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10-1

순식간에 날아오른 모래가 뜨거운 비처럼 온몸에 퍼부어진다. 피하려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에, 그저 머리를 감싼 채 제자리에서 웅크렸다. 날개에 들러붙는 건 어쩔 수 없으려니 체념했다. 섣불리 대처해보려다 눈에 들어가거나, 아까처럼 입에 잔뜩 들어오게 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나았다.

귓가에서 붕붕, 사납게 울리는 소리가 이명과 비슷한 크기가 되고 나서야 뮤아는 고개를 들었다. 눈을 뜨기 전에 먼저 고개를 흔들며 몸통에 쌓인 모래를 털어냈다. 머리에서 버석거리는 게 지긋지긋하다.

내려다봤더니, 무릎 아래까지 땅에 파묻혀 있다. 지금까지에 비하면 나은 편에 속했다. 가슴까지 파묻혔을 땐, 혼자서는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다들 괜찮아?”

모래를 털어내며 상황을 확인하던 중, 가장 가까이 있던 닛카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를 가리키는 그에게, 뮤아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닛카는 가장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일 터였다. 귀를 막을 정도의 모래바람에 질려, 머리를 천으로 꼭 싸매고 있는 탓에, 조금 더 가까이에서 소리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는 모자를 준비해두지 않은 것에 대해 자꾸만 후회했다.

안일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그런 분위기가 일행 사이를 감돌았다. 아피아네가 있어 상인 행렬 같은 데 섞이지 않고, 지도에 의지해 독자적으로 걸어왔지만, 몇 번이고 모래 폭풍의 세례를 받아 사기가 꺾이고 있었다. 아피아와 세피아도 자주 처져, 아직까지 팔팔한 것은 시드뿐이었다. 아까는 파묻혔다가 모래를 헤치고 다가오길래 뭔가 했더니,

  “이 열기는 마물 때문이지? 그럼 그놈 쓰러트리면 시원해지지 않을까?”

같은 소리나 해서, 열심히 해보라고 답해주었다. 지금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 나름대로는.

아무리 파묻혀도 모래를 헤치고 기세등등하게 복귀하는 모습이야 믿음직스럽지만, 제대로 상대해 줄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본인도 확실히 평소보다는 지쳤는지 아피아와 싸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피아가 검으로 그 남자들을 베어버린 뒤 시드와의 관계가 조금 더 껄끄러워질까 싶었는데, 딱히 변하지 않았다. 거기다 뮤아가 엿듣고 있던 것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시드는 지나치리만치 신경을 끄고 있는 듯했다.

뮤아는 역시나 생각하게 된다. 남자들의 정체, 아피아의 태도, 저 형제가 여기 있는 이유 등을.

뒤를 돌아보니 아피아가 세피아의 도움을 받아 파묻혔던 곳에서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서, 이런 일을 겪으면서까지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거지만, 그렇게 했다간 틀림없이 거리를 둘 거다. 아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고, 뮤아는 예상하고 있었다.

모래의 도시 살레타에서, 뮤아 일행은 서쪽으로 길을 꺾게 된다.

여정은 곧 절반을 넘어갈 것이었다.

 

10-2

열지에 들어와서 보낸 이틀은 일행으로 하여금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실감케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바위와 모래사장뿐인 거야 듣던 것과 같아 금세 익숙해졌다. 풀밭이 모래밭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역시 열기였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독했다.

대개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이 따뜻한 법인데, 여기서는 다르다.

뜨거움이 땅에서부터 온다.

발밑을 바짝 달구며 체력을 서서히 앗아간다. 모자도, 양산도 소용없다.

밤이 되어도 열기는 식지 않아, 누우면 온몸이 불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간신히 잠에 들어도 악몽에 시달리느라 더욱 피로해지는 판국이다. 하룻밤을 지새우는 동안 톡톡히 질려, 오늘부턴 야영을 하는 대신 길가에 세워진 오두막을 제대로 써먹기로 했다. 이 열지에서는 달리 눈에 띄는 길이 없으니, 길가에 오두막이 있다기보다는, 오두막이 있는 곳들을 연결하면 곧 길이었다. 일단은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도 있긴 하지만, 너덜너덜하거나 넘어졌거나 금세 뒤집히기 때문에 그다지 믿을 게 못 됐다. 나침반을 손에 든 채 지도를 살펴보면서 가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슬슬 오두막이 있을 거예요. 해가 지려면 좀 걸리겠지만 찾아서 쉴까요?”

