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대삼림 한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나선 소녀, 뮤아. 그녀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소년 4명을 만나, 얼결에 함께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벽으로 분단된 세계를 지탱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세계·그라드네라를 무대로 한 이야기. 제법 길어질 예정. 아니나 다를까 갱신 정지 중."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1-1.

천장에 난 구멍으로부터 햇빛이 쏟아진다.

건물 위로 손을 뻗은 나뭇가지들은 정돈돼, 하늘이 여기로 곧게 이어져 있다. 그녀는 바닥에 생긴 빛의 고리 중앙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도의 장소, 맹세의 장소, 신의 장소. 위대한 아네키우스와 가장 가까운 이 장소에서.

  “신의 모습을 너무 들여다보지 마십시오. 눈이 멀어버립니다.”

곁에 있던 중년의 남성이 그녀를 다그쳤다. 그 말에 소녀는 천장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소녀의 용모는 아직 앳되다. 열세 살쯤. 즉 성인이 되기에는 한두 살 모자란 정도이리라. 그러나 남자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그 기세에 눌릴 정도로 강건하다.

  “뮤아=테에레=스피크, 당신의 그 결심은 번복되지 않겠지요?”

  “네, 신관님.”

뮤아의 대답에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동작에 맞춰, 그녀의 자잘하게 뻗친 경향이 있는 머리칼과 등에 접힌 투명한 날개가 빛을 반사한다. 그 모습을 본 신관은 만류해보았자 헛수고가 될 것이라 짐작했으나, 직무상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이 마을에서 당신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는 무슨 일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 것은 아니고요.”

물어보긴 했어도, 그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마을은 평화롭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만큼 여러 가지 알력이 존재하기야 하지만, 적어도 미성년 여자아이가 도망가고 싶어질 정도는 아닐 터였다.

하물며 그 평온함에 질려버린 기색 역시 눈앞의 소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이유라면 제법 가까운 왕도에라도 일자리를 찾아 나서면 될 일이지, 굳이 남쪽으로 발걸음을 향할 필요는 없다.

성스러운 산에 가기 위해서는, 대삼림과 그 불모의 사막을 지나서, 마의 초원으로 다가가야만 하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다만…음. 그냥, 불안하다고 생각해요.”

  “불안?”

그녀의 대답 속에서 껄끄러운 인상을 주는 단어를 신관이 되물었다.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말할 수는 없지만, 심란하다고 할까, 뭔가 있을 것만 같아요. 남쪽에.”

  “그것을 찾기 위해서, 당신은 일찍이 아네키우스가 걸어갔던 길을 따르려고 하는군요.”

  “예, 아마.”

신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것은 억누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신앙의 길을 걸으려는 자를 말릴 수도 없다.

신관은 준비한 상자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장식 문자가 적힌 그 종이를 소녀에게 건넨다.

  “이것이 당신의 순례 허가증입니다. 다녀오세요. 당신과 아네키우스가 함께 걸어가기를.”

이것이 뮤아가 남쪽으로 향하는 순례의 첫걸음이었다.

 

1-2.

그리고 그 여행은 그다지 진행되기도 전에 끝나버릴 위험에 처하고 만다.

  “순례 허가증, 넘겨줄 수 없어?”

낮게 내리깐 탓에 알아듣기 어려운 목소리로, 눈앞의 사람이 요구했다. 어떻게 봐도 강도짓이다. 정체를 보이지 않기 위해 온몸을 로브로 감싸고, 후드로 얼굴도 가리고 있다.

대삼림의 초로를 따라 걷고 있을 때였다. 마을로부터 떨어져 인기척이 끊어지자, 그 남자가 근처 수풀에서 튀어나와 길을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노려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세상은 역시 위험하네.”

뮤아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는 소년이 어깨를 으쓱한다.

  “뭐, 가끔은.”

  “이제 어쩌지?”

바로 얼마 전에 동행자가 된 소년은 다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건네줄 수밖에 없지 않나요, 라고 말하는 동작이다. 소년의 외모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거친 일들에 적합하지 않을 테니, 타당한 결론일 것이다.

