애쓸 수 없어요. 지금도 목이 말라서 별 수 없다구요. 아까부터 조금도 못 마시게 하고.”
“아지트에 도착할 때까지 너한테 줄 물은 없어.”
“좀 봐주세요―.”
청년은 아예 엉망진창으로 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도중에 쓰러지는 것도 귀찮다고 생각한 시드는, 하는 수 없이 물을 내밀었다.
“주인님(旦那)은 안 마실 건가요?”
“이상한 호칭 쓰지 마.”
“그럼 어떻게 불러드립지요?”
“이상한 존댓말도 쓰지 마. 그냥 이름으로 불러. 시드다.”
“저는 솔리츠예요.”
“네 이름 따윈 안 물어봤어.”
시드는 그의 자기소개에 차갑게 대꾸했다.
“그것보다 위치는 아는 거겠지.”
“물 정도는 느긋하게 마시게 해 주세요.”
“멋대로 지껄여라.”
종잡을 수 없는 시드의 태도 탓에, 솔리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완전 꽝이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소박하게 지도나 팔면서 살걸.”
그렇게 불만을 투덜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지도를 향해 돌아섰다.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시드가 솔리츠에게 말을 걸었다.
“네놈들은 왜 우리를 노렸지?”
“마을에서 봤을 때 꽤 그럴 듯했으니까, 혹시 먹을 만한 거 있나 싶어서……아, 아파요, 아파!”
마지막은 시드가 귀를 잡아당긴 바람에 지른 비명이었다.
“대충 말하면 못 알아들어.”
한껏 잡아당겨진 귀를 감싸며 ‘너무하네, 섬세함이 없잖아’라며 중얼거리던 솔리츠는, 시드가 노려보자 마지못해 똑바로 대답했다.
“평소에는 그다지 상대하지 않아요. 사람은. 귀찮잖아요? 그래도 잘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결손아가 비싸졌다나. 누가 취미라도 만든 게 아닐까.”
“아하.”
시드는 맞장구라도 치는 것처럼 코웃음을 쳤다.
잘은 몰라도, 유쾌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별로 자세히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궁금한 곳으로 주제를 바꿨다.
“그럼 그 새는 뭐야.”
“아니, 아무리 시드 씨래도 그것만은 말할 수 없…아야야야얏!”
“찢어버린다.”
“옛날에는 자주 사용했다는데, 뭔가 길들이기 어렵다던가 그래서, 지금은 보기 드문 저희 비밀병기라구요.”
“흠. 누구든 탈 수 있는 거야?”
“그런 건 무리예요. 강도 높은 훈련과 노력을 해야 하고…….”
“재밌겠는데.”
그걸 타고 모래사장을 달려 나가면 재밌을 것 같다.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 괜한 의욕이 고무된 시드는 솔리츠로부터 물통을 빼앗았다.
“좋아, 가자. 어디야?”
“아, 그, 그게.”
“……묻어버린다?”
11-2
언제부터 보였는지, 그들은 표적이 여기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좁은 간격으로 오두막을 에워싼 모습에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뚜렷하게 읽혔다. 처음에는 안이한 편이었던 저들도 몇 번 되풀이하며 차츰 강수를 두는 듯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도, 무슨 수든 써 보이겠다는 표현일 것이다. 뮤아 쪽에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차도 있고요.”
남자들 뒤에는 록차가 대기하고 있다.
“해치울 수 있을까?”
뮤아는 순간적으로 근처에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원래는 시드의 것이었지만, 그때 이후로는 아피아가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시드나 아피아는 가볍게 휘둘렀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그만한 무게가 있었다. 자신이 사용했다간 속수무책으로 휘둘릴 듯싶었다.
“저는 시드가 아니고, 뮤아는 아피아가 아니에요. 그건 생각만으로도 소용없어요.”
닛카에게도 깨끗이 기각됐다.
“그럼 어쩌지?”
뮤아가 묻자, 차에서 가져온 짐을 열심히 살펴보던 닛카가 뒤로 돌아서 간단히 답했다.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이윽고 삐걱대는 계단 소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
“어이, 들리나?”
“…무슨 일입니까?”
닛카가 반응하자, 상대는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거기 있는 형제를 이리 넘겨.”
거기서 닛카와 뮤아는 잠시 서로를 마주봤다. 세피아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어쨌거나 협상 시작인 듯싶었다. ‘저들은 세발족이며 아피아와 세피아를 잡으려 한다.’밖에 알지 못하는, 적은 패로 협상을 진행해야만 했다.
