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미 호무라x토모에 마미.
*12화 이후 시점.
*2013. 12. 16
이맘때의 밤거리는 어둡지 않다. 가게의 벽과 가로수들에 둘러진 앙증맞은 조명들은, 계절을 잊은 짙은 초록과 화려한 빨강, 그리고 그리운 하양으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엔 거리가 그런 색들로 빛났다. 바야흐로 잿빛이 된 채 얼어붙은 도시가 다정하게 녹아내리는 한때였다.
행인들은 둘 혹은 여럿이서 돌아다녔으나, 호무라는 혼자서 그런 거리를 거닐었다. 순찰이야 하굣길에 간략하게나마 마쳤고, 만날 사람도 딱히 없었으니 목적 없는 배회였다.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면 싱숭생숭한 기분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어 들인 버릇이, 미키 사야카가 사라진 이후로 그 빈도가 더 잦아진 탓도 있었다. 이제는 그다지 큰 고민들도 없었지만 꺼림칙한 것들은 언제나 가슴께를 맴돌았다. 전학 첫 날부터 저를 흘끗거리던 시즈키, 미키 사야카의 ‘원환’ 이후 미타키하라 시로 오는 발길이 뜸해진 사쿠라 쿄코와 그에 영향을 받고 있음이 분명한 토모에 마미까지. 오래 전부터―그 두 사람이 알던 것보다 더욱 오래 전부터 함께 했던 그룹은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 돼 줄 것이었다. 시즈키와는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반이 달라질지도 모르고, 사쿠라 쿄코와는 이대로 멀어질 것이 자명하고, 토모에 마미는 졸업하겠지. 그리고는 그대로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당연해질 테다. 어쩐지 명치 부근이 울렁였다. 마도카라면, 그건 쓸쓸한 게 아닐까, 라고 설명해줬을 법한 감각에. 그 감각이 무거워 고개를 숙이고 걷던 호무라의 눈 안에, 익숙한 하얀 구두가 들어왔다.
“어라, 아케미 양?”
목소리마저 익숙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무심코 들어 올린 고개 앞에 토모에 마미가 서 있었던 탓에, 호무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랜 루프를 통해 어지간한 일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게끔 무감해지지 않았더라면, 기묘한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엷은 색의 셔츠 위에 감색 카디건만 걸친 호무라와 달리, 토모에 마미는 추위로부터 단단히 무장한 차림새였다.
호무라는, 허리쯤에서 허벅지까지 풍성하게 퍼지는 아이보리색 코트가 토모에 마미와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토모에 마미는 장갑과 목도리도 두르고 있었다. 목도리는 털실이 아니라 천 같은 재질이었는데, 호무라로서는 그것을 뭐라고 하는지 도저히 기억해낼 수 없었다. 토모에 마미가 호무라에게 제 목도리를 벗어 둘러줬다.
“늦어도 오늘 밤엔 눈이 올 거라는데, 그렇게 입고 다녀서야 춥지 않겠니?”
“……난 추위 안 타.”
호무라는 목도리를 풀어냈다. 목도리 구석의 태그에 ‘캐시미어 100%“라고 적힌 게 언뜻 보였다. 호무라가 손에 든 것을 다시 주인에게 매어주자 훨씬 더 그럴 듯해 보였다. 그래, 저런 밝은 체크무늬는 토모에 마미에게 더 잘 어울린다. 토모에는 뭐라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벙긋거리더니, 그냥 다물어버렸다.
“이걸로 선물을 넘어가면 안 되겠지.”
호무라가 농을 던졌다.
“무슨…….”
“크리스마스잖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머, 줄 생각이었어? 음…, 그럼 커피라도 사는 건?”