그가 뮤아와 같은 유우족이라면 날아서 도망치는 방법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 보이는 동물 귀는 그가 생이족이라고 드러내고 있었다. 당연히 두고 도망칠 수는 없고, 심지어 저 강도의 정체도 이쪽에서는 알 수 없다. 로브 아래에 날개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강도는 덩치 큰 남자가 아니라 저희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체형으로 보였지만, 분위기상 도망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닛카의 판단이 옳았다.

  “별로 소란을 피우고 싶진 않지만.”

게다가 이쪽이 태도를 확실하게 하지 않은 탓인지, 상대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서 가느다란 단검을 뽑아든다. 뮤아는 결국 손을 들기로 했다.

  “잠시 질문.”

항복의 신호는 아니었지만.

  "뭔데?"

강도도 거기에는 허를 찔린 듯 다소 새된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랑 닛카 둘 다 가지고 있는데, 두 개나 필요해?”

  “…있는 대로 내놔.”

  “뭐에 쓰게? 이거 팔리는 거야?”

  “대답해줄 필요는 없겠지. 내놓을 건지, 안 내놓을 건지, 확실히 해 주실까.”

강도의 대답에 짜증이 섞여 들었기 때문에, 뮤아는 질문을 그만두고 닛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줄까?”

  “줘야겠죠. 다행히 마을도 멀지 않고요.”

  “그래.”

마을로 돌아가면 신관에게 사정을 말하고 재발급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 돌아가는 것은 분하지만, 목숨 걸고 저항할 필요는 전혀 없다.

두 사람의 체념이 강도에게도 전해졌는지, 주위는 어딘가 안도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 기묘하고도 일방적인 거래는 두 사람이 허가증을 내놓는 것으로 끝날 터였다.

갑작스레 그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지 않았다면.

  “너희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놀란 세 사람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자, 이 일대를 메운 나무들의 굵은 가지 위에 유우족 소년이 떡하니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건지, 그는 도발적인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며 거듭 물었다.

  “누가 봐도 그놈이 악당이지?”

나무 위의 소년은 슬쩍 허리에 매단 장검을 뽑아, 로브 차림의 남자에게로 칼날을 겨눈다. 강렬한 전의가 흘러넘치는 것이, 아무래도 원만히 해결될 것 같지는 않은 전개다.

  “어이, 악당. 두들겨 패 줄 테니까 각오해라.”

소년은 누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며 씩 웃었다.

 

1-3.

  ‘저건…….’

뮤아는 그때, 나무 위 소년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디선가 분명…….‘

아무렇게나 다듬어진 짧은 머리도, 그 아래서 호를 그린 굵은 눈썹도, 의지의 빛이 넘실거리는 검은 눈동자도 분명히 낯익었다. 하지만 최근에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럼 언제 적 이야기지?

뮤아는 무심결에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소년의 모습은 나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충격이 왔다.

  “잠깐, 위험해요!”

연이어 등 뒤에서부터 팔이 잡아당겨져 비틀거리고 나서야, 그녀는 상황을 파악했다. 나무 위에서부터, 등의 투명한 날개를 펼치지도 않은 채, 소년이 검의 일격과 함께 뮤아와 로브 차림의 남자 사이로 뛰어내렸던 것이다.

  “어쩌죠, 도망갈까요?”

뒤로 끌어당겨준 닛카가 그렇게 묻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기다려!”

로브 차림의 남자는 위에서 내닿은 일격을 뒤로 뛰어 피하고, 지체 없이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소년이 그대로 땅을 박차며 남자를 향해 돌격한다. 금속이 맞부딪치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 피했겠다!”

소년은 즐겁게 외치고, 로브를 입은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소년의 장검은 남자의 단검에 가로막혔지만, 남자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게 확실히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럼 한 방 더 먹으시지!”

다시금 장검이 치켜들어졌다가 내려쳐진다. 나무들 틈으로 쏟아지는 빛에 번쩍이며 단검은 날아간다. 로브 차림의 남자는 비워진 자신의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끝이다. 포기해.”

승리 선언을 하며 소년은 또 다시 칼끝으로 남자를 겨눈다.

  “우선 그 로브 좀 벗어보실까.”

