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미 호무라x시즈키 히토미
*12화 이후 시점.
*2013. 12. 21
시즈키 히토미는 전학생이 처음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일어난 바람―물리적인 현상의 얘기가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인데, 이를테면 그 인물로 인하여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라는 운명과도 같은 예감―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히토미는 그 전학생이 교실 문턱을 넘을 때 먼저 들어선 발이 왼발이었다는 사실마저 잊지 않은 채였다.
그러나 당시 히토미가 전학생의 얼굴을 보고 느낀 것은 아주 단순한 감상에 불과했다. 굉장한 미인이라는 것 정도. 히나 인형 같기도 하고, 비스크 돌 같기도 한 고풍스러우면서 세련된 외견. 그런 것은 단순한 흉내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케미 호무라, 잘 부탁드립니다.”
단호한 목소리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믿는 사람들 특유의 확신이 엿보였다. 그래, 그것은 동경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기에, 히토미는 아케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케미는 준수한 외모만큼이나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새로운 얼굴에 쏟아지는 관심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칠판에 복잡한 수식을 적거나 누구보다 빠르게 트랙을 앞서 달리는 모습이 무척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케미 호무라에 대해 금세 호감을 가진 스스로를 발견한 히토미는, 새삼 놀라고 말았다. 모두에게 친절하게 구는 것과 마음을 놓는 것은 별개의 일이고, 자신은 낯선 사람에게 쉬이 접근하기보다는 경계를 먼저 하는 탓인데, 이 상황은 조금 이례적이었다. 반해버린 걸지도 모르겠네요, 입속에서 농담을 중얼거린 히토미는, 아케미와 가까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얌전히 있어도 시선을 잡아끌고 마는―그렇기에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듯싶은―아케미가, 히토미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인 같은 반의 다른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탓에 섣불리 다가가지는 못 했지만.
그런 식이었으니 히토미의 기대가 어떠했든, 첫 만남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그 날 이래로 그녀와 아케미 사이에 어떤 연관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히토미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으나, 동시에 어느새 가까워졌는지 모를 미키 사야카와 아케미의 관계를 은연중에 주시하고는 했다. 사야카와는 오랜 친구였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도 않만, 사야카가 아케미와 어울릴 만한 성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탓이었다. 사야카와 아케미가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입안에서는 괜한 쓴맛이 감돌았다.
히토미는 그것이 미키 사야카와 오래도록 친한 친구는 사실 저쪽이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에 서운함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실은 사야카가 아니라 자신이 아케미 앞에 저렇게 서 있고 싶다는 질투를 느꼈기 때문인지, 또는 그저 저 둘이 가까워짐에 따라 제 친구가 줄어드는 듯싶은 기분에 외로워진 건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을 말하자면, 미키 사야카는 아케미 호무라와 가까워진 이후로 시즈키 히토미에게 말을 거는 횟수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아침 등굣길에 함께 하지도 않았고(밤새 무슨 일을 한 건지 꾸벅 졸며 위태롭게 다녔는데, 아케미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으니 둘 사이에 무언가 있었노라 짐작하기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제가 말을 걸어도, 사야카는 급한 일이 있다며 허둥지둥 어딘가로 사라지고는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던 무렵,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미키 사야카의 실종.
하지만 단순한 실종이 아니었다. 아무도 미키 사야카를 찾지 않았다. 도리어 제가 미키 사야카를 찾을 때마다, 그녀를 아는 게 당연할 사람들마저 히토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개중에는 상상 친구를 아직 졸업하지 못했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히토미는 저를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보다도,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진 것만 같은 막연함이 더 두려웠다. 이래서야 어제까지 발붙이고 서 있던 일상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 거나 다름없는데….
어째서 이런 순간에 아케미가 떠올랐을까? 처음 만난 날 불어왔던 그 바람 덕분에? 저와는 조금도 친하지 않은 아케미에게 위로를 구할 수 없으리란 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히토미는 아케미와 말을 나누고 싶었다. 아케미라면 미키 사야카를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다는 불합리한 확신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평소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짓―하굣길에 다짜고짜 아케미를 붙잡은 것 역시 그런 연유에서였다. 나날이 쌓인 초조감이 스스로를 대담하게 만들었다.
“…무슨 용건?”
“저, 사야카 씨에 대해 묻고 싶어요.”
머릿속에선 좀 더 차분한 모습이었는데, 뜻대로 잘 되질 않았다.
“……안 돼.”
“안 된다, 라는 건 모르는 건 아닌 거죠? 정말 설명해주실 수 없는 건가요?”
“……, 여기선 안 돼.”
일단 자리를 옮기자. 아케미의 말에 히토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를 쫓아갔다. 아케미가 안내한 곳은 그녀의 집이었다.
“커피, 아니면 주스?”
불현듯이 아케미가 묻는 말이 들려, 히토미는 이번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보다 사야카 씨에 대해서―.”
히토미는 제가 답지 않게 남을 채근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 역시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야카가 사라진지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기억이 희미해 두려웠다. 물이 담긴 잔을 테이블에 내려두고서 히토미의 맞은편에 앉은 아케미는, 교복 윗도리의 후크를 푼 채였다. 목덜미에 땀이 맺혀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좋을까, 아니, 말하는 게 괜찮은지도 의문이지만. 여기까지 데려온 이상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지. …궁금한 게 뭐야? 미키 사야카에 대해서라면 나보단 네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아무도 사야카 씨를 기억하지 못 하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은 네가 아는 것보다 더 많아. 혹시 ‘카나메 마도카’라는 이름을 기억해?”
히토미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 이름의 울림은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뿌연 안개처럼 머릿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억한다’는 표현은 걸맞지 않았다. 그 이름이야말로 아주 어릴 적의 자신을 스쳐지나간 상상 친구의 것이었다. 자신의 그런 공상 같은 것을 어떻게 아케미가 알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으므로, 히토미는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역시 모르는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저, 저는 그런 얘기를 듣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이든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고 믿을 수 있어?”
“무엇이든지요. 멀쩡히 있었던 한 사람이 잊히는 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소리가 있나요?”
히토미가 그렇게 말하자 아케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히토미더러 이 자리에서 들은 말들은 곧장 잊어버릴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아냈다. 그러나 사실 그 일련의 과정은 쓸모없는 짓이었다.
마법이니 기적이니, 당최 그런 이야기를 대체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뭔가 더 묻고 싶은 모양인데, 나는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어.”
아케미는 혼란을 느끼는 히토미의 얼굴에 대고 그렇게 덧붙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케미와의 사이를 이어줄 다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미키 사야카라는 실은 의외로 궁핍했다. 사야카가 사라진 뒤로 그나마 있었던, 아주 약간의 대화(“호무라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니까, 그렇지?” “미키 사야카, 당사자 앞에서 그런 식의 말은 그만뒀으면 하는데.”)조차 완전히 사라졌고, 제게 말을 거는 친구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케미의 품에 안겨 있었고, 또, 눈물짓고 있었다. 등 뒤에 감긴 팔의 감촉은 퍽 어색했다. 마치 자신을 안은 이의 어색함이 옮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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