우선 닛카가 문 앞에서 단호한 어조로 청했다.
“계단에서 내려가세요. 그러지 않으면 요구를 받아들이기 곤란합니다.”
문 뒤의 남자는 순간 당황한 것 같았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텐데.”
“이쪽이 나가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게 문을 열어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닛카가,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았다.
방금 전 말을 걸어왔다고 생각되는 남자는 계단 아래에서 닛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면 돌파를 염두에 뒀는지, 그 옆에 더욱 덩치 큰 남자를 데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오두막의 구조는 제법 유리하다. 날지 못하는 저들이 갑자기 위로 쳐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 노후된 벽이나 기둥을 오르려고 해봤자 무너질 수도 있다. 게다가 계단을 한꺼번에 올라올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두 명뿐이라, 위에 있는 닛카가 무기를 들고 밀어 떨어트리면 그만이니 달려들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농성이라도 벌어지면 백기를 드는 건 틀림없이 이쪽이다. 지금도 남자들 중 한 명은 활을 겨누고 있다. 맞으면 죽는다.
들어주는 한에서 최대한 성가시게, 강제로 제압당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저는 닛카=타이카=솔이라고 합니다. 그쪽의 이름은?”
우선은 이름을 대는 것부터 시작한다. 상대에게 있어선 불필요한 과정이므로, 아래 있는 남자는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름을 밝힐 필요는 없겠지.”
“대화를 하는데 이름도 모르면 불편해서요.”
“…토니나.”
닛카가 물러서지 않아서인지, 사내는 마지못해 본명인지 모를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저와 뮤아는 단지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다고 닛카는 생각했다. 이름을 밝히는 건 우선 이쪽을 인간이라고 인식시키기 위한 서두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협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요구하는 게 인간인 만큼, 타협은 어려웠다. 반으로 나눠가지는 선에서 봐 주세요, 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의미에선, 협상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닛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 그리고 상대로부터 정보를 캐내는 것이었다.
11-3
그곳은 바위에 난 통로로, 주위 일대가 온통 암벽의 구멍과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해는 피했지만, 들어가면 역시나 땅에서 피어난 열기로 후텁지근하다.
“자, 없죠. 없잖아요, 그쵸?”
왠지 들뜬 솔리츠가 그렇게 물었다. 간간히 갈라진 통로 끝의 막다른 곳에는 분명 그럴 듯한 짐이 여럿 놓여있었지만,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 여기가 아지트군.”
“그야 뭐. 거짓말 같은 거 하면 졸라 죽일 거죠?”
“죽이지.”
솔리츠의 대답은 거짓말처럼 들렸지만, 최근까지 여기 대규모 인원이 머무른 것은 틀림없는 듯했다. 음식을 먹고 버린 흔적이 남아있는 게 생활감을 더하고 있다. 록차를 매어두기 위한 장소도 있었는데, 짚더미와 똥 냄새가 열기 아래 타오르고 있었다.
시드는 얼굴을 찌푸린 채 둘러봤지만 수확이 없어, 어느새 사라진 솔리츠를 찾았다. 어이없게도 솔리츠는 밖에서 식량을 뜯어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안내해.”
“네―? 봐주세요. 벌써 해가 지는걸요, 봐요.”
솔리츠의 말대로 태양은 빛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곧 어둠이 일대를 뒤덮을 터였다.
“상관없잖아. 가자.”
하지만 시드는 그런 데 구애되지 않는다. 무심하게 내린 결단에, 이제 슬슬 쉬려던 솔리츠가 불평을 토해냈다.
“저기요―, 그렇게 성급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구요. 그렇게 곧장 일을 벌일 리가 없잖아요. 저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도적.”
“정답.”
시드가 대답 대신 솔리츠의 멱살을 잡았지만, 솔리츠는 들어 올려지기 전에 발버둥을 치며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아니, 아니, 아니. 그러니까. 다 잡은 놈을 건드려서 뭐에 써요. 팔아야 하니까 조심스럽게 대한다구요. 나름대로.”
그의 말투는 한결같이 가벼웠다. 아무 근거 없는 말에 시드가 설득될 리도 없건만, 그는 주제를 바꿔 계속 공격해왔다.
“그 잡힌 애의 집안이라든가, 무슨 의리라도 있어요?”
“……아니, 딱히.”
그렇게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쫓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쫓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솔리츠가 더욱 기세를 올린다.
“그럼 됐네요. 못 찾은 걸로 끝내요, 네?”
그렇게 말하고 합류하면 어떻게 되려나.