그런 방향 잡기는 능숙한 닛카에게 맡겼다. 나침반은 성산에서 떼어낸 금속으로 만든 바늘이 달려 있어, 언제나 성산 쪽을 향한다. 그래서 성산을 향해 갈 때는 보기 쉽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조금 까다로웠다.

게다가 아까 전부터 모래 폭풍이 잦았다. 목표로 삼으며 갔던 모래 언덕의 모양이 변할 때마다 일일이 확인해야만 했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뮤아의 투정에, 닛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림 씨의 조언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죠.”

  “정말이지, 대삼림에서 가로지르는 짓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랬다간 쓰러졌을걸.”

  “마을에 도착하면, 그때부턴 상인들한테 끼어가는 것도 생각해보는 게 좋겠어요.”

살레타 말고도, 물을 구할 수 있는 곳마다 마을이 여럿 조성돼 있다. 모레쯤이면 그런 마을 중 하나에는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쪽이 더 안전하고. 아피아네는 속일 수 있겠지.”

뮤아와 닛카는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그 형제가 따라잡길 기다렸다. 늘 그랬듯이 맨 뒤에서 걷던 형제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저기, 아피아가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의아한 표정을 지은 뮤아가 닛카에게 동의를 구하려 물었을 때였다. 어떻게 봐도 불안해 보이던 아피아가 곧장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아피아!”

너무 놀라 무심코 보고만 있던 두 사람은 세피아의 비명을 듣고서야 허둥지둥 달려갔다. 아피아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채였다. 두드리거나 흔들어보아도 일어날 기미 없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축 늘어져 있었다.

  “어쩌지.”

  “어쨌든 빨리 오두막을 찾아서 낫게 하는 수밖에 없겠어요.”

쭈그려 앉아 회의를 하는 뮤아와 닛카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야, 또?”

시드는 어이없어하며 그렇게 내뱉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아까 묻혔던 곳에 있겠지. 찾아올 테니까 기다려.”

그런 말을 들어도 뮤아와 닛카는 무슨 소린지 모른다. 유일하게 알아들은 세피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 시드, 아냐!”

만류를 듣고 돌아선 시드에게 세피아가 말을 이었다.

  “그건 있으니까. 확인했어.”

  “진짜냐?”

미심쩍어하며 돌아온 시드가 아피아의 가슴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가, 곧, 신음하며 손을 놓았다. 아무래도 아픈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손가락을 흔들고 있었다.

  “뭐야, 엄청 뜨겁잖아. 어떻게 된 건데. 매달고 있어도 괜찮아?”

  “나도 잘…….”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뮤아와 닛카는 서로를 쳐다봤다.

 

10-3

끝내 아피아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아, 빨리 오두막을 찾아 가는 게 최선인 듯싶었다. 하지만 가까이 있을 거라고 해도, 아직 보이지 않으니 제법 걸어갈 것을 각오해야 했다.

  “나, 하기 싫어.”

뮤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드가 나서서 거절했다.

  “어째서.”

  “싫은 건 싫은 거야.”

  “그래도 시드 말고 누가 할 수 있다고 그래. 지금 메고 있는 짐은 우리가 분담할 테니까…….”

  “그런 문제가 아냐.”

평소라면 적당히 꺾이고 들어올 텐데, 이번의 시드는 인정사정없이 거절하기만 한다.

  “너희가 알아서 해. 어쨌든 난 안 해―.”

마지막으로 그렇게 선언한 시드는 빠르게 나가버렸다. 남겨진 세 사람이 눈짓으로 회의했지만,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 나랑 닛카가 교대로…….”

  “내가 업고 갈게.”

뮤아의 말을 자른 건 세피아였다. 그리고는 말릴 틈도 없이 아피아의 옆구리에 손을 밀어 넣으며 업으려고 했다. 간신히 짊어지는 자세가 되기는 했지만, 머리 하나 정도 작은 세피아에게는 역시 무리였다. 이런 상태로 오두막까지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뮤아는 눈썹을 밀어 올리며, 앞서 걷는 시드의 등에 대고 야단을 쳤다.