남자는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묵묵부답이었다. 가만히 로브를 묶은 끈을 풀어낸 다음, 후드에 손을 대고… 불시에 소년에게 돌진한다.

  “뭣….”

그 자세로는 황급히 찌르는 수밖에 없다. 당황한 소년이 내지른 칼은 로브를 꿰뚫었으나, 거기에 무게감이 없었다. 벗겨진 로브가 검에 엉키며, 소년은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리고 충격이 이어졌다.

턱을 겨냥한 무릎의 일격. 명백하게 먹힌 이 일련의 움직임들은 완전히 계산된 것처럼 느껴진다.

소년은 땅바닥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의식이 끊어진 것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일어나겠지. 얼른 끝내자.”

그리고는 미처 도망치지 못한 뮤아 일행을 향해 돌아선 로브 차림의 남자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이제 로브 차림의 남자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그 아래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뮤아와 같은 세대의 소년이기 때문이었다.

 

1-4.

소년의 머리에 짐승의 귀는 없고, 등에 투명한 날개도 없고, 엉덩이에 꼬리도 없다. 요컨대 인간의 기본적인 형체만 가진 그 강도 소년은 어깨 너머로 조금 기른 머리를 뒤로 젖히며, 뮤아 일행을 위협하려는 양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일부러 난폭하게 굴 생각은 없어. 순순히 주기만 한다면. 자, 어서 넘겨줘.”

힘의 우위를 보여줬다고는 해도, 강도 소년 역시 말하는 대로의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만에 하나 쓰러진 소년이 다시 덮쳐온대도 그 정도 움직임에는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모의 경기가 아니다. 이기면 장땡이라는 게 아니다.

로브를 벗어야만 했던 시점에서 자신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했다. 게다가 성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외모가 위압적으로 보이기에는 선이 가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세로 밀어붙여야만 한다.

  “넘겨주면 아무 짓도 안 해.”

강도 소년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뮤아는 갑자기 벌어졌다가 난데없이 끝난 실랑이의 결말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다가, 재촉을 받고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 결국 사태는 거의 변한 게 없고, 유우족 소년의 난입은 별반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았어. 넘겨주면 그냥 가는 거야.”

  “약속하지.”

강도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뮤아는 주머니 안쪽에 손을 넣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시 제지됐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닛카가 뮤아의 손을 붙든 채, 조금 전까지 체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험악한 표정으로 소년을 노려보고 있는 탓이었다.

  “뮤아, 넘겨줘선 안 됩니다.”

  “…그럼 내키진 않지만, 전력으로 상대하게 될 거야.”

소년의 눈이 위험한 분위기를 머금으며 가늘어졌다. 그 공격을 받았다간 조금도 버티지 못할 주제에, 닛카는 물러서려 하지 않고, 그의 질문을 냉담한 목소리로 잘라버린다.

  “그 전에 왜 순례 허가증이 필요한지 들려주시죠.”

  “대답할 필요가 없군.”

  “옛날처럼 누구나 순례를 나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허가증도 그렇게 엄중한 물건은 아니죠. 어느 정도의 혜택은 있지만. 간단한 숙소와 식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분 증명. 하지만 그런 게 딱히 없어도 여행 정도는 할 수 있고, 그다지 의심을 사는 일도 아니에요. 그런데 어째서 굳이 순례 허가증을 빼앗으려 하는가. 당신은 최대한 의심을 사고 싶지 않은 거거든.”

그리고 닛카는 마침내 쐐기를 박았다.

  “당신은 세발족이다. 그렇죠?”

 

1-5.

세발족.

뮤아는 갑자기 튀어나온 그 단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몇 백 년이나 더 옛날에 있었을 종족. 과거의 싸움, 과거의 적.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너머의 사람들. 이 호리라에 있을 리가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

  “바보 같은 소리 마!”

강도 소년은 즉시 부정했지만, 그 어조에는 동요하는 듯싶은 기색이 약간 섞여 있었다.

  “세발족 같은 게 있겠냐. 난 그냥 결손아야. 이렇게 말하면 알겠지!”

소년의 호소에도 닛카는 간단히 고개를 저었다.

  “날개도, 귀와 꼬리도, 전혀 없는 결손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반드시 어느 쪽의 특징 하나는 나타납니다. 저처럼요.”

