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90자
*리리아노 애정B 기반:
-「오래간만의 권유」대성공
비가 무심하게 쏟아져 내립니다. 이 느닷없는 소낙비 덕분에 땅이 질어져 오늘은 저택 밖으로 나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폐하…, 아, 이제는 아니로군. 그녀와 함께 산책을 하러 갈 수 없게 된 것이 아쉽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습니다. 창을 뚝, 뚝, 두드리는 빗방울들이 어쩐지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탓입니다.
빗소리는 꼭 왕성에서 지낼 적의 무도회에서 들었던 연주를 닮았습니다. 특히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아, 박자에만 귀를 기울이다 보면 도리어 발이 꼬이기 십상이었던 그 곡 말입니다. 오래 전의 일도 아닐 텐데 어째서인지 어렴풋한 애수를 느낀 저는 그 소리―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빗소리와 제 안에서 들려오는 그리운 곡조의 합주에 서서히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은연중에 그 선율을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또 저도 모르게 앉은 자리에서 발을 까딱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맞은편에서 날아온 한 마디 지적을 듣고 난 뒤에야 알아차린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단, 제게 지적을 한 그녀는 저를 나무라기 위해 말을 건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그녀를 흥미롭게 하는 것이 생겼을 때마다 으레 그랬듯―히죽 웃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웃음이었기 때문에, 저는 왠지 부끄러운 짓을 하다 들통이 난 어린애처럼 수줍은 기분이 되어 자세를 바로잡았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제 앞으로 다가와 다시금 입을 열었습니다.
“뭐, 자네가 너무 즐거워한 탓이라네. 게다가 이제는 편하게 부탁할 수 있을 테니.”
말과 함께 건네진 것은 새하얀 손입니다. 그녀가 비슷한 말, 비슷한 동작을 했던 그 날을 떠올린 저는, 옛날처럼 그 손을 잡아 승낙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녀의 손은 어느새 세월을 가늠케 하는 주름이 하나둘 새겨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굵은 뼈대와 따뜻한 체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에 새삼 기쁨을 느끼면서도 차마 티를 내지 않는 제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여긴 너무 좁군. 장소를 옮기는 게 낫겠어.
그것이 제가 지금 란테저邸의 텅 빈 연회장에서, 음악도 없이, 그녀와 춤을 추고 있는 경위입니다. 아니, 음악이 아예 없지는 않을까요. 아직도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으니까요. 저와 그녀는, 세 겹의 창문을 지나도 소리가 줄지 않는 거센 빗소리에 맞추어, 함께 발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가까이에서 마주한 그녀의 눈이 제 눈보다 아래에 있었고, 하물며 저는 이성(異性)과 한 뼘의 간격조차 없는 거리에서 살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풋내기 소년이었습니다. 덕분에 저와 그녀의 춤은 잠시 삐걱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금세 요령을 알아낸 저는 다행히도 상대의 발을 밟는 추태를 보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요령이란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옛날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었던 그 영광스러운 기억에 매달리는 대신, 오로지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서로의 동작을 읽으며 함께 흘러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그녀가 말했습니다.
“자네도 무척 많이 변했어.”
감정을 쉬이 가늠할 수 없는 말투의 이면에는 그리움이 녹아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시선을 의식할지언정, 남겨진 시간을 헤아리는 것은 유예할 수 있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는 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언젠가는 저 창밖의 비가 그친다고 정해져 있듯이, 그녀도 언젠가는 흘러간다는 것이 정해진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돌이키려고 하는 것은 땅에 고인 빗물을 하늘로 길어다주려는 짓처럼 무의미하기만 합니다. 다만 저는 멋들어진 말을 빚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두 차례 발을 옮기고 나서야 이렇게나마 답할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었으니까요.”
“그런가. 하지만 이런 대답을 들으면 여전히 아이 같아서 말이야.”
그녀가 후후, 웃습니다. 저도 따라 웃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에게는 아이로 보여도 괜찮다든가, 이제는 확실히 당신보다 키도 크게 자란 어른이라든가, 그런 항변들을 꾹 삼켜냅니다. 그런 말들이 그녀에게 닿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는 지금도 쏟아져 내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춤을 마쳤습니다. 저는 그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즐거웠다고 말해주시면 기쁠 거예요.”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고,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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