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1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하루하루 급급하게 살아갈 뿐인 존재다.
어느 날 밤, 그는 그녀를 발견해…….
판타지 계열의 짧은 이야기."
*임의로 의역한 데가 많고 일부분 번역기를 사용해 오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심창深窓: 1. 깊숙이 있는 창. / 2. 깊숙이 있는 방.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쭈글쭈글한 피부는 거무칙칙한 색을 띄었고, 등에 나 있는 박쥐의 날개는 곳곳이 너덜너덜하게 찢겨 오므라든 채였으며, 사팔뜨기인 눈은 누렇게 뜬 데다, 원숭이 같은 몸뚱이는 등이 둥글게 굽어 초라하게 보였다. 더군다나 나름대로 가진 출세욕마저도 정말이지 대수롭잖은 것에 그친 덕에, 항상 윗사람들에 어떻게 빌붙을까 하는 것에 급급한 나날만을 보내고 있었다.
마물의 세계도 의외로 가혹한 것이다. 그처럼 변변한 힘도 없는 자는, 어떻게든 힘 있는 자에게 보호받으며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 자신을 두거나 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조차 서툴렀다.
그날도 명령 받은 식재료를 조달하지 못해 질책을 받은 그는, 초승달이 뜬 밤하늘을 터덜터덜 날고 있었다. 이 실패를 무엇으로라도 메우지 못하면 곧 인정을 잃고 쫓겨날 터였다. 그러면 그걸로 다섯 번째 추방이다. 먹을 것도 못 먹고, 동료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살금살금 숨어들다가, 설령 들키기라도 하면 화풀이로 실컷 얻어맞는다. 쫓겨난 뒤의 비참한 생활을 상상하며, 그는 몸서리를 쳤다. 이제 그런 건 지긋지긋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건,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였다.
처음엔 놀라 달아나려던 그는, 상대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는 감탄하며 흥미롭게 관찰했다.
이쪽을 수상쩍게 응시하는 그녀는, 아무래도 탑의 창문으로 달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인간 아가씨다. 은실처럼 가늘고 부드럽게 말린 어깻죽지까지의 머리칼이 흰 달걀형 얼굴을 감싸고 있다. 개암(역: 헤이즐넛) 같은 눈은 안에서부터 타오르는 것처럼 반짝 빛나서,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미추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그가 보기에도, 그 미모는 일목요연했다.
찬스다.
그의 머리는, 순간 일시변통의 계산을 시작했다.
때는 한밤중, 아가씨가 있는 곳은 그럭저럭 커다란 건물이긴 해도 경비병 따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상대는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 여자애 하나뿐이란 거다. 저대로 낚아채 진상품으로 바치기라도 하면, 저 미모에 걸맞은 나름대로의 보상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결단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엔 기본적인 매료술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단순히 송곳니와 손톱을 드러낸 채로 달려들어 공포에 떨게 할 심산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여자애한테는 꽤나 충분할 듯싶었다.
……정말이지 충분했다.
그의 시야 안에서 탑의 창문과 아가씨의 얼굴이 쭉 커져갔다. 그와 동시에 아가씨의 미간이 점차 좁혀지며 불쾌한 얼굴이 되어가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왜 겁에 질리지 않는 걸까? 라고 그가 이상하게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아가씨에게 닿는다고 생각한 순간, 별안간 불꽃이 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어서 머리 옆면에 충격이 덮쳐온다. 통증은 조금 늦게 찾아왔다. 왼뺨이 화끈거리고, 오른쪽 머리가 둔하게 울린다.
그리고 그가 제게 무슨 벌어졌는지 알게 된 건, 비틀대며 고개를 들고 나서였다.
“무례해!”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싶은 아가씨의 새빨간 얼굴이 보였고, 비단 장갑을 낀 오른손은 허공에 들린 채로 굳어 있었다.
그는 따귀를 얻어맞고, 창틀에 머리를 크게 부딪친 것이다.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어느 정도는 자존심이라는 게 존재한다. 설마하니 인간 계집애를 납치하려다 도리어 반격당해 맥없이 돌아왔노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바보 같긴.”이라고 웃어넘겨줄 친구도 없다. 결국, 풀리지 않는 울분에 휩싸이고 만 그는 낮 동안 잠들지도 못하고 안달복달하는 처지가 돼 버렸다.
