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캐릭터: 고유 설정을 지닌 레하트가 등장하는 드림물입니다.
*다 아는 얘기 우리집 시점으로 바꿔보기
0.
태어나 처음 타 보는 록차는 불편했다. 스스로 걸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덜컹임이 자꾸만 궁둥이를 들쑤셔 대고, 창밖에선 한평생 눈에 담게 되리라 믿었던 시골 마을의 모습이 점점 뒤로 멀어져 가는 탓이었다.
아니, 아니다. 평생이라고 말하려면 좀 더 조건이 필요하겠다. 그저 여느 마을들이 지녔을 저 소박한 풍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굳이 그 마을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태어난 곳도 아닌데, 죽을 때까지 반드시 거기서 살아야만 할 필요가 있겠나. 갓난아이였던 나를 안고 이 마을에 정착한 어머니가 무슨 생각이었을지는 몰라도, 나는 언젠가 내 발로 내가 거의 평생 자라온 고향을 떠날 심산이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내도 결코 녹아들 수 없는 투명한 벽이 나를, 내 마음을 마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아서 그랬다.
눌러앉아봤자 이방인일 이 삶, 차라리 여행자로서 세상을 유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이따금 머리맡에 앉은 어머니로부터 들은 내 출생지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것이 설령 지어낸 얘기라고 해도.) 이 막연한 생각은 어머니의 죽음을 기점으로 점점 몸집을 불려갔다. 온갖 곳을 돌아다니는 덴 남자를 선택하는 게 더 편하겠지, 지금은 내 몸 하나밖에 가진 것이 없으니 당분간은 마을에서 일하면서 여비를 마련해봐야지, 그런 다음엔 남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그렇게 이 리탄트 땅을 둥글게 돌아서…….
이제 와서 말하건대, 부질없는 계획이었다. 나는 미래를 그리는 데 몰두하느라 현재를 잊어버렸다. 괴상한 비유를 빼고 말해보자면, 나는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당연하게 머리에 두르고 다녔던 천을 깜빡했다. 내가 현관문 바깥으로 나서기 전이면 매번 들은 “이마.”라는 말 한 마디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실수로 내 이마의 보기 흉한 멍을 남들에게 드러내고 말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새해의 두 번째 주가 다 지나기도 전에 촌장이 그 멍을 확인했을 뿐인데,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1 낯선 이가 찾아왔다. 2
나는 맞은편 좌석에 앉은 노인을 흘끗 쳐다보았다. 창밖을 보는가 싶던 그가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해 보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 역시 뭐라 더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배려일까, 짐작해봤지만 모를 일이었다. 설령 배려가 맞다고 한들, 어차피 이 록차에 탄 순간부터 의미가 없어진 짓이니까. 나는 노인을 다시 한 번 흘끗 쳐다봤다. 그는 내 앞에 돌연 나타난 그때와 같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퍽 단호하던 그의 목소리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럽게 황송합니다만, 당신의 이마에 있는 멍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촌장이 느닷없이 소개한 불청객에 대해 짚이는 바가 없어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더니, 그가 더욱 느닷없는 요구를 했더랬다. 어머니가 숨겨두라고는 했지만 이미 남들이 다 봤을 표식을 따로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게다가 숨긴다는 행위 자체가 뭔가 있기는 하다는 걸 알리는 짓이기 때문에―나는 선뜻 앞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냈다. 문간에 그와 함께 서 있던 촌장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떻습니까?”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아네키우스의 표식. 재차 인사 올립니다. 저는 로니카 벨 하라드, 이 나라, 리탄트의 왕성에서 시종을 배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 말을 듣고서야, 일이 터무니없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그 이마에 빛나는 것은, 아네키우스 님의 손이 내려준 왕의 후계라는 증거. 당신을 맞이하러 왔습니다. 부디 저와 함께 와 주십시오.”
요컨대 어머니가 나더러 보기 흉하니 숨겨두라던 멍이, 기실은 흉 따위가 아니라 뭔가 굉장한 것이란 얘기였다. 고작 이까짓 것이.
“가기 싫다면요? 지금까지처럼 조용히 숨어서 살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성에 오셔야만 합니다.”
말로는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내가 얼마나 빠르게 달음질할 수 있을지 가늠해봤고, 어머니가 평생토록 숨겨온 나를 찾아낸 치들이 나를 잡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일지도 잠시 고민해봤다. 그러자 로니카가 타고 온 록차에 순순히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레하트·피르단=페넷.”
“레하트 님이십니까? 그럼 곧바로 죄송합니다만, 출발합시다. 준비는 필요 없습니다. 와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 갈까요.”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 성에 가려면 얼마나 걸려요?”
대답을 듣기까지 약간의 뜸이 들었다.
“반(半) 달 정도 걸리겠군요. 가깝지는 않으니까요.”
그 말을 듣자마자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도망가지 않겠다, 의심된다면 옆에서 감시해도 좋다, 따위의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렇게 챙겨온 마른 꽃이 주머니 안에서 버석거렸다. 성에 도착할 즈음이면 완전히 부스러져 형체를 잃을 것 같았다. 그래도 챙길 수밖에 없었다. 꽃을 만지작대고 있으면, 침대에 누운 채로 마지막 말을 하려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내게 한 마디 사과를 하고서 입을 벙긋거리다 그대로 내 손을 놓친 그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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