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을 찾아

번역/단편 2020. 10. 18. 12:19

*출처: [각주:1]

"대학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 중.

내 실수는 책에 끼워져 있던 이상한 메모를 발견해 버린 것, 그리고 그것을 무로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400자x10회 연재분."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1.

  “도서관에는 멋진 비밀이 있어야 한다.”

녀석의 그 선언을 들은 순간, 나는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호들갑이야, 이런 도서관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면과 리포트의 씨앗을 찾아오는 일밖에 없지, 이런 도서관에서도.”

하나는, 그 시답잖은 메모를 발견하자마자 버리지 않았다는 것.

또 하나는, 하필이면 그걸 무로 따위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만둬. 리포트 위험하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그렇게 호소했지만, 그 정도의 저항으로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무로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더 나쁜 소식은, 나도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는 거였다. 안다. 이건 시험 전에 방을 청소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그런 시시한 도피 현상과 같다는 걸.

안 된다, 안 된다. 작년에는 이 기분에 져 버려서, 엄청난 성적을 받았다.

나는 책을 칸막이처럼 세우며 거기 얼굴을 묻었다. 맞은편에 자리 잡은, 무로의 안경 너머 찌르는 것 같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무시한다. 리포트에 집중한다.

하지만 역시 눈은 책 위의 글자를 헤맨다. 머릿속을 헤엄치는 건, 옛 철학자들이 주물럭대던 이론이 아니라 메모에 적혀있던 이상한 지시들뿐이었다.

【황제에게 묻고, 다음 책을 찾아 nlpftvpr hblftvm】

나는 무로의 동태를 살짝 엿봤다. 그러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늘 읽고 있는 빨간 책에서 고개를 들며 히죽 웃었다.

  “그래, 그 책에 끼워져 있던 거지, 그거.”

따지고 보면 그런 메모를 발견한 것도 무로 탓이다. 리포트에 대해 상담했더니, 이 책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알려준 게 녀석이었으니까.

나는 리포트 낙제를 각오했다.

 

2.

【황제에게 묻고, 다음 책을 찾아 nlpftvpr hblftvm】

나와 무로는 그 메모를 두고 머리를 모았다. 책에 끼워져 있던 수수께끼의 종이쪽지.

  “오, 뭔가 알겠다. 과연.”

곧 무로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쯧, 키보드의 일본어 입력…이 아니잖아. 단어가 되지 않아. 어딘가의 마이너한 언어라도 이런 표기는 없겠지. 대관절, 황제란 게 누구야?”

  “힌트 하나. 이걸 쓴 놈, 제법 친절해. 좀 삐뚤어진 거지만.”

  “어떻게 알아?”

  “힌트 둘. 암호의 기초 지식.”

  “몰라요, 그런 거.”

  “야야, 여길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야? 찾아봐, 찾아봐.”

시키는 대로 단말기를 두드려 암호 입문서를 찾아냈다. 서가에서 책을 가져와 넘기자, 그것이 단박에 발견되었다.

  “시저 암호. 이게?”

과연, 황제란 것이다. 확실히 알고 나면 단순한 얘기다…라고 생각했더니, 해독 단계에서 또 다시 가로막혔다. 아무리 문자를 비틀며 읽어봐도, 제대로 된 단어가 나오질 않는다. 나는 고생하고 있는데, 무로는 태연한 얼굴로 늘 읽는 소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같은 책만 읽어서야 질릴 법도 한데, 녀석은 “한 번의 인생에는 한 권의 멋진 책만 있으면 족하다”라는 지론이다.

녀석은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만, 여기까지 알아내고 거듭 힌트를 받기는 분하다.

리포트 용지를 새까맣고 채운 뒤에야, 나는 겨우 이 트릭에 다다랐다.

그런가, 반환점이다.

그걸 알고 나면, 나머지는 간단했다. 쉬이 하나의 단어가 도출된다.

단말기를 다시 두드리자, 곧장 그 타이틀의 검색 결과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3.

문제는 (다음 책이) 한 종류지, 한 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상과 지하, 이 도서관에서만도 두 권이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다른 독서실에도 있다.

  “전부 맞는 거면?”

무로는 시원스레 말했다. 그리고 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나와 무로는 단말기에 표시된 번호에 의지해, 우선은 3층의 서가로 향했다. 누군가 읽고 있다 하는 것도 없이 책은 무사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넘겨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평범한 책이었다.

  “정답, 이라는 종이도 없으면 이상하지.”

  “확실히.”

내 말에 무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했다. 이게 아니다. 해독 실패인 걸까, 아니면…….

  “다른 한 권은 지하였어.”

  “지하? 지하가 어딘데? 들어가져?”

도서관 출입구는 지상 2층이다. 그 아래쪽에 대해선 신경 써 본 적 없다. 그런 내게, 무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가 본 적 없어? 그렇게나 학교에서 지내면서, 정말.”