생각하는 건, 그 여자한테 어떻게 복수해줄까 하는 것뿐이다. 무참하게 죽여 버릴까, 아니면 죽기보다 부끄러운 꼴을 당하게 해 줄까, 원래대로 납치해서 잔인하다고 소문난 마왕의 간부 중 한 명에게 내밀어 줄까…….
상상에서만은 엄청 위세 좋은 그는, 어젯밤 얻어맞은 충격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비실비실 도망쳐온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튼 제게 편한 전개만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곱씹은 끝에, 그는 역시 복수를 하기에는 초지관철이란 걸로 납치 쪽이 제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오늘밤이야말로 그 계집애는 제게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창문까지 다가가긴 했는데, 아가씨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그가 그것만으로 우물쭈물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좀 전까지의 전의를 대부분 상실했으면서도, 그는 아가씨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실례, 오늘 밤에도 달이 예뻐서.”
한심하기 그지없는 말투 덕에 아가씨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역시 그만둘걸, 반쯤 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쯤에서야 비로소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무슨 용건?”
심지가 굳은 늠름한 목소리였다. 감춰지지 않는 그녀의 넘치는 의지에, 더욱 풀죽은 그는 꽁무니를 사렸다. 아무 힘도 없는 계집애일 텐데, 기가 눌린다.
“그게, 아가씨를 납치하려고…….”
이미 달아날 생각 만만이었으나 그는 일단 할 말을 해봤다. 돌아온 대꾸는 강렬했다. 아가씨가 실컷 바보 취급이라도 하려는 양, 숨을 토해냈던 것이다.
“하아? 당신이! 그렇게 벌벌 떨고 있는 당신이!”
강렬한 눈빛이, 이번에는 냉소를 머금으며 그를 쳐다봤다.
“우습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가씨가 발산하는 분노가, 형체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야말로 그는 그 자리에서 허둥지둥 물러났다.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인간 여자애조차 업신여기는, 별 볼일 없는 잔챙이다.
“야아, 뭐하고 있어.”
그러므로 돌아오던 도중 뒤에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초조해졌다고 하더라도 무심코 말대꾸한 것은 큰 실수였다.
“네놈이랑 상관없어!”
그게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짚고 나서는 이미 늦었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쭈뼛대며 돌아보자, 분노로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짙은 보라색의 몸뚱이나 그보다 두 배는 큰 몸집, 너무나도 낯익은 저 모습은, 요컨대 그의 상사라고 할 수 있는 자다.
마물은 스스로의 역량이 외모에 곧장 드러난다. 그러므로 누가 봐도 계급 차가 명백하고, 허세 또한 거의 통하지 않는다. 상사의 앞에서 그는 무력했다.
“꽤 대단해졌구나, 너.”
“아, 아뇨…….”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벗어날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만에 하나 등을 돌리고 쏜살같이 도망친다고 해도 손쉽게 잡혀버리고 말 거라는 건 잘 알았다. 지금은 얌전히 상대가 말하는 것에 고분고분하게 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결말을 빤히 알고 있다고 해도.
“어제의 실패로 조금은 반성하고 근신할 거라고 생각했더니, 이런 곳에서 어슬렁어슬렁 놀러 다니는군. 자각이라는 게 부족한 거 아니냐?”
“예에…….”
“부루퉁한 표정 짓지 말고. 불만이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말해. 나는 관대하니까.”
“아뇨,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뭐라고? 그건 내가 관대하지 못하단 뜻인가?”
“아, 아뇨……!”
그래, 전개는 알고 있었다. 잔뜩 욕을 먹고, 실컷 얻어맞고, 겨우 풀려났을 때는 벌써 새벽에 가까웠다. 너덜너덜해진 그에게 상사는 침을 뱉으며, “좋을 대로 봐주는 것도 한계다”라고 쏘아붙이고 떠났다. 그는 간신히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와 아픈 몸을 억지로 뉘었다. 오늘도 또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쫓겨나고 말 거다. 남겨진 길은 역시 하나뿐이다. 그는 번민하며 어둠 속에서 쭈그렸다.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살기 위해선 물불을 가릴 수 없는 하찮은 존재다. 어떻게든 위에 빌붙지 않고서는 그가 살아갈 길이 없다. 그러니, 그는 배수진을 치고서 세 번째 도전을 시도했다.
