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리+지휘사
*모르는 작품이라 애매하게 얼버무린 점이 있어 미안합니다. 작업은 즐거웠어요.
*약 2340자.


 

 멜라니 허스트에게 있어서 이 공간에 정을 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 설익은 인상은 폐허라는 이름이나 이 삭막한 벽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게 만드는 사람에 의한 거였다. 그 사람이 멜라니에게 잘못을 저지른 적은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멜라니는 이렇게 기회가 될 때마다 식사를 챙겨주러 온다는 둥 하며 나서서 그를 찾을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장소를 사랑하는 게 어려웠다.

 이 해저의 연구소를 순찰하던 중에 발견된 그 이능력자, 와타리의 상태는 빈말로라도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남들 말대로 ‘실험체로 쓰인 탓에 몸도 마음도 멀쩡하지 못한 거다’라고 설명하면 간단할 텐데도, 멜라니는 와타리를 그렇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와타리에 대해 무심히 말하는 것에 어쩐지 저항감이 느껴져서 더 그랬다. ‘…그런 애한테 무슨 염치로 그 말을 꺼낸담.’ 멜라니는 얕은 한숨만 내쉬었다.

 와타리는 생활구역 한 켠의 얇은 매트 위에서 몸을 옹송그린 채 잠들어 있었다. 혹시라도 단잠을 깨우는 걸까 싶어 멜라니는 자신의 발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와타리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그러자 곧 멀리서는 들리지 않았던 잠꼬대가 들렸다.
  “…미안해요, 혼내지 말아주세요….”
이런 줄 알았으면 그냥 발을 크게 구르기라도 하면서 걸을 걸 그랬다고, 멜라니는 방금 한 것보다 더 큰 한숨을 뱉었다. 마음이 답답해지는 건 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어서 더 답답하다. 멜라니가 괜히 속을 끓이는 와중에도 와타리는 여전히 꿈속의 누군가에게 사과하며 몸을 더 웅크렸다. 본인이 어떻게 느낄지는 몰라도 제가 보기엔 악몽이나 다름없는 것에 시달리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도 없어, 멜라니는 와타리의 몸을 가볍게 흔들어 깨우며 그에 대해 생각했다.

 와타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던, 와타리를 죽어서도 붙들어 맸던, 와타리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 하던, 와타리를 그런 식으로 대하던, 와타리를, 와타리가…, 상념에 잠긴 멜라니를 현실로 되돌려 붙든 건 와타리의 목소리였다.
  “어, 지휘사님…?”
와타리의 눈은 아직 잠과 꿈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듯 흐렸다. 멜라니는 와타리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가볍게 웃었다.
  “안녕, 와타리. 데리러 왔어요.”
  “…멜라니 님, 어, 언제부터 여기에 계셨어요…?”
  “아, 방금 오는 길에…. 와타리가 식사를 챙길 것 같지는 않아서 제가 챙겨왔어요.”
  “그렇군요. 저는…”
와타리는 말끝을 흐리면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다시 말을 꺼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감사해요…. 그, 아침밥, 정말 기대돼요.”
그러고는 와타리도 멜라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와타리. 오늘 같이 순찰 나갈래요? 여기 있으면 위험할지도 모르고….”
  “와타리의… 안전을 위해서인가요?”
안전을 위해서냐고. 와타리가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으나, 멜라니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그런 게 아니었다.

  “와타리의 힘을 빌리고 싶기도 해요. 중앙청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멜라니가 바라는 건 단순했다. 망령에 사로잡혀 연구소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 아이를, 이 애가 한때 바랐다던 바깥세상으로 이끌고 싶다. 자신이 쓸모 있을지 없을지 같은 것을 재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환하게 웃으며 지내는 걸 보고 싶다.
  “저도 이제는 그저 명목상의 지휘사에 지나지 않거든요, 큼….”
멜라니는 괜히 얼굴을 쓸어내리는 것으로 잠시나마 와타리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의 바람은 아직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평화롭게 지내도록 돕기는커녕 위험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 던져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 자못 괴로웠다.
  “만약 멜라니 님한테 제 힘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그러나 와타리는 망설이지 않았고,
  “노력할게요. 멜라니 님과 함께 해볼게요.”
그저 각오를 말하기 위해 약간의 심호흡을 했을 따름이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말투로, 다짐하듯이 부딪쳐오는 와타리를 보면서 멜라니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그럼 이제 가기 전에 밥부터 먹을까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챙겨온 식사를 차리며 곧 표정을 풀기는 했지만.
  “이 음식들은 처음 해본 거라 잘 됐을지는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맛있어요. …그런데 이 검고 딱딱한 건…?”
  “아, 그건 실수로 태워먹은 거! 먹지 마요! 배운지 얼마 안 돼서…”
멜라니를 흘끗 쳐다본 와타리가 웃어버리는 틈을 타, 멜라니는 얼른 그 끔찍한 덩어리를 자기 그릇에 옮기고는 다른 음식들로 대충 덮어 가렸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지금으로선 이룰 수 없는 소망이라지만, 언젠가는 정말로 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또, 이런 편안한 일상을 누리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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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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