  “너처럼 도서관 거주하는 게 아니니까.”

지하 서고로 가는 계단은 출입구의 옆에 있었다. 층계참에는 간이 조명이 설치돼 있어서, 그야말로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모양새다. 나는 조금 기가 죽었지만, 무로는 익숙한지 척척 내려갔다. 도착한 곳은 접수대로, 짐을 맡기고 학생증을 보여줘야만 지나갈 수 있었다.

  “던전에 도전하는데 짐도 없는 건가.”

  “던전은 지하 감옥이냐, 미궁이냐?”

  “괴물이 있는 쪽인 게 당연하잖아.”

통행증을 받아 더 내려가면, 자동문. 그리고 그 앞은 정말, 미궁이었다. 그런 금속 서재가 빈틈없이 늘어서 있다. 까딱했다간 출구를 잃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여기서도 무로의 뒤를 쫓아서 서가에 도착했다. 목표로 하던 책을 펼쳤더니, 종이 하나가 팔랑팔랑 떨어졌다.

【다음 책의 힌트. 1. 저자는 러시아인……】

 

4

그때부터 우리와 메모가 끼워진 책들 사이의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찾아낸 다음 책에도, 다음다음 책에도, 메모가 끼워져 있었는데, 거기 적힌 것들은 우리의 건투를 기리는 글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였다.

그건 라틴어로 적혀 있기도 했다.

그건 수학 문제의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그건 십자말풀이가 돼 있기도 했다.

나와 무로는, 그 난제들에 과감히 맞섰다. 단말기를 두드리고, 서가를 돌아보고, 지상 4층부터 지하 2층까지 곳곳을 돌아다녔다.

우리 앞에 생화학 책이 나타났다.

우리 앞에 아랍어 교재가 나타났다.

우리 앞에 유럽 소국 화가의 화집이 나타났다.

우리 앞에 들어본 적도 없는 저자의 책, 관심 가져본 적도 없는 분야의 책이 나타났다.

무로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리스트는 순조롭게 수를 늘려갔고, 내가 구매한 복사 카드는 순조롭게 횟수를 줄여갔다.[각주:2] 메모는 복사한 뒤 원래 있던 책에 끼운 채로 돌려뒀다. 다른 녀석들도 알고 있을지 모르잖아, 라며 무로가 말했다. 즐거움을 빼앗으면 안 되지.

나는 즐기고 있던 걸까. 그냥 오기로 했던 것 같다. 무로는 즐기고 있다. 저 녀석은 원래 이런 걸 좋아했다.

  “이거, 뭐라고 생각해?”

만났던 순간 한 말부터가 그랬으니까. 세미나 발표 소재를 끙끙대며 찾고 있던 나는, 모르는 녀석이 느닷없이 내민 알록달록하고 선명한 그림에 어리벙벙해 했었다.

  “글쎄……, 뭔가 남쪽 섬의 신인가, 그거.”

  “고양이야.”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도서관에 올 때마다 맞은편에 앉아, 인사를 나누게 됐다.

무로는 그런 녀석이었다.

 

5.

내가 간신히 그 말을 꺼낼 때, 우리는 변체가나로[각주:3] 쓰인 메모를 사전과 씨름하며 해독해 가고 있었다. 창문으로 비쳐들며 책상에 나부끼는 여름 햇볕은, 가로수 잎들을 지나온 뒷일 텐데도 충분히 눈이 부셨다. 멀리서 매미가 조금 때 이르게 울었다.

  “저기, 무로. ……이거 말인데, 의미 없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안경 너머로 눈을 째렸다.

  “뭐가.”

  “그야, 누군가의 심심풀이에 계속해서 어울려 줄 수는 없잖아.”

메모를 찾아내고 일주일이 지났다. 갈수록 리스트는 길어졌고, 갈수록 시험이 가까워졌다.

  “그만두게?”

  “방법을 바꾸자.”

망연자실한 무로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더니 공기가 좀 누그러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봤는데, 내가 발견한 건 첫 번째 책이 아냐. 왜냐면 난데없는 문제였잖아. 우선은 역시 도전장이 있어야만 해.”

포상도 뭣도 없는데 쳇바퀴를 돌려대는 건, 어지간히 이상한 놈들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슬러 올라가는 거야. 전으로 돌아가서 녀석을 찾아내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

내가 말했지만 예리하다. 그러나 가만히 듣고 있던 무로가 단박에 내 열변에 반론했다.

  “그건 무리야. 아무 힌트도 없이, 그놈이 좋아하는 책을 어떻게 알아.”

듣고 보니 딱히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이 녀석의 책 선택은 터무니없이 다방면에 걸쳐 있으므로, 그걸 맞히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았다.

