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미 호무라→카나메 마도카x미키 사야카
*사야카는 나오지 않고, 캐릭터 붕괴가 심합니다.
*지인의 썰을 사용했습니다…만 꽤 달라졌네요.
*약, 3880자
아직까지 기술은 마법을 추적하지 못한다. 다만 조금만 머리를 쓰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수신되던 GPS 좌표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감시 대상이 마녀의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 호무라는 방금 전까지 마도카가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늦었다. 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멈추고서 달려온 것도 소용이 없게, 행방을 놓쳤던 그 몇 분 사이에 마도카는 호무라가 바라지 않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분홍색과 하양색의 옷을 입고 활을 멘 모습으로. 그 순간 호무라는 자신이 들어온 결계가 어느 마녀의 것인지 알아차렸다. 호무라가 좋아하지 않는 클래식 음악이 들려오는 곳. 손에는 검을 들고 목에는 리본을 매단 거대한 인어, 옥타비아… 혹은 조금 전까지 미키 사야카였던 것의 공간. 호무라는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꼴 보기 싫은 인간이라도 목표를 방해하는 요소인 이상 철저히 감시해야 했는데. 감정에 휩쓸려 일을 그르친 데 책임을 져야 한다. 호무라는 총을 꺼내 들었다.
"호무라, 잠깐만."
"저걸 네 친구라고 생각하지 마. 늦었어."
"…사야카는 내 친구야."
"……."
"그러니까… 내 손으로 끝을 내고 싶어."
사야카가 저렇게 된 걸 보고,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을 것 같아? 마도카는 호무라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등을 돌렸다. 마도카의 냉담한 태도가 호무라는 어쩐지 치욕스럽게 느껴졌다. 마도카에게는 이곳을 정리할 그 어떤 책임도 없을 텐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케미 호무라는 이 카나메 마도카가 처음으로 마녀를 잡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녀를 향해 겨냥하던 화살을 돌연 천장에 겨누고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 동작을, 날아간 한 발의 화살이 호무라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문양을 그려내며 화살비가 되어 쏟아지고 마녀의 무대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두 눈에 담았다.
"…호무라는 신기해."
"뭐가?"
"나한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와 주잖아."
"별 것 아냐."
"나한테도 그런 능력이 있으면, 더 늦기 전에 사야카를 붙잡아줄 수 있었을까?"
호무라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 주제로는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로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대신에 결계가 무너지자마자 변신을 풀고서 주저앉아버린 마도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구를 보내주고 나면 다리가 풀려서 쉽사리 일어설 수 없다는 걸 호무라는 아주 잘 알았다. 저 역시 제 손으로 소중한 친구의 마지막을 만들어준 적이 있으니까. 반복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도 지나치게 족했다. 마도카는 호무라의 부축에 기대어 집으로 돌아갔다. 고마워, 인사하는 마도카의 목소리에는 영 맥이 없었다.
이제 호무라는 이번 루프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해야만 했다. 마도카가 이미 계약을 한 이상 여기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음은 자명해 보였다. 소원을 이루는 기적 따위의 허황된 말을 믿는 대가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해지는 계약은 무를 수 없고, 끝을 모르는 싸움을 위해서 꺼내어진 영혼은 오염과 정화를 반복하다 원형을 알아볼 수조차 없게 뒤틀리는 것이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렇기에 미키 사야카도 소원을 빌고, 싸우다가, 마녀가 되었다. 그리고 마도카에게 영향을 줬지. 호무라는 혀를 찼다.
애초에 마도카의 계약이 벌써 이행된 것부터가 이례적이었다. 호무라가 알기로 마도카의 계약은 두 시기에만 벌어졌다. 자신의 퇴원 예정일 전, 혹은 루프가 끝나는 마지막 날. 전자는 마법으로 몸을 회복시키고 예정보다 이른 퇴원으로 계약을 방해할 시간을 벌어서 저지했고, 후자는 그런 상황이 되는 것 자체가―자신이 현존하는 최악의 마녀를 처치해내지 못하고, 끝내 마도카를 끌어들임으로써―그녀의 계약을 막는다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는 뜻이라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저 다시금 시간을 한 달 전으로 돌리면 될 뿐이었으니까.