  “잠깐……, 시드!”

명백히 비난하는 기색의 말투였던 덕분인지, 시드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느릿느릿 돌아왔다. 하고 싶은 말은 알지, 그렇게 째려보는 뮤아의 눈을 외면하려는 양,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예예. 알았다, 알았어. 들고 가면 되지.”

그러고는 아무렇게나 내뱉은 뒤, 성큼성큼 세피아에게 다가갔다. 세피아의 등에서 아피아의 몸을 떼어내, 옆구리에 끼고 먼저 발을 구르며 가버린다.

그런 너무나 대충인 일처리에, 어지간히 지쳐 초조해하던 뮤아도 마침내 폭발했다.

  “발이 끌리잖아! 짐도 이쪽으로 넘기고! 제대로 업든가 안든가 해!”

  “시끄러―, 내버려 둬! 적이 왔을 때 방해되잖아!”

  “적이 어디에 있는데!”

분위기가 점점 나빠져, 고함은 욕설로 발전할 뻔했다. 그러나 그 무의미한 논쟁은 앳된 목소리에 의해 끊겼다.

  “내가!”

아까부터 축 늘어진 채 시드에게 들려있는 아피아의 몸을, 세피아가 붙들고 있었다.

  “내가 업고 갈게……. 아피아는, 내가, ……이런, 이러면…….”

안색이 어두워진 세피아가 흐느껴 울면서 ‘내가, 내가’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험악했던 분위기는 금세 어색해져 수습이 안 될 것만 같은데, 닛카가 거기에 끼어들었다.

  “네, 세 사람 다 진정하세요. 지금 해야 할 일은 서둘러 아피아를 안정시킬 수 있는 곳으로 옮기는 거예요. 누가 뭐 어쨌다는 게 아니라, 효율적인 방법을 취해야죠.”

  “내가 하고 있지만.”

  “알고 있다면, 쭉 부탁드립니다.”

  “아까부터 싫다고 말…….”

  “그럼 시드랑은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뭐야, 그게.”

  “환자를 내버려두거나 소홀히 하는 건 시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인가, 하고요.”

가장 아픈 곳을 찔린 듯, 시드는 말문이 탁 막힌 채로 얼굴을 붉혔다.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조용히 아피아를 어깨에 둘러멨다. 사람보다는 짐을 옮기는 방법에 가까웠지만, 배낭도 멘 채로는 무난한 수준이었다.

그 상태로 퉁명스럽게 입을 다문 채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한다. 뮤아는 종종걸음으로 그를 따라가며 달래듯이 말했다.

  “미안. 그치만 시드한텐 가볍잖아.”

그러자 시드는 뮤아를 흘끗 쳐다보곤, 이렇게 되받아쳤다.

  “가벼워서 싫어. 젠장.”

뮤아가 되묻기도 전에, 그는 모래를 걷어차며 떠나갔다.

 

10-4

대기를 울리는 소리가 땅에 퍼진다. 또 어디선가 폭풍이 일어난 것이다.

세피아의 어깨를 감싼 채 걷던 뮤아가 멈춰서, 하늘을 쳐다봤다. 흩날리는 모래에 가렸는지 햇빛이 흐릿해 불안하다.

  “……오두막, 아직 안 보이네.”

닛카의 계산이 어설펐는지, 저희들의 시간감각이 이상해졌는지, 꽤 오래 걸었는데도 오두막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모래 폭풍은 여전히 잦아 자칫하면 방향을 잃을지도 몰랐다. 닛카가 수시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지만, 그 나침반이 틀렸다면 끝장이다.

위치를 검토하는 닛카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뮤아는 시드에게 외쳤다.

  “시드, 너무 빨라!”

내버려두면 자꾸만 먼저 가 버리는 시드 탓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혼자라면 멋대로 굴어도 괜찮지만, 지금은 아피아가 있다. 아까 그 모습은 아피아를 내팽개치고 자기 혼자 무사 귀환하는, 멋없는 일도 저질러줄 것만 같았다.