  “아아, 대체 어떤 놈이지.”

  “끝까지 가면 알지도 몰라.”

  “끝이란 게 있으려나, 이거.”

그때 문득 무로가 창으로 눈길을 돌리자, 렌즈 위로 여름 해의 빛이 반사된다.

  “곧 여름방학이구나.”

녀석은 난데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6.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평소 자리에 없는 걸 보니 무척 위화감이 든다.

  “볼일이 있어서, 내일은 잠시 휴식.”

떨어트리면 안 되는 과목이라도 있는 거겠지. 어제, 또 다시 책 속에서 쪽지를 발견한 뒤에, 무로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이쪽의 시험공부 시간을 빼앗아놓고 제멋대로네, 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하루 종일 이곳에서 보내길 바란 것도 아니기에 불평하지 않았다.

책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풀다보면 이상한 성취감이 들어 꼭 과제를 완수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현실의 시험은 아직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억누르며 빈자리를 찾았다. 다만 시험 직전의 도서관은 어디고 사람과 짐에 점령돼 있으니, 그 사이에 끼어들기도 어쩐지 숨이 막힌다.

아래층은 비어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 역시 당연한 흐름이었다. 지하 서고에 들어가 슬렁슬렁 열람실을 돌아봤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제 마지막으로 찾아낸 책의 청구 기호를 찾고 있었다.

꼼수를 써서 앞지른 게 아니니까, 라고 무로가 말했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것도 분명하다. 대개 무로는 나보다 먼저 정답을 생각해내곤 히죽거렸다. 분하다. 한 번쯤은, 초조해하는 무로를 구경하고 싶었다.

이건 결국, 시험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방편이겠지. 그리고 그런 것일수록 더욱 좋다. 무로의 도움 없이, 나는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다다랐다.

하지만 책을 찾은 내 앞에 벽이 가로놓였다. 아무래도 전원으로 선반을 움직이는 장치인 것 같았다. 첨단 기술이다. 조심스레 스위치를 누르자, 모터 소리와 함께 벽의 일부가 움직였다.

모세 같네, 같은 즐거운 기분으로 나는 열린 서가 사이에 들어가 기호를 찾았다. 안쪽에, 목표로 하던 제목이 놓여 있었다.

나는 과감하게 손을 뻗다가, 도중에 멈췄다. 왠지 싫은 예감이 든다. 그 순간, 낮은 소음이 멈춰 선 내 귀를 간질였다.

 

7.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책의 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레일을 따라 굴러오는 바퀴는 물론, 내가 있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순간 멍청해져서, 나는 반사적으로 땅을 박찼다. 도망가야지. 돌이켜보면 많이 초조했던 것 같다. 내 다리가 카펫 틈에 걸려 멋지게 넘어졌다.

쳐 버렸다, 깔린다!

한심한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만큼은 칭찬을 받아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로서도 수모는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면 선반이 내 어깨에 부딪친 순간 떨리듯이 멈췄기 때문이다. 그럴 게, 안전장치가 달려 있는 게 당연했다.

얼굴을 붉히며 일어서는 내 귀로, 이번에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울리지 않는, 마루를 삐걱대게 하는, 그 요란한 소리.

나도 또 뛰기 시작했다. 발소리의 주인공을 잡아야만 한다. 왜 나를 밀었는지 물어봐야 한다. 단순히 다른 서가를 보려다 실수로 닫아버린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했다.

실수했을 뿐이라면, 딱히 도망칠 필요는 없다.

잡고 말겠다는 기력은 충분했으나, 다만, 지하 서고의 넓이며 배치를 내가 충분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패인이었다.

범인의 모습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발소리도 멎어버렸던 것이다.

  “잠깐, 이봐요, 왜 뛰고 있죠!”

거기다 재앙이 겹친다. 소란을 듣고 찾아온 사서가 나만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연히, 단단히 야단맞았다.

풀려난 뒤 전동 서가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더니, 바닥에 책이 덩그러니 놓인 채였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찾던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책의 가운데쯤에서 비어져 나온 쪽지에, 괴발개발의 글씨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Uqbar에 대해 적힌 책을 찾아】

그것이, 마지막 책에 대한 도전장이었다.

 

8.

자리에는, 낯선 여자애가 따분한 얼굴로 멀거니 앉아 있었다. 책을 찾는 척하며 몇 번이고 동태를 살펴봤지만, 그녀가 움직일 기미는 없었고, 다른 자리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낼 수 없었다.

무로가 없다.

어제 있던 일을 얘기하려 벼르던 내 김이 샜다. 볼일이 늘어난 걸까? 하지만 어제 하루를 비운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이틀이나 (이 상태가) 계속되다니 이상하다. 무로는 항상 그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설마, 무로도 뭔가 당했을까.