“또 당신이야.”
흘끗 험악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그녀가 처음처럼 때리지는 않아, 그는 안심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도, 우울한 얼굴로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있을 뿐 움직이질 않는다.
“오늘은 당신이랑 얽힐 기분이 아니야. 얼른 어디로든 가주지 않겠어?”
그러나 오늘만큼은 여기서 물러날 수가 없다. 배에 바짝 힘을 준 채로, 그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의식적으로 목소리도 높였다.
“같이 갈래?”
거기에 돌아온 것은 시선뿐이었지만, 분명하게 담겨있는 모멸 덕분에 그녀의 대답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시금 한숨을 쉬고는 눈길조차 멀리 보내버린다. 그는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저기, 있지요…….”
“몇 번이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끈질기게 말을 거는 그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 그녀가 단호하게 내뱉었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고 난 뒤에 말을 꺼내라고. 자, 거기서 떠나주세요!”
“그렇게 말해도, 이쪽에도 사정이라는 게”
“알 바 아냐!”
쌀쌀맞은 반응에, 이제 그는 별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으니 창 주위를 맴돌기나 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그녀의 신경을 쓸데없이 건드려버리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악순환이었다.
“뭔가 그 거래 조건이라든가…….”
“없어요.”
“뭔가 바라는 거라든가……”
“당신,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
“그렇지는 않은…….”
이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게 된 그의 사고는 반쯤 혼란스러운 상태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뭐라도 꼭 갖다 바쳐야 한다는 생각이 뒤섞여 빙빙 돌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돌격해볼까 아니 하지만 그렇게 해 버리면 끝이겠지만 이대로는, 그렇게 그가 격렬한 고민을 시작했을 때 전환점이 찾아왔다.
“대체 아까부터 뭘 하고 있는 거냐?”
어젯밤과 비슷하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에, 이번에 그는 호통을 치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혼란스러운 머리인 채로 뒤를 돌아봤다.
“너님을 감시하라잖아.”
거기 떠 있는 건 상사가 좋아하는 녀석 중 하나로, 교활해서 점수를 곧잘 따는 녀석이었다. 이번에도 그의 감시를 자처했을 게 틀림없고, 얄망궂게 눈을 흘기며 그와 그녀를 번갈아보는 표정은, 당장이라도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녀석도 괜찮네, 너님도 하잖아.”
히죽, 웃으며 녀석은 그를 흘겨보았다.
“설마 독차지할 생각으로…….”
“아닙니다. 물론 드릴 생각이고말고요.”
계속하세요, 라고 말하던 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렇게 했다간, 그녀를 찾아낸 공로가 그 상사의 것이 되어버릴 게 분명하다. 그럼 그의 입장은 변함없이 위태로운 채다. 자칫하면 공로를 빼앗긴 채 그는 곧장 내쳐질지도 몰랐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제, 좋게 양보해주자는 생각과 어떻게든 내가 갖다 바쳐야 한다는 생각, 역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삼파전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완연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럼, 고맙게 받아갈게.”
그리고 그 목소리와, 언뜻 시야 끝에 들어온 그녀의 언짢은 얼굴이 도화선이 돼 주었다.
“시끄러! 건들지 마! 그건 내 사냥감이야!”
돌연 그는 고함을 지르며 어리벙벙해하는 아첨꾼 녀석에게 힘껏 부딪쳤다. 상대가 반격할 틈도 주지 않고서 곧장 지상으로 떨어트린다. 쿵, 그의 눈앞으로 땅이 가까워졌다.
그렇게 튀긴 피를 뒤집어쓰고 창가로 돌아온 그를 향해, 그녀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동료를 죽여도 되는 거야?”
“……마물은 그래.”
실제로, 다툼에서 살해당한 쪽이 멍청하다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
하지만 그는 그게 자신에게는 딱히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상사들의 보복도 피할 수 없을 터다. 어쨌거나, 녀석은 환심을 사는 것에서만큼은 일류로 잘 대접받고 다녔으니까.
아니, 죽였다는 것뿐이라면 그런대로 괜찮다. 문제는 이 행위가 상사에 대한 반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다.
저 역시 살해당한다. 그제야 거기까지 짚어낸 그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마르지 않은 피 냄새에 취한 것만 같았던 조금 전까지의 흥분이 싸악 가셨다.