저지당한 시드는 드물게 방향을 돌려 성큼성큼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야, 여기 정말 많이 다니는 길이야?”

  “지도에서 그렇게 벗어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아까 잠시 쉬었던 암벽이 여기였을 텐데요, 닛카가 지도를 가리키며 답했다. 어제 그냥 지나치긴 했지만, 오두막은 제대로 있었고, 크게 어긋나는 느낌은 아니었다. 뭐, 해가 져도 오두막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럼 다행인데. 뭐랄까, 어제부터 다른 놈들은 안 보이잖아. 원래 이렇게 다니는 사람이 적어?”

시드치고는 제대로 된 의견이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고, 길을 잃었을 수도 있다. 뮤아는 일단 반박해보았다.

  “음―, 모래 폭풍이 심하니까.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근데, 이 지경이면 그 노인네도 뭔가 말하지 않았을까.”

이번엔 시드에게 승산이 있는 것 같다. 뮤아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친절한 사람이던데.”

  “나이가 있으니까, 어쩌면 착각했을지도.”

열지에 들어가기 직전 묵었던 마을의 여관에 있던 노인이 이 지도를 줬었다. 출발할 때 행선지를 얘기하고, 가지고 있던 지도를 보여줬더니, 정보가 낡았다며 이걸 내밀었었다. 게다가 여러 조언도 해주었다.

  “최근의 이상기후일지도 몰라.”

노인은 분명 열지에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모래 폭풍에 대한 정보는 없었을 수도 있다. 시드는 뮤아의 그런 추측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뭐야.”

  “시드는 그때 전혀 안 듣고 나갔었잖아.”

  “설명 같은 거 귀찮지.”

  “동의할 거란 생각 마.”

또다시 쓸데없는 논쟁으로 번질 뻔한 대화는 그 이전에 차단됐다. 세피아가 뭔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저, 저거.”

그가 가리킨 끝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순식간에 불어나, 곧 세 대의 록차를 포함한 20여 명의 집단이 됐다. 그들은 건너편의 모래언덕을 넘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마주친 상인 행렬이었다.

 

10-5

나타난 상인들은 역시 열지에 익숙한 듯했고, 장비도 철저했다. 기능성 넘치는 장비들에 손때가 묻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거기다 그렇게 말을 걸어오기까지 해서, 이쪽이 얼마나 너덜너덜해 보이는지도 증명됐다. 실제로 만신창이라서, 고집을 부릴 필요도 없다.

  “실례지만 여쭤보고 싶은 거랑, 부탁이…….”

순순히 지금의 상황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사정을 들으러 나온 것은 풋내기인지 젊은 생이족 청년으로, 뜻밖에도 말씨가 부드러웠다.

  “일행이……. 그거 큰일이네요.”

그는 뮤아의 말을 듣자마자 잠시만요, 하고 록차 안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 그 안에 이 상단의 리더가 있는 듯했다. 그는 잠시 상담하는 듯하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가는 방향은 엇갈렸지만, 간단한 치료나 약 정도는 제공할 수 있겠어요. 물론 저희도 상인이라 공짜는 안 되고.”

기대도 않던 제안이었다. 받지 않을 수 없다. 길도 틀리지 않은 데다, 오두막이 확실히 이 앞에 있다는 것도 들었다. 조금이라도 아피아가 회복되면 나아질 터였다.

  “그럼 차 안에 자리를 마련해뒀으니 거기 눕히고…….”

청년의 지시에 따르기 위해 뮤아는 시드를 돌아봤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시드는 아까 입씨름하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험악한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다 예상대로의 말을 내뱉는다.

  “싫어.”

  “잠깐, 시드…….”

어째서냐고 묻기도 전에, 시드가 폭발했다.

  “뭐야, 이 녀석들. 까불지 마! 야, 뮤아, 애들 데리고 튀어. 가서 숨어. 얘네 여관에서 본 놈들이야!”

그 순간, 주위의 공기가 뒤집혔다. 피부를 에는 살기에 당황한 뮤아가 갑자기 뒷덜미를 잡혔다가 내팽개쳐진다. 세피아와 닛카도 뒤를 이었다.

  “튀라고!”