강도 소년이 숨을 죽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닛카 옆에 나란히 선 뮤아는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눈길을 아래로 보내고 말았다. 거기에는 생이족의 또 다른 특징인 꼬리가 없었다. 날 때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 결손아의 존재 때문에, 자식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유우족과 생이족의 혼인은 기피된다. 닛카가 마을을 찾은 뮤아의 순례에 동행할 마음을 먹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결손아 같은 게 아냐. 저 벽을 넘어온, 세발족이지.”

강도 소년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한 걸음 물러섰다. 도망칠지, 아니면 눈앞의 두 사람을 어떻게든 해야 할지 즉각 판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년은 거기서 헤매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선택은, 죽이는 것을 각오하지 않은 동안에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방황이, 시간을 벌었다.

그가 부활할 짧은 시간을.

그것은, 처음에는 신음처럼 들렸다. 옆에서 들려온 그 이상한 소리에 세 사람이 눈을 돌리자, 기절해 있었을 유우족 소년의 어깨가 떨리는 게 보였다.

이윽고 그것은 점점 웃음이 되어갔다.

섬뜩한 폭소.

  “세발족! 세발족!”

동시에 유우족 소년은 외치며 일어난다.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났구나!”

그는 근처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장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움켜쥔 주먹을 반대쪽 손에 부딪친다.

  “쳐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그 입에서 새어나온 중얼거림은 메말라 있었다.

 

1-6.

순간적으로 날아간 단검을 찾고 만 것은, 이전에 대치할 때와는 달리, 살갗을 찌르는 살기가 유우족 소년에게서 느껴진 탓이다. 진심이다.

세발족 소년은 찾을 수 없는 단검은 포기하고서 자세를 갖췄다. 적의가 강하긴 해도, 상대는 머리에 피가 끓는 중이다. 맨손으로만 싸우는 거라면 처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확실히 한 방 먹여뒀을 텐데 회복이 빠르다. 이번에는 좀 더 세게 쳐야겠다.

  “맞아, 그거다. 그거야.”

한편 뮤아는 말려들지 않기 위해 닛카와 물러서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짚이는 데가 있었다.

  “역시 틀림없어. 톨라. 저 녀석, 시드=신스=톨라야.”

  “톨라…?”

  “왜 바로 안 떠올랐지, 그렇게 강렬했는데!”

초조해진 것인지, 뮤아는 혼잣말처럼 다급하게 말을 이어간다.

  “우와, 잠깐, 그럼 위험해. 위험, 큰일이야 저거!”

두 사람의 신경전은 그 순간 끝나가고 있었다. 유우족 소년, 시드가 마침내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기세에 맡긴 직선적인 움직임. 아까의 싸움을 돌이켜보면, 깔끔하게 되받아쳐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뮤아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강도 씨, 도망가!”

뮤아의 외침에, 받아넘기려는 것에서 회피하는 것으로 대응을 달리 한 게 세발족 소년의 요행이었다. 급작스럽게 몸을 틀었으므로, 그의 얼굴 바로 옆을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고, 그의 등 뒤에 있던 나무줄기에 주먹이 내리쳐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가 흔들렸다. 대삼림의 일부를 담당하던, 이 세상 누구보다도 늙은 거목의 줄기가 휘어지고, 그렇게, 부서졌다.

흔들린 가지는 옆의 나뭇가지와 맞닿으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망가진 균형은 되돌아오지 않고, 틈이 벌어지며 스스로의 무게에 의해 땅으로 떨어진다.

나무는 쓰러졌다. 두 사람이 팔을 둘러도 전혀 닿지 않을 것만 같은 거목이, 단박에, 그저 한 번의 일격에. 땅울림이 일대에 울려 퍼졌으며, 놀란 새들은 비명을 지르며 주변의 나무에서 날아간다.

  “잘도 피하는군.”

실감이 들지 않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세발족 소년은, 그 사태를 만들어 낸 인물이 말을 걸어온 덕분에, 방금 일이 잘못 본 것도, 환상 같은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장난 아니네.”

  “이젠 죽어라.”

물론, 상대는 장난칠 생각이라곤 추호도 없어 보였다.

