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미 호무라'의 과거를 날조하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드림물입니다.
*2015. 12. 2. (접은 글 삭제가 안 돼서 부득이하게 새 글.)
“일가친척 다 살아있는 애한테 시설은 무슨…. 서류 정리도 진작 끝냈어요.”
수화기 너머로 다른 말이 더 들려오기 전에 소이치로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누나 마리가 죽은 이후 가족이란 치들은 소이치로에게 늘 같은 소리를 했다. 네가 누나를 많이 따랐던 건 안다, 그래도 ‘그것’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러니…. 표현은 매번 조금씩 달라졌지만, 결국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그네들은 마리가 남긴 아이를 치우고 싶어 했던 것이다.
기실 이런 직설적인 말 따위가 없어도, 아이의 취급은 대강이나마 알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리만치 조촐하게 진행되던 장례식 내내, 그 애는 눈치를 보느라 조문객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골방에 틀어박힌 찬밥 신세였다. 소이치로는 거기에 대해 이해했다. 마리 누나가 자취를 핑계로 슬슬 집에 오는 발걸음을 줄일 때만 하더라도, 어머니는 마리 누나에 대해 꽤 큰 기대를 갖고 있었노라고 기억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마리는 학교도 졸업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었고, 끝내 홀몸으로 아이를 낳았다. 그 소식을 전한 뒤로 마리에 대한 화제는 집에서 금기시되었다.
다만 소이치로는―이해와 별개로―가족에 대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저쪽에서도 마리가 남긴 아이를 치우지 않는 이쪽에 실망하고 있겠지, 따위의 생각이 들자 입가에는 자조적인 미소가 희미하게 걸렸다. 하지만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림잡아 10년쯤은 지났을 겨울, 계절을 놓친 눈이 뒤늦게 쏟아지던 새벽, 도쿄 변두리의 작은 병원에서 그 애가 태어났다. 아이를 낳은 마리는 제가 낳은 핏덩이를 안겨주려는 손길에 거부 의사를 밝히다 못해 눈으로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그 광경 속에서 탄생을 축복하는 소리라고는 간호사의 의례적인 말 한 마디가 전부였다. 게다가 그날 아침 해가 완전히 떠올랐을 때 병실을 찾은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안 찾아와줘서 고맙네. 만나서 무슨 얘길 하겠어?”
“몸은 좀 어때?”
“괜찮아, 각오하고 있었고.”
“애는?”
소이치로는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로, 꼬물거리지도 않고 잠든 아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
“안아 봐도 괜찮을까.”
“간호사한테 묻지 그래?”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짧게 감돌던 적막을 깨트리며 다가온 간호사는,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데려와 소이치로의 품에 안겨 주었다. 아이는 따끈따끈하고, 너무…… 너무 작았다. 그러나 소이치로가 무심코 흘끗 쳐다보고 만 마리의 얼굴에는 이만한 아이가 만들어냈을 그늘이 깊게도 드리워져 있었다.
“……키우려고.”
“이름은 정했어?”
“호무라(炎).”
기운 넘치는 이름이네. 남매가 그런 말을 주고받는 내내, 신기하게도, 아이는 쭉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 아이는 불같은 이름과는 다르게 얌전하기만 했다.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것이야 그만한 아기의 특징이라고 친다 해도, 도무지 오래 울지를 못하는 모습에는 혹시 무슨 문제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결국 수개월이 지나 아이의 작은 몸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각종 커다란 기계들을 달고서 검사를 했다가, 어머니―그러니까 마리로부터 물려받은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소이치로는 마리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호무라에게 전부 해주어야겠다고 남몰래 다짐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될 수 있는 한은 매일같이 호무라를 찾았다. 소이치로는 금세 마리의 보조 없이 혼자서도 호무라를 돌볼 수 있게 됐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큰다’는 말도 실감할 수 있게 됐으며, 기어이 호무라가 첫 마디로 엄마まま 대신 삼촌そちゃん을 찾았을 때는 조금 울고 말았다.
그런 아이를 어떻게…….
소이치로는 마리의 주치의를 맡은 동료 의사가 시한부 선고를 내리자마자 마리의 병실을 찾았고, 마리가 생명 연장에 조금의 의지도 갖지 않았음을 알고서는 홀로 남겨질 조카를 제가 맡아 기르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 얘기에 마리는 미친 놈, 같은 반응을 했으나 끝내 유언장을 작성해 일이 꼬이지 않게끔 해주었다. 덕분에 심사는 간단히 끝났고, 소이치로는 비로소 마리가 남긴 9살짜리 여자애의 적법한 보호자가 됐다.
소이치로가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검은 인영이 튀어나와 그의 다리에 부딪쳤다. 그는 나무라는 대신에, 그것을 한 번 꼭 안아주고는 말했다.
“아이스크림 사왔어.”
호무라는 봉투를 받아들고선 도로 안으로 도도 뛰어 사라졌다. 정리를 도우려는 것일 게다. 소이치로는 빙긋 웃으며 뒤따라 들어갔다. 어느새 아이스크림들을 냉동실에 넣어뒀는지, 소파에 앉아 초코 맛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만을 손에 든 모습이 퍽 사랑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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