난생 처음 거둔 승리인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냥 넘겨줬으면 쫓겨나긴 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었을 텐데, 피가 솟아서 엉뚱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흐음.”
그런 기분을 알아챘는지, 그녀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흘끔흘끔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독차지할 생각이야?”
그는 초조해하던 탓에 순간적으로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는데, 멍한 표정을 보인 게 그녀의 비위를 건드려 버린 듯했다. 뒤이어 (그녀가) 가슴을 펴고 바보 취급하듯이 쏘아붙였다.
“그 볼품없는 몸으로 나를 안고 날 수는 있어?”
그런 것조차 여태 생각해보지 않은 그는 더욱 멍청하게 있었다. 듣고 보니 확실히 그와 그녀의 체급은 균형이 나빴다. 어설프게 들고 옮겨봤자 불시착할지도 모른다.
그의 얼빠진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깊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뭐, 좋아. 우선은 시체를 어딘가에 버리고, 연못이라도 찾아서, 그 지저분한 몸을 씻고 오세요.”
그러고선 고압적인 자세로 지시를 내렸다. 요령 없어 뵈는 얼굴의 그를 향해 다그친 것이었다.
“너무나도 불쌍하니까, 당신한테 싸움의 기본이라는 걸 가르쳐 줄게. 어차피 죽인 놈의 동료에게 보복당할지도 모르는 거지?”
그녀는 거기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덜덜 떨고 있어서야, 보고 있는 이쪽이 부끄러워.”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인간 여자애한테조차 동정을 사는 별 수 없는 마물이다. 심지어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뿌리치지도 못할 만큼 한심하다.
다만 그는, 틈을 봐서 그녀를 납치하기 위해 탑에 남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바치면 배신할 생각은 없다는 그의 주장을 상사가 분명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에게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방에 들여보내주긴 했어도, 그가 무심결에 다가가면 곧장 손바닥이 날아왔다. 한 번은 단검에 목이 찔릴 뻔했다. 이래서야 그는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당신처럼 아군이 단 한 명도 없으면서 싸워야 할 때의 요령은 하나지.”
이리하여 그는 결국 그녀의 강의를 듣는 처지가 돼 버렸다. 그녀로부터 적당히 떨어져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앉아, 책을 한 손에 들고 재잘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뭔가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잘못된 것 같기도 한데, 정신을 흐트러뜨리면 (그녀가) 책을 내던져버리니 어쩔 수가 없다.
“즉, 얼른 선수를 쳐 버리는 것. 상대를 한 명씩 해치우는 것. 이것뿐이야.”
“그렇게 말해도, 놈들은 이보다 훨씬 강하고…….”
“나약함은 모두의 적이다! 죽어도 괜찮다면 여기서 빨리 떠나는 게 어때!?”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겠지만, 매번 이런 식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맥없이 물러나 그녀의 강의를 계속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침이 와도, 그는 무서워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낮에는 거기 찬장 안에 들어가 있도록. 나오면 죽일 거야.”
구석의 작은 찬장에 처박히자 밖에서 자물쇠를 채운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울고 싶어졌다. 언제쯤 그 아첨꾼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의구심을 갖게 될까. 저는 언제 발견되는 걸까. 그때는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 걸까.
생각해봐도 그다지 웃기지 않는 상황이 무섭고 무서워서, 그는 이날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다만 수면 부족과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 그는 이제, 보기만 해도 물어뜯길 것 같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제야 그를 침상에서 발견하고 일을 따지려던 상사들이 당황하게 된 것도 별 수 없는 처사였다.
그에게는 득도와 같은 각오가 있었고, 그들은 그만한 반역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상사들이 겁을 먹은 순간, 그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보라색 몸뚱이로 달려들었다. 숨을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등 뒤에 감추고 있던 작은 검으로 단박에 그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단검을 힘껏 비틀어 뽑았다.
마물 중에서도 지위가 높은 자는, 이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단, 그의 상사처럼 말단을 거느리고 있을 뿐인 자에게는 충분히 치명상이었다.
그의 눈앞에서 상사의 커다란 몸뚱이가 쿵, 땅에 쓰러지며 체액이 주르륵 지면에 흘러내렸다. 그는 검을 움켜쥔 채로 한참이나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시 천천히 검을 들어서 목덜미에 일격을 가했다. 조그마한 검은 절반밖에 파고들지 못했지만, 효과는 충분했다.