한손으로 세 사람을 아무렇게나 던진 당사자가 핏대를 올리며 외쳐댔다. 그 등 뒤로 여러 무기를 쥔 상대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치죠.”

닛카가 잽싸게 일어나 뮤아와 세피아의 팔을 잡아당겼다.

  “무, 무슨 일이야?”

  “도적이요. 노려진 거예요.”

하지만 달아나려는 뮤아와는 달리, 세피아는 오히려 현장으로 돌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피아!”

그것도 그럴 만한 게, 시드의 어깨에 아직 의식 없는 아피아의 몸이 실려 있었다. 시드는 먼저 덤벼든 남자를 때려눕히면서, 도망치지 못하는 세 사람을 보고 혀를 찼다.

  “방해되잖아! 이 녀석 데리고 튈 수 있겠냐. 어떻게든 할 테니까 튀어!”

세피아의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시드 말대로 사람 하나를 짊어진 채로는 도저히 도망칠 수 없다. 뮤아와 닛카는 세피아를 질질 끌며 어떻게든 난전이 벌어진 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일단 저희끼리 안전한 장소에 가 두면, 시드도 무리하지 않고 따라서 도망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어디까지 가야 잘 도망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은 그 암벽까지.”

조금 떨어진 곳에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모여 있다. 최소한 그걸 등지고 있으면, 뒤에서 덮쳐지는 일은 없다. 그런 안일한 생각은 이미 간파됐으리라는 건, 피곤한 머리로는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세 사람이 암벽에 도착한 순간, 그 바위 그늘에서 뭔가 우뚝 일어섰다. 덩치 큰 남자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 두 개의 눈이 세 사람을 내려다봤다.

 

 

10-6

귀찮다.

시드는 초조해졌다.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

너무 초조한 바람에 생각이 거기 쏠리고, 몸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달려드는 남자들을 두들겨패고, 잡아서, 집어던진다. 그러다 아피아가 중심을 잃고 땅에 떨어지면, 이번에는 왼손으로 옆구리에 다시 끼워둔다.

봐라, 방해된다니까.

  “일어나, 야.”

말을 붙여봤지만, 아피아는 축 늘어져있을 뿐이었다. 손목 근처에서 맥이 느껴지는 걸 보면 살아 있기는 한 것 같았다.

  “야, 뭐하고 있어.”

  “그렇게 저항한다면 죽여주지. 죽어라.”

  “갖고 가서 여자랑 돈도 받아두자.”

초조하다. 모처럼 맘껏 싸울 수 있을 텐데, 조금도 기쁘지 않다.

덤벼드는 몽둥이를 오른팔로 받아낸다. 순간 찡, 하고 저려오지만 대수롭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이놈들은 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밧줄이나 그물 같은 걸 든 녀석들이 있다. 아무래도 산 채로 잡아가려는 모양이었다.

이 상황이 무척 짜증났다. 이 녀석은 대충 던져두고, 얼른 전원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지만, 세피아에게 뭔가 말해버린 이상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휘두를 만한 것도 주변에 없어 착실히 때려눕히는 수밖에 없었다. 짜증난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남자들의 실실대는 웃음이 사라진다. 받아낸 공격들에 조금씩 진지함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이다. 아직 부족하다. 깔보는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네놈들, 진심으로 덤벼!”

그 순간 그의 귀에, 등 뒤로부터 비명이 들렸다. 시드는 반사적으로 그쪽을 돌아봤다.

  “무슨…….”

무심코 소리를 내고 만 건, 본 적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암벽에 두 개의 막대가 우뚝 서 있다. 그 위로 토실토실한 덩어리가 얹어져 있다. 또 그 위로 막대가 하나 뻗어 있다. 그것은 갑자기 몸을 돌려 모래사장 너머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덩어리 옆에는 뭔가 움찔거리는 주머니 같은 게 달려있었다.

  “새, 인가?”

대단한 크기 덕분에 알아차리는 게 늦었지만, 모양은 확실히 새였다. 게다가 사람이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싶어도 틀림없다. 새가 달려간다. 다시 비명 소리가 들리고, 뮤아와 닛카가 애태우고 있다.