뮤아는 화를 내겠지. 닛카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거고. 그리고 그 녀석은.
저와는 관계없다.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포기해요.”
그놈들은 세발족이다.
“적당히 포기할 줄 모르면 먹고 살기 힘들어요. 진짭.”
바로 뒤에서 구시렁거리던 솔리츠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봤더니 피가 뚝뚝 흐르는 코를 누르며 훌쩍이고 있었다. 시드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그제야 자신이 왼쪽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지른 건 저였다.
말보다 먼저 손이 나가고 있었다.
“시끄러워.”
그리고 시드는 후련해졌다.
이게 결론이다.
예상치도 못한 반격을 받아 웅크린 솔리츠에게 시드가 물었다.
“사람은 귀찮다고 했지, 너. 소중한 상품이라고.”
“말했죠. 말했습죠.”
솔리츠는 뾰로통한 어조로 대답했다.
“여기가 아지트 중 하나인 건 분명한데, 우릴 잡아서 여기로 돌아올 예정은 아니었지?”
이곳은 소중한 상품을 보관할 장소가 아니다. 더위는 체력을 빼앗고, 식량을 구해오는 것도 어렵다. 짐작컨대 대기실 같은 곳이다.
솔리츠는 침묵했다. 시드가 입술에 미소를 띄우며 선언한다.
“가자.”
쓸데없이 머리를 쓰는 건 체질이 아니다. 내키는 쪽으로 움직이면 된다. 그게 제일 실패 없는 방법이다.
오로지 마음만이 자신을 이끈다.
11-4
이름을 알아내는 데까지는 잘 풀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저들의 이목을 얼마나 끌어내는지가 승부다.
“토니나 씨, 먼저 말해두겠습니다만, 동생 쪽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왜냐.”
“글쎄, 왜일까요?”
도발할 생각이 없는데도 쉽사리 그런 말투가 되고 마는 것은 자신의 나쁜 버릇이다. 닛카는 반성하면서도, 지금은 그 점을 최대한 살리기로 했다.
세발족 사이에 술렁이는 동요가 퍼져나가는 게 보였다. 허세가 아니라, 그들은 정말로 세피아가 납치됐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 도적들과 저들이 무관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저들이 세피아를 데리고 있다면, 그걸 협상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보건대, 세피아를 내세우면 아피아는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일 것 같았다.
토니나는 곁에 있는 덩치 큰 남자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이윽고 복면 사이에 내놓은 눈을 닛카에게로 돌렸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런 금방 들킬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럼 형만으로 좋아. 빨리 내놔.”
틀림없이 동생의 행방을 물어보려나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새로운 요구를 받아 닛카는 계획을 달리 했다. 얘기를 좀 더 끌어서, 잘 되면 도적과 맞부딪치게끔 만들려던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놓으라고 해도 물건이 아니어서요. 제가 고개를 끄덕여봤자 소용없죠?”
할 수 없이 다른 소재를 꺼낸다.
“의미 있지 않은가. 본인이 직접 나오지 않았으니까.”
닛카는, 저들이 아피아가 나오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쯤은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아피아가 정상적인 상태일 거라 여기고 있다면, 이야기가 질질 끌어지는 것을 경계하며 본인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왔을 것이다.
“…넘기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어서, 닛카는 끝내 그렇게 말했다. 배후에서 나는 소리도 가라앉은 듯했다.
“저흰 그 녀석들한테 신뢰받지 못한 것 같고,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그런 녀석들에게 목숨을 걸 의리는 없으니까요.”
이 말에 토니나 일당이 순순히 기뻐할 리도 없어, 아직 경계의 눈길을 받는 채로 말이다. 그래서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거래를 제시하고 나서야, 그들은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우선 저희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세요. 반드시.”
“그건 약속하지. 우리는 무관계한 자들을 끌어들일 생각이 없다.”
토니나의 대답이 너무 빨라, 닛카는 오히려 살의를 의심하게 됐다. 토니나 측도 아까까지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상대가 시원스레 양보해 오면 진의를 살피게 된다.
그들의 배경을 알지 못하는 이상, 신중하게 굴수록 좋았다.
“죄송하지만 어쨌거나 이쪽은 힘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말만으로는 불안한데요.”
“무기를 버리라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무기가 없어도 그쪽은 저희를 손쉽게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른과 아이의 체격 차는 메우기 어렵고, 무술에 소양이 없는 닛카와 뮤아는 승산이 없다.
“그래서 저희는 새를 데리고 있어요.”