 

1-7.

맞아서 부러진 나무가 주변의 나무들을 휩쓸며 쓰러져 가는 것을, 뮤아와 닛카는 아연실색한 채로 쳐다봤다.

  “아, 정말. 어떡하지…….”

머리를 감싸 쥐고 마는 뮤아에게, 닛카는 확인을 한다.

  “저 사람, 아는 사람인가요? 그보다, 사람이에요?”

  “그렇게까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사람이긴 할걸. …일단은 귀족이시고.”

  “아, 확실히. ‘톨라’라면 공작 가의.”

  “응, 맞아. 우리 마을의 영주 집안. 그런 거.”

아마 5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부친을 따라 마을을 찾아온 소년은, 소란을 일으키더니 저 팔 하나만으로 바위마저 깨트렸었다.

  “…어째서 그런 사람이 이런 곳에 있는 거죠?”

  “모르겠어―. 정말, 어쩌지….”

이 틈에 도망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하는 것을 닛카는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세발족이다. 마을을 떠나자마자 맞닥뜨린 데다, 강도라니.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뮤아 일행이 미처 도망치지 못하는 사이에도, 둘의 싸움은 계속됐다. 땅이 꺼지고, 흙먼지와 잡초가 흩날리고, 수풀이 쓰러지는 가운데, 세발족 소년은 그저 시드의 맹공을 피하기만 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밖에 못하는 거냐!”

도발에 넘어갈 여유도 없다. 한 방이라도 먹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제는 물러날 수밖에 없지만, 상대가 말하는 대로 피하기만 해서는 달아날 틈이 찾아질 것 같지가 않았다.

  “슬슬 죽어라, 어이!”

  “나는 너한테 죽을 생각 없어!”

거기서 세발족 소년이 응수해온다. 변함없이 단순한 공격을 피하며 무방비한 옆구리를 발로 찬다. 그러자 시드는 순간 흔들렸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가볍네.”

전혀 먹혀들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완력의 차이는 분명했다. 또 다시 급소를 정확히 노려야만 함을 깨달은 세발족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이런 간격을 두고서는 상당히 불리하다.

  “어째서 그렇게 날 죽이고 싶은데?”

그래서 물었다. 전환점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뭐든 할 필요가 있다.

  “난 너한테 아무 짓도 안했어.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먼젓번처럼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대는, 어떻게 보아도 그런 것은 잊고 있다. 내뿜는 것이라곤 증오뿐이다.

  “아무 짓도 안했다고…?”

유감스럽게도, 그 질문은 역효과인 모양이었다. 그의 기세는 한층 음험해지고, 표정은 험악해진다. 격앙이 공기를 울리며 전해져왔다.

  “먼저 공격해온 건 너희들이잖아!”

더 이상 나무가 쓰러져 눈에 띄는 것은 바라지 않았지만, 달려드는 주먹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비틀며 공격을 등 뒤의 나무로 받아넘긴 세발족 소년은 그 순간, 자신의 뒤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았다.

이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작은 모습.

  “세피…….”

그 목소리를 가리며, 우지직, 근처의 나무가 큰 소리를 냈다.

 

1-8.

쓰러진다.

가차 없이 공격을 당한 나무줄기는 부러져 기울어진다. 그 궤도 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뜬 작은 소년이 서 있다.

세발족 소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땅을 박차고, 뛰어서, 작은 소년에게 달려든다. 그 직후, 나뭇가지가 꺾이고 잎사귀가 부산스런 소리를 내며, 가엾은 나무는 땅으로 떨어졌다. 나뭇잎과 흙먼지가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은 뒤에야, 웅크린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줄기의 직격을 피해 가지 틈으로 간신히 피한 것이다.

  “숨어 있으라고 했잖아.”

세발족 소년은 품 안의 상대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그 상대도 울먹이는 갈색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하지만 큰 소리가, 땅울림이라든가… 아피아가 위험한 일을 당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세피아는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세피아를 지켜야만 해.

아피아는 그 각오를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한층 강하게 껴안는 것으로 나타냈다. 그 얼마 안 되는 평온은 두 사람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짐으로써 깨졌다.

  “어이.”