사태를 파악하려던 시드는 옆에서 충격을 받아 땅에 나뒹굴었다. 시드의 빈틈을 도적들이 놓칠 리도 없어, 얼굴에 주먹에 박힌 것이었다.

  “젠장.”

제대로 타격을 입으면, 역시 아프다. 시드는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견뎌내며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다 자신이 왼손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엉거주춤하게 일어선 뒤였다. 허둥지둥 둘러봤다가, 반쯤 열린 눈과 마주쳤다.

  “세피…아?”

아직 정신을 덜 차린 얼굴의 아피아가 좀 떨어진 곳에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두들겨 깨울지, 다시 안아들지 망설이던 시드는 여러 도적들이 다가갈 틈도 주지 않고 몽둥이로 때려대는 바람에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세피아!”

그 순간 아피아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달리려고 한 것 같은데, 첫 걸음부터 비틀거린다. 의식만 돌아왔지 회복은 전혀 되지 않은 것 같고, 도적들로 둘러싸였다는 걸 알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실제로 비명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그들 곁을 빠져나가려다, 단박에 팔이 붙잡힌다. 그런데도 아피아는 나아가려 했고, 필연적으로 도적에게 끌려간다.

맞는 와중에도 그 모습을 본 시드가 혀를 찼다. 눈을 떴는데도 쓸모가 없다니.

초조하다.

  “야, 그 꼬맹이 후딱 해치우고 나머지 두 명도….”

  “까불지 마!”

도적의 말이 도화선이 되어, 시드는 기어코 폭발했다. 내려치는 몽둥이를 제치고, 때리며, 펄쩍 뛰어오른다. 슬슬 인내심의 한계다.

그리고 아피아의 모습에서 시드는 확신했다. 그 커다란 새가 매달고 있던 주머니 안에 세피아가 있었던 거다. 뭔지는 몰라도 그건 도적들의 동료다. 새는 멍청한 걸음걸이로 모래언덕 너머에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달려봤자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놈들한테서 행선지를 캐낼 뿐이다. 그렇다곤 해도 맨손으로는 너무 오래 걸릴 텐데. 아피아를 들지 않아 자유로워진 두 손을 팔랑팔랑 흔들던 시드는, 주위를 둘러보다 그것을 발견했다.

  “그렇지, 있었네. 휘두를 만한 거.”

그러고 나서 그는 뒤돌아 아피아를 붙든 남자를 째려봤다.

  “야, 그거 맡아두고 있어. 허튼 짓 하지 말고.”

겨우 자신의 페이스대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시드는 샐쭉 웃었다.

 

10-7

확실히 오두막은 있었다.

언제부터 방치됐는지 모래에 삭아 군데군데 벽이 떨어져 있었지만, 지도에 적힌 위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곳이 주로 사용되는 길은 아니라고 해도, 한때 쓰였던 길이었을 것이다. 가짜 지도라지만 아예 거짓 지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습격할 때까지 의심받지 않으려던 거겠죠, 분명.”

닛카는 록차를 몰면서, 커튼 뒤로 얼굴을 내미는 뮤아에게 말을 건넸다. 지도에 적힌 오두막의 위치가 실제와 다르면, 표적은 불안에 사로잡혀 마을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용의주도하네.”

  “……전문가니까요.”

  “괜찮을까?”

  “뭐라고 말할 순 없어요. 자, 도착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평소엔 사용하지 않는 오두막집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바닥과 벽은 먼지와 모래로 뒤덮인 채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래도 튼튼하게 지어둔 것 같앗고, 노숙보다는 훨씬 나을 게 틀림없었다.

  “난 일단 안을 청소해둘 테니까, 아피아 좀 봐줘.”

  “알겠어요.”

팔을 걷어붙이며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뮤아를, 닛카는 토록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듯이 토닥이며 지켜봤다. 처음에는 흥분해 있어 손도 댈 수 없던 토록이었지만, 진정시키고 나면 제대로 길들여져 있어 다루기 쉬웠다. 토록에게 기다리도록 지시한 닛카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

도적들이 실어둔 짐은 뮤아가 검사를 마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은 안쪽에 쌓여있다. 흉흉한 것들이 대부분으로, 구속을 위한 도구들마저 보였다. 그들은 아마 사람을 노렸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서 사냥감을 눈여겨본 게 분명했다. 열지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져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니까.