거기서 닛카는 발밑에 마련된 새장을 높이 들었다. 갑자기 움직여 놀랐는지, 새가 짹짹거렸다.
“안에도 한 마리 더 있고요. 만일 제게 위해를 가하면 즉시 풀어 보내라고 할 겁니다. 편지의 내용은……. 아시겠죠? 여기는 벽과도 한참 떨어져 있고, 수배당하면 도망치기 어려울 텐데요.”
사실 이건 록차 안에 있던 새다. 풀어줘도 도적들의 품으로나 돌아갈 뿐이겠지. 그러나 세피아에 대해 모르는 토니나 일당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너희 안전은 보장해. 어이, 활을 내려놔.”
닛카의 긴장이 남자들에게 여유를 가져다준 듯했다. 토니나가 쓰게 웃으며 몹시 친근한 어조로 명령한다.
“그런데 다른 조건은?”
“…물과 식량.”
“부족한가?”
“지도가 틀려서 헤맸거든요. 한 명 줄어들면 좀 나아지겠죠.”
거짓말은 아닌 만큼, 지긋지긋하다는 얼굴이 잘 꾸며진 것 같다. 자리는 왠지 포근한 분위기마저 감돌기 시작했다. 시드가 있었다면 바보 취급을 받는 거라고 화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더 없나?”
“욕심은 그만 부려야죠. 목숨이 제일이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토니나 옆에 식량과 물이 쌓인다. 그는 거기다 자신의 품에서 꺼낸 지도를 꽂았다.
“덤으로 주지. 이걸로 협상 성립이군.”
“네. 아, 재워놨는데 누가 옮겨주시겠어요?”
“…아니, 여기까지 데려와.”
오두막에 들어가는 건 소수 인원이 될 수밖에 없다.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완전히 방심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닛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토니나에게 닛카가 문을 닫은 것에 의심을 품을 겨를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주위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서둘러 자리를 잡는 남자들 앞으로 오두막 1층의 벽이 걷어차이고, 토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는 록차가 달려와 바퀴를 덜컹인다. 황급히 비키는 남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록차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쪼, 쫓아가!”
기막혀하던 토니나가 그 지시를 내렸을 때는, 록차가 모래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11-5
소리치는 것도, 우는 것도, 모두 그만두기로 했다. 소란스러워진 데다 자신은 혼자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비명과 눈물을 억누르고 있으면, 그것은 몸속에 가득 차오르는 불안이 되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동요로 모든 것을 휘저어버린다. 때때로 밖에서 들려오는, 귀에 거슬리는 고음도 마음을 어지럽혔다. 기분이 나쁘다. 네 발로 기는 것에 가까웠던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자루에 달라붙어 눕는 형태로 바꾸자 조금 편해졌다.
자신은 매달려 있다.
세피아는 짐승 냄새가 풍겨오는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여기서 도망칠 수 있는가.
지금은 날뛰어봤자 아마 무리다. 자신이 담겨 있는 자루는 아네 보리アーネ麦의 줄기를 엮은 것으로, 칼을 갖고 있지 않으면 구멍을 낼 수 없는 것이라 이를 악물었다.
그런 것은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로 때리거나 베거나 하는 게 싫었다. 그에 대해 아피아는, 상냥하구나, 말해주지만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두렵기 때문이다.
당시의 아피아는 주저 없이 뒤에 있던 남자의 목을 벴다. 뜨뜻한 것이 뒷덜미에 떨어지는 순간, 남자의 느슨한 손에서 저를 낚아채 날아올랐다.
그 사람은 무사하지 못할 거다. 입을 막고 있던 커다란 손의 차가운 감촉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피아라고 해서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는데.
갑자기 흔들림이 멎었다.
세피아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자루가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허리를 부딪친 세피아는 잠시 신음했다.
“너무 조용한데. 살아있나?”
자루가 벌어지고, 생이족의 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안을 들여다봤다. 그 얼굴에 상처가 여럿 나 있는 걸 본 세피아는 흠칫 놀랐다. 그걸 겁 먹은 거라고 착각한 건지, 남자의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
“마셔라.”
끈으로 묶은 물주머니를 던져 넘긴 남자가 세피아에게서 등을 돌렸다. 세피아는 간단히 목을 축이며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깎여나간 암벽을 벽으로 삼은 얼추 동굴 같은 곳인데, 깊숙이 갈수록 들어간 곳을 찾아내기 어려운 듯했다. 해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무리일 터였다.