어느새 바로 뒤에서 시드가 팔짱을 낀 채, 언짢은 듯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뭐야, 그 녀석.”

아피아는 급히 그에게로 돌아서며 등 뒤에 세피아를 숨기는 태세가 된다. 이 상태에서 걷어차이면 조금도 버티지 못할 테지만, 아피아는 각오하고 그를 위협하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공격은 오지 않았다.

  “아―, 이제 그만! 좀 진정해!”

구원의 손길이 뒤에서 다가와 시드의 팔을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당사자인데도 방치되었던 뮤아가 마침내 끼어든 것이다.

  “뭐야, 너는.”

  “‘뭐야’가 아니지. 그쪽이 마음대로 난입했으면서.”

  “방해하지 마.”

시드가 뿌리치려고 팔을 움직이자 덩달아 비틀거리면서도, 뮤아는 놓지 않았다. 매달린 채로 그녀는 명령한다.

  “그만두세요, 시드=신스=톨라!”

시드는 즉각 반응하여,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를 미심쩍게 쳐다봤다.

  “너, 어떻게 내 이름을…….”

  “그쪽은 기억 못하겠지만, 이쪽은 기억하고 있어. 무디카=투카 마을의 뮤아=테에레=스피크라고 하면 알려나? 알았으면 좀 떨어져.”

쏘아붙이듯이 말하자, 시드는 한 방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 무심코 지친 한숨을 내쉰 뮤아와, (세피아를) 감싸는 자세 그대로 굳어있던 아피아의 눈이 거기서 처음 마주쳤다.

너무 복잡한 입장의 변화에 서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쳐다보다가, 곧 아피아 쪽이 힘을 풀었다.

  “…미안하다.”

어색한 분위기로 사과해왔다. 위협하며 소지품을 빼앗으려고 한 상대를 태연한 얼굴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뮤아는 주저앉은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어째서 우리를 구해줬지?”

  “아니, 뭐랄까, 분위기상. 그 애는?”

  “…동생이야.”

  “그래서 두 장인가.”

두 사람의 겉모습은 별로 닮지 않았지만, 듣고 보니 분위기가 비슷한 것도 같다. 이마에 감긴 천도 똑같았다.

  “세발족이 벽을 넘어오다니 무슨 이유가 있지?”

뮤아의 물음에 두 사람은 답하지 않았지만, 그 반응이 곧 긍정이었다.

  “말할 수 없는 일이야?

  “부끄러운 일은 아냐.”

  “정말?”

  “아네키우스에 맹세코.”

신의 이름을 내건 맹세에 거짓은 보이지 않는다. 뮤아는 이미 강도 행각을 비난할 마음도 없어졌다.

  “그래서 어쩌죠. 그쪽 분이 다치신 것 같은데요.”

또 다른 당사자인 닛카도 그것을 건드릴 생각은 없는 듯, 다가와 태평하게 묻는다. 듣고 보니 가지에라도 스쳤는지, 세피아의 팔에 약간이지만 피가 나고 있었다.

  “제 집으로 갈까요? 여기서 하루도 안 걸려요.”

 

1-9.

붕대를 다 감아주자, 작은 소년은 고수머리를 예의바르게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고마워. 정말 미안하군.”

뒤이어 옆에 서 있던 아피아도 고개를 숙인다.

  “소독한 것뿐이니까.”

뮤아는 약상자를 닫으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 틈에 자못 언짢은 중얼거림이 끼어든다.

  “세발족들한테 그렇게 대해줄 필요 없어.”

책상을 사이에 두고서 벽에 기댄 채 위압감을 내뿜는 시드였다. 그는 좀 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한 살기를 두르고 있어, 금세 방 안을 삐걱거리는 공기로 메운다.

  “저, 시드는 왜 여기 있어?”

속으로 좀 봐달라고 생각한 뮤아였지만, 닛카가 안쪽에 틀어박혀 있으니, 이 자리를 수습할 수 있는 게 자신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열 수 있게끔, 우선 시드에게 말을 걸어봤다.

  “세발족을 놓칠까 보냐.”

  “어, 그치만, 뭔가 볼일이 있을 거잖아. 공작님의 부탁이라든가.”