문제는 그 이상의 배후가 있는지 여부다. 그리고 그 새. 동물을 탄다는 것부터 놀랍긴 했으나, 일단 그건 뒤로 미루고, 거기 있던 도적들이 왜 세피아를 노렸는지 궁금했다. 그가 굳어있는 세 사람을 쳐다보는 그 찰나, 자신과 세피아 사이에서 시선이 갈팡질팡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은 세피아에게 그물이 던져졌지만.

  “아피아를 쫓고 있는 녀석들과 관계가 있나, 일까요.”

그 세발족들은 수를 늘리고 있다. 처음에는 셋, 그 뒤에 나타났을 때는 일곱 명쯤 돼 있었다. 아피아가 혼자서 쳐내는 것도 슬슬 한계일 터였다. 하지만 바다에서 본 세피아의 모습으로 보면 순순히 털어놓을 것 같지도 않았다.

바닥에 누워있는 아피아를 보며 닛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에 반응하는지, 아피아가 작게 신음했다.

  “오두막에 다 왔어요. 이동합시다.”

말을 걸면, 아피아는 눈을 작게 뜨고 중얼거린다.

  “세피아는……?”

  “모릅니다. 지금 시드가 구하러 갔어요.”

세피아가 납치됐고, 아피아를 놓아준 뒤의 시드는 굉장했다. 도적들이 여럿 포진한 곳으로 돌진해, 온갖 포악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무기는, 수레. 토록으로부터 차를 낚아채 휘둘렀던 것이다. 결국 차가 두 대나 부서지고, 토록을 겁먹게 만들고, 도적들이 도주하자, 시드는 추격전에 들어갔다.

그 뒤로, 여전히 세피아를 쫓으려는 아피아를 말려서, 남아있는 차에 억지로 밀어넣고, 여기까지 왔다.

  “곧 돌아올 테니 안심하세요.”

닛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피아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간다.”

  “무리예요.”

  “내가 가지 않으면.”

  “무리예요.”

  “내가.”

만류하는 말은 귀에 전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열지로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아피아를 닛카가 붙잡고 막으려 했지만, 조금은 회복됐는지, 말리기 힘들 것 같았다.

  “다했…는데, 무슨 일이야?”

때마침 뮤아가 출구에 나타났다. 닛카는 그녀에게 눈짓으로 막아달라 부탁하고, 자신의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어디 가야하는지도 모르지?”

  “가야 돼, 세피아가.”

  “뒷일은 시드한테 맡길 수밖에 없으니까. 믿어줘.”

비틀거리면서도 꿋꿋이 걷는 아피아를 쫓아가며 뮤아가 말을 걸어보지만, 역시 듣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형제는 서로한테 이상한 집착이 있는 것 같다. 그야 뮤아도 형제를 소중하게 여기긴 한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냐면 고개를 갸웃할 거다. 뭐,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한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긴 한데.

  “기다리셨죠.”

그런 생각에 잠기려는데, 닛카가 따라왔다. 그는 뮤아에게 사과하고,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아피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정말 갈 거예요?”

그 질문에 아피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리지 않겠어요.”

  “잠깐, 닛카!”

뭐라 말하려는 뮤아는 무시한 채, 닛카는 아피아에게 무언가 담긴 잔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은 수분을 보충해두지 않으면 가다가 쓰러져요. 자.”

평소의 아피아라면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초조한 탓인지, 몸 상태 탓인지, 아피아는 내밀어진 그것을 깨끗이 들이켰다. 그런 다음 더 나아가려고 했으나,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픽 쓰러졌다.

뮤아가 달려가 봤더니, 다시 기절한 모양이었다. 뒤돌아 눈으로 묻는 뮤아를 향해, 닛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괜찮아요, 수면제니까.”

  “그런 걸 어디서…….”

  “아니, 그때 여관 주인의 방, 모처럼이니까 보여 달라고 했었거든요. 그때 별일이 다 있었죠.”

이걸 빈틈없다고 표현해도 좋을지 망설여지지만, 어쨌든 일단은 도움이 됐으니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슬슬 해도 저물어간다. 또 멀리서 울리는 폭풍 소리에, 뮤아는 새로운 난관을 예감하고 있었다.