세피아의 옆에는 그 커다란 새가 대기하고 있었다. 다리를 접고 앉아 있어도 커다랗다. 눈을 감은 채 얌전히 있으니 괜찮겠지만, 아까처럼 일어서면 밟히게 될까 조마조마해진다. 딱딱한 털로 덮인 몸통에는 천이 둘둘 감겨 있다. 남자는 거기 올라탔었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손을 뻗어 몸통을 쓰다듬자, 새는 잠시 주춤하다가도 싫지는 않은 듯 얌전해졌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세피아는 반쯤 몸을 내밀어, 주위를 살피는 남자의 뒤에 대고 말을 걸었다. 남자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 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전혀 답이 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서 세피아가 넌지시 떠보았더니, 남자의 시선이 약간 이쪽으로 쏠렸다.
“……너, 가출했냐?”
세피아는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멋대로 넘겨짚은 것 같았다.
“아―, 그런가…. 뭐랄까, 그럼 집보다 좋을 거야, 아마.”
이 말 역시 답이 되지 않았지만, 알아낸 것도 있었다. 적어도 이 사람은 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주머니의 끈을 손에 감아 꼭 쥔다. 주머니가 아직 무겁다. 어느 정도 써먹을 수 있겠다. 세피아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일어섰다.
“봐, 친구도 금방 올 거고….”
남자는 여전히 시선을 밖으로 돌린 채 우물우물 말을 늘어놓고만 있다. 세피아는 신중하게 거리를 좁혔다. 원래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았던 덕분에,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사정거리 안에 남자가 들어온 순간 세피아는 속으로 미안하다고 외친다. 그리고 단번에 내리쳤다.
노림수는 빗나가지 않았다. 물이 가득 담긴 주머니가 남자의 정강이에 박혔다.
기습을 당한 남자의 목에서 공기와 신음이 뒤섞인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세피아는 다시 팔을 번쩍 들어 올려 그 굽은 등에 두 번째 공격을 넣었다. 참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남자의 허리에서 단검을 뽑았다.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무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세피아가 달려간 곳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새였다. 몸통에 감긴 천을 붙잡고 그 등 위로 뛰어오른 뒤, 제 허리에 물주머니와 단검을 매달고,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고삐를 잡았다. 거기에 걸었다.
자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승부에서 세피아가 이겼다.
호각을 불자마자 새가 즉시 반응한 덕이었다. 깡충 뛰었다가, 일사불란하게 달려 나간다. 자칫했다간 떨어질 것만 같았던 세피아는 필사적으로 천에 매달렸다.
사실은 호각을 부는 방법에 규칙이 있고, 새는 그에 맞춰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걸 알아낼 여유는 없었다. 애초에 첫 소리가 새를 흥분시켰는지, 그 뒤로는 아무리 불어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이제 새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세피아는 누린내 나는 새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11-6
하지만 전원이 차를 쫓은 것은 아니었다. 토니나는 자기들의 록차에 절반만 태워 보내고, 나머지는 제자리에 뒀다.
그 차로 도망갔다고 생각하기엔, 상황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간다.”
각자 단검을 뽑아든 세 명이 2층으로, 두 명이 1층으로 향한다. 토니나를 포함한 2층조가 잠긴 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쳐 들었다.
맨 먼저 눈에 띈 건 바닥에 나 있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깨진 부근이 닳아있는 걸 보면, 누가 일부러 냈다기보다는 낡아서 무너진 듯했다. 그 구멍으로 중앙의 기둥에 매인 새끼줄이 드리워져 있었다.
“여기서 내려왔군요. 밑에 발자국이 남아있습니다.”
1층조에서 그렇게 말이 나왔다.
“확실한가?”
“금방 생긴 작은 자국이에요. 거의 확실합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두 사람은 구석에 걸린 커튼을 떼어내거나 침대를 들여다봤지만,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밑에도 없나?”
“없어요. 숨을 데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군.”
그렇다면 여기서 달아난 건 틀림없는 듯하다. 그 차에 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다. 수색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없었다.
“그럼 오두막 근처에 발자국이 있는지….”
말을 꺼낸 순간 쾅, 하는 소리가 울리며 오두막이 흔들렸다. 천장에 난 구멍으로 노란 모래가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래 폭풍인가.”
때맞춘 악운에 토니나가 혀를 찼다. 이래서야 발자국이 남았대도 사라질 것이다. 모래 폭풍은 잠시 오두막 근처를 유린한 뒤에야 물러갔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해도 지고 있었다.
1층조의 무사함을 확인한 뒤 오두막 주위를 탐색해 봤지만, 역시 발자국은 찾을 수 없었다. 토니나는 서둘러 철수하도록 했다.