그런 걸로 되나? 되고말고. 두 사람은 요 몇 주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들답지 않게 태연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호무라는 토모에 마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과는 꽤나 차이 나는 훈기가 곧장 몸을 덥혔다. 토모에 마미는 작게 손부채질을 했고, 그런 그녀를 흘끗 보던 호무라가 앞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참이나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토모에 마미는, 굉장히 이름이 길어 기억하기도 어려운 무언가를 주문하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안쪽에 자리를 잡아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보고 앉아 서로의 손끝을 어색하게 쳐다봤다. 그러다 눈길이 마주친 순간, 픽 웃고 말았다. 그러다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을 시작하고, 또 공교롭게도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벨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웃은 덕분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토모에 마미가 벨을 낚아채고선, 잠시만 기다리라며 훌쩍 음료를 챙기러 내려가 버렸다. 어쩐지 기억하던 것보다 들떠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호무라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싫지는 않았다.
“여전히 단 걸 좋아하네.”
“살은 좀 찌겠지만, 크리스마스니까 괜찮지?”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좀 봐줘, 아케미 양….”
마주앉은 그들 사이에선,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가 오갔다. 심지어 토모에 마미는 호무라더러, 크리스마스 전야에 자신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먹으러 오지 않겠냐며 집에 초대하기까지 했다. 호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호무라는 문득 석연찮은 기분을 느꼈다. 대화는 일상적이기 그지없는데, 어째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걸까. 이유는 금방 알았다. 토모에 마미는 평범한 근황만을 말하고, 마법소녀로서의 일상에 대해서는 화제로 삼기를 피하는 듯했다. 호무라는 그녀가 혹시라도 사쿠라 쿄코와 미키 사야카, 그러니까 이제는 곁을 떠나간 것들에 대해 언급할까 봐 저어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챘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저질렀다.
“다른 사람은 초대하지 않아도 괜찮고? 나보다 오래 알고 지낸 동료인데, 빼 먹으면 서운해 하지 않겠어?”
반복된 한 달이 아니라, 그보다 넓고 깊은 시간이 사쿠라 쿄코와 토모에 마미 사이에 있었음을 안다. 알기 때문에 부리고 만 심술이었다.
“……괜찮아.”
그러나 토모에 마미는, 조금의 놀라는 기색도 없이,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쪽에서 찾아오지 않으면 연락할 방도가 없는걸. 사쿠라 양은 휴대전화도 없으니까. 이해해줄 거야.”
“…….”
호무라가 듣기에는 변명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더 캐물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저 역시 사쿠라 쿄코는 불편했다. 제가 머리에 리본을 두르기 전에는 그녀의 실력을 높이 사 동료로 삼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도 개인적 친분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달리 무슨 얘기를 하겠나? 차라리 토모에 마미와 단둘이서 보내는 게 나을 법했다.
“그래, 당신 뜻이 그렇다면.”
호무라는 제 몫의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토모에 마미가 제 의도를 짐작하지 않기를 바랐으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둘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토모에 마미가 입을 열었는데, 하필이면 그 순간 쿵쾅거리는 음악이 그녀의 말을 감춰버렸다.
“이런 캐럴은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아.”
“……그러게.”
호무라는 말을 돌렸고, 토모에 마미는 거기에 달라붙었다.
“다들 크리스마스라고 들뜬 모양이야. 그렇지, 참. 아케미 양은 받고 싶은 선물 없어?”
“음? 케이크를 대접해준다고 했잖아.”
“그래도 혹시나 하고. 그걸로 된다면 다행이고.”
“나도 이 커피로 넘어가고 있는데, 여기서 뭘 요구할 수는 없지.”
호무라가 가볍게 웃으며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제야 토모에 마미도 제 몫의 음료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반가웠어.”
“아니, 나야말로.”
잔을 다 비우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갔더니, 어느새 발목까지 쌓인 눈 위로 함박눈이 그칠 줄을 모르고 내렸다. 너무 안쪽에 앉아있었던 탓에 창밖을 볼 수 없었던 게 화근이었다. 호무라는 앞으로 쌓일 눈의 양과 집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너무 멀다.
“당신 집으로 가도 괜찮을까.”
토모에 마미는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춥잖아.”라는 말과 함께 호무라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줄 따름이었다. 목적지까지, 둘은 나란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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