등 너머의 기척으로, 추종자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그쪽에서 보자면, 지금의 그는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변했음이 분명했다.
스스로도 형편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 말마따나 결국 언젠가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대로 비참하게 설렁설렁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죽거나 죽이거나 두 가지뿐이었던 거다.
뒤돌아 추종자들을 노려봤다. 추종자들은 명백한 저자세로, 그가 한 걸음 다가서자 허둥대며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놈들에게 생각할 틈을 벌어준다면 그의 패배다. 사실 그는 작고 약해서 아무 힘도 없으니. 이것은 하나의 도박이다.
그리고 느는 그 도박에서 이겼다.
추종자들이 그대로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왕좌왕 그의 앞에서 도망치는 그들의 모습이 우스웠고, 그리고 왠지 서글펐다.
이윽고 조용해진 숲 속에서, 그는 한숨을 내쉬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거기에는 차갑고 가느다란 달이 걸려 있었다.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그런 그는 처음 얻어낸 커다란 승리에 들떴다. 간밤에는 극심한 피로에 시달려 곧장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었다. 근처에 가득한 피 냄새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저녁놀과 함께 일어났을 때, 변함없이 곁에 구르는 시체를 보고서야 그게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성취감과 상쾌함이 (불안을) 웃돌았다. 별안간 앞길이 트인 듯한 기분에, 그는 왠지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면, 자신을 때려주던 그 인간 계집애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일도.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당신,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그가 덤벼든 순간 날아온 것은 손바닥과 쌀쌀맞은 매도였다.
“내가 한 것은 단순한 베풀기야. 그 정도를 가지고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농담하지 마!”
조금 기가 자랐을 뿐인 그가 그녀의 기백을 당해낼 리도 없어, 일갈을 받자마자 방구석에서 어우, 어우, 항복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한심하구나! 한 번 관여했으니 어쩔 수 없지, 그 썩어빠진 근성을 고쳐줘야 직성이 풀리겠어!”
그리하여 다시 그녀의 특별 수업이 시작됐고, 그는 꺼림칙해하면서도 순순히 수업을 들었다.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다.
그런 그도 역시 고집 정도는 부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앙갚음을 할 거라며 오늘 밤에도 탑으로 가서는, 그녀에게 쓰러져 소득 없이 물러났다.
그의 지위는 차츰 올라갔고, 차츰 그의 체구도 큰 인물에 가까워졌지만, 그녀에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언제나 눈썹을 치켜든 채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기만 할 뿐이다.
그럼 언제쯤이나 되어야 하는데? 라고 그가 초조해하며 묻자, 그녀는 어쩐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글쎄, 마왕이 되면 봐줄 수도 있어, 턱없는 소리를 해 왔다.
그런 건 무리야, 라고 반박했더니 이번에는 역시나 얻어맞았다. 그런 기개도 없이 남에게 손을 뻗쳐오는 건 무슨 짓이냐면서. 마지못해 그는 꽁무니를 빼고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그녀의 힘 정도로는 두들겨 맞아도 아프기는커녕 간지럽지도 않다는 걸, 그는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윽고 그는 점점 바빠졌고, 또 적들도 많아졌으며, 탑에 오는 날들은 점점 띄엄띄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었다.
그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피부는 상처투성이지만 매끈하고 생기 있으며, 칠흑의 날개는 강철 같은 광택과 함께 등에 펼쳐진 데다, 힘이 넘치는 안광은 예리하고, 위풍당당한 체구는 주위에 몰려든 그 어떤 마물보다도 강인해 보였다.
지금, 그는 수십의 마물을 거느리고서, 오직 그녀의 곁으로 가고 있었다. 여러 모로 바빴기에, 방문하는 게 3개월만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서 그녀를 돌아볼 수 있다.
그는 젊은 마왕으로 등극했다. 여러 부하를 거느리고, 이제는 마물들을 통제하는 자리를 강탈했다. 이걸로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할 거다. 이 모습을 보면 그녀가 과연 뭐라고 해줄까.