“하는 수 없지. 차와 합류한다.”
그 소년의 천연덕스러운 태도가 이쪽을 흩어놓기 위해서였다면 감쪽같이 속은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이 둘을 잡는 것뿐이니 편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번거로울 줄은 몰랐다. 역시 먼젓번 녀석들과는 달리 저는 이런 일에 적합하지 않다며 토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오면, 자신은 빨리 중계 임무에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는 안 되겠지만.
토니나는 모여든 부하들을 이끌고, 차가 간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이 모래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조금 뒤 바람도 없는데 오두막 천장에 난 구멍으로 모래가 쏟아진다. 뒤이어 커다란 덩어리가 떨어졌다. 그 덩어리는 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조용히 착지하고, 허물어진다.
“주, 죽는 줄 알았어.”
아피아를 껴안은 자세로 주저앉은 뮤아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닛카는 위에서 얼굴을 내밀며 대답했다.
“날려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웃음이 안 나와.”
“미안해요. 진정되면 밧줄 부탁할게요.”
또 모래 폭풍이 오면 큰일이니까, 바닥에 아피아를 눕힌 뮤아는 곧장 지붕까지 올라갔다. 모래 범벅이 된 닛카가 그녀를 맞았다.
닛카가 협상에 나선 직후, 뮤아는 아피아를 안고 가까스로 지붕 위에 올라갔던 것이다. 그런 다음 위에서 밧줄을 늘어트려 돌아온 닛카마저 올려주고, 남자들이 떠날 때까지 지붕 위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번거롭게 했군요.”
“아니, 아니.”
닛카가 무사히 내려온 뒤에야 두 사람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돌아올 수도 있어 이 오두막에 그대로 머무르는 것도 위험하지만, 오늘밤은 몸을 쉬어두기 위해서라도 떠날 수가 없었다. 불빛이 눈에 띌 테니 어둠 속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되겠지만.
“모래 폭풍이 있었다고는 해도, 어째서 지붕은 안 뒤져본 걸까?”
“깜빡한 거겠죠. 저희라면 아래뿐만 아니라 위도 의심해봤겠지만.”
“아―.”
물론 그들도, 알고는 있겠지만,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뮤아도 성별을 갖지 않는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알 턱이 없다.
“이젠 시드가 세피아를 데려오는 걸로 다 끝나는 걸까요.”
“그럴지도.”
왠지 피곤해서 머리가 더 돌아가질 않는다. 아피아를 침대로 돌려놓은 뮤아는, 옷을 갈아입을 기운도 없어져 바로 드러누웠다.
11-7
“어이, 뭐야.”
혈기 왕성한 시드에 끌려 다니며 밤중의 열지를 여행하던 솔리츠는, 반쯤 잠들어 있다가 그 말로 두들겨 깨워졌다. 머리가 아프다. 잠들었다고 하기보단 반쯤 기절해 있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여기가 아닌가?”
흐릿한 시야를 원 상태로 돌리려고 노력하는 와중에도, 시드는 억지로 자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솔리츠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솔리츠는 내심 혀를 차며 그쪽을 쳐다봤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모래 연기다.
그것 말고는 표현할 말이 없다. 모래가 날아 오른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으니 폭풍도 아닌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빛 아래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 형체가 가까워졌을 때, 솔리츠의 얼굴은 기대에 차 풀어졌다.
어렴풋이 보이는 그 형상은 틀림없이 낯익은 새였다. 모두 모이지 않은 탓에 도냐스 씨가 상황을 살펴보러 온 것일 테다. 이것으로 이 빌어먹을 인상 더러운 꼬맹이하고도 작별이다.
“뭐야, 저거 새 아냐.”
솔리츠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때쯤엔 시드도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솔리츠의 예상과는 다르게 실실 웃는 데다, 짐은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팔을 휘둘러댔다.
“저…, 무슨 생각으로.”
“세우게.”
새는 아직 멀리 있다.
그치만 상당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확실히 빠르다. 그리고 방금 새의 존재를 알게 된 이 녀석이 제대로 멈춰 세우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몸으로 부딪친다거나 그런 얘기는 아니죠?”
솔리츠는 식은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되물었다.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어.”
미쳤나, 하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억누른다. 대신 목에서 새어나온 것은 애매한 한숨 같은 것이었다.
“하아, 그러세요.”