그러면 이 계약은 무슨 연유로 생겨났나? 물음의 답으로 짐작 가는 데가 없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미키 사야카가 카나메 마도카에게 적잖이 영향을 끼치는 존재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여태까지의 루프에서 미키 사야카는 몇 번 계약을 했고, 드물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도 전력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고, 대개는 그 전에 마녀가 되어버리는 결말을 맞았다. 그 과정 중에서 마도카가 계약 직전까지 다다르는 횟수는 미키 사야카의 계약 횟수를 훨씬 웃돌았다. 그때마다 조금만 늦었어도 아마…, 아. 이번에 이미 늦었네. 상황 파악을 마치고 한숨을 내쉰 호무라는 이번 루프를 도중에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머무르기로 했다. 다양한 변수를 수집하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핑계가 절로 떠올랐다. 마음이 바뀌면 그때 가서 모래시계를 뒤집어도 늦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을 기점으로 마도카가 호무라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잦아졌다. 모니터 너머에서 점멸하는 작은 점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 눈이 건조해진 호무라가 잠시 고개를 돌리면, 마도카는 그새 GPS 위성들이 신호를 잡아내지 못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마도카의 일시적 행방불명을 확인한 호무라는, 매번, 이제는 제가 돌볼 필요도 없어진 마도카를 찾으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이전처럼 시간을 멈추고 허둥지둥 뛰어가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번 시간은 버리게 될 시간이라는 인식이 호무라의 태도를 느슨하게 만든 탓이었다.
“또 여기 있었구나.”
“쉿!”
마도카가 호무라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검지를 세워 제 입술 위에 가져다댔다가, 곧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렸다.
"…이번에도 같이 들어줄 거지?"
호무라는 마도카를 보지 않고도, 마도카의 저 말이 정말로 자신이 곁에 있어주길 바라서가 아니라 단지 방해받지 않고 싶어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방해를 하랴. 구태여 미움을 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호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랬다. 마도카가 웃었다.
그 웃음을 눈에 새기고, 호무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데―특히 몇 번이고 같은 시기를 반복하며 지나쳐온 것들을 기억하는 데―나름의 자부심이 있는 호무라는, 이 마녀의 결계가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챘다.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와 그 소리를 들을 객석만 간신히 세우고 있는 옥타비아의 결계는, 여타 마녀들의 결계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지경까지, 사방이 뭉그러진 채였다. …요컨대, 카나메 마도카가 자신의 소꿉친구를 추도하기에는 모자란 공간이었다.
“…여긴 네 친구가 있는 곳이 아니야.”
“알아. 저 마녀도 엄청 달라졌는걸.”
“마녀가 달라져?”
“전에, 호무라가 처음 봤을 때 기억나?”
“네가 계약을 한 게 그 때였다는 건 기억나.”
“그때 사야카는 지금처럼 얌전하지 않았어.”
“그 옥타비아는 공격적이었지.”
“아마 남들이 옆에 있는 게 싫었을 거야.”
“그래서….”
“사야카랑 적이 되고 싶진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 거구나. 내가 너무 늦어서….”
“으응.”
마도카는 대답인 듯 아닌 듯 모호한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숙였다. 호무라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는 점점 달라져가는 배경이며 인물을 자꾸만 마주하도록 만드는 마음은 무엇인 걸까? 호무라는 그 질문에 대해 자신이 답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그러져 처음의 형태는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된 무엇들에 매달리는 망집을, 감히 혼동이나 착오 따위라고 폄하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저 역시…
이대로 두면 다른 사람들이 휘말리겠지? 하며 운을 뗀 마도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전처럼 활을 쏘아 올렸다. 언제나와 같이 한 발의 화살이 결계를 무너트렸지만, 그리프 시드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몇 번의 재활용 끝에 스러지고 말았으리라. 끝을 직감한 호무라는 마도카가 자신을 돌아보기 전에 서둘러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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