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론] 위로

쓰다/2차 2015. 10. 24. 19:04

*데이빗↔프리츠
*2014. 09. 09.


 

 애덤이 카를과 연인이 되었다는 걸 알렸을 때, 베이스캠프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기류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탓이었다. 눈치 좋은 그들은 남의 사생활에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으므로 무던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와중에 메이너드는 장난스럽게 데이빗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의 마음을 난적에게 빼앗긴 기분이 어떠냐면서.
 데이빗은 그냥 웃었다. 물론, 약간은 마음이 쓰린 것도, 어째서 저 사람이냐고 묻고 싶은 기분도 전부 거짓이 아니었지만, 남들의 동정 어린 시선까지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데이빗은 애덤이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어 기쁘기만 했다. 제가 애덤을 향해 보내는 감정은 그토록 일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빗이 지나치지 못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프레드릭이었다. 특유의 나른한 어조로 말을 늘어놓는 애덤과, 그런 애덤을 말없이 쳐다보며 낯설게 웃는 카를. 그리고 그 둘 앞에서 유순하게 미소 짓는 프레드릭. 데이빗은 프레드릭의 눈빛에 담겨있는 게 뭔지 잘 알았다. 상대가 행복하길 바라기에 차마 드러낼 수 없는 것, 그러나 상대의 행복이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나에 의한 것이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 것.
 데이빗은 프레드릭의 어깨를 토닥여주려다 도로 손길을 거뒀다. 간신히 버티는 것만 같은 프레드릭을 건드려서 눈물을 터트리게 만들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대신 며칠이고 프레드릭을 지켜봤다. 그 위태로운 모습이 꼭 잠시 눈을 뗀 사이 저물어버릴 꽃처럼 보여서 그랬다. ……그리고 데이빗은 자신의 눈썰미가 좋은 편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레드릭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지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차리고도와줄 게 없냐고 얼쩡거리자 그럼 식기를 놔주겠냐며 난처하게 웃던 얼굴이 예뻤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사탕을 건네주고데이빗의 주머니에는 아직도 그 사탕이 있다, 하고 있는 연구로 돌아갔다가, 저녁이 되기 전엔 딱히 당번도 아니면서 손이 잘 닿지 않는 서재 구석 같은 곳을 청소했다.

 
그럼에도 데이빗은 여전히 프레드릭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 있게 곁에 다가간 주제에, 말을 더듬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프레드릭은 해사하게 웃었다. ……데이빗은 웃는 얼굴로도 마음이 아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실감했다. 모르는 일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새로 부여받은 젊은 몸에 마음이 따라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자각했다. 프레드릭이 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고서도 앞에서 근심 없이 웃어줬으면 좋겠다, 하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하지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묻고 싶지만. 묻지 않을 것이다. 다만 상상만은. 말을 꺼내면 그 뒤로는 경계하게 될까, 아니면 다가와줄까. 데이빗은 전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상냥하니 대놓고 달아나진 않을 거라고도. 저를 불편하게 여길 프레드릭에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면 상상은 끝나고, 입이 무거워졌다

.


 
덕분에 지금 같은 상황에 대해선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데이빗은 프레드릭의 등을 감싸는 제 팔에 힘을 줘 그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저보다 조금 큰 키를 가진 프레드릭의 몸이 너무 가늘어서 나올 뻔한 한숨을 겨우 삼켰다. 잘게 떨던 프레드릭은 일순 크게 흠칫했다가, 금세 얌전해졌다. 프레드릭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
 데이빗의 옷깃이 젖어들었다. 보통 이만한 남자가 울면 꼴사납던데. 데이빗은 잠깐 메이너드가 이렇게 굴면 바로 메다꽂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가, 품에 안긴 채로 소리 죽여 우는 프레드릭의 등을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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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u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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