솔리츠는 당연히 말릴 생각이 없었다. 치어 죽는다면 그것도 상관없다. 저가 위험하지 않게끔 시드 곁에서 멀어졌다. 그러는 새에도 새는 마치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곳을 향해 똑바로 달려온다. 그렇게 멀었던 거리가 벌써 이만큼 좁혀져 있었다.
“좋아, 와라!”
제자리에서 버티던 시드가 외쳤다.
다음 순간, 그는 나가떨어졌다.
우두커니 지켜보던 솔리츠의 눈앞에 모래먼지가 일었고, 그 먼지가 개고 난 뒤에야 건너편에 메다 꽂힌 시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야, 야, 야, 야, 죽었어?”
솔리츠는 예상대로 벌어진 참극에 벌벌 떨며 달려갔다. 오른쪽 상체부터 비스듬히 박힌 자세 그대로, 시드가 움직이지 않는다.
“바보잖아, 이 녀석.”
왠지 답답한 기분에 솔리츠가 시드의 튀어나온 등을 두드렸을 때였다. 그 몸이 설핏 움직이는 바람에 솔리츠는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엉거주춤한 왼쪽 몸통과 다리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묻혀 있어 빠져나오기 힘든 것 같았다.
“네네, 갑니다요.”
솔리츠는 엉겁결에 그렇게 말하며 시드의 두 다리를 잡아 당겼다. 왜 도와준 거냐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 시드가 이미 모래에서 거의 빠져나온 채였다. 소년은 얼굴에 큰 생채기가 난 것 말고는 별다른 외상도 없었고, 모래를 털어내며 멀리도 노려봤다. 그리고 처음 한 말은 이랬다.
“타이밍이 나빴어.”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그 강한 걸음을 멈출 수 있을 리가 없다. 목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만도 천운이다.
“어머나, 폭주 상태인데, 무리지. 아무도 안 탄 것 같은데, 못 봤어!?”
게다가 그 등에 도냐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도 솔리츠가 확인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새가 혼자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친절한 경고는 손바닥이 머리를 치는 것으로 돌려받았다. 시드는 아직도 어딘가 먼 데를 노려본다.
“거짓말.”
“거, 거짓말 아니…….”
“폭주 상태는 일부러 만드는 건가?”
“어?”
황급히 돌아본 솔리츠의 시야에, 달려갔을 새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들어왔다.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아니다. 저쪽에서 이곳으로 오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왜….”
“왜긴, 타고 있는 놈이 이쪽을 가리키잖아.”
시드가 너무 태평해 어두워서 잘못 본 건지, 자기 눈이 이상한 건지, 솔리츠는 의심했다. 생이족인 제 밤눈이 더 밝을 텐데,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잘못된 거다. 타고 있는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정도로 그 새가 그렇게 움직일 리도 없다.
잘못된 거지만, 새가 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쩔 수 없네. 비켜줄까.”
혀를 차고 이동하기 시작한 시드의 뒤를 따라가는 솔리츠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11-8
걱정한 것과 달리, 피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일 없이, 새는 둘의 바로 근처를 달려간다. 하지만 저쪽에서 다시 돌아오는 게 보인다. 세밀한 조정은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쩌지.”
귀를 후벼 들어간 모래를 긁어내는 시드 옆에서, 솔리츠는 필사적으로 상황정리를 했다.
역시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 재차 지나갈 때 확인했으니 틀림없다. 저 새는 멋대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쪽을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노리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모르겠다.
“아, 위에 탄 놈을 떨어트리면 멈추려나.”
한편, 시드는 지극히 단순한 결론에 닿은 것 같았다.
솔리츠의 고민도 모르고서 설렁설렁 새의 진로에 끼어들려고 했다. 솔리츠가 서둘러 그 팔을 붙들며 말렸다.
“그러니까 위에 탄 놈이 누군데?”
“누구냐니, 네 동료잖아. 머리 길던데. 매달려있고.”
유감스럽게도 그런 동료로 짚이는 것은 없고, 그렇게 타는 인간도 없다. 솔리츠는 어쩌면 아까 바닥에 메다 꽂힌 게 잘못됐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시드였다.
“넌 거기 기다려.”
솔리츠의 손을 깨끗이 뿌리친 시드가 새의 앞길에 뛰어들며 날개를 펼친다. 그리고 높이를 새의 등에 맞춰 조정하고는, 거기서 기다린다. 새는 방향을 바꾸지 않은 상태로 돌진해온다. 자, 와라, 의욕에 찬 시드는 새가 가까워질수록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때려눕힐 놈, 새에 타고 있을 남자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드 앞으로, 새의 등에 감긴 천이 살짝 움직였다. 그 덩어리는 느닷없이 뜻밖의 소리를 내질렀다.