 

10-8

지면에서 나는 열을 피하기 위해, 오두막은 2층을 사용하도록 돼 있다. 아피아를 옮기는 데 시간이 걸렸다. 1층은 토록 같은 가축이나 차를 두는 곳이라, 일단 바닥은 깔려 있지만 벽이 엉성하다.

아피아를 안고 계단을 올라서, 비치된 간이침대에 눕히고, 두 사람은 숨을 돌렸다.

뭔가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진 하루였다. 게다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드와 세피아가 무사히 돌아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쉴 수 있을 때 쉬어두지 않으면, 저희들도 쓰러지고 말 터였다.

  “미안, 닛카. 옷에 모래가 들어가서 몸을 좀 닦고 싶은데…….”

  “네, 잠시 나갔다올게요. 차에서 짐을 옮겨야겠어요.”

닛카는 뮤아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밖으로 나가 주었다. 그제야 뮤아는 겨우 머리를 풀고, 옷을 벗고, 모래를 털어낼 수 있었다. 모래는 바닥에 쌓일 정도로 여러 군데서 까슬까슬 흘러나왔다. 물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빗질하거나, 훑거나, 그런 식으로 적당히 털어냈다. 그런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난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

  “아피아도 해줄까…….”

얼굴 근처만 해놓아도 개운해질 거다. 게다가 열이 심하면 물을 써서 식혀주는 게 좋았다. 도적들에게서 빼앗은 것도 있어 조금은 여유로웠다.

무심결에 한 동작이었다. 열을 재기 어렵다고 생각한 뮤아가 아피아의 이마에 감긴 천을 위로 약간 끌어올렸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다 됐나요?‘

그 순간 닛카가 밖에서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황급히 천을 내리고 얼른 대답했다.

  “아, 응, 됐어.”

방금 본 걸 믿을 수가 없다. 심장이 쿵쾅대는 게 느껴졌다. 닛카가 의아한 얼굴로 질문을 던져왔다.

  “무슨 일인가요? 얼굴이 빨간데.”

  “어…, 어. 그런가. 피곤한가봐.”

  “뮤아까지 쓰러지면 저는 답이 없어요.”

  “맞아, 조심해야지.”

  “……정말 괜찮아요?”

미묘하게 맞물리지 않는 대화는 닛카를 걱정시킬 따름이었다. 뮤아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손을 흔들고, 닛카도 모래를 털라고 권유한 다음, 이번에는 자기가 밖으로 나갔다. 그건 동요를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계단에 걸터앉아 까끌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뮤아는 새삼 자신이 본 것을 돌이켜봤다. 아마도 착각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뭔가 잘못됐거나, 이유가 있다. 그러고 보면 세피아도 똑같이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같은 것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세피아마저 본인 책임으로 그런 짓을 당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응, 믿어줘야 해.”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린 뮤아의 마음이 차분해졌다. 자신의 감은 제법 들어맞는다. 함께 여행할 때는 물론이고, 처음 협박받았을 때조차도 아피아에게서 나쁜 인상을 받지는 않았으니까.

  “다 됐어요.”

마침 안에서 닛카의 목소리가 들려와, 뮤아는 일어섰다. 사정을 알아내기가 조금 더 어려워진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이 대하면 될 일이었다.

그 순간 뮤아는 모래사장 너머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아봤다.

처음에는 시드가 돌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빠르고, 보이는 그림자가 많아져, 별로 반갑지 않은 사태가 벌어진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뮤아는 오두막 안으로 뛰쳐 들어 닛카에게 방문객의 존재를 알렸다.

  “역시 도적일까?”

그들은 뮤아 일행이 이 오두막으로 도망치리라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드가 실패한 걸까.

하지만 창문으로 상황을 살핀 닛카가 고개를 저었다.

  “도적이 아니라 저건…, 아피아의 추격자예요.”

그 사이에도 오두막은 세발족들에 의해 둘러싸이고 있다.

수는 열 명 정도. 그들은 얼굴을 천으로 가린 채 눈만 내놓고 있었다.

약이 잘 들은 아피아는 깨어날 기미가 없었고, 시드 역시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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