그게, 책을 찾는 자들을 향한 괴롭힘이었다면? 나는 그 정도로 끝났지만, 무로는 좀 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걱정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나는 무로의 연락처를 모른다. 어디 소속으로 뭘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술 더 떠서, 이름조차 모른다.

피차일반이다. 나와 무로는 그저 여기서 만나 얘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뿐이었다.

나는 메모를 꺼냈다.

【Uqbar에 대해 적힌 책을 찾아】

이걸 풀어나가면 다시 방해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때 범인을 잡아서, 무로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다.

Uqbar, 얼핏 봐도 영단어가 아니다. 정직하게 읽으면 ‘우크바’라는 것일까. 어감은 이슬람 같다. 시험 삼아 검색 단말기에 입력해 봤지만, 역시나 그것만으로 홈런을 칠 수는 없었다.

우크바. 우크바루. 우크바.

뭔가 마음에 걸려 중얼중얼 읊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울림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도 꽤 최근에.

그리고 그 의문은, 곁에서 들려온 시시한 대화에 의해 해소되었다.

  “여름방학 땐 어디로 갈 거야?”

 

9.

그랬다.

곧 여름방학이구나, 무로가 그때 말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어디 갈 예정이라도 있냐고 물었었다. 아니, 하고 잠시 말을 웅얼대던 무로가 소곤거렸다.

  “응, 우크바르로 돌아갈 거야.”

  “어딘데, 거기? 너, 몽골 출신인가 그런 거야?”

그리고 내 놀리는 말에 무로가 답지 않게 평범한 미소를 지었더랬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나는 다시 단말기로 돌아가 하나의 제목을 적어 넣었다. 그 책은 이 층에만 두 권이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 책인지 망설이지 않았다. 빨간 책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어있던 내 자리에 앉아 가져온 책을 펼쳤다. 그리고는 단번에 넘기지 않고, 녀석처럼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어 나갔다. 우크바르는 첫 번째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 단편이 끝나는 곳에, 예상대로 쪽지가 끼워져 있다. 두 번 접힌 그것은, 유서도 참회도, 고백도, 하물며 작별 편지도 아니었다. 이건 무척 단순한, 그러면서도 그 녀석다운 하나의 도전장.

【축하해. 이게 마지막 책이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 문제야.】

정말이지, 녀석다운 난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책을 찾아내, 그것을 가리키는 문제를 만들어라.】

나는 답할 수 있을까?

고개를 들고, 정면을 쳐다봤다.

거기에 이제 무로는 없다. 역시나 낯선 여자애가, 이쪽은 신경 쓰지 않고 리포트와 씨름하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10.

그 이후, 무로와 만난 적은 없다.

매정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얼굴조차 어렴풋하다. 단지, 둘이서 얘기를 나눌 때의 그 분위기가 가끔 그리워지면, 그 빨간 책을 다시 읽었다.

어쩌면 그 뒤로 캠퍼스에서 엇갈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서로 알아채지 못했거나, 알아채고서도 말을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깨달은 게 있다.

리스트에 올라간 책들의 특징이다. 공통점이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거기서 일관성은 분명 찾아볼 수 없었다.

즉, 이것은 한 사람의 소행이 아니다. 시작한 것은, 무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럼 무로는 왜 내가 이걸 찾아서 풀게 한 걸까.

그 대답 또한,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짬이 날 때면 나는 도서관을 둘러본다. 리스트를 들고 그 도전장의 궤적을 더듬는다. 대체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드물게 새로운 문제가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 도전해서, 새 책들을 리스트에 추가했다.

누군가 놓고 간 메모, 그것은, 이 세상의 누군가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책이란 증거.

나는 그것을 돌아본다. 문제를 체크하고, 쪽지가 없어지면 만들어둔 사본을 끼워 넣고, 너무 난해한 문제에는 힌트를 써넣는다. 오솔길에 난 풀을 정돈하는 역할, 순례자들의 미욱한 안내자로서.

언젠가, 누가 이 문제를 발견할 터였다. 그 중 일부는 문제를 풀려고 할 것이다. 마침내 몇몇 사람이 마지막 책까지 도달하겠지.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책 너머로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도서관에는 멋진 비밀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이 말을 다음의 누군가에게 전할 때, 나 또한, 내 모습을 담은 한 권의 책을 고를 것이다.

 

 

 

  1. 원본은 2007.06-2007.07 연재. [본문으로]
  2. 복사기를 사용할 때 전용 결제 수단인 '복사 카드'를 사용하기도 함. 근데 요즘도 이거 쓰나? (*연재 시기 2007년.) [본문으로]
  3. "변체가나란 히라가나 글자 모양 중 1900년(메이지 33년) 소학교령 시행 규칙 개정 이후 학교 교육에서 사용하지 않는 문자의 총칭을 말한다."-일본 위키피디아. 링크는 댓글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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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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