“…시드!?”
등에 매달려있어 땅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찾고 있던 세피아였다.
“일어서!”
알아본 순간 시드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외쳤다. 기백에 눌린 세피아도 따라서 허둥지둥 일어났지만, 전력으로 달리는 새 위에서 똑바로 설 수 있을 리가 없어 균형을 잃고 굴러 떨어질 뻔 했는데, 때맞춰 새와 시드가 서로 엇갈렸다.
새가 튀기는 뿌연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고서야, 시드와 시드의 품에 안긴 세피아는 드디어 지상에 내려올 수 있었다.
목에 감았던 손을 푼 세피아가 뜨거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마워요…….”
“왜 저런 데 타고 있던 거야?”
시드의 질문에, 세피아는 새를 빼앗아 도망쳐온 경위를 간단히 설명했다.
“제법 하잖아.”
세피아가 아무래도 혼난 게 아니라 칭찬 받은 것 같다고 깨달은 순간, 솔리츠가 소란스럽게 다가왔다.
“저 녀석, 가버렸는데요!”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모래먼지가 멀어져간다. 그 손가락은 이제 세피아에게로 향했다.
“그 애가 몰았던 거야?”
갑자기 지목받아 흠칫 놀라는 세피아를 본 시드가 대답했다.
“아니…, 아냐.”
동의를 구하듯이 쳐다보자 세피아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매달려 있었을 뿐이지,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치만 그 애를 잡으니까 가 버렸잖아요.”
솔리츠는 납득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두 사람도 납득되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시드가 불쑥 말했다.
“뭔가 묘한데.”
결정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불안한 감각.
자신이 쫓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발견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손 안에 굴러 들어오리라고는 생각은 안했다. 행운이라며 기뻐할 마음이 어쩐지 들지 않았다.
“뭐, 고민해도 모르나.”
하지만 잠시 미간을 좁히며 생각하던 시드가 내린 결론은 그것뿐이었다. 자신의 감각이 맞는다면, 생각하기엔 뭔가 놓치고 있다. 그렇다면 생각해봤자 소용없다.
“너희들이 쳐들어온 곳, 살레타, 어딘가 다른 마을 중에 어디가 여기랑 제일 가까워?”
갑자기 생뚱맞은 말을 들은 솔리츠가 당황했다.
“어, 네, 그게, 여기… 여기요?”
“…몰라?”
“알아요, 알지요, 아마.”
나무라는 눈초리에 식은땀을 흘린 솔리츠는 자신이 도망칠 기회를 놓쳤음을 통감했다. 그는 시험 삼아 물었다.
“저기, 전 이제 그만 풀어줘도 되지 않을까요.”
“왜?”
“왜라니요, 그 꼬맹…, 도련님 찾고 있었죠? 찾았으니까 이제 용서해주는 걸로.”
“마음대로 해. 물이랑 식량은 안 나눠줄 거지만.”
“어―….”
역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디서 잘못됐는지 돌이켜보면서, 솔리츠는 지도와 나침반을 살펴봤다.
“걸을 수 있냐?”
“조금 쉬면 괜찮을 거야.”
탈진해 있던 세피아도 물을 마시거나 하며 진정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낮부터 피로가 쌓였을 테니 정상이라고 단언하긴 어려워, 일단은 어딘가에서 쉬어두게 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야, 바꿔. 제일 가까운 오두막으로 안내해.”
시드는 솔리츠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세피아의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자세를 바꾸며 세피아를 등에 업었다.
“미아…”
“사과하지 마. 형제가 쌍으로 귀찮은 놈들이구만, 진짜.”
시드의 말이 세피아를 자극한 것 같았다. 어깨를 붙잡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아피아는, 아피아는 괜찮아?”
“뮤아랑 닛카도 있고, 괜찮을걸.”
썩 좋지 않은 기분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에, 시드는 적당히 대꾸했다.
“그 녀석은 대체로 알아서 어떻게든 하잖아.”
“응….”
그런 대답에 마음이 놓일 리 없는 세피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세피아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이윽고 소곤거리는 정도의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있지, 시드. 아피아를 구해줘.”
“하? 그게 뭐야.”
“부탁이야…. 아피아는, 꼭.”
거기서부터는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울고 있는 것 같은 세피아에게 캐물을 생각도 없어서, 시드는 가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로, 사태가 점점 귀찮은 방향으로 굴러가는 게 아닐까 하던 그의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인도자가 그 앞에서 나아갈 방향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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