  “…네 녀석, 아버지께 이르려는 건 아니겠지.”

시드의 비난이 이번에는 뮤아를 향하고, 그 말투에 그녀는 불쾌한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예감이 적중했다.

  “난 이제 그 집안이랑 아무 상관없어. 기억해 둬라.”

그 말인즉슨 가출했다는 겁니까, 하고 따질 기력도 없다. 제멋대로다. 물론 그럴 만한 인물이긴 했으나, 어쨌거나 자신이 떠난 이후에 부닥쳐도 되는 것 아닌가. 이건 갑작스레 나타난 세발족을 향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호리라와 리탄트, 그것을 나누는 벽.

200년 전쯤에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싸움을 계속하는 동안에 자연히 경계가 정해지고… 머지않아, 벽이 만들어졌다. 사람의 손으로 쌓아올린 흙과 돌의 벽. 그것이 완성됐을 때 비로소 전쟁은 종식되었다. 이후, 그 벽을 넘은 사람은 없다고 여겨진다. 그 전쟁의 원인은….

  “너도 세발족은 마물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부류인가?”

뮤아가 골머리를 앓는 사이,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확실히 일촉즉발의 양상으로 아피아와 시드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어?”

  “말해두겠는데, 그건 착각이다. 마술사를 몰아낸 건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야. 세발족 사이에 그런 수상한 술사는 한 명도 없어.”

  “무슨 소리냐, 너. 그따위 옛날 얘긴 아무려면 어때.”

  “그럼 왜 그렇게 적대하는 거지? 눈에 거슬린다면 신고든 뭐든 하면 된다.”

  “바보냐? 내가 직접 죽일 거라고.”

  “죽일 수 있다면 죽여 봐. 아까부터 한 대도 못 쳤으면서 목소리만 크군.”

  “뭐라고? 좋아, 밖으로 나와.”

  “아아―잠깐, 잠깐, 잠깐만!”

내버려두면 악화되기만 할 뿐이니, 뮤아가 중재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손을 내저었다.

  “적당히 해, 두 사람 다.”

  “아피아…….”

세피아도 형의 소매를 붙들고, 닛카가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시드는 다시금 불편하게 입을 다물어, 겨우 자리가 정리됐다.

  “무슨 일 있었나요?”

닛카의 물음에, 뮤아는 맥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그쪽이야말로 뭐 하고 있었어? 어떻게든 한다고 말하고선 꽤 오래 걸리던데.”

  “조달하고 있었거든요. 이거.”

그가 책상에 펼친 것은 두 장의 순례 허가증이었다. 도장도 똑바로 찍혀있지만 이름과 출신지, 나이 칸은 비어있다. 뮤아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닛카는 어깨를 으쓱한다.

  “아직 가재도구가 남아있어 다행이었네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분에 사로잡혀, 뮤아는 바깥의 풍경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그 옆에서 닛카가 펜을 들고서 형제를 향해 물었다.

  “그럼 출신지는 적당히 지어내고, 이름과 나이는?”

  “아피아…. 아피아=세리크=파다. 동생은 세피아. 열세 살과 열 살.”

번듯한 문자를 적어내자 순례 허가증이 완성됐다. 하지만 닛카는 종이를 건네지 않고, 그 위에 손을 얹은 채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한 가지, 조건을 달아도 괜찮습니까?”

아피아는 입을 열지 않은 채, 경계하는 눈빛으로 닛카를 쳐다본다. 그 무언의 대답에 닛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목적지를 알려주시겠어요?”

  “그게 조건?”

  “이건 확인해두려는 것뿐이에요. 무리는 아닐 텐데요.”

아피아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벽에 붙어있던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야.”

그것은 호리라 남단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자 순례의 종착지, 성산이었다.

  “그렇다면, 갈 길이 같군요.”

그제야 닛카는 미소를 지으며 드디어 조건을 말한다.

  “저희도 동행하겠습니다. 싫다면 이 허가증은 줄 수 없어요.”

그 회화를 엿들으면서, ‘저희’라는 데 당연하게 포함된 뮤아는, 앞으로도 귀찮은 일에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각오를 다졌다.

 

아네키우스력 7512년, 청의 달에 생긴 일이었다.

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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