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100자
*로니카 애정 B 기반: 그런데 이제 로니카 사후인.
-역사는 반복된다~
내가 왕성에 온 것은 꼬박 1년 전의 일이다. 6대의 왕을 가리키는 말 앞에 ‘새로운’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게 퍽 우스운 일이 되었을 무렵, 그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막 분화를 마치고 삶의 두 번째 단추를 꿰려고 하고 있었다. 도구로서 어느 정도 벼려졌다면 주인의 손아귀에 들어가 쓰임을 다 하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내 삶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순간은, 아직까지도 무엇 하나 잊히지 않고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
나의 주인, 더 이상 새롭지도 어리지도 않은 6대의 왕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순간은 한밤중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뜻하지 않게 마주친 참견 많은 사용인에게 내 정체를 그럴싸하게 둘러대며 왕의 방까지 나를 인솔한 담당자는, 나와 같은 영역에 속해 있을 텐데도 이상하리만치 말이 많았다. 덕분에 나는 내 실력이라면 분화 전에 부름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는 것, 다만 우리의 주인께서 즉위하시기도 전부터 그분의 곁을 지킨 자가 있어 구태여 나까지 부를 필요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내게는 선임이라고 할 수 있는 그자가 최근 소임을 다하고 산으로 돌아가 버렸기에 마침내 내 차례가 돌아왔다는 것들을 알게 됐다.
”너도 그렇게―, 아, 오셨다.”
바깥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알아차린 내가 끝없이 이어지는 잡담 대신 문가로 주의를 기울이자, 인솔 담당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주인께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의 내 감정을 입에 담는 것은 필연 불경에 해당하리라. 그러니 최대한 무미하게 설명한다. 신조차 눈을 감아 어둑한 주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주인의 이마에 새겨진 선정인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태양처럼 밝지는 못하니 나는 그저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통해 주인이 내게 걸음하고 있음을 가늠할 따름이었다. 그 걸음이 코앞에서 멈추는 것을 듣고 내가 시선을 내리깔자, 인솔 담당이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폐하, 전에 말씀드린 사람입니다. 부디 알현을 허하여 주십시오.”
아까 전 실컷 떠들어댈 때와는 다른 그의 말투에, 돌아오는 목소리는 그보다도 훨씬 차분했다.
”그런가. …올해 칩거를 마쳤는가 보군?”
”네, 이름은….”
그때 거기서 내가 무슨 용기로 인솔 담당의 말을 가로막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된통 깨지고 나서도 후회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각오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편의상 붙여진 이름은 있으나 그뿐입니다. 편하실 대로 불러주시기를.”
침묵이 자리를 메웠다. 스스로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나는 제법 눈치가 좋은 편이라, 묵직한 공기 안에 가라앉은 감정들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당혹감, 불쾌감, 분노, 그리고 어떤…… 슬픔? 그 무게가 피부에 닿음과 동시에, 암순응을 마친 내 눈은 문제없이 주인의 얼굴을 보았다. 주인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비록 완전히 알아보지는 못했으나 세 음절의 이름을 소리 없이 읊는 것을 보았다. 허나 인솔 담당도 아직 말을 하지 않고 있는데 내가 다시 입을 열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주인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금 흘러나온 주인의 목소리는 입매에 걸린 씁쓸한 웃음과 달리 처음처럼 차분했다.
”…사람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건 그리 경솔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연하지. 멋대로 나서서 떠들어대는 맹랑한 풋내기에게 마음을 기울여주는 주인은 드물지 않겠는가. 그나마 주인의 저 대답을 통해 저분의 차분하고 온유한 성정을 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그렇게 여기기로 하며 괜스레 고개를 치미는 실망을 억눌렀다. 순간, 내가 처음 입을 열고야 말았을 때와 같이 충동이 담긴 목소리가 귓가에 와 닿았다.
”하지만 그러길 바란다면 생각해두지.”
그 순간이나 훗날 내가 두 음절의 이름을 받았을 때나, 주인의 눈동자는 먼 데를 보고 있었다. 웃긴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마치 산 너머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주인이 아득히 먼 데를 보는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주인이 때때로 내 키보다 한 뼘 반 정도 높은 위치에 시선을 두려다 내리는 순간을 포착하고는 한다. 그것은 분명 소리를 입지 않은 채 불렸던 세 음절의 이름을 향하는 것이다. 허나 나는 그 이상의 사연을 짐작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성심誠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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