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낫세x레하트. (레하트가 안 나옵니다.)
*신업도 실패했는데 레하트도 죽고
*도중에 묘사된 음식은 나의 힘과 능력으론 세계관에 맞출 수 없어서 먹고 싶은 거 씀
***
청년은 문득 잔 안을 들여다보았다. 수면에 비친 얼굴이 퍽 낯설었다. 더 이상 앳된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성숙해 있지만, 실 나이에 걸맞게 노화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흐트러진 옅은 색의 머리칼은 눈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청년이 손을 대어 머리를 넘기자, 머리칼만큼이나 옅지만 보다 밝고 싱그러운 빛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청년은 눈꺼풀을 내려 그 푸른 빛을 감추며 수면으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물 위에 맺힌 상에서 그 밖의 특별할 것이 일절 없음을 확인한 까닭이었다. 방금 전까지 들여다 본 잔을 밀어서 치워버린 그는, 흘끗, 식탁 한 켠에 놓인 꽃병으로 눈길을 돌렸다.
작은 이파리들이 흐무러진 듯이 뭉쳐있는 노란 꽃은, 청년이 아는 게 틀리지 않았다면, 그가 태어나고 자라온 곳에서는 보기 드문 꽃이었다. 한편으로는 청년이 매년 이맘때마다 꼬박꼬박 주문하는 꽃이기도 했다. 청년은 저도 모르게 다시금 눈을 감으며 후각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꽃병이 놓인 쪽에서 그리운 향기가 나는 것도 같았다.
“실례하겠습니다.”
감상을 깨트린 것은 음식을 나르러 온 급사의 목소리였다. 청년은 버릇처럼 급사를 확인하는 대신, 식탁이 채워지는 모양을 구경했다.
딱딱한 빵 두어 쪽을 곁들인 콩 수프, 감귤 드레싱을 뿌린 샐러드, 가지와 애호박을 가니쉬로 내고 얇게 저민 레몬 조각을 얹은 돼지고기 스테이크, 남방의 과실로 만들어 단 맛이 나는 발효주, 심지어 청년의 요청대로 주식과 한 상에 나온 디저트-말린 자두를 넣은 스콘-까지 전부 두 사람이 먹어야만 해치울 수 있는 양으로 차려졌다. 덕분에 차근차근 차리기에도 그리 넓지 않은 식탁이 배로 좁아 보였다.
그리고 식탁의 맞은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일에 익숙해진 급사가 오지 않은 손님에 대해 묻는 일 없이 물러나자마자, 청년은 식기를 집어 들었다. 재게, 그러나 일정한 박자로, 손을 놀리며 음식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릇들은 상에 올라온 순서대로 차츰 비워져 갔다.
평소의 식사보다는 제법 긴 시간에 걸쳐 모든 음식을 목 뒤로 넘긴 청년은, 끝내, 기껏 삼킨 음식들을 도로 게워내기 위해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아직은 다 소화가 되지 않은 조각들을 모두 뱉어낸 청년의 눈가가 촉촉했다.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자각은 있었다. 청년―타낫세 란테 요아마키스가 스무 해 남짓한 시간을 바보 취급 받으며 살아왔다 한들, 앞뒤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속죄도 기만도 되지 못하는 낭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타낫세는 매년 흑의 달 첫 번째 휴일이면 오지 않을 손님에게 바칠 식사를 준비했다.
그는 자신이 열일곱 살이었을 적의 흑백 10일에 벌어진 일을 여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수선했던 한 해 중에, 그 날의 기억만이 유독 또렷했다.
호수의 비릿한 습기가 고스란히 떠돌고, 오래된 창고에서나 날 법한 먼지 냄새가 나서, 무엇을 하기도 전에 이미 불쾌감을 만끽할 수밖에 없었던 장소. 그리고 거기의 그나마 햇빛이 가장 밝게 내리쬐는 곳에서 손발이 묶인 채 무방비하게 나뒹굴던….
그 아이 앞에서 거래라는 말로 운을 뗄 때만 하더라도, 이런 결말을 맞이하길 바라지는 않았다. 앙숙처럼 다퉈댄 끝에 돌연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돌아서는 둥의 어처구니없는 망상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그 '들개 같은 어린애'에겐 과분할 것을 떼어냄으로써 모든 것을 바로잡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래, 그 애한테는 신의 총애자라는 표식 따위, 턱없는 물건에 불과했다.
눈앞의 상대가 무슨 속셈을 가진 줄도 모르고 건넨 잔을 덥석 들이켜는, 아등바등 노력했음에도 시간을 비롯한 여러 장벽에 부딪쳐 결국 괄목할 만한 성취는 해내지 못한, 제 목숨이 촌각을 다투던 순간인데도 아무 저항이 없더니, 마침내 스스로 눈을 감아버린, 그 애한테는 정말로.
정말로 과분한 것이었다.
동시에,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와 진흙처럼 차게 식어버린 그 아이―레하트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따금 타낫세의 꿈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타난 그 모습은 꼭, 호수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사라지기 직전까지 내내 빛을 발하던 표식에 잡아먹힌 것처럼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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