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540자.
*리리아노 애정 B 기반


 

  “레하트 님.”

  “아.”

레하트가 서 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제 이름을 부른 나이든 시종을 향해 눈짓으로 까딱 인사했다. 레하트의 발치 앞은 곧장 바다로 떨어질 낭떠러지였다. 절벽에 부딪친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아무래도 산책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던 것 같네. 돌아가야겠어.”

흩날리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돌아선 레하트의 발걸음을, 늙은 시종이 묵묵히 뒤따랐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그 두 사람뿐이었다. 앞서 걷던 레하트는, 시종을 향해 말을 건넸다.

  “오늘은 바깥이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데, 로니카. 그리 준비해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

 

 명을 받은 시종은 아주 오랫동안 일했을 것이 분명한 동작으로, 바다를 향해 나 있는 발코니에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놓았다. 의자는 두 개였다. 레하트가 그 중 하나의 의자에 앉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란테 저택에서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바닷바람이었다. 테이블 위에 가장 먼저 오른 것은 시금치와 브로콜리가 들어간 부드러운 스프였고, 맞은편의 의자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란테의 저택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쇠락의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 중이었다. 늘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벽돌을 삭혀버린 탓이라는 제법 감상적인 말도 돌았지만, 사람이 얼마 없다는 이유 또한 그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었다. 지금 이 저택에 기거하는 사람들이라고는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사용인 몇몇과 레하트가 전부였다. 그건 레하트의 맞은편에 사람이 앉아있던 무렵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정이었다. 레하트는 거기서 문득, 빈자리의 주인을 떠올렸다.

 그녀는……. 리리아노는. 란테 저택에 사람이 많이 머무르는 것을 탐탁찮게 여기는 듯했었다. 한평생 남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왕의 삶을 살아온 인물이 새삼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었을 테고, 아마도, 흘러갈 물살에 너무 많은 침전물이 섞여드는 것을 바라지 않는 정도였으리라.

  “여기에서 살고, 여기에서 죽는다. 모든 것이 흘러가는 중에 계속 머문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야.”

옥좌에서 내려온 리리아노는 마치 그릇에서 쏟아진 물처럼 도저히 주워 담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레하트는, 리리아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옥좌며 왕의 망토 따위를 물려받는 대신, 물길에 휩쓸리기를 선택했다. 리리아노는 레하트의 결정에 대해 환영하지도, 나무라지도 않고 받아들였다.

  “자네도,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좀 더 여기에 머물렀으면 좋겠지만.”

그런 한 마디 소회만을 남기고서, 몇 년을 이 자리에 고여 있었다.

 레하트가 치기 어린 마음으로 기대하던 것 같은 일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리리아노는 목을 축일 만큼의 온기를 건네주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손을 잡고, 나란히 저택 근처를 거닐고, 이마를 맞대고, 아무래도 좋을 사소한 얘기들로 적잖은 시간을 채워주었다.

 메인 요리로는 리조또 베르데를 곁들인 스트립 스테이크가 올라왔다. 평소 먹던 것들에 비하면 다소 과하게 공들인 감이 있었으나, 드문 일도 아니었기에 레하트는 군말 없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탄력 있는 고기조각이 이에 눌려 뭉개지는 감촉이 퍽 익숙했다.

 레하트는 리리아노 나름의 애정이 서려있던 그 시간들을 통해 체념과 만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웠다. 리리아노가 마지막에 받아들인 존재 중 하나가 저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어느새 자신이 스물 몇 살의 장성한 청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리리아노가 곧장 받아들인 죽음에 대해서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가 죽기 며칠 전 저를 향해 남겨준 미소가 마음 깊이 박혀, 태양의 색이 두어 번 바뀐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그리웠지만, 그뿐이었다.

  “자네는 그 대답을 후회할 때가 올 거야. 반드시 와.”

  “후회는…… 하지 않아요.”

이마에 닿았던 온기가 바닷바람 때문에 금세 식고 흩어져버리는 것 따위, 레하트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주인을 잃은 저택이 갈피도 잡지 못하고 가라앉는 것 역시 예상한 일이었다. (바일이 레하트가 그 저택에 계속해서 머무를 수 있도록 그럴 듯한 직책을 마련해주었음에도, 레하트는 도저히 자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양 생각할 수가 없었다. 레하트 스스로가 보기에 자신은 언제까지나 허가를 받았기에 머무르는 객客에 지나지 않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자두 갈레트로 식사는 끝에 다다랐다. 레하트는 그 갈레트를 구태여 잘게 부스러트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불어대는 바닷바람이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들려온 탓이었다. 리리아노, 당신은 내가 당신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 그러다 먼저 당신을 스쳐간 이들처럼 어디론가 흘러갈 거라고 말했지만―

  “……결국 흘러가버리게 될 사람은 당신이라는 걸 제가 몰랐을까요.”

나는 지금도 여기, 이 자리에 고여 있는데.

 

***

 

 손가락보다 못한 크기로 부스러진 파이 조각을 먹어치우는 것으로 식사는 끝이 났다. 자리를 비워주었던 로니카가 금세 돌아와 테이블을 정리했다. 레하트는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지금 이 광경도 그녀가 남긴 유산이라면 유산이겠지 싶어서.

 다시금 바람이 불었다. 식사 내내 불던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불어온 바람이었는데, 햇살을 머금었는지 적당히 미지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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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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