언제나 그리웠던 탑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수행원들을 탑을 에워싸게끔 배치하고, 젠 체하며 등을 젖힌 채, 홀로 창문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거기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이 샜지만, 하기야 너무 오랜만이니 어쩔 수 없는 거라며 그는 창문으로 고개를 넣고 안을 들여다봤다. 거기서 그가 본 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녀가 침상에 누워 있었다. 낯빛이 무서울 정도로 창백하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기척을 알아차린 듯 시선이 창가로 쏟아졌는데, 그녀가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선 미소를 지었다. 그 연약함에 그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세차게 피어오르던 눈동자 속의 불빛마저 이제는 막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늦었잖아.”
우두커니 서 있던 그에게, 그녀가 어조만큼은 고압적으로 쏘아붙였다.
“언제나 당신은 굼떴지.”
그는 창문을 넘어가 비틀비틀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뺨은 야위고, 팔다리는 뼈가 드러날 만큼 말랐지만, 그래도 그의 눈에 비치는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녀는 그를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휙 눈을 돌리며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그래서, 무슨 용건?”
“……약속을……. 마왕이 되었으니까…….”
아직 동요가 가라앉지 않은 그는 어물어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평소처럼 쫓겨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때리지도 않았고, 베개를 집어던지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으니, 허락해 줄게.”
가벼운 미소를 입술에 머금은 채, 그를 향해 손을 뻗은 것이었다. 그가 황망히 손을 잡자, 힘겨운 떨림이 전해져 왔다.
그녀의 재촉에 그는 그 몸을 안아 들었다. 언젠가는 이러기 위해서 단련해 왔던 그였으나,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가벼운 감촉에 맥이 풀린 것만 같은 기분이 돼 버렸다. 이랬으면 처음 만났을 때라도 데려가기 쉬웠을 텐데, 왠지 후회도 들었다.
“그럼, 어디로 데려갈 거야?”
창가에 선 그에게, 그녀가 물었다.
“으음……, 어디가 좋아?”
“정말이지, 납치 대상이 고르게 하는 바보가 어디 있어.”
“그럼, 일단은 이 근처를 한 바퀴…….”
“좋아, 산책하자.”
그는 부하를 대기시켜두고, 그녀를 동반한 채로 밤하늘로 올라갔다. 초가을의 찬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밖에 나온 건 무척 오랜만이네…….”
그의 품에서 그녀가 불쑥 중얼거렸다. 두 사람 발밑으로는 검은 숲이 펼쳐져 있었고, 가늘게 잘라낸 것만 같은 달이 바로 곁에서 빛났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역시 대단하구나.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거야.”
그녀는 무척 솔직한 것이, 전례 없이 들뜬 듯했다. 하지만 말과 말 사이에 씩씩대는 숨결이 섞여있어, 그는 너무나도 걱정되었다. 그것을 여전히 민감하게 알아챈 그녀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왜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어? 신경 쓰지 마, 원래부터 알고 있던 일이니까.”
검붉게 변색된 그녀의 손끝과 발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항상 장갑을 끼고 있었지,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숨소리와,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어디선가 우는 마조(魔鳥)의 목소리만이 귀에 들려왔다.
불현듯이 아래에서 빛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발치에 나타난 호수가 달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것을 눈여겨본 그녀가 그에게 명령했다.
“아아,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어. 얼른 내려줘.”
물론 그는 거스를 수 없었다. 네에, 네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가로 내려섰다. 그러자 얼른 물을 길어오라는 명령을 받아, 그녀를 넓적한 바위에 눕히고는 부리나케 호수로 달려갔다.
그리고 물을 퍼 올린 순간, 그는 훅,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호수 위에 비친 그림자는 더 이상 그때의 연약하고 비참한 자신이 아니었다. 당연히 알고 있던 일이었지만, 그제야 그는 정말 그렇구나, 자각했다.
그는 천천히 돌아봤다.
어느새 그녀의 희미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검은 바위에 축 늘어진 하얀 손이 유독 눈에 띄었다. 휘청거리며 그는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가볍게 감긴 눈동자와 입은 더 이상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그러면서도, 이런 때에 울부짖을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을.
손에 퍼 담았던 물이 서서히 새어나가 땅에 떨어지며 검은 얼룩을 만들었다. 손 안에 한 방울도 남지 않게 되어도, 그는 거기에 서 있었다.
그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추악한 괴물이었다.
그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그 변모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그 한 사람뿐이다.
完
이분 원래 비극을 좋아하시나요?
흔한 이야기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침부터 내 마음이 참담해졌다
- 원본은